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매장 문화, 부활 신앙의 위기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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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2025-07-3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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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최근 크리스천 사이에서 화장이 급증하는 현상은 몸의 가치를 낮게 보는 신학적 오류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성경은 죽음 후에도 몸이 그리스도와 연합해 부활을 기다린다고 가르친다. 매장은 이 부활의 소망을 고백하는 신앙적 행위이며, 몸을 경시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의 도전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이 될 수 있다.
▲ 부활의 소망을 담는 크리스천의 매장 (AI 생성사진)
사회가 죽음을 삶과 분리하려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매장 문화가 줄고 화장이 급격히 늘고 있다. 북미화장협회(CANA)에 따르면, 미국 내 화장 비율은 1960년 3.6%에서 2024년 62%까지 치솟았고, 2045년에는 80%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는 비단 비신자 뿐 아니라 신자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많은 이들이 비용이나 편의성을 이유로 들지만, 기독교가 2천 년간 지켜온 매장 전통의 쇠퇴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한 미국 개혁주의 온라인 매체가 주장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성경과 기독교 전통과 달리, 몸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인간론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독교는 인간을 영과 육의 결합체로 고백하며, 몸 역시 구속의 대상이자 마지막 날 부활할 소중한 존재로 가르친다.
성경이 말하는 몸과 부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신자의 몸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부활할 때까지 무덤에서 쉰다”고 가르친다. 마지막 날에 우리가 가졌던 바로 그 몸이, 비록 그 성질은 달라지겠지만, 다시 일으켜 세워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무(無)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거쳐 부활로 나아가는 존재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소망이 ‘몸의 부활’에 있다면, 그 몸을 더 이상 우리 존재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불태우는 것은 신앙과 모순될 수 있다. 씨앗이 흙 속에서 죽어야 풍성한 생명이 피어나듯, 우리는 썩어 없어질 몸을 땅에 심으며 썩지 않을 영적인 몸으로 부활할 날을 소망으로 기다린다(고전 15:42). 매장은 바로 이 부활의 소망을 가장 잘 표현하는 신앙의 행위다.
트랜스휴머니즘 시대의 신앙적 답변
몸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최근 급부상한 트랜스휴머니즘의 도전 앞에서 교회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 수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과 기계를 결합해 죽음을 극복하려는 운동으로, 몸을 인간 존재의 부차적인 요소로 여긴다는 점에서 화장과 같은 인간학적 오류를 범한다. ‘마인드 업로딩’이나 ‘바디해킹’ 같은 기술은 기독교의 중간 상태나 영원한 상태를 모방한 값싼 대체물에 불과하다.
기술로 영생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부활의 소망을 붙들어야 한다. 화장을 거부하고 매장을 선택하는 것은 몸과 영혼의 분리가 끝이 아님을 고백하는 행위다. 고대의 기독교적 장례 관습인 매장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에게 몸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그 몸이 장차 부활하여 영혼과 재결합할 것이라는 소망을 다음 세대에 선포하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입장
미국 복음주의권 내에서 화장에 대한 입장은 과거의 강한 반대에서 점차 완화되는 추세다. 빌리 그래함과 같은 저명한 지도자들도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대부분의 교단은 이제 화장을 금지하기보다는 신앙 양심에 따른 선택의 문제로 보고 있다. 이는 화장이 성경적으로 명백히 금지된 행위는 아니라는 해석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버트 몰러를 비롯한 많은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지도자들은 여전히 매장을 강력히 권고한다. 하나님께서 재로 변한 몸도 능히 부활시킬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매장이 육신의 부활이라는 기독교 핵심 소망을 더 명확하고 강력하게 증거하는 예언자적 행위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실용적인 이유로 화장을 받아들이더라도, 신학적 우선순위는 매장에 두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의 상황은 다소 다르다. 국토가 좁고 묘지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정부 정책적으로 화장을 장려해왔고, 현재 국민의 90% 이상이 화장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한국 복음주의 교회 역시 초기에는 매장을 고수했으나, 지금은 현실적인 이유로 화장을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한국 교회들은 화장한 유골을 안치할 수 있는 교회 내 추모관이나 납골당을 직접 운영하거나 안내하고 있다. 장례 방식 자체보다는 장례 예식의 경건함과 부활의 소망을 전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방향으로 목회적 초점이 이동했다. 이는 현실적 필요와 신학적 의미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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