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쿠란, 토라가 말하는 전쟁과 평화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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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2025-06-2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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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쟁은 정당한가? 성경, 쿠란, 토라는 전쟁을 불가피한 현실로 보면서도 평화를 최고의 가치로 둔다. 각 경전은 전쟁에 대한 정당성과 함께 엄격한 윤리적 지침, 그리고 평화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전쟁은 종종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지곤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의 핵심 경전인 성경, 쿠란, 토라는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더 컨버세이션 뉴스 플랫폼은 세 명의 전문가를 통해 각 경전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성경은 전쟁을 인간 삶의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제시한다. 전도서 기자가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라고 외친 것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이는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대 근동의 거대 제국들 사이에서 작은 민족으로 승리와 패배를 모두 경험했던 이스라엘 공동체의 현실을 반영한다.
하나님께서 전쟁에 관여하시는 부분에 있어서, 때로는 히브리 민족에게 전쟁을 명령하시고 끔찍한 폭력을 행하게 하시는 모습도 나타난다. 신명기 20장이 대표적인 예다. 반면, 많은 히브리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평화를 가져오실 때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며, 사람들이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미가 4:4)고 예언하고, 무기를 농기구로 바꿀 것이라(이사야 2:4) 노래했다. 전쟁은 인간의 죄악의 결과이며,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평화로 변화시키실 대상으로 본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예수의 가르침
신약성경의 대부분은 로마 제국 시대에 기록되었다. 이 시기 로마의 군사력은 요한계시록과 같은 저항 문학에서 악으로 묘사되었고, 많은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 군대에서 싸우기를 거부했다.
예수께서는 전쟁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셨지만, 전반적으로 폭력을 거부하셨다. 베드로가 칼로 자신을 지키려 하자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태복음 26:52)고 말씀하셨다. 이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다른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결론적으로 성경 안에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내용과 평화주의를 지지하는 내용이 모두 존재한다. 기독교인에게 있어, 예수의 가르침은 원수 사랑이라는 렌즈를 통해 구약의 전쟁 관련 본문들을 해석할 수 있는 윤리적 틀을 제공한다. 이는 독자들을 폭력과 고통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꿨던 선지자들의 희망적인 비전으로 다시 이끈다.
이슬람과 유대교의 관점
이슬람은 7세기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등장하며, 전쟁에 대한 법적, 윤리적 개혁을 도입했다. 쿠란은 단순한 전쟁(하르브)이 아닌, '지하드'라는 새로운 용어를 정의했다. 지하드는 정당한 명분 아래 명확한 법적, 윤리적 지침에 따라 싸우는 것을 의미하며, 공격적인 전쟁과는 구별된다.
쿠란은 점령이나 신념을 이유로 한 박해에 맞서는 방어적 전쟁을 허용하며, 이는 교회, 수도원, 회당 등 모든 예배 장소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전쟁은 비례의 원칙을 따라야 하며, 적이 평화를 원하면 반드시 평화에 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대교의 토라 역시 평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만, 방어적 전쟁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토라에는 군 복무가 의무로 명시되어 있지만, 새 집을 지었거나, 약혼했거나, 두려워하는 자 등 특정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면제되었다.
전쟁에 대한 강한 반감은, 위대한 전사였던 다윗 왕이 성전 건축을 허락받지 못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그 임무를 맡게 된 이야기에서도 드러난다. 이후 탈무드 시대에는 '의무 전쟁'과 '허용된 전쟁'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이 고대의 논쟁은 오늘날 다시금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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