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알아야 할 하나님 나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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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ㆍ2015-08-0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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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라고 하면 사람들은 교회를 머리에 떠 올립니다. 교회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기관임은 틀림없습니다. 교회를 이야기 하지 않고 기독교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앱 성경 문구 찾기로 조사해보니 신약에‘교회’라는 단어가 116번 나오는데 복음서에는 마태복음에 딱 두 번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교회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많이 말씀하시고 가르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천국’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 나라’, ‘그의 나라’라고 하기도 하고 ‘하늘나라’라고 하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다 같은 뜻입니다.
성경의 전체 주제는 예수님입니다(요 5:39). 성경 전체의 주제이신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에서 제일처음 하신 말씀이 하나님 나라입니다(마 4:17).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의 첫 메시지도 천국이었습니다(마 3:1,2). 예수님의 그 유명한 산상수훈은 물론 공생애 내내 강조하여 가르치신 거의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입니다. 공생애 내내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시다가 마지막에 12제자들을 사도로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포기하시고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 하신 것입니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다르지만 하나님 나라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세속에서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백성을 세속으로부터 불러내어 보호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 나라의 일이 교회의 본연의 일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속으로부터 보호받고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진리를 지키고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교회가 구제나 사회봉사를 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연의 일은 아닙니다. 구제나 사회봉사나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교회의 일원인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그런 일을 잘 감당하도록 하나님 나라를 잘 가르치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눈에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는 가시적 평가를 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가시적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 교회의 성장에 집착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교회도 가시적 평가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 나라보다는 가시적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시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결과를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으며, 우리가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요? 교회는 주일마다 특정한 장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고 활동을 하니까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가시적으로 우리가 경험할 수 없습니다. 천당, 천국, 하나님 나라, 그 나라, 그의 나라, 하늘나라라는 이름의 개념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다는 사실만 보아도 하나님 나라 이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죽은 다음에 가게 될 천당입니다. 계시록에는 그 나라를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이 설명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저와 여러분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지난 7월 14일에 미국 무인 우주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가 명왕성 근접에 성공했습니다.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디딘 이후 미국이 이번에 우주 물리학에서 또 한 번의 엄청난 일을 해냈습니다. 대한민국은 기껏해야 상업용 위성 하나 쏘아 올리는 것도 실패를 한 마당에 미국은 참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답습니다. 왜 이것이 대단하냐 하면 21세기는 소프트웨어 시대입니다. 하드웨어는 어느 나라나 다 만듭니다. 문제는 그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앞서느냐로 선진국 또는 강대국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우주선이 명왕성 가까이에 접근했다는 한 가지 사실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멀리 있는 별입니다. 지구에서 56억7천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6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습니다. 이번에 그곳에 접근한 미국의 우주선은 지구를 떠난 지 9년 6개월 만에 명왕성 가까이에 접근하였습니다. 우주선의 속도는 대략 시속 6만8천여 킬로미터입니다. 우리가 타는 비행기가 시속 1천 킬로미터로 나는 것과 비교해보면 우주선의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주선이나 비행기가 대기권 안에서는 그런 속도를 낼 수 없고 만약 그렇게 빠른 속도를 낸다면 마찰열에 의해 기체가 불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만약에 비행기를 타고 명왕성까지 가려면 대략 6백년이 걸립니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1억5천만 킬로미터입니다. 명왕성은 그 거리의 40배 이상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뉴호라이즌스호가 앞으로 20년 이상 태양으로부터 더 멀리 날아가면서 사진을 지구로 보내준다고 합니다. 그 사진을 볼 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주에는 태양계와 같은 것이 몇 개나 더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천문학자들이 별을 연구할 때 별빛이 지구까지 오는 시간을 광속으로 계산하여 몇 만 년 된 별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라는 것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주론적인 대변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사는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나라입니다. 이런 생각해 보셨습니까? 한 살에 죽은 아이가 천국에서 몇 살 먹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부모가 30세에 죽고 그 자식이 90세까지 살았다면 하나님 나라에서 자식이 아버지보다 더 늙은 모습일까요? 시집 장가도 안 가는 하나님 나라에서 성은 어떤 것일까요? 천국에 대해 무엇 하나 우리가 제대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 수 없는 천국에 대해서는 그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알 수 없는 천국에 대해 지나치게 상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어떤 면에서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그냥 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우주적 대 변혁의 나라일 뿐 아니라 지금 여기에 우리 안에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어서 갈 그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 우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가 너무 신비롭고 또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그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보고 인간관계가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설명은 하나님 나라는 가시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설명을 하신 것이지 인간관계가 하나님 나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래새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아무리 알아보려고 해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남겨두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알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주과학자들이 우주에 대해 아무리 연구를 해도 다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노력하여 인류에게 기여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서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대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세워지는 나라인지, 아니면 저 세상에 세워지는 나라인지, 하나님 나라는 역사 내재적인지, 역사 초월적인지,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 와 있는지, 종말에 임할 것인지 그 모든 질문에 대한 이야기가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의 담론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 기독교의 문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마 6:33 -
