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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제와 대의민주주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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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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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고 난 후 그동안 트위터가 마치 합법적 언론 검열 기관처럼 사실과 정보를 통제하고 왜곡했던 비리들을 하나둘 폭로하고 있습니다. 헌터 바이든의 렙탑에 들어 있던 온갖 추잡하고 저질스러운 사진들과 행적들, 정치적 권력을 이용한 국내외 비리와 불법들, 선거에 영향을 미칠 정보와 언론에 대한 불법 통제와 사찰 등에 대한 비리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엄청난 폭로에도 불구하고 주류 언론들은 그 사실들을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트위터가 그랬던 것처럼 주류 언론들도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동안 언론과 정부가 사실과 정보를 숨기고 왜곡하고 있어서 코비드로 인한 펜데믹 사태에 대한 것이나 러-우 전쟁에 대한 진실을 사람들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 이웃 나라 브라질에서 대선 결과에 대한 불복으로 엄청난 대국민 저항이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지만, 미국의 주류 언론은 그 소식을 일절 보도하지 않습니다. 보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브라질 대선에 대한 소식은 철저히 통제하여 사람들이 알 수 없도록 차단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미국의 지난 대선 결과에 대해서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 며칠 동안 사람들이 온통 월드컵 축구 경기에 열광하고 있는 동안 상당수 정치인과 주류 언론들은 여전히 국민이 알아야 할 소식들은 보도하지 않고 거짓되고 왜곡된 정보와 소식들만 전하였습니다. 따라서 의식 있는 국민이라면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스포츠 경기에 집단 열광하며 빠지지 않도록 감정을 어느 정도 가라앉힐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이 스포츠 게임 같은 것에 열광하는 동안 거짓 정보와 뉴스 그리고 왜곡되고 과장되고 축소되는 사실들에 대하여 더 심하게 귀가 먹고 눈이 멀게 됩니다. 왜곡된 정보와 거짓 뉴스를 사실로 믿는 국민은 바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학교에서 동성애와 젠더와 비판적 인종 이론을 배우고 있어도 그것을 피하거나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러한 사실에 화들짝 놀랐지만, 지금은 대부분 부모가 그런 일에 대하여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은 거짓 정보와 정책들을 거부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어서 무기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그런 무기력한 상태를 ‘아포리아(ἀπορία)’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어 아포리아는 부정 접두사 아(ἄ)에 '다리'나 '길'을 의미하는 포로스(πορος)가 합쳐져서 "길이 없다"는 뜻의 아포리아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아포리아는 길이 없는 즉 난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아포리아란 희망이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옳은 것을 선택하고 그것이 실패하였을 때는 새로운 개선책을 모색하여 전진하려는 노력이 가능하다면 그런 경우는 아포리아가 아닙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음에도 그것을 고치거나 개혁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가로막힌 상태를 아포리아라고 합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아포리아’라는 지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랑’ ‘용기’ ‘정의’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 주제를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전문가들’과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정의’에 관해 다른 사람들이 구축한 이론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지, 정작 자기 자신이 ‘정의’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만의 명확한 정의를 내놓을 수 없습니다. 플라톤은 자기 스스로 검증하는 삶을 살지 않았던 일반인들은 미래를 위한 희망을 제시할 수 없는 아포리아에 갇힌 자들이라고 진단합니다.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소위 지도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어두운 이기심이라는 동굴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기 혁명을 주장하지 않고 모든 잘못의 원인과 책임을 외부에 돌리고 외부를 개혁하겠다는 공허한 말만 떠벌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를 그 시대를 일깨우는 철학적 선지자로 소개하고 제시합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해상무역을 장악하던 페르시아 제국과 마라톤 전쟁과 살라미스 전쟁에서 맞붙었습니다. 아테네는 이 두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테네에는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 북아프리카와의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새로운 상인계급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금력을 바탕으로 정치력을 행사하기 위해 펠로폰네소스 전쟁 말기에 ‘사백인 위원회’와 ‘삼십인 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이들은 금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과두제(寡頭制)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특히 삼십인 위원회는 기원전 404년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후 아테네에 들어선 친(親) 스파르타 귀족들입니다. 이들은 정권을 장악한 13개월 동안 아테네 인구의 5%를 살해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였으며 페리클레스의 민주주의를 말살하였습니다. 플라톤의 동생 글라우콘의 아들인 카르미데스가 삼십인 위원회 일원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이들의 등장을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 후 기원전 403년에 삼십인 위원회가 물러나고 민주주의가 다시 정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아테네 배심원 500명 앞에서 인민재판을 받습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를 국가의 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신들을 도입하고 그릇된 교육으로 젊은이들을 회유하여 타락시키고 바른 교육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습니다. 당시 정치범들에게는 사면이 허락되어 있어서 소크라테스에게도 사면 여부를 묻는 투표가 허락되었습니다. 아테네의 미래를 위해 ‘철학’이라는 교육체계를 들여와 아테네의 정체성을 허물었다는 이유로 사면 여부를 묻는 투표가 시행되었습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근소한 차로 유죄로 판명되어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플라톤에게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정치가로서 꿈을 접고, 이상적인 국가 형성을 위해 철학자가 되기로 결심하여 지중해를 두루 여행하며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는 피타고라스 사상의 본산지인 시칠리아섬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한 교파의 교주와 같았던 피타고라스가 크로론에 설립한 공동체에 깊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공동체처럼 “동일한 진리를 추구하는 사상가들이 함께 지내는 공동체”를 아테네에 만들기로 결심하고 기원전 387년 아테네에 오늘날 서양 대학의 원형인 ‘아카데미’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는 철학적 사고와 과학과 도덕의 기본은 추상적인 생각과 수학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가 아테네에 만든 아카데미에는 수학을 10년 이상 공부한 사람들에게만 입학 자격이 주어졌다고 전해집니다. 플라톤과 여러 학자는 아테네의 학생들과 세계에서 몰려온 학생들에게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정치학, 자연과학,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이 학교를 나온 졸업생들은 그리스 전역으로 퍼져나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아카데미’는 기원후 529년 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종교적인 이유로 폐교될 때까지 912년 동안 지속하였습니다. 플라톤은 아카데미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기원전 380년에 서양 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인 ‘국가’를 저술하였습니다. 그는 아카데미의 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시칠리아를 두 번 방문하였습니다. 특히 기원전 367년 시칠리아의 참주였던 디오니소스 1세가 사망하자, 그의 동생이며 플라톤의 제자인 디온이 플라톤을 시칠리아로 초청하였습니다. 디온은 자신의 조카인 디오니소스 2세가 수학과 철학을 공부하여 첫 번째 ‘철학자 왕’이 되기를 꿈꾸었지만, 디오니소스 2세의 반대로 실패하였습니다.

