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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적 유물론은 온갖 악을 정당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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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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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마르크스는 역사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혁명은 적극적인 선입니다. 정치적 혁명은 권력의 급작스러운 교체를 뜻하는 것으로 전체 또는 일부 국민이 집권 정부를 불신하는 과정이고, 무력의 사용 또는 위협에 의하여 기존 정부를 교체하는 사건입니다. 혁명은 정치권력의 교체 후 새로운 정치 지도력에 의해 추진되는 사회 제도와 정치 제도의 일관성 있는 변화 계획으로 새롭게 수립된 정치 지도력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신화입니다.

혁명을 불러오는 조건은 기존의 제도와 이상이 소수의 특권층에 의해 심각하게 악용되어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불법과 폭력이 만연하게 된 희망 없는 사회입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에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였는데, 이 선언은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사회주의 원칙들의 성명서였습니다. 그들은 이 선언에서 공산주의 목표가 “기존의 모든 사회관계를 힘으로 뒤집어엎음으로써만 달성 될 수 있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지배 계층들은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고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그들을 억매고 있던 쇠사슬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그들은 세상을 얻고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마르크스는 1849년 서른한 살에 영국으로 건너가 거의 매일 대영 박물관에서 오전 10시에서 오후 7시까지 연구하고 집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당시 유럽 전역은 가난의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었고 마르크스 자신도 극도로 빈핍한 생활로 인해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 무렵 그가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겪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내와 어린 재니가 병들어 있고, 렌친도 일종의 신경성 열병에 걸려 있네만, 왕진료를 낼 돈이 없어 의사를 부르지 못하고 있네. 근 팔 일이나 열흘 동안을 우리 식구는 내내 빵이나 감자만 먹고 지내 왔네. 그런데 이제는 그것조차도 계속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지난 한 주간은 노동자들에게서 몇 달러를 꾸어 썼고 심지어는 몇 센트도 꾸어 썼네. 그렇게 꾸어 쓴다는 것이 끔찍한 일이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굶어 죽고 말았을 걸세.”마르크스의 아내는 죽은 아이를 매장할 관을 사기 위해 이웃에게 돈을 구걸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은 그가 선언한 공산당 선언에 더욱 집착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유럽 전역에 만연해 있는 가난과 갈등과 혁명에 대한 욕구를 이해하고 설명해 보려고 노력하였고 그 결과물이 “자본론”입니다. 그의 주장은 몇몇 새로운 내용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여러 사람들에게서 빌려 온 사상과 이론들을 강력하게 새로이 종합 정리한 것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주장을 두고 그의 추종자들 사이에 논쟁이 계속되자 그들에게 환멸을 느낀 그는 1883년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밝히고 런던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마르크스, 그는 무엇을 믿었을까요? 엥겔스는 마르크스 장례식에서 “그의 이름은 대대로 기억 될 것이고 그의 활동 역시 두고두고 지속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르크스의 주장은 그의 사후에 많은 비판을 받았고 그의 추종자들까지 변신을 하기도 했지만 하나의 무신론의 포괄적 세계관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종교를 부정하였지만 기독교가 가장 고상한 종교임은 인정하였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은, 기독교의 기본 교리와 이상을 그의 철학으로 바꾸려 하였습니다. 시간을 영원에 대입하고, 물질을 공간에 대입하였습니다. 헤겔에게서 배운 변증법을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입하였습니다. 그와 그의 지지자들이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비판 하였지만 정작 마르크스주의는 하나의 종교적인 세계관이 되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궁극적인 실재와 인간, 지식, 우주, 사회, 윤리 등에 대한 나름의 종교의 답변을 제시하였고 그를 추종하는 자들에게 자본론은 바이블이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종교의 신실한 신자는 공산당원들이고 그 신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며 최고의 선지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입니다. 모든 공산당원들은 이 새로운 신앙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혁명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입하여 그것이 완성될 때 계급 없는 천국이 실현된다고 믿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하나님의 계시에 사회과학적인 인간의 생각을 대입하는 새로운 종교로서 포괄적인 세계관입니다. 기독교의 기본 교리인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과 섭리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이 마르크스주의입니다. 마르크스는 그의 변증법에 관한 논문에서 “나는 신을 혐오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사상은 독일의 출중한 관념론 철학자 헤겔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헤겔은 자연을 매우 중요시 하였으며 신이나 절대 정신은 자연의 영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신은 자연 속에 있는 영적 이상이라고 한 것은 곧 신과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 한 것입니다. 신적 지성인 자연은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전개되어 가는 변증법적 방법에 의해 정립에서 반정립을 거쳐 통합에 이른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해의 토대에서 그는 역사를 시간 속에서 신의 자아가 실현되어가는 과정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신은 절대 초월자가 아닌 자연과 동일하며 역사는 자연과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사고에서 발전한다는 헤겔의 설명에 젊은 마르크스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은 차용하였지만 하나님이 자연의 내적 존재라는 사상은 거부하였습니다. 그는 독일의 또 다른 철학자 포이에르바하에게서 자연은 전적으로 물질이라는 사상에 영향을 받아 신이나 영적인 어떤 존재도 믿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바로 포이에르바하의 사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영향으로 마르크스는 철저한 유물론자로서 변증법적 역사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해에서 마르크스주의는 그리스, 로마, 중세 문화는 인간 개인과 자유를, 그 다음 기독교는 인간의 자율성을, 프러시아 군사 국가에서는 절대 정신이 정점에 달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를테면 국가를 자율성의 최고 표현으로 본 것입니다. 인간을 자율적인 개인으로 보지 않고 국가라는 통일체의 유기적 부분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설명도 국가의 의지가 개인의 의지를 대신하고 국가는 신의 이데아이기 때문에 개인은 국가에 복종하고 국가를 숭배해야 한다는 헤겔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사회와 역사를 변증법으로 설명하였고, 그의 사상에서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경제 구조에서 양적 변화가 사회 구조의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에 하나님의 존재와 기독교는 어떤 형태로도 들어 설 자리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레닌이 말한 것처럼 “무신론은 마르크스주의와 분리할 수 없는 당연한 부분”입니다. 마르크스주의에 의하면 세상에 물질적인 자연만 존재하고 신, 영혼, 정신, 내세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변증법은 현실을 무자비하고 냉혹하고 무조건적으로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동시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의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를 변증법으로 대치한 것입니다. 물질 구조의 내적 존재로서 변증법이 모든 것을 궁극적인 목적지인 공산주의로 이행하게 하는데, 그 이행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은 철저하게 파괴하고 짓뭉개 버리게 되는 것이 기독교적 설명을 빌리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정당화 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변증법적 유물론은 과거를 이해하는 해석의 원리이고 미래를 추구하는 청사진입니다. 역사는 변증법에 의해 첫째 원시단계, 둘째 노예 단계, 셋째 봉건적 단계, 넷째 자본주의 단계, 마지막 다섯째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로 나아간다고 믿었습니다. 변증법의 이러한 이행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기독교와 자본주의이지만 그들의 저항은 결코 변증법의 이행을 가로 막을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생산 수단과 분배를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소유하는 것으로 보고 국가가 그것을 소유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생산 수단과 그 이익을 소유한 자를 부르주아로, 노동자들을 프롤레타리아라고 하였습니다. 19세기는 생산 수단과 분배의 지배권을 두고 부르주아와 프로레타리아가 치열하게 싸우는 시기였는데, 마르크스는 역사를 새로운 단계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철저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레닌은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을 주도하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군벌과 관료 때문으로 필연적일 뿐 아니라 정당하다고 하였습니다. 상당히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바로 이 부분에서 마르크스와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폭력 없이 입법이나 선거를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마르크스 자신도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예외적으로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외는 예외일 뿐 모든 나라는 변증법의 혁명적 투쟁을 통해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외에 절대적 존재나 기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피조물을 하나님 자리에 앉히는 것은 다른 신을 인정하고 섬기는 우상으로 엄격하게 금하였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인간이 어떤 신을 만드는 것과 그 우상을 섬기는 행위를 일체 용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신을 만드는 것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정의나 윤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하는 데는 일체의 동정이나 어떤 정상도 참작하지 말고 무자비하고 처절하리만치 엄격해야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뜻이 윤리와 정의와 사랑의 근본이기 때문에 이성적 판단에 의하면 무자비한 독재자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에게 가장 이로운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에게만 가능한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하나님의 존재와 뜻의 이러한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다른 신 즉 우상에 대해 무자비하고 엄격하게 명령하신 것을 변증법적 유물론을 이행시키는데 대입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독재를 정당화 하였습니다.

