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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 정직과 인격적 정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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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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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수가 이솝의 사자와 당나귀와 여우가 협동하여 사냥한 우화에 대한 해설의 글에서 “사자의 몫이 여우나 당나귀와 같다면 누가 사자가 되려고 노력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적에 따라 상을 주는 논공행상(論功行賞)이 강조 됩니다. 노력에 따라 그 이득을 보장하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누구나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기업의 회장, 인기 운동선수, 인기 가수, 인기 탤런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높은 연봉이 공평한 보상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자본주의 아래서 어느 정도 부익부 빈익빈의 부작용을 피할 수 없더라도 교수쯤 되면 자본주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지,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정당화 하는 논리를 펴는 것은 현실의 갈등과 수많은 문제로 인해 고통 당하는 약자들에 대해 너무 배려 없는 주장입니다. 한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는 가능한 한 약자 편에서 말해야 합니다. 강자에게 유리한 것을 정당화 하는 주장은 욕심 많은 기업주들이 하는 주장입니다. 강자에게 유리하게 하는 교수의 논리를 탓할 것도 없습니다. 기독교인과 교회도 이러한 자본주의의 부작용까지를 정당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갑을 관계의 계약 하에서 작동합니다. 사자와 여우의 이야기는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자신보다 머리가 좋고 교활한 자나,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힘이 강한 자와는 결코 약속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나 자본주의가 쳐 놓은 저인망 그물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열심히 일하게 하는 인센티브로 활용되어야 하고 분배는 사회주의 이상을 따라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게 전혀 불가능한 게 아닙니다.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그런 쪽으로 상당히 발전하였습니다. 북유럽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개선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거짓에는 개인의 거짓말도 있지만 사상과 이론과 제도로 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상대주의가 그 대표적인 이론적 거짓말입니다. 자본주의는 절대로 자본주의만으로는 복지사회를 이룰 수 없는데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속여서 거짓이고, 상대주의는 모든 것을 상대화 하면서 상대주의 자체는 절대로 상대화 하지 않아서 거짓입니다. 이런 이론들이 구축해 놓은 영향력을 개인이 벗어나기란 불가능합니다. 거짓된 이론의 영향 아래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속이고 거짓말 하면서 들키지 않는 것이 능력으로 통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남들처럼 살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속이든 사기를 치든 들키지만 않으면 됩니다. 대통령이나 기업가나 학자나 종교인이나 운동선수나 탤런트나 국민들이나 속이고 거짓말 안 하고 살 수 없으니까 이런 세상에서의 생존 방법은 속이고 거짓말 하고 들키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대형 교회 목사가 7계명을 범하여 교회에서 쫓겨났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어떤 대형 교회 목사가 “병신 같이 들키기는 왜 들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그도 7계명을 범하다가 들켰습니다. 자본주의 병리현상이 교회 안에서까지 나타난 것은 이미 오랜 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특별한 상황이 아닙니다.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이런 것이 인간의 수준이고 그리스도인의 수준입니다.

문제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15:1-2절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의 장막이나 성산은 다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정직하게 행하고 공의를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아닙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 살려면 정직해야 하고 공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고 하나님 백성의 성화도 완성되기 때문에 거짓이 없으니까 정직이나 공의가 필요하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정직과 공의와 진실이 필요한 것은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도 거의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교훈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니까 정직하고 공의를 실천하고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만약에 모든 사람이 정직하고 공의를 실천하고 진실을 말한다면 어는 나라든지 지금의 국가 예산의 10분의 1도 안 들 것입니다. 거의 모든 국가 예산은 거짓말과 불의나 진실하지 않은 것 때문에 낭비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나라에도 모든 국민이 정직할 수는 없지만 거짓을 줄이고 공의를 실천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예산이 엄청나게 줄어들 것입니다. 불필요한 예산이 줄어들면 그 돈으로 약하고 가난한 사람을 더 많이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재벌들의 몫을 줄이고 인기 탤런트들이나 인기 가수나 인기 운동선수들의 연봉을 골고루 나누어 쓴다면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고통을 상당할 정도로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이런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초월적 방법으로 그것이 이루어지겠지만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노력에 의해서 그렇게 되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방법이 없는 게 아닙니다. 욕심과 거짓 때문에 천국의 원리가 적용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정직과 공의와 진실은 첫째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의 형상이며, 둘째는 소극적으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거짓이 지배 원리로 작동을 합니다. 사람이 타락했어도 하나님의 형상이 지워진 것은 아닙니다. 타락한 사람에게도 양심이 있습니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그것을 전제하고 복음을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양심이 있는데 어떻게 거짓이 지배 원리로 작동하는 것이 가능하냐 하는 것입니다.

시편 15:2절에 의미심장한 표현이 나옵니다.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마음의 진실”이 아니고 “마음에 진실”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자기 마음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이런 표현이 여러 번 나옵니다. 자기 마음에게 진실을 말하는 자가 진실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냥 진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에게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말해야 진실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거짓 된 사람은 자기 마음에게 거짓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거짓된 사람은 자기 마음에게 거짓을 정직이라고 말합니다. 거짓을 진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해서 거짓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말 하는 사람은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을 하지만 자기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말한다고 확신합니다. 이 세상에서 거짓이 지배 원리로 작동이 가능한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우리는 정직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 보이야 합니다. 정직은 무조건 옳고 좋은 것이고 거짓은 무조건 나쁘다는 단순한 생각을 사려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직은 반드시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아야 하고 적극적으로는 덕을 끼쳐야 합니다. 기계적이거나 형식적 정직은 정직이 아닙니다. 인격적 정직 즉 다른 사람에 대한 인격적 책임이 동반된 정직이라야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정직입니다.

도둑이 남의 것을 훔쳐 놓고 정직하게 훔친 사실을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정직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은 법을 이용해서 형식적으로는 얼마든지 정직한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법과 그 정직이 약한 자의 권리를 짓밟고 약한 자의 것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성경이 강조하는 인격적 정직이 아닙니다. 반대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를 위해 거짓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사를 정직하지 못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 자체는 거짓말이지만, 즉 형식적으로는 거짓말을 한 것이지만 인격적으로는 정직의 효과를 냅니다. 환자를 위하려는 의도와 목적 하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런 것은 마치 예방주사와 같은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이 확대 해석되어서 상황윤리를 정당화해서는 안 되지만 법을 이용한 형식적 정직으로 자기를 정당화 하는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진실을 말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은 그런 것까지 감안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시 15:1-5, 롬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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