플라톤은 그의 ‘국가’에서 묻습니다. “왜 인간은 정의롭게 행동해야 하는가? 형벌이 두려워 정의롭게 행동하는가? 신의 보복이 두려워 떨고 있는가? 왜 강자는 약한 자들을 법의 이름으로 다스리는가? 정의는 상벌과는 상관없이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국가에 정의가 필요한 것인가?” 플라톤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정의’를 정의하고 싶어 하며 정의는 수단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플라톤의 ‘국가’ 1권은 소크라테스가 주도해온 ‘엘렝코스(elenchus)’라는 대화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며 시작합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방식으로 정의를 정의해 보려고 시도하지만, 곧 난점에 부딪힙니다. 그는 2권에서 다시 이 질문을 상기시키지만,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 대화방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부분 소크라테스가 강의하고 플라톤의 두 형제가 가끔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아마도 플라톤은 누구나 엘렝코스를 통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듯합니다. 그가 ‘국가’ 7권에서는 소크라테스 대화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그는 철학적인 논증은 그것을 고민하고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이성적인 사람들 가운데서 검증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진리에 대한 존경심이나 자기 수련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옳은 것을 찾기 위해, 엘렝코스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이기심과 그것에 유리한 여론을 악용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플라톤이 진리 추구에서 소크라테스와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사회와 정치적인 정의를 인간 개인의 정의와 대비하여 설명하여 이상적인 사회에서의 시민들을 세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그 세 부류는 첫째, 장인과 농부와 같은 ‘생산자들’, 둘째, 군인들과 같은 ‘조력자들’, 셋째, 통치자와 같은 ‘보호자들’입니다. 한 사회는 이들 간의 구분과 기능이 구별될 때 정의롭다고 보았습니다. 플라톤에 의하면 개인의 정의가 사회적 정의와 유사합니다. 그는 인간의 영혼 역시 사회와 마찬가지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였고 정의로운 사회와 정의로운 개인에 대한 정의는 서로 밀접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이 어두운 동굴에서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이 실제라고 착각하고 아무 거리낌도 없이 거기에 안주하는 이유는 인간의 영혼에 숨어 있는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플라톤의 인간 영혼 분류는 첫째, 이성(로지스티콘), 둘째, 기개(시모에이데스), 셋째, 욕심(에피시메티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세 분류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세 부류의 시민들의 특징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한 사회의 정의는 각자가 자신이 속한 부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성을 지닌 자들은 배움을 통해 사회를 다스리고, 기개로 충만한 자들은 이성을 지닌 자들의 명령을 따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욕망에 사로잡힌 대중들은 이기심과 쾌락에 탐닉한다는 것입니다. 이성을 지닌 자와 기개가 있는 자들이 자신이 누구인가 깊이 숙고하지 않고 욕망에 사로잡힌 민중들의 헛된 바람에 편승한다면 그 사회는 아포리아 늪에 더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나 그의 제자 플라톤의 인간 이해가 특별 계시인 성경적 인간 이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반 은총의 차원에서 볼 때 인간이 진리에 대해 무지하고 그릇된 욕망에 지배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상당할 정도로 간파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이성’은 영혼에서 사고하는 부분입니다. ‘이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진리를 조금씩 배운다고 하였습니다. ‘이성적인 사람’은 실제와 비슷하게 보이는 것을 구별하여 진실하고 자연스러운 것과 거짓되고 부자연스러운 것을 구별하여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와 같은 깨달음은 참된 것을 추구하려고 오랫동안 훈련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연스러운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터득한 이성적인 사람은 진실한 척하지 않고 진실을 향해 나가고 항상 참되고 아름답고 선한 것을 추구하고 행동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성적인 사람’들이 한 사회의 일부로서 지도자가 되어야 이상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두 부류, 즉 ‘기개 있는 자’들과 ‘욕망으로 가득한 자’들이 ‘이성적인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동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이해가 희랍 철학적 대의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설명에는 특별 계시인 성경적 인간관이 결여되어 있지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 수준에서는 나름 최선의 정치 이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희랍 철학에 의해 제시된 대의민주주의의 원리를 성경적으로 개혁하여 장로제와 대의민주주의를 만든 것입니다. 장로제와 그것에서 나온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일반인들의 더 적극적인 직접 정치 참여를 강조하는 민주주의는 사실 희랍 철학도 성경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히 3:10)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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