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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재 방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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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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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인간의 존재 방식을 설명하려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본질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실존주의는 본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실존 즉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행위가 인간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실존주의에서 인간의 정의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근거한 개인의 존재와 경험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의미합니다. 인간을 본질적이고 고정된 특성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자유로운 주체로서 자신의 존재를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로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의 토대에서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중시하며, 자신의 삶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인간은 자유로운 의지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존주의는 인간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적 상황, 윤리적 선택 등 다양한 측면에서 책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실존주의는 개인의 경험과 고통,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존재하는 동안 고통과 죽음의 현실을 직면하며, 이를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고 찾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개인의 경험과 고뇌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식을 얻을 수 있으며, 이는 개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존주의의 인간 정의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 책임, 경험과 고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중시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이러한 실존주의의 설명에 공감하며 기독교인조차도 실존주의적 복음 설명에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존재 방식을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서 설명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여러 가지로 설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도 하나님의 존재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전하고 완전한 하나님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인간의 존재 방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존재 방식이 곧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따라야 할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사랑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 존재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사랑이라는 사실은 성경 계시의 핵심입니다. 이 계시를 지향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방식입니다.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라고 하셨고, 모세에게도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신 18:13)고 하셨으며,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는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라고 하셨습니다. 완전함이나 거룩함은 하나님의 속성인데 이 둘도 결국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고 까지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계시의 완성이고 그것은 곧 사랑입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존재 방식은 호흡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회적 존재 방식은 인간관계 가운데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영적 존재 방식은 앞의 두 가지를 포함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한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과 같은 존재 방식으로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인간은 실존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규정된 본질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현실적 부조리는 죄의 결과이고 그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인간 능력과 수준에 따른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본질과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라는 신분에 따른 요구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죄를 지적하고 불의를 비판하는 일까지도 사랑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사랑이 동기와 방법과 목적을 지배하지 않는다면 말하지 말고 행동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사회에서는 명분과 실천이 불일치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믿음과 삶이 불일치합니다.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지만 그보다 신자들끼리 사소하고 지엽적인 문제로 다투고 서로 적개심을 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체적 문제에 있어서 비난받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의 수준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도 잘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믿음과 삶은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위나 삶을 보고 믿음을 평가하지만, 엄격하게 말한다면 믿음은 삶이나 인격과 차원을 달리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믿는 사람이 윤리적 책임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행위와 차원이 다른 믿음을 말하면서 또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계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윤리적인 책임을 소홀히 하면 교회가 상처를 입고 전도의 문이 막히게 되는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믿음과 윤리적 삶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덕목을 제시하여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덕목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존재론적 토대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완벽하게 이루어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에 부응하는 행위를 하도록 힘쓰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바울은 율법으로 인간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업적 위주의 행위와 율법주의를 비판하였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서상으로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신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체적 신앙의 규범에 집착하기보다 새로운 신분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존재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존재 방식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존재 방식은 사랑에 의존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노력으로 완전한 도덕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신 하나님께 의존하여 생각하고 표현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어떤 말을 하기 전에, 어떤 글을 쓰기 전에, 설교하기 전에, 권면하기 전에, 책망하기 전에, 행동하기 전에 사랑이 동기가 되고 있는지 사랑이 목적이 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그렇지 않다면 하지 않는 것이 유익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4)라고 하였고,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라고 하였으며,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잡수시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며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쉬운 말로 바꾸면 사이좋게 지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최고의 가치는 사랑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교훈과 진리는 사랑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복음도 사랑이고 구원도 사랑이고 충성도 사랑이고 헌신도 사랑이고 구제도 사랑이고 선교도 사랑이고 용서도 사랑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라고 하였습니다.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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