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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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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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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3/28
필자는 달러($)지폐를 좋아한다. 물론 돈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달러($) 지폐 자체의 모양과 그 의미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통용되는 지폐는 1달러, 2달러, 5달러, 10달러, 20달러, 50달러, 100달러 등 모두 7종류다. 이 가운데 2달러 짜리 지폐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아주 활발하게 유통되는 편이다.

그런데 미국 지폐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지폐가 액면가에 따라 크기가 달라 차별을 두는 것과는 달리 액면가와 관계없이 크기가 똑같다는 것이다. 또 전반적인 색상은 역시 녹색으로 차이가 적다. 다만 지폐의 도안과 표시된 액면가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액면가와 관계없이 크기가 똑같다는 것은 비록 쓰임새(function)는 다르나 지폐 자체로서는 차별없이 평등하다는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나타낸다.

그런데 이 평등을 문자 그대로 평등하게 만드는 것을 우리는 공평-하다[公平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르다] 라고 하며 신구약 성경 전체에 걸쳐 이에 대한 말씀이 여러 번 등장한다.

(사28:17)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교회와 교계가 거짓으로 어지러울떄 세상은 공평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 한다. 그러나 공평한 세상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원하면서 내 마음의 추는 공정한지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잠언 11;1)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
(신명기 25:13-15)"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리라"

'같지 않은 저울추' 혹은 “속이는 저울”은 무엇일까?
살 때와 팔 때에 서로 다른 추를 써서 무게를 속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거짓된 마음은 침상에서 편한 잠을 취하지 못하기에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가 대하는 상대를 따라서 달라지는 우리의 마음을 보게 된다.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상대방마다 각각의 저울추를 정해놓고 그 정해진, 즉 미리 판단되어진 잣대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의 선입관은 어쩌면 상인의 속이는 추보다도 더 심각하게 교회의 건강도와 신뢰감을 떨어뜨리지는 않는지 먼저 살펴 볼 일이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동일하게 '피로 산 자녀(계 5:9)'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어떤 사람은 더 값을 치르고 다른 이에게는 조금 치른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며 같은 값으로 구속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평등한 성도로 설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현재 사순절의 중간을 지나가고 있으며 곧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고대하고 있으며 이 시점에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주목하고 싶다.

“(예레미야 23장 5-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우리는 이 분이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임을 잘 알고 있다. 죄가 가장 깊고 멸망이 자명하게 코앞에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하여 주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로 인하여 임하게 될 ‘죄가 제거된 밝은 상태의 아름다운 주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고 있다. 그 나라는 이 땅에서 실패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나라가 다시 회복되어 일어나 완성되는 나라이다.

후반부에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것인데 이는 성경에서 주의 백성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곧, 유다와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에서 다시 회복되어 원래 의도대로 완성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여호와 우리의 의”이다.

로마서 3장에 의하면 “여호와 우리의 의”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보혈을 말한다. 나아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또한 주께서 이루신 의를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은혜로 주시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결국 우리도 의롭게 되고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는 하나님도 의로우신 것을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보혈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공평과 정의의 상징이라는 말이며 십자가가 전해지는 모든 곳에서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가 하나님을 공평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라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
우리 주위에는 자신의 교회 안에만 갇혀 있는 외눈박이 목회자와 교인들이 대다수이다. 한쪽 눈만 뜨고 있는 애꾸눈 목회자들의 시선은 오로지 자기 교회로만 향해 있다. 그들의 눈에는 자기 교회, 자기 교인들만 존재한다. 이 영역 안에서만 사랑과 섬김, 전도와 양육이 의미를 가진다. 그들에게는 다른 교회, 다른 교단,다른 교파, 다른 세상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들과의 소통과 연대, 형제애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교회주의자들의 유형이다.

같은 교회에서는 또 어떠한가 ? 내 구역(목장)을 먼저 챙기고 내 가족, 동향, 전도회가 우선이 아닌지 ? 담임목사나 장로들을 대할 떄와 일반 교인을 대할 때에 우리는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지 ? 과연 장로,안수집사,권사 임직 선정에 있어 공평,정의가 올바르게 실현되는지 ? 담임목사가 교인 하나하나를 같은 마음으로 대하며 가슴에 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지 ?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서게 될 때 동일하게 “피로 산 자녀(계 5;9)”이며 보혈의 십자가는 공평과 정의의 십자가이기에 교회 안에서 성도들은 직분과 상관없이 공평하게 대접받아야 하며 교회와 교회와의 관계는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같은 위치이다.

담임목사나 장로, 권사 ,집사, 일반 교인의 직분은 달라도 성도로서는 같은 위치이며 동일하게 보혈의 피로 산 자녀이기에 직분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주께 대하듯 대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5명의 교인으로 상가의 작은 방에서 시작하는 교회나 대리석과 고가의 음향장비로 번쩍이는 외향을 자랑하는 2,000명의 교회나 크기에 따라 사역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하나님의 눈으로는 같은 교회라는 것이다.

금번 사순절 새벽기도회에 부르짖는 기도 제목 중에 내 눈이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는” 눈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것이 보혈의 십자가의 올바른 의미이며 우리가 이루어 나가야 할 “ 여호와 우리의 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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