좌익 정부의 법 적용의 이중적 잣대를 ‘내로남불’의 차원에서 비난하는 것은 그들의 프레임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변증법적 유물론이 이행하는 과정에 거짓과 폭력과 법의 이중적 잣대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정당화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권과 자유와 보편 가치가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행에 거침돌이 되거나 방해 된다면 무자비하게 짓밟고 파괴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믿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라고 명령한 하나님의 절대 권위에 변증법적 유물론 혁명을 대입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는 성취감의 희열을 느낍니다. 월남이 공산화 되었다는 소식에 희열을 느끼고, 911 테러로 미국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한 없는 마음의 평안을 느끼고, 나치의 만행에 속이 후련하다는 인간들은 기독교와 백인과 자유와 자본주의와 전통적 보편 가치를 싫어합니다. 인권과 자유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변증법적 유물론 혁명에 거침이 되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우방들은 악입니다. 중국이나 북한 같은 나라는 인권과 자유의 지옥이라도 변증법적 유물론 혁명을 지지하기 때문에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고 믿습니다. 어떤 정부나 학자나 예술인이나 언론이나 심지어 성직자라고 할지라도 중국이나 러시아나 북한 같은 전제주의 독재 국가가 인권과 자유를 탄압하고 법과 질서를 어기고 폭력을 행사해도 일체 비판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사상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일제의 조선 강점행위는 당연히 비난 받아야 할 악이지만 중국의 조선 침략행위와 갑질 그리고 북한의 남침은 몇 배 더 악한 행위인데 친일은 비난하면서 친북과 친중은 일체 비난하지 않는 것은 가치관과 정서와 지적 장애 수준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함이 없는 무신론은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것처럼 보여도 혼란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폄하할 뿐 아니라 인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19)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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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LOL님의 댓글

LOL

'좌익정부'라니... 잘 나가다가 결국은 드러내시네요. 현정부를 좌익이라 규정하는 것은 근거없는 비방입니다.

ㅇㅇ?님의 댓글

ㅇㅇ?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본인의 시점에서 좌익으로 보이는 사람을 좌익이라고 못부르는 상황이 온겁니까? 표현의 자유라는 말은 좌익쪽에서 더 부르짓으면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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