성경의 전체 주제는 예수님입니다(요 5:39). 성경 전체의 주제이신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에서 제일처음 하신 말씀이 하나님 나라입니다(마 4:17).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의 첫 메시지도 천국이었습니다(마 3:1,2). 예수님의 그 유명한 산상수훈은 물론 공생애 내내 강조하여 가르치신 거의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입니다. 공생애 내내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시다가 마지막에 12제자들을 사도로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포기하시고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 하신 것입니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다르지만 하나님 나라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세속에서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백성을 세속으로부터 불러내어 보호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 나라의 일이 교회의 본연의 일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속으로부터 보호받고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진리를 지키고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교회가 구제나 사회봉사를 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연의 일은 아닙니다. 구제나 사회봉사나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교회의 일원인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그런 일을 잘 감당하도록 하나님 나라를 잘 가르치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눈에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는 가시적 평가를 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가시적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 교회의 성장에 집착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교회도 가시적 평가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 나라보다는 가시적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시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결과를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으며, 우리가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요? 교회는 주일마다 특정한 장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고 활동을 하니까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가시적으로 우리가 경험할 수 없습니다. 천당, 천국, 하나님 나라, 그 나라, 그의 나라, 하늘나라라는 이름의 개념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다는 사실만 보아도 하나님 나라 이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죽은 다음에 가게 될 천당입니다. 계시록에는 그 나라를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이 설명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저와 여러분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지난 7월 14일에 미국 무인 우주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가 명왕성 근접에 성공했습니다.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디딘 이후 미국이 이번에 우주 물리학에서 또 한 번의 엄청난 일을 해냈습니다. 대한민국은 기껏해야 상업용 위성 하나 쏘아 올리는 것도 실패를 한 마당에 미국은 참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답습니다. 왜 이것이 대단하냐 하면 21세기는 소프트웨어 시대입니다. 하드웨어는 어느 나라나 다 만듭니다. 문제는 그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앞서느냐로 선진국 또는 강대국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우주선이 명왕성 가까이에 접근했다는 한 가지 사실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멀리 있는 별입니다. 지구에서 56억7천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6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습니다. 이번에 그곳에 접근한 미국의 우주선은 지구를 떠난 지 9년 6개월 만에 명왕성 가까이에 접근하였습니다. 우주선의 속도는 대략 시속 6만8천여 킬로미터입니다. 우리가 타는 비행기가 시속 1천 킬로미터로 나는 것과 비교해보면 우주선의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주선이나 비행기가 대기권 안에서는 그런 속도를 낼 수 없고 만약 그렇게 빠른 속도를 낸다면 마찰열에 의해 기체가 불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만약에 비행기를 타고 명왕성까지 가려면 대략 6백년이 걸립니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1억5천만 킬로미터입니다. 명왕성은 그 거리의 40배 이상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뉴호라이즌스호가 앞으로 20년 이상 태양으로부터 더 멀리 날아가면서 사진을 지구로 보내준다고 합니다. 그 사진을 볼 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주에는 태양계와 같은 것이 몇 개나 더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천문학자들이 별을 연구할 때 별빛이 지구까지 오는 시간을 광속으로 계산하여 몇 만 년 된 별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라는 것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주론적인 대변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사는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나라입니다. 이런 생각해 보셨습니까? 한 살에 죽은 아이가 천국에서 몇 살 먹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부모가 30세에 죽고 그 자식이 90세까지 살았다면 하나님 나라에서 자식이 아버지보다 더 늙은 모습일까요? 시집 장가도 안 가는 하나님 나라에서 성은 어떤 것일까요? 천국에 대해 무엇 하나 우리가 제대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 수 없는 천국에 대해서는 그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알 수 없는 천국에 대해 지나치게 상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어떤 면에서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그냥 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우주적 대 변혁의 나라일 뿐 아니라 지금 여기에 우리 안에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어서 갈 그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 우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가 너무 신비롭고 또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그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보고 인간관계가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설명은 하나님 나라는 가시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설명을 하신 것이지 인간관계가 하나님 나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래새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아무리 알아보려고 해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남겨두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알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주과학자들이 우주에 대해 아무리 연구를 해도 다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노력하여 인류에게 기여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서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대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세워지는 나라인지, 아니면 저 세상에 세워지는 나라인지, 하나님 나라는 역사 내재적인지, 역사 초월적인지,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 와 있는지, 종말에 임할 것인지 그 모든 질문에 대한 이야기가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의 담론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 기독교의 문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마 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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