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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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종ㆍ2019-05-1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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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퍽 퍼스날한 글이 될 것 같다. 왜냐 하면 본인과 알츠하이머(치매)에 걸린 아내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치매로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어려움을 당하는 가족들이 많으나 무슨 부끄러운 병 인양, 옛날 한센병처럼 쉬쉬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병이란 누구의 죄로 인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눈 먼 사람은 자기 죄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들어내기 위함이라 하시지 아니하였는가?(요한 9장 3절).
삼년전에 아내는 갑자기 고열로 사흘 동안을 코마 상태에서 빠져 생사를 헤맸다. 나는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 했다. “주님 화세를 지금 데려가시면 안됩니다!”라고. 감사하게도 나흘 만에 깨여 났으나, 먹지도 마시지도 일어나지도 못한 채 재활원에서 100일을 지내야 했다. 나는 하루 종일 그의 방에서 책상하나 놓고 간호사들이 소홀히 돌볼 까봐 감독하며 아내를 위로했다. 아내는 다행히 말은 잘했고 음식은 먹지 못했으므로 튜부로 직접 공급하여(tube feeding) 건강을 유지했다.
그렇게 100일이 지나니까 보험이 다되었다고 집으로 가라고 해서, 나는 다섯 간호사가 하던 일을 배워서 집에서 한달동안 직접 돌봤다. 그 결과 한달 만에 밥도 먹고 일어나 종종 걸음으로 집에서는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치매가 시작 되었다. 기억력이 없어지고 가끔 환상을 보고 이상한 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엄마를 찾더니 이제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아빠, 아버지, 할아버지 등 여러가지로 부르지만, 나를 무엇 보다 엄마로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어린아이를 돌보듯 늘 함께 있어야 한다. 밖에 나갈 때는 항상 휠체어에 태워 같이 데리고 다닌다. 사람들은 나에게 “참 힘드시겠어요” 하고 동정하나 나는 마음 속으로 55년 전에 약속한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사랑한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 한다.
교회에 나가면, 우리가 개척하고 12년이나 목회한 교회의 교인들은 교회의 “엄마” 노릇을 하던 옛 사모를 껴안으며 안타까워한다. 나는 내기 목회하던 때 어느 어머니날 설교에서 “어머니 없이 새상에 온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어머니가 되는 특전을 가질 수는 없다. 그래서 ‘엄마’가 된다는 것은 특전이다.”
요즈음 아내는 나를 “엄마” 라고 부른다. 아내가 가끔 “엄마 어디 가지 마, 난 엄마 없으면 못살아” 하면 나는 “걱정마 내가 당신 곁에 영원히 함께 있을 테니” 하고 안심 시킨다. 될 수있으면 하루에 두번 차를 태우고 밖에 나간다. 아내는 “나는 엄마하고 차타는 게 제일 좋아” 라며 좋아한다. 오래전 아이들을 기를 때 애들이 차 타기를 좋아하던 생각이 난다. 아내는 차 타고 나가서 점심이나 저녁은 버거킹이나 웬디에 가서 간단한 음식을 사먹는 것을 좋아 한다.
벌써 현직에서 은퇴 한지 14년 되었으니 하는 일은 집에서 글이나 쓰고 가끔 초대 받으면 설교나 축도를 하는 정도의 일 밖엔 없다. 그래서 집에서 아내 돌보는 일이 이 엄마가 된 할아버지의 ‘풀타임 잡’이 된 셈이다.
한때 900여 교회를 관장하고, 천여명의 목사들의 파송권을 행사하던 감독이었던 사람이 집에서 치매 걸린 아내의 뒷치닥거리나 하는 것을 딱하고 불쌍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엄마의 역할이 참으로 영광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휠체어를 밀면, 아내는 말한 다 “당신 힘들지, 내가 좀 밀까? 당신 타”라고 비현실적인 말을 한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아냐, 하나도 힘 안들고 영광으로 생가하니 걱정마” 하고 안심 시키고 웃기려고 농담도 많이 한다.
요즈음은 하루가 멀다하고 빨래 감이 생겨 빨래를 하러 가면 아내는 “빨래, 내가 해야 되는데, 미안해”라고 말한다. 나는 “아냐, 청계천에 나가 빠는 것도 아니고, 기계가 다 해주는데 뭐”하고 웃긴다.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하는 어머니 날 노래를 생각 하며, 나는 엄마의 일을 하고 있다. 다만 아내가 이 정도나마 아직 기억력이 있음을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아내는 한 밤중에 일어나 느닷없이. “김해종이 어디갔어”라고 물어 깜짝 놀랐다. “여기 있지 않아!” 하니까, “당신은 엄마지” 하고 우기는 바람에 자다 말고 일어나 벽에 걸어 놓은 사진들, 결혼사진부터 가족사진까지 보여 주며, 옛날이야기로부터 현재까지 한 시간을 이야기해 주고 잠을 재운일이 있다.
김해종(전 연합감리교회 감독)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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