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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생명, 일상으로 해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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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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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사도 바울은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되고 만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나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에 불과하고, 우리는 헛된 것을 전하는 거짓 증인 곧 거짓말쟁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으면 교회도 기독교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강조하여 가르치는 것은 십자가 없이 부활이 있을 수 없고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이같이 깊은 관계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겪으신 수난의 정점이며 중심이고 그분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했던 일입니다. 이렇게도 중요한 예수님의 수난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신약성경의 복음서들입니다. 복음서들은 그 수난 사건이 일어났던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일주일간의 이야기를 그만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거의 동일한 수준에서 전체 내용의 삼분지 일 이상을 이 수난의 한주간 일들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마가복음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신 이야기를 생략하고 요한복음은 성육신 사건의 의미만 전하는 것과는 완벽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수난(passion)이라는 말은 라틴어 passio(suffering)에서 온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그분의 생애 마지막 주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때로부터 또는 목요일 저녁에 가진 다락방 만찬을 마친 후로부터 그다음 날인 금요일 오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때까지 일어난 일들을 가리킵니다. 멜 깁슨이 만든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Christ)이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12시간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복음서 저자들의 의도를 반영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이라는 말은 ‘일어나는 것’이라는 뜻의 희랍어 아나스타시스(anastasis)에서 온 말로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말을 잠시 숨이 멈추었다가 회생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하고, 역사상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그런 부활을 하셨고 마지막 날에는 모든 사람이 부활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중요한 사실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지만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부활이 생명의 질적 변화하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부활에 대해서 다시 살아나는 점을 강조하지만, 또한 부활 생명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부활 생명에 의하면 다시 산다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 즉 새 피조물로 새롭게 사는 것이 부활입니다. 따라서 부활은 새 창조이고 차원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존재가 차원이 다른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부활 생명은 사후의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이 현실에서 좀 더 윤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고는 있지만, 부활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그 개념마저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삶에서 중요하다고 보는 윤리적인 삶, 사회개혁, 심리적 위로 같은 요소들은 굳이 그리스도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같이 강조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그런 주제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의 예수님 부활 사건에 그를 믿는 이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온전히 담보시킨 종교는 기독교 이외에는 없습니다. 기독교에서 부활 신앙은 그 정도로 결정적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그런 수준에 따르는 위험을 수반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의 설명은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사후에 낭패를 겪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이 허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 설교자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은 부활 신앙을 내세의 문제로만 취급하고 현재의 문제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취급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부활 신앙을 현재의 문제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에 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의하면서 생각의 지평을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현대 대부분 그리스도인은 부활절 때만 “부활을 믿습니다.” 하고 큰소리를 칠뿐 실제 삶은 부활과 상관이 없다는 듯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세상 앞에서 자신들의 신앙에 관해 해명할만한 역량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신앙과 전혀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는 이 세상의 학문과 세상 질서에 완전히 함몰되어 살아가고 있으므로 일상으로 복음을 변증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강화하거나 아니면 순전히 종교적인 체험에 집착합니다.

예를 들면 나이 든 이들은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치 운동에 참여하고 젊은이들은 ‘경배와 찬양’ 유의 신앙 운동에 몰입합니다. 이런 형태는 부활 생명과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세상과 이원론적으로 구분한 채 순전히 종교적인 영역으로 숨어드는 왜곡된 신앙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자 모두 열광적인 양태로 나타나는 이유는 그것들이 기본적으로 신앙의 실존적 불안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더는 기독교 신앙이 당연시되지 않는 시대사조 앞에서 겪게 되는 불안을 극복하거나 호도하기 위해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적 욕망과 열정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소위 민주주의 종주국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합리성과 민주성이 곤두박질치는 현실에서 교회는 난파선 위에서 방향조차 잡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LGBTQ가 정치계와 기업들과 소위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특혜를 누리고 크리스찬스쿨에서 계획적 증오 범죄로 의심되는 사건으로 무고한 어린아이들이 살해되는 이 현실에서 소위 애즈베리 부흥 운동에 고무되는 이들의 부할 생명 이해의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익을 좇아 진영을 강화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감성에 몰입하는 형태의 시도들은 곧 무의미해지고 말 것입니다. 부활 생명의 본질에 기초를 두지 않는 운동은 일시적으로 아무리 강력해 보이더라도 그 특성상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가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가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하게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부활 생명을 일상의 삶으로 해명하는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단지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만 통하는 종교적 은어(隱語)가 아니라 실제의 삶을 일상으로 해명하고 변증하는 것입니다. 이는 선교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은 초기 교회공동체가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 충분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신약 성경과 교회의 역사를 정직하고 철저하게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성경이 가르치는 부활 생명의 형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누구든지 정직하게 성경을 배우려고 하는 이들을 성령님은 그냥 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부활 신앙을 오늘의 삶에 실제로 담아내기 위해 정직하게 노력한다면 성령께서 우리가 상상도 못 한 놀라운 일들을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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