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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자들의 무덤은 왜 이리 초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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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202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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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무덤

모든 사람은 무덤 하나를 남겨놓고 이 세상과 작별한다. 예외는 없다. 요즘엔 화장이 유행이라 무덤이 없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화장하는 경우 재를 바다에 뿌리면 ‘바다장’이 된다. 일본에선 ‘바다장례’ 전문업체도 있다고 들었다.

무덤이 없는 예외적인 경우는 또 있다. 승천하는 경우다. 구약의 에녹과 엘리야가 그랬다. 예수님은 부활의 ‘시범케이스’를 보여주셨다. 예수님이 부활 후 승천하셨다고 알려진 예루살렘 감람산 꼭대기엔 지금 승천기념교회가 서 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골고다 언덕엔 성묘교회가 있다. 죽으신지 3일간이긴 했지만 예수님의 육체가 묻혀 계셨던 무덤 자리에 세워진 무덤교회.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평범하게 살다가 죽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무덤 하나씩을 남긴다. 버지니아 알링턴 국립묘지는 그런 무덤들이 그룹으로 모여있는 곳이다. 특히 미국을 위해 전쟁터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들의 묘지에 서면 숙연해지곤 한다. 그런데 알링턴 묘지를 찾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사실 존 케네디 대통령과 재클린 오나시스의 무덤이다.

하늘 높이 서있는 장성들의 묘석과는 달리 소박하게 묘석이 눕혀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무덤 뒤엔 ‘꺼지지 않는 불꽃(Eternal Flame)’이 지금도 쉬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그 불꽃은 생전의 재클린이 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생명의 불꽃마저 영원할 수 있는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사람들에게 여전히 인기를 모으고 있는 무덤들은 재클린뿐 만은 아니다. 배우 마릴린 먼로의 무덤은 LA 웨스트우드 빌리지 기념공원에 있다. 죽은지 50년이 지났지만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그녀의 무덤을 찾아온다. ‘로큰롤의 제왕’이라 불리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더하다. 테네시 멤피스에 있는 그의 생가와 무덤에는 그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쉬지 않고 쌓여간다고 들었다.

팜스프링스 데저트 메모리얼 팍에 있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무덤이나 ‘팝의 제왕’이라 불리며 세계인의 사랑을 받던 마이클 잭슨의 무덤도 인기는 마찬가지다.

옛날 수퍼스타의 명성을 추억하며 그의 무덤을 찾아가는 걸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무덤은 무덤일 뿐이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무덤에 함께 묻었다는 잭 다니엘 위스키와 카멜 담배 한 갑을 지금 그의 무덤에 진상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 무덤보다는 우리에게 더 깊은 여운과 감동을 주는 무덤들이 있다. 바로 종교개혁자들의 무덤이다. 10월은 종교개혁기념주일이 있는 달이다. 부패했던 당시의 캐톨릭교회에 저항하면서 목숨을 걸고 교회개혁을 외치다 생애를 마친 그들의 무덤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생애에 이룩한 위대하고 영웅적인 업적과는 너무 대조적인 낮고 평범한 무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장 칼뱅의 무덤이 대표적이다. 그는 죽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 표지판도 없다가 얼마 후 장 칼뱅의 이니셜 JC라고만 씌여진 나무 막대기가 서 있었다. 지금은 후대인을 위해 그게 돌판으로 바뀌어 있는 중이다. 칼뱅은 사도신경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는 고백은 우리의 행복이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우리가 나그네 인생으로 이 낯선 땅을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칼뱅의 후계자이자 동지였던 장로교 창시자 존 낙스는 아예 그의 무덤을 찾을 수도 없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있는 자일스 교회를 목회하다 생애를 마감한 낙스는 칼뱅처럼 자신의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유언했다. 후세 사람들이 그가 묻힌 곳은 현재 그 예배당 파킹랏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그 교회 주차장에 서서 자신은 숨기고 하나님만 들어내고자 했던 존 낙스의 겸손한 생애를 추모하곤 한다.

독일의 마틴 루터의 돌무덤은 비텐베르크 성교회 오른쪽 앞자리에 있다. 그가 종교개혁에 불을 붙힌 95개조 반박문을 정문에 써 붙였던 바로 그 교회당. 루터의 무덤 역시 초라하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런던 ‘웨슬리 채플’에 있는 요한 웨슬리의 무덤 역시 다른 개혁자들과 다르지 않다. 18세기 영국의 어둠을 밝힌 그의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고관대작이 묻히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아니라 작은 예배당 뒷마당에 조용히 묻혀있다. 그의 어머니 수잔나 역시 국교도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평민들이 묻히는 웨슬리 채플 건너편 ‘번힐 필드’란 공동묘지에 묻혀있다. 여기엔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의 무덤도 있다.

요한 웨슬리는 1791년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날 때 자기의 시신을 절대로 값비싼 비단으로 감싸지 말고 그저 평범한 울이면 족하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또 자기 주머니에 조금이라도 돈이 나올 경우 자신이 지명한 가난한 순회 설교자 4사람에게 똑같이 나누어주라고도 했다. 자신의 장례식에는 절대로 영구차나 사륜마차를 쓰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자신의 관을 운구할 때 실직해서 생활이 어려운 사람 6명을 고용해서 1파운드씩 주라고도 부탁했다.

사실 무덤이 없는 개혁자도 있다. 체코의 얀 후스는 교회의 거짓과 부정에 맞서다 화형으로 생애를 마감했다. 무덤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종교개혁자들의 무덤은 왜 이리 초라한가? 땅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을 사모하라는 뜻일 것이다. 개혁자들은 자신들의 무덤을 통해 그토록 청빈을 강조하고 나그네 인생을 강조했건만 그의 후예들인 작금의 개신교는 청빈은 커녕 사치와 부귀를 즐기려고만 하지 않는가? 요즘 교회에서 열리는 화려하다 못해 한참 오버하는 장례식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조명환 목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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