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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제와 대의민주주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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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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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장로교가 개신교회의 여러 다른 교파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장로주의 또는 장로회제도(Presbyterianism)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로주의란 장로들(영어로는 elder, 그리이스어는 πρεσβυτέρους)에 의해 교회가 다스려지는 교회정치의 한 유형을 말합니다. 16, 17세기경 장로 주의를 주창했던 선구자들은 그것이 새롭게 고안된 혁신적 교회제도가 아니라, 신약시대 초대 교회들에서 그 모습이 나타났던, 사도들에 의한 교회 운영의 모델을 회복시킨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장로주의는 한마디로 대의정치 즉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입니다.

사실 오늘날 민주정치의 대명사처럼 된 대의제도는 장로교회 창시자인 존 칼빈(John Calvin)이 1500년대 중반 도시국가였던 스위스 제네바에서 대의제도에 입각한 신정정치(神政政治)를 펴면서, 공동체 의사결정을 위한 하나의 모델적 질서로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개신교도 처형에 대한 저항 논리로 칼빈은 대의제적 인민주권(Representative Popular Sovereignty)의 개념을 제시한 바 있는데, 특히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 (Institutes)의 제도론에서, 고대 로마와 아테네 등에서 활용됐던 호민관제(Ephorate), 즉 인민들에 의해 선출된 통치 관원인 호민관이 왕의 폭정으로부터 인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아 활동했던 전통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호민관들은 비록 인민들에 의해 선출되었지만,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았습니다. 호민관직과 장로직은 상호 비슷한 점이 많다고 본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들과 초대 교회가 채택한 방법이 바로 장로제입니다. 즉 회중들에 의해 선출된 평신도대표로서 장로들이 목사와 함께 당회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도록 위임하는 장로교회의 치리는 그 대표들의 결정이 비록 인간들에 의해 선출된 인간에 의한 결정일지라도 그것은 곧 하나님의 뜻이 담긴 결정으로 받아들이는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며, 이것이 바로 장로교회의 근본입니다. 장로교회에서 처음 선보인 대의제도는 그 후 현실 정치에서 대의민주주의, 즉 의회정치 형태가 발전해 나가는 데 시금석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날 대의민주주의가 봉착하고 있는 문제점이 많고 따라서 개혁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 제도의 원형을 현실 정치에서 잘 실현하면 많은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의정치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선출한 대표자들로 하여금 공동체 내에서 최고의 통제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통치형태를 말합니다. 국민이 직접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출한 대표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통치하는 것인데, 대표자들은 자신들을 선출한 국민의 이름으로 정책을 결정할 권한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대의제도 하에서도 일반시민들의 정치참여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것은 대표자로서의 책임과 권한을 행사할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선출하는 것, 즉 선거 참여나 또는 대표자들에게 여론 형태 등을 통해 때때로 어떤 의사를 전달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현저하게 거부되는 정책이나 통치에 대한 합법적인 저항에 국한됩니다. 이러한 국민의 제한된 정치 참여는 합리적인 차원에서 판단할 때는 대의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로 보이지만, 장로제의 원형에서 보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권을 따르려는 것입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비록 교인들에 의해 뽑힌 대표들이지만,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장로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에 천착하고, 거룩한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실존적 대표이면서 초월적 대표입니다. 실존적 대표는 교인들에 의해 민주주의 방법에 따라 선출된 교인의 대표이지만 초월적 대표는 비록 민주적인 방법으로 교인들에 의해 선출되었으나 하나님께서 세운 대표라는 것이고 따라서 교인의 요구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고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는 것과 같은 치리와 지도를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장로교회나 대의민주주를 표방하는 국가가 동일합니다. 성경을 모르고 인문주의 토대에서 생각하게 되면 대의민주주보다 대중민주주의가 더 민주적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왕권보다 인간의 합리적인 생각을 우위에 두는 생각입니다. 지식인들 중에는 그러한 인간 이성의 합리적인 인식을 대단한 지혜와 성숙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성경은 그러한 인간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어리석고 악하다고 지적합니다.

이곳 미국이나 한국에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었지만 국민의 의사나 요구나 이익을 관철하는 대표가 아니고 국가의 법과 정체성과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이익을 위하는 대표입니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지역 이기주의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미국 건국자들이 이 점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모릅니다. 절대로 국민이 적접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선거는 철저하게 간접 선거제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국회의원은 자기를 선출해 준 지역구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국민들은 자기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법과 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안전과 이익을 위하는 대표로 뽑은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에서는 국가와 법과 국민 대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는 것인데 이것이 장로제입니다.

