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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개안, 하나님을 향하여 눈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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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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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인간에게 보여주시고 알게하기 위해 기록한 계시입니다. 성경 계시에 의하면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천지만물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고 또한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비롯하여 만물이 하나님의 계시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죄를 지어 타락한 때문이지만 인간의 타락이 하나님의 계시를 파괴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알만한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한 것도 아닙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완전하게 아는 것은 가능하지 않지만 죄를 지어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능력을 남겨두신 것이 은혜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남아 있는 하나님을 알만한 능력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을 변명 할 수 없는 원인과 이유가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알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 6:3)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도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시편 19:1-4)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이러한 성경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이 우주를 관찰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의 질서와 신비와 경이로움은 그 능력과 지혜가 측량할 수 없이 많고 영광스러운 창조주의 존재를 알려줍니다. 모든 창조물은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지혜와 능력과 초월하심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반적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도 초자연적인 특별계시 때문이지만 일반계시는 하나님 앎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더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피상에 머물면 안 됩니다. 신앙의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주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고 인간의 모든 실패는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결핍에서 일어난 폐해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에 의하면 인간이 무엇을 안다는 것은 부분적이고 희미할 뿐입니다. 철학이나 사상이나 역사나 어떤 원리를 아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공부하는 것은 어떤 세계를 향해 눈뜨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것도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께 눈뜨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이나 신학서적이나 어떤 책이라도 한번 읽어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알고 깨달아 가는 것은 점진적입니다. 어떤 책을 읽거나 무엇을 관찰하여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읽고 관찰해도 알 수 없다고 해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여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읽기와 관찰을 통해 어떤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열정과 의지를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에 대해 눈뜬다는 것은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어지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무언가를 알고 싶어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알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질문을 하게 됩니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어떤 세계를 향해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은 지금까지는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아무리 많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해도 진리와 근본에 대해서 눈을 감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눈을 감는다는 것은 이 세상을 자기가 지금까지 보아온 익숙한 눈으로만 본다는 것이며, 눈을 뜬다는 것은 그런 익숙한 눈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관계하는 모든 것을 일종의 소품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들과 존재론적으로 유기적 관계와 차원을 알아가려는 사람이 있는데, 전자는 눈을 떳으나 실제로는 감은 사람이고, 후자는 눈을 뜬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깨서도 눈으로 보고 안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을 장님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신앙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해서 눈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뜨게 하기 위한 것인데 실제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감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과 합리적 인식의 틀로만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감은 대표적인 경우인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행동이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세리나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율법적 경건이 정상적인 것이라 확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눈을 뜨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새롭게 보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해야하는 것은 어떤 고정관념, 선입관, 종교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과 세계를 일단 있는 그대로 보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계시를 통해 보여준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한데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에게 그런 태도를 배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고 하나님을 향하여 눈뜨고 싶은 마음 없이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교회당을 짓는데 집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눈뜨는 것이 아니고 자기에 대해 집중하는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상관없이 그냥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자기 능력을 증명하고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런 일에 열심을 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그런 믿음으로 최선을 다 해도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하나님께 대하여 눈뜨는 과정이 완전히 배제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눈뜨는 것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형태의 신앙이 강화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알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의 열정만 많아지면 충분하다는 듯이 보이는 저돌적인 형태의 교회와 교인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대형교회 중에는 새벽기도회에 5만명이 모인 것을 무슨 업적이라도 되는 듯이 자랑하기도 하고 어떤 대형교회는 이번 부활절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외국에서 온 이들도 있다면서 많이 모이도록 닦달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려고 하는 마음 없이도 사람들은 그렇게 모일 수 있습니다. 기독교만이 아니라 이단들은 더 잘 모이고 더 많이 모이기도 합니다. 통일교 신자나 이슬람교도들은 모이는 결집력이 기독교인보다 훨씬 강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종교적인 현상에 속합니다. 기독교도 종교이니까 그런 종교적인 현상이 일어나긴 하지만 진정한 기독교는 그와같은 종교적인 현상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 알기를 지향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삶의 중심에 역동적 힘으로 개입하는 하나님 나라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대형교회들의 숫자나 물리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성경적인지는 단정적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가르치시는 뜻에 비추어 모든 것을 분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됩니다. 만약 교회가 인간의 종교심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게 된다면 복음의 능력은 훼손되고 말 것입니다다. 당장은 종교적인 열정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 것 같더라도 그런 것은 인위적인 종교적 현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눈뜬다는 것은 신비한 세계를 맛보는 것이고 생명의 신비에 황홀해 하는 것이며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존재 앞에서 아찔한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내면세계가 우리의 일상에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지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 즉 하나님을 향하여 눈뜨는 것은 단순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알고자 하는 마음과 의지를 다지고 힘써야 하되 성령님의 주도적인 도우심에 의존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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