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 맞은 런던 교회, 미국서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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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2025-05-0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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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은 오랜 세월 굳건한 동맹 관계를 이어왔으며, 개신교 신앙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영적으로도 긴밀한 유대를 나눠왔다. 이러한 특별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 한 교회의 감동적인 사연이 최근 영국 공영방송 BBC를 통해 소개되어 관심을 모았다.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폐허가 되었던 런던의 한 유서 깊은 교회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 중서부 지방에 복원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양국의 끈끈한 역사와 신앙적 교감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도시 재건을 이끈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경. 그가 다시 세운 52개의 교회 중 하나인 세인트 메리 앨더먼베리(St Mary Aldermanbury)는 12세기경 세워진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그러나 1940년 12월 29일 밤, '제2의 런던 대화재'로 불릴 만큼 격렬했던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교회는 처참히 파괴되었고, 런던의 다른 7개 교회와 함께 앙상한 뼈대만 남게 되었다. 80년 전 종전의 기쁨 속에서도 런던 곳곳은 전쟁의 상흔으로 가득했다.
전쟁 영웅 처칠은 종전 직후 총선에서 패배하는 예상 밖의 결과를 맞았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미국 미주리주 풀턴의 작은 대학, 웨스트민스터 칼리지로부터 연설 초청장이 도착했다. 여기에는 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의 "내 고향의 멋진 학교요. 오시면 내가 직접 소개하겠소"라는 친필 메모가 덧붙여 있었다.
이 초청을 수락한 처칠은 1946년 3월 5일, 미소 간 냉전 심화를 예고하고 미영 특별 관계를 촉구한 역사적인 '철의 장막' 연설을 하게 됐다.
처칠의 연설 15년 뒤, 웨스트민스터 대학은 이를 기념할 방법을 논의했다. 정원, 동상, 기념판 등 여러 제안이 오가던 중, 로버트 데이비드슨 총장이 "런던 대공습 때 폭격 맞고 20년 가까이 방치된 크리스토퍼 렌의 교회를 통째로 가져와 풀턴에 재건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모두가 어리둥절했지만, 이 야심찬 계획은 곧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150만 달러(현재 가치 약 1600만 달러 이상)의 막대한 이전 비용 마련과 영국 당국의 허가를 얻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이 계획은 존 F. 케네디, 린든 B. 존슨, 트루먼, 아이젠하워 등 전현직 미국 대통령들의 지지와 처칠 본인의 "상상력이 풍부한 구상"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급물살을 탔다. 마침내 런던시와 런던 교구의 승인을 얻어 1965년, 교회의 남은 부분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7천 개가 넘는 돌들은 하나하나 세척되고 번호가 매겨졌으며, 총 무게 600톤이 넘는 석재들은 배와 기차로 미주리까지 운반됐다. 르네상스 장인의 기술까지 동원된 복잡한 재건축 끝에 1969년 5월 7일, 교회는 마침내 미국 땅에서 헌당식을 가졌다.
현재 세인트 메리 앨더먼베리 교회는 웨스트민스터 대학 내 '미국 국립 처칠 박물관'의 일부로 운영된다. 실제 예배가 드려지지는 않지만, '영국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는 이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이자 미주리 중부의 주요 관광 명소다. 박물관 측은 최근 6백만 달러를 들여 교회를 보존·복원했다. 런던의 옛터는 작은 기념 공원으로 남아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바다 건너 새 생명을 얻은 이 교회의 여정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계속됨을 보여주는 듯하다. 파괴된 성전이 먼 타국에서 기념물로 재탄생했듯, 그리스도인인들도 고난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사명을 발견할 수 있음을 묵상하게 한다.
AI 생성사진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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