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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제와 대의민주주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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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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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플라톤이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온갖 거짓과 술수로 인기와 물질을 탐하는 당대의 괴변론자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철학의 선지자로 제시하였지만, 스승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방법에 한계를 느끼고 비판하기까지 합니다. 그때부터 플라톤은 문답식 방법이 아닌, 소크라테스는 강의하고 제자들은 가끔 질문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 플라톤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그의 “국가”가 자유민주의식에서 전체주의로 바뀐 것은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방법을 비판하고 포기한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히틀러가 1938년에 오스트리아를 침공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분노한 무명의 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190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칼 포퍼입니다.

포퍼는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에 극분하면서 전체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를 저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책이 바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입니다. 처음에 포퍼는 이 책을 미국에서 출판하려 했으나, 마땅한 출판사를 찾지 못해 결국 1945년 영국 런던에서 라우틀리지(Routledge) 출판사를 통해 발표하였습니다. 이 책이 발표되면서 무명 학자에 불과했던 포퍼가 학계에 화려하게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은 2차 세계 대전중에 저술 된 두 권의 정치철학책입니다. 제 1권은 〈플라톤의 마술〉(Spell of Plato)이고 제 2권은 〈예언의 높은 물결: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그 여파〉(The High Tide of Prophecy: Hegel, Marx, and the Aftermath)입니다. 포퍼는 그 책에서 역사주의와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열린 사회'를 옹호합니다. 플라톤의 마술에서는 플라톤의 정치 철학을 비판합니다. 당시 철학자들은 플라톤의 위대함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플라톤의 정치 철학이 거의 완벽하고 무해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포퍼는 이러한 믿음에 반대하며 플라톤의 정치 철학에는 사기와 폭력, 인종차별, 우생학등 끔찍한 전체주의자의 악몽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포퍼는 당시 주류 플라톤 철학자들과는 달리 플라톤의 생각과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분리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저술을 남기지 않았고, 오직 플라톤의 저술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가르침이 전해졌습니다. 플라톤의 초기 저술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분명히 담고 있으나, 후기 저술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인도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경향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포퍼의 주장입니다. 구체적으로 포퍼는 플라톤의 《국가》에 나타난 소크라테스가 전체주의에 동의하는 것처럼 묘사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배신한 것은 《국가》에서 부터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포퍼는 플라톤이 사회 변화와 사회 불만에 대해 행한 분석에 대해서는 극찬 했지만, 플라톤의 해결책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포퍼가 아테네 민주정을 '열린 사회'를 향한 진통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포퍼에 따르면, 플라톤은 이처럼 자유로운 세계관과 함께 탄생할 변화를 두려워하여 자신의 역사주의적 시각을 고수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포퍼는 또한 플라톤이 스스로 위대한 철인 통치자가 되고자 했다고 주장하면서, 플라톤을 자기 자만심의 희생자로 간주하였습니다.

두 번째 책 〈예언의 높은 물결: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그 여파〉에서는 그의 비판이 헤겔과 마르크스를 향합니다. 그는 헤겔과 마르크스를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의 후손으로 생각하였고, 이들이 20세기 전체주의의 뿌리라고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포퍼가 생각하기에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버리고 전체주의를 지향한 것처럼 판단하고 비판하지만, 사실 플라톤은 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했다기보다 광장민주주의의 위험을 경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민중을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이상적인 나라에서는 이성적인 철인 왕이 민중의 이기적 욕망에 편승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모든 보이는 것의 이상적 원형인 이데아를 지향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욕망을 매우 경계하였습니다. 만약 지도자가 욕망으로 가득한 민중의 요구에 영합한다면 그 사회는 아포리아 상태로 전락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욕망을 나름 예리하게 간파하고 치열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인간의 욕망 즉 ‘욕심(에피시메티콘)’은 육체의 쾌락과 관련된 영혼의 상태로 가장 경계해야할 대상입니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 ‘인페르노’에는 육체의 쾌락, 오만, 폭력, 그리고 사기를 일삼는 자들이 감금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음식, 음료, 육체적 쾌락, 그리고 다양한 취미들을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플라톤은 이들이 인간의 생식과 관련된 육체적 쾌락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여긴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고유한 존재를 음미하고 신장시키기 보다는 남들이 소유한 물건이나 성취를 부러워하고 그것을 향해 불나방처럼 날아간다고 하였습니다. 