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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이고 나이스한 무신론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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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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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어느 시대나 문제가 없었던 시대는 없었지만 현대 사회의 문제는 그 양상이 매우 복잡합니다. 그 복잡한 양상의 문제들은 언뜻 보면 정치문제 같기도 하고 경제 문제 같기도 하고 또한 사상과 이념 문제 같기도 하고 도덕과 윤리의 문제 같기도 하고 자유와 인권문제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복잡한 많은 문제의 이념과 사상적 배후에는 무신론이 자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인간 나름의 노력과 방법들이 동원되었는데, 그 방법들은 전쟁과 혁명과 개혁과 운동들입니다. 그러한 노력과 방법들은 어느 정도 문제 해결을 성취하기도 하였지만 어떤 경우에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하였습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물론 기독교인 중에도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있지만, 정통 기독교 세계관에서 바라볼 때 문예 부흥이나 자연과학이나 프랑스 혁명이나 여러 전쟁은 지독하리만치 반기독교적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상이나 이념이나 그 어떤 고상한 제도나 교육도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고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 성경이 주는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의 구원을 주시지만, 당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에게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인류가 누려왔던 자연 질서와 보편 가치들은 무신론자들에게까지 허락된 은혜입니다. 인간에게 진정으로 유익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자들은 창조 질서와 가치 질서까지 부인하고 거부합니다. 그 결과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어렵고 불행한 결과에 직면하게 됩니다. 성경은 인간이 인간을 위하는 것이 인간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진정 인간을 위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하여 인간 이성은 짐승처럼 어리석고 어린아이처럼 유치합니다. 벌을 유리병에 넣고 열린 뚜껑 쪽을 어두운 방향을 향하여 두면 벌은 병을 탈출하지 못하고 죽습니다. 벌이 비록 영리한 곤충이지만 어두운 쪽을 향하여 열려 있는 문을 발견하지 못하듯이 인간 이성은 하나님을 위하는 쪽으로 난 진정 인간을 위하는 진리의 길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이러한 어리석음을 지적받으면 자기의 잘못을 고치려 들지 않고 자존심을 세우고 더욱 기독교를 비난하고 업신여기고 적대시하며 파괴하려고 합니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정치인들과 언론들과 지식인들에게서 극단적인 무신론자의 환영(幻影)을 보는 것 같아 여간 불안하지 않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악의적으로 기독교를 파괴하려고 하지만 또한 기독교 지도자 중에도 거의 반기독교적인 행태를 보이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낭패감을 느끼게 됩니다. 무신론자들은 인류 역사에서 인간에게 많은 유익을 끼쳐왔던 보편 가치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못마땅하여 망나니처럼 하나님과 기독교를 향해 발길질해댑니다. 이들은 이성과 논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한 반감으로 보편 가치 질서를 허무는 것으로 인류 복지에 치명적 해악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적 무신론의 폐해를 보다못해 붓을 든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현재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철학자이며 소설가요 수필가로 한국인에게 인기가 있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입니다. 1969년 12월 20일에 태어나 1992년에 킹스칼리지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하였고, 1991년부터 캠브리지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였습니다. 1993년에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데뷔하였고 2011년에는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 책을 비롯하여 그는 현대인들의 감성과 지적 요구에 어필하는 2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그는 무신론적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무신론 부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무신론자입니다. 무신론자들은 대게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알랭 드 보통은 특이하게도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면서도 기독교를 비롯하여 종교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들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단순히 이론적 무신론 철학자도 많지만, 특별히 기독교에 대해서 적대적인 철학자나 사상가도 많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철학자가 니체와 마르크스입니다. 니체나 마르크스의 글을 읽으면 마치 하나님과 기독교에 원한이 맺힌 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합니다. 