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 기독교인들은 유태민족의 역사와 종교를 믿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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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 2013-10-1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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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기독교에 대해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한국인이라면 한국 고유의 역사를 알고 한국의 종교를 믿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요? 그런데 왜 한국 기독교인들은 한국의 역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유태민족의 역사를 달달 외우고 다니고 또 단오제 같은 한국의 고유한 풍습을 무시하는 것인가요?
이런 문제제기는 기독교가 처음 한국에 소개될 때부터 있어 왔다. 18세기에 천주교가 실학자들을 통해 한국에 소개될 때 많은 사람들이 당시 조선사회를 지배하던 유교사상과 무부무군의 종교로 인식되는 천주교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외래종교인 천주교를 배척하였다. 이런 현상은 19세기 말에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올 때도 지속 되었다. 그 후 일제시대 때 기독교가 한민족의 편에 서서 한국인들의 애환을 서양에 전달하고, 학교와 병원 사업, 그리고 농촌계몽운동을 통해 한국인들의 정신적, 물질적 성장을 돕는 모습을 보이면서 기독교에 대한 사회인식이 어느 정도 개선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기독교는 한국의 고유문화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는 외래종교라는 인식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어느 정도 한국 기독교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를 도입한 초기 선교사들과 한국 기독교인들은 사실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를 집중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서양의 문물과 종교적 상징들도 마치 기독교의 본질인양 전달하고 강요하는 예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배당을 서양식으로 짓는 것, 예배 의식에서 한국적 의복과 음악과 전통 악기들을 제외시킨 것, 절이나 무속신앙에서 사용되는 모든 것을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까지도) 미신과 우상숭배로 배척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기독교를 외래종교로 배척하는 입장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이전의 한국의 주요 종교들도, 예를 들어 불교나 유교나 도교도, 따지고 보면 다 외래종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종교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한국인들의 심성과 삶에 토착화하고 발전하여 “한국적”종교가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어느 특정 종교가 토착 종교인가 외래종교인가가 아니라, 그 종교가 한국인들의 심성과 삶에 토착화하였느냐를 살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한국 기독교는 충분히 토착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것이다. 필자가“충분히”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한국 기독교는 이미 100년 이상의 역사가 있기에 당연히“어느 정도”토착화 과정을 거쳤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 기독교는 팔레스타인에서, 즉 동양(Orient)에서 발흥한 종교이다. 그런데 이 종교가 서양으로 이동하면서(처음에는 로마로, 그 다음 유럽으로, 미국으로) 서양문명의 일부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으로 왔을 때는 한국 문화의 일부가 되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외래종교라는 비판 속에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 즉 누구든지 예수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잠겨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가 가르치는 교훈이 있다. 전통문화는 우리가 배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할 대상이란 인식이다. 이런 인식이 있을 때 토착화가 이루어지고, 토착화가 이루어질 때 종교가 민족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홍삼열 목사(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
ⓒ 크리스찬투데이
이런 문제제기는 기독교가 처음 한국에 소개될 때부터 있어 왔다. 18세기에 천주교가 실학자들을 통해 한국에 소개될 때 많은 사람들이 당시 조선사회를 지배하던 유교사상과 무부무군의 종교로 인식되는 천주교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외래종교인 천주교를 배척하였다. 이런 현상은 19세기 말에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올 때도 지속 되었다. 그 후 일제시대 때 기독교가 한민족의 편에 서서 한국인들의 애환을 서양에 전달하고, 학교와 병원 사업, 그리고 농촌계몽운동을 통해 한국인들의 정신적, 물질적 성장을 돕는 모습을 보이면서 기독교에 대한 사회인식이 어느 정도 개선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기독교는 한국의 고유문화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는 외래종교라는 인식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어느 정도 한국 기독교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를 도입한 초기 선교사들과 한국 기독교인들은 사실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를 집중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서양의 문물과 종교적 상징들도 마치 기독교의 본질인양 전달하고 강요하는 예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배당을 서양식으로 짓는 것, 예배 의식에서 한국적 의복과 음악과 전통 악기들을 제외시킨 것, 절이나 무속신앙에서 사용되는 모든 것을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까지도) 미신과 우상숭배로 배척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기독교를 외래종교로 배척하는 입장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이전의 한국의 주요 종교들도, 예를 들어 불교나 유교나 도교도, 따지고 보면 다 외래종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종교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한국인들의 심성과 삶에 토착화하고 발전하여 “한국적”종교가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어느 특정 종교가 토착 종교인가 외래종교인가가 아니라, 그 종교가 한국인들의 심성과 삶에 토착화하였느냐를 살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한국 기독교는 충분히 토착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것이다. 필자가“충분히”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한국 기독교는 이미 100년 이상의 역사가 있기에 당연히“어느 정도”토착화 과정을 거쳤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 기독교는 팔레스타인에서, 즉 동양(Orient)에서 발흥한 종교이다. 그런데 이 종교가 서양으로 이동하면서(처음에는 로마로, 그 다음 유럽으로, 미국으로) 서양문명의 일부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으로 왔을 때는 한국 문화의 일부가 되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외래종교라는 비판 속에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 즉 누구든지 예수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잠겨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가 가르치는 교훈이 있다. 전통문화는 우리가 배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할 대상이란 인식이다. 이런 인식이 있을 때 토착화가 이루어지고, 토착화가 이루어질 때 종교가 민족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홍삼열 목사(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
ⓒ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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