플라톤은 이 부류에 페니키아인들과 이집트인들을 귀속 시켰는데,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어느 특정 지역인의 특징으로 생각한 것은 시대적 한계이지만, 그가 강조한 것은 욕심에 사로잡힌 이들은 자신의 목숨보다도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지적이 탁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돈이 이들의 육체적 쾌락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욕망에는 생존하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 기본적이고 필요한 욕망도 있지만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이나 고급 음식을 탐닉하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포퍼가 플라톤의 국가와 철인 왕을 전체주의자의 악몽이라고 혹평하였는데, 포퍼를 비롯하여 플라톤을 전체주의라고 혹평하는 이들은 플라톤의 마지막 작품 ‘법률’에서 ‘국가’에서 묘사한 이상적인 국가와는 다른 국가가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국가’에서는 철인왕이 다스리는 도시에는 법이 필요 없다고 하지만 ‘법률’에서는 사회 규범이 되는 강력한 법률을 제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 법에 복종해야 하는 전체주의적인 성격의 나라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영국 철학자인 칼 포퍼가 20세기 초에 등장한 전체주의의 기원을 플라톤의 ‘철인왕’에서 찾았다는 것은 어쩌면 이는 그가 그것을 소명으로 생각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에 의하면 플라톤의 ‘철인 왕’ 개념이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러시아의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의 등장에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비평하였습니다. 특히 1979년 이란혁명을 주도한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1920년대 이슬람 시아파의 본산지며 자신의 고향인 ‘쿰(Qum)’이란 도시에서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과 플라톤의 ‘국가’에 심취하여 혁명을 기획하였다고 하니 포퍼의 생각을 탓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이비 기독교가 성경을 이용하여 사이비 이단을 만들었다고 하여 성경을 비판하는 것이 옳지 않듯이 플라톤의 국가나 철인왕 이론도 후대에 전체주의 독재자들이 이용하였다고 하여 전체주의 독재자들의 등장을 플라톤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플라톤은 민중 민주주의의 위험과 폐해를 피하기 위해 그의 '국가'에서 철인 왕을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플라톤의 '국가'나 철인 왕 이론을 플라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플라톤의 국가나 철인 왕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에 무지한 인간이 진정한 인간 복지를 위한 철학적이고 합리적인 나라를 세우려 할 때 도달하게 되는 결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플라톤의 국가나 철인 왕 이론을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자기 왕이 되는 것을 거부한 인간에게 허용적 정치 제도나 지도자를 생각할 때 하나님의 통치에 더 효과적으로 순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왕정을 허용하시면서 왕의 자격과 왕이 지켜야 할 엄격한 규범을 요구하셨습니다. 왕이 된 자는 성경을 등사하여 평생에 곁에 두고 읽고 묵상하여 그 말씀대로 나라를 통치 해야만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왕이 된 자는 아내를 많이 두어도 안 되고, 말을 많이 두어도 안 되고, 금은 보화를 많이 쌓아도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왕이 추구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모든 왕들이 반드시 추구하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금하신 것은 왕정 아래서도 인간 왕은 진정한 왕이 아니고 하나님이 실제 왕으로 통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인간 세상의 정치 제도나 이론이나 지도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전정한 실제 통치자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플라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지만 인간의 한계와 약점을 전제한 토대에서 나름의 국가와 철인 왕을 제시 하였던 것입니다. 플라톤이 한 사회에서 정의를 실천할 사람으로 철학자 겸 통치자, 즉 철인왕(哲人王)을 상정했다는 것은. 그 철인 왕은 지혜를 사랑하고 지적이며 믿을 만하고 단순한 삶을 살 의지가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성경적 인간관으로 볼 때 이는 맞지 않지만 철학자로서는 최선의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철인왕은 모든 현상의 형상에 숨겨진 원형, 즉 이데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 입니다. 그는 지식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지식 자체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진리 자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으로 생각할 때 그와같은 인간은 있을 수 없고 그는 곧 하나님이고 예수님입니다. 그는 또한 철인왕을 항해를 떠난 배의 선장으로 비유합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민주주의를 비판합니다. 당시의 민주주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인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융합과는 다른 선동주의나 다수주의에 가까운 대중민주주의 또는 관장민주주의입니다. 다수의 투표로 뽑은 선장이 해로(海路)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그 배는 좌초하고 말 것입니다. 플라톤은 민중들을 항해 지식이 없는 선원들과 비교합니다. 그에 의하면 불평이 많은 선원들은 선동가들이거나 정치인들입니다. 그러나 배를 운항하는 항해사는 철학자입니다. 선원들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배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해로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플라톤은 “진정한 선장이라면 배를 다스리기 위해서 항해에 필요한 계절, 하늘, 별, 바람, 그리고 모든 기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플라톤은 철인 왕을 이상적인 통치자로 제시하였지만 사실 이는 철학적 이상에 불가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며 이상적 통치자는 철인 왕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시고 섭리하시며 돌보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율법이 인간이 죄인임을 일깨워주듯이 플라톤의 이론은 인간 철학과 정치와 제도와 무엇보다 인간 지도자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정치 제도나 인간 지도자의 통치 아래서도 당신의 실제적 왕권을 어떤 제도나 개인에게 양도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삼상 8:7-9)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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