니체나 마르크스 사상과 철학의 후학들이나 그 사상과 철학에 영향을 받은 현대인들 대부분이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악감도 전수한 것 같습니다. 니체나 마르크스의 글에서 느꼈던 반기독교적인 느낌이 신마르크스주의자인 헝가리의 루카치, 독일의 막스 호르크 하이머, 마르쿠제, 이탈리아의 안토니 그람시 등에게서는 더 극심하게 느껴집니다. 이들의 영향으로 현대 서구의 지식인들과 젊은 대학생들이 거의 반기독교적이 되었습니다. 나치 독일의 사회주의 탄압을 피해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으로 건너와 콜럼버스 대학과 하버드 대학 등에 둥지를 튼 마르쿠제에 의해 거의 모든 미국의 대학 강단은 극심하게 왼쪽으로 기울어졌고, 그 대학에서 공부한 이들이 지금의 미국 정치, 경제, 언론, 문화예술, 환경론까지 반기독교적 좌익사상으로 물들여놓았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이론적 무신론자들이 아니고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하여 극단적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반감은 기존의 모든 보편 가치를 거부하고 파괴하는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의와 인권과 평등을 명분으로 앞세우지만, 하나님과 기독교를 대항하고 파괴하기 위해 거짓말과 폭력까지 정당화하고 인권과 성까지도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온갖 좋은 가치들을 다 잃게 되어 말로 다 할 수 없는 혼란을 겪고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닥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러한 현대를 신이 죽은 사회라고 하였습니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서 신이 죽었다고 하는 것은 신에게조차 의지할 수 없게 된 사회는 모든 사람이 고립감과 소외감으로 방황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현대인들의 종교에 대한 극단적 반감이 그 종교가 가진 미덕과 좋은 제도와 유익한 가치까지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한 마르크스의 영향 때문인지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헐뜯는 태도를 버리고 조언합니다. 그는 이러한 감정적 무신론자들을 향해서 기존의 종교가 가진 미덕들과 제도들은 여전히 가치가 있고 유용하고 위안이 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 각자는 자신의 “신전”을 세우고 그 속에서 사랑, 믿음, 관용, 정의, 절제 등의 미덕을 배우고 실천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종교의식, 명상, 문화예술, 종교 건축, 종교 미술 등의 도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무신론자이면서 반종교 주의자가 아니라는 포즈를 취하면서 신앙의 지혜는 온 인류에게 유익하다고 하며 그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가 인간 소외를 극복하고 사랑과 믿음을 실천함으로써, 공동체 정신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지혜와 희망의 철학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종교에서 부활시켜야 할 좋은 교훈들을 살펴보자고 제안합니다. 이를테면 공동체의 감각을 살리는 방법, 친절을 권장하는 방법, 광고의 상업적 가치에 대한 현재의 편견을 없애는 방법, 세속 성인을 선정하여 이용하는 방법, 대학의 전략과 문화 교육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을 재고하는 방법, 호텔과 온천을 다시 설계하는 방법, 우리의 유치한 필요를 인지함으로써 생기는 이익에 대한 설명, 우리의 비생산적인 낙관주의 가운데 일부를 굴복시키는 방법, 숭고한 것과 초월적인 것을 통해서 자신의 관점을 확보하는 방법, 박물관을 재조직하는 방법, 건축을 이용해서 의미를 만드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혼을 돌보는 데에 관심이 있는 개인들의 분산된 노력을 한곳에 모아 제도의 보호 아래에서 체계화하는 방법 등을 소개합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지만 기독교는 좋은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딱히 더 나은 대안도 없으면서 종교의 모든 좋은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그는 종교는 좋은 것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기에 하나님을 믿을 필요는 없지만 기독교는 좋다는 주장이 마치 변질한 교회의 메시지 같아 섬뜩한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에 대해 반감이 아니라 호감을 갖게 하는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와 그 신앙은 인간에게 필요하고 유익하다는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했던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복음주의 교회들의 메시지도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들을 위한 종교”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현대사조가 기독교에 대하여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것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지만,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무신론은 오히려 교회를 바른 신앙으로 일깨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들을 위한 종교”는 겉으로 보기에 합리적이고 기독교에 대해 나이스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더 위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주장은 기독교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기독교로 변질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히 3:12)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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