장로제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일반 신도들은 아직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자기보다 잘 아는 사람을 장로로 뽑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다스려 달라고 위탁한 것입니다. 따라서 장로는 교인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그것을 관철하는 대표가 아닙니다. 목사나 장로는 상징적인 치리 자이고 실제 통치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를테면 대의민주주의 아래서 하나님의 왕권이 가장 잘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고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민주주의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대의민주주의 정치 현실에서 국회의원은 자기를 뽑아 준 지역구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고, 장로교회에서 장로는 교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가 아닙니다. 국회의원이 자기 지역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면 국가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의 문제가 바로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 국민들의 이익을 대표하기 때문에 국가를 총체적 부패에 떨어지게 합니다. 한국이나 이곳 미국에서도 거의 모든 국회의원은 자기의 지역 국민의 이익을 관철하는 일에 집착합니다. 그렇게 해야 지역 국민의 마음을 얻어서 다음 선거에도 당선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의 주된 업무인 입법 활동도 거의 지역 이기주의에 의해서 새로운 법들이 상정되고 통과됩니다. 국회의원들이 서로 자기가 자기 지역의 이익을 위해 상정한 입법안이 통과되도록 품앗이 차원에서 입법안들이 통과되도록 하기 때문에 지역 이기주의의 무한 경쟁으로 국가가 총체적 부정부패로 만연되고 있습니다. 국민이나 국회의원이나 대의민주주의를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려면 개인의 이기심이나 지역 이기주의도 희생해야 합니다. 그것이 대의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바른 방향입니다. 몇몇 지식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민심이 천심”이라는 그릇된 전제에서 가능한 국민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대의민주주의를 개혁해야 한다고 하지만 대의민주주의를 만든 이들이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국민은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적접 정치 참여를 막고 간접 참여의 길만 열어놓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이 국가와 법과 국민의 생명을 위해 일하도록 한 것입니다. 국민이나 대중이 어리석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일 뿐만이 아니라 철학자들도 알았기 때문에 플라톤은 그의 국가론을 통해 이상적인 국가에서는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대의민주주의도 완전한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대의민주주의의 약점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보다 대의민주주의를 왜곡하거나 오해하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 정치에서의 이러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교회에 그대로 도입되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교회는 정치 현실에서 대의민주주의가 이렇게 왜곡되고 오해되고 있는 것을 바로 잡을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의민주주의는 장로제의 영향을 받아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교회가 그럴만한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것을 가르치는 교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있는 교인 또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 일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은 하나님입니다. 그 나라에서 하나님의 왕권이 집행될 때 모든 그의 백성들은 그 왕권에 순복하여 그 나라가 확장하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하나님의 왕권이 최고의 권위를 갖지 못하고 소위 민주주의 원리가 하나님의 권위 위에서 작동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왕권에 복종하는 것을 배운 이들이 비로소 대의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게 하는 건강한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와 교인들은 그러한 모범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교회를 운영하는 일을 철저하게 성경의 원리와 대의민주주의 정신에 따라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국민의 대표가 지역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듯이 교회 장로가 교인들의 이익이나 의견을 대변하거나 어떤 진영이나 한쪽 편을 대변하는 것은 하나님의 왕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장로는 교인의 대표이지만 철저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고 대표해야 합니다. 그 일에 장로는 본이 되어야 하고 교인들은 그 본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교회에서 비로소 하나님이 왕권이 제대로 시행되고 하나님 나라의 특혜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어떤 제도 아래서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왕권을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게 양도하지 않으십니다. 태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왕권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고 우리는 그 왕권에 복종하여 그 나라의 특혜를 누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시 84:3)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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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ㅂㄷㄱ:네번째 깨달음 -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는데 왜 그게 나쁜걸까요? 실제로 아담과 하와가 먹고 눈이 밝아졌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진것도 아니고 오히려 밝아졌는데, 또 멍청해진것도 아니고 더 똑똑해(?)졌는데 왜 그게 나쁜것인 것처럼 묘사되었는가? 저는 그냥 하나님이 인간이 그렇게 똑똑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나보다 하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이런 오랜 의문은 얼마전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말씀하시길 "인간은 실제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선과 악 중에서 악을 선택하는 것이 문제이다." 처음에는 와닿지 않았지만 곧 저의 귀가 밝아졌습니다.

그렇습니다. 100% 선하신 하나님은 선 그 자체이십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며 그 선악구별의 능력을 얻게 된 인간은 100% 선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욕심, 욕정, 시기, 질투, 게으름 등등 온갖 더러운 이유로 인간은 "알면서도" 악을 선택합니다. 이건 인간이 이렇다고 설명할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들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 않나요? 그 수많은 선악의 갈림길에서 선만을 선택한 인간은 제가 알기로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인간에게 선악을 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악의 길로 가게되는 저주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길에서 방황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죄에서 떠나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악을 판단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또 원하시는지 알고 그걸 하며 살면되고 또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알고 그걸 멀리하고 살면 됩니다. 선악은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며 우리는 그저 하나님만 바라보고 알면 된다는 귀한 가르침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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