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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용서와 책임 문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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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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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1651년 출간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The war of all against all.)만 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책은 인간론, 국가론, 기독교 국가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더 요약하면 교회와 국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국가나 교회나 심지어 가정까지도 인간의 집단은 서로 물고 먹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책, 리바이어던의 표지에는 인민이 뭉쳐서 만들어낸 거대한 인간이 산 너머에서 도시를 굽어보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홉스가 국가를 “인조인간”, 즉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인간적인 존재로 기술한 것을 형상한 것입니다. 그 거대한 인간은 왕의 홀과 검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은 인민이 뭉쳐서 만들어진 것만이 아니라 단순한 인민의 집합체와는 구분되는 독자적 성질을 갖고 있으며, 왕의 홀과 검으로 상징되는 공권력과 머리로 상징되는 정치적 지도를 인민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즉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기 때문에 국가와 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홉스의 이 이론은 지금의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집단에서든지 전쟁을 방불케 하는 투쟁이 있습니다. 국가 안의 정당들 사이에서도, 경쟁 기업들 간에도, 교회 안에도, 가정에서도 모두가 서로를 대적하여 싸웁니다. 심지어 부모형제 간에도 미워하고 시기하고 경쟁하고 법정투쟁까지 가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의 집단을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론 그리스도에게 속한 보이지 않는 교회는 이미 승리한 교회이고 절대적인 교회이지만, 보이는 이 현실 교회는 여전히 전투 중에 있는 교회이고 불완전하고 상대적인 교회입니다. 지금 우리가 속한 역사의 구체적인 지역교회에 절대적인 것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할 뿐입니다. 교회 뿐 아니라 교회 지도자에게도 너무 큰 기대를 하여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끊임없이 개혁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런 개혁의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용서입니다. 용서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상처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개인과 집단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투쟁하고 갈등을 겪으며 상처를 입기 때문에 용서는 더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에게 “불완전”이라는 병은 이 세상에서는 완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제한의 용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십계명의 전반부는 사람의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말씀하고 후반부는 윤리적인 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지키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람에 대한 의무, 즉 윤리적인 의무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윤리의 근거라고 합니다. 즉 사람에 대한 의무인 윤리는 하나님께 대한 의무로부터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잘 지킨다는 사실을 사람에 대한 의무를 잘 지킴으로서 증명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요한서신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요한은 형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cf. 요일 3:10, 14, 15; 4:21).

베드로는 예수님께 “형제의 잘못을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나름대로 율법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늘려서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490번 용서하라는 뜻이 아니라 용서에는 끝이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용서에 대하여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천국은 어떤 임금이 회계 결산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임금의 종들이 임금에게 1만 달란트를 빚진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1만 달란트는 5천만 데나리온입니다. 당시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일일 품삯입니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5백억 원 정도 됩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이 사람이 그 빚은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임금은 아내와 자식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게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관습입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아내와 자식까지도 팔아서 갚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임금에게 참아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임금은 그 사람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빚을 모두 탕감해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자기에게 빚진 친구를 만났습니다. 빚은 1백 데나리온입니다. 이 금액은 자신이 탕감 받은 액수의 50만분의 1에 불과합니다. 이 사람의 친구도 사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빚을 갚을 길이 없는 친구를 기어코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임금은 이 사람을 불러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 너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결국 이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은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늘 외우고 있는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구절과 같습니다.

그런데 일곱 번씩 일흔 번 이라도 용서하라는 교훈에 한 가지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교훈을 용서 만능주의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끝없이 용서해야 하는 것이 이 말씀의 뜻이라고 하더라도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재판을 진행하는 판사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에게 선고를 내릴 때 판사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 용서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따를 수는 없습니다. 개인의 경건으로는 용서할 수 있어도 법을 집행하는 공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모든 잘못을 무조건 용서한다면 사회 질서 자체가 허물어지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아픔을 겪게 됩니다. 이 문제는 재판과 같은 공공의 차원만이 아니라 일상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교육이나 비즈니스에서도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이미 천국에 들어와 삽니다. 그러나 아직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면서 또한 아귀다툼과 같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투쟁과 갈등을 피할 수 없고 용서가 필요합니다. 끝없이 용서해야 하되 불법을 행하여 공익을 훼손할 경우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딜레마이고 긴장입니다. 우리는 무제한적인 용서의 정신을 견지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용서가 아니라 책임을 물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무제한적 용서가 하나님 나라의 윤리라고 한다면 후자는 세속의 윤리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세속의 윤리에 그대로 대입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세속의 윤리만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런 갈등의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 마 18:2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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