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와 추수감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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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ㆍ2017-11-2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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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지금도 왕정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님이 버티고 계시다. 그런데 딱 한번 군주제가 잠깐 스톱되고 공화정이 들어선 적이 있다. 바로 청교도 전쟁을 일으켜 왕당파를 물리치고 올리버 크롬웰이 집권할 때였다. 왕권신수설을 내세워 국왕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이며, 왕권은 신으로부터 주어졌기 때문에 신성불가침이요,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던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왕위에 오른 게 크롬웰이다. 혈통이 왕족이 아니라서 왕이라고 부르기란 좀 꺼림칙했던지 호국경이라고 불렀다. 크롬웰이 잉글랜드를 호령할 때가 청교도 파워가 영국 역사상 하늘을 찌를 때였다.
그러나 크롬웰의 통치도 얼마가지 못했다. 5년을 넘기지 못했다. 크롬웰에 의해 처형된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에 의해 왕정이 복고되면서 크롬웰의 공화정은 1658년 막을 내렸다. 자신의 아버지를 처형하고 반짝 영화를 누린 크롬웰을 찰스 2세가 그냥 놔둘 리 없었다. 크롬웰의 시체까지 파헤치라고 한 것이다. 부관참시. . . 크롬웰에 원한을 품은 후손들이 어떻게 해코지를 할까봐 지금도 그의 시신은 어디에 묻혀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다만 런던 의사당 광장에 그의 동상 하나가 서 있을 뿐이다.
왜 크롬웰은 오래가지 못했을까? 종교적 원리주의가 영국 국민을 질리게 한 것이다. 그는 투철한 신앙의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하나님께 무슨 문제를 놓고 기도해서 응답을 받지 못하면 며칠이고 계속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친 원리주의는 문제였다.
예컨대 청교도 신앙의 핵심인 성서주의에 근거하여 크롬웰은 성탄절을 금지시켰다. 마태복음, 누가복음에 예수님의 탄생설화가 나오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12월 25일에 태어났다는 기록이 성경에 없는 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우긴 것이다.
영국 국교회와 청교도와의 끝없는 갈등과 전쟁 속에 탄생한 것이 ‘메이플라워호’다. 1620년 잉글랜드의 플리머스 항구에서 청교도들은 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도착했다. 어딘지 모르고 신대륙 바닷가에 도착한 후 급한 대로 이름을 붙였다. “떠나올 때 항구이름이 플리머스였으니 여기 이름도 그럼 플리머스로 하자. . . ” 그래서 영국 이민자들의 성지처럼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곳이 매사추세츠 작은 해안도시 플리머스. 그러나 지금 거길 가보면 기념비 하나가 언덕위에 서 있고 메이플라워 모형배가 바다에 떠 있을 뿐 유별나게 꾸며 놓은 건 없다.
이 청교도들에 의해 시작된 미국의 역사 가운데 지금 이 나라에 전래되는 수많은 전통과 공헌이 있겠지만 딱 2가지를 꼽으라면 난 하버드 대학교와 추수감사절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버드 대학교는 본래 청교도 목사 양성소로 세워진 학교다. 사랑하는 내 친구 김태환 목사가 하버드대학교 정문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그 친구덕분에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가서 건물만 구경한 적은 있다. 그럼 하버드 대학교 들어갔다 나왔으니 나도 하버드 출신? 그런 썰렁한 농담이 오고갈 만큼 세계 모든 대학지망생들의 드림스쿨이 하버드가 아니던가?
노벨상 수상자 157명을 배출한 학교이자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존 에프 케네디, 아들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등 7명의 미국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라면 그 명성을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도 여기 출신이다.
그럼 하버드대학교 출신 목회자는 몇 명인고? 그렇게 물으면 나도 모르겠다. 하버드출신 목회자가 있다고? 그런 질문까지 나오게 된다.
이 학교는 학생 아홉 명과 강사 한 명을 두고 목사 양성을 목적삼아 출범한 학교다. 존 하버드란 청교도 목사가 1638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장서와 재산을 당시 뉴 칼리지라고 불리던 이 학교에 기증을 했고 후에 그의 이름을 추모하는 뜻에서 하버드 칼리지로 이름을 바꿨다. 후에 하버드대학교로 발전된 이 학교 초기는 우선 청교도 목사를 배출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희미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야기다. 이제 하버드대학교와 청교도와는 별 상관도 없고 하버드 출신 청교도 목사도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청교도 전통이 미국 역사 속에서 탈색된 것이 비단 하버드대학교 뿐이겠는가?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정신은 미국이 서부개척시대를 맞으면서 프론티어 정신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개인주의, 현실주의, 합리주의를 지향하는 프론티어들은 용서와 관용보다 정죄와 심판을 더 중시하는 ‘주홍글씨’ 사회와 결별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모든 일을 선과 악으로만 판단하는 도덕적 습성에 염증을 느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청교도 산물이다. 다음 주에 우리들은 그들의 전통에 따라 터키를 구워 상을 차린다. 지금 청교도신앙에서 우리가 멀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기여한 노동과 가정의 가치, 성경우선주의와 주일엄수, 절제와 금욕주의 등등이 고리타분한 그들만의 유산이라고 폐기처분시켜야 하는가?
추수감사절하면 생각나는 청교도. . . 그들을 떠올리며 우리 가운데 파고드는 느슨한 타협주의와 세속주의를 도려내는 영적각성절이 되게 하면 해마다 찾아오는 추수감사절은 더욱 성숙한 감사절이 될 성 싶다.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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