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처럼 살련다"…독립운동 숨은 주역 손정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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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ㆍ 2020-01-0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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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지 않고 궂은일 감당…'걸레정신'으로 애국활동
올 10월, '손정도 목사 영화' 개봉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민족의 독립과 정부수립을 주도했던 해석(海石)손정도 목사. 그의 신앙과 업적이 재조명 받기 시작하면서 교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자신을 희생해 나라와 민족을 살리고자 노력해 '걸레성자'로 불리는 손정도 목사의 이야기는 올해 10월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독립운동과 정부수립의 숨은 주역으로 활동했던 손정도 목사의 생애를 조명해본다.
▲1919년 1월 제6회 임시의정원 개원 기념사진. 가운데 안창호의 오른쪽 노란색으로 표시한 사람이 손정도 목사.ⓒ데일리굿뉴스
과거(科擧) 지망생, 목사가 되다
손정도 목사(1882~1931)는 감리교 목회자이자 선교사, 일제강점기 때 조선민국임시정부 평정관, 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했던 애국지사다.
손 목사는 평안남도 강서군 유교집안에서 자랐다. 출세를 위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평양길에 올랐던 그는 우연히 한 목사로부터 성경이야기를 듣게 된다. 복음은 스물 셋 청년 손정도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다. 다음 날 그는 상투를 자르고, 고향으로 돌아와 집안의 사당을 부수었다.
이 같은 일로 가문을 발칵 뒤집은 손 목사는 야간도주 할 수밖에 없었고, 평양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에게 복음을 전했던 목사의 소개로 감리교 선교사였던 문요한(John. Z. Moor) 목사를 만나게 되면서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된다.
1907년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평양 남산현 교회의 부목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1910년에는 만주에 선교사로 파견돼 하얼빈·안동(安東)·간도·블라디보스토크를 다니며 선교 활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중국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했던 그는 1912년 일본 수상 가쓰라 다로 암살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돼 3개월간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1년 진도로 유배를 가는 등 수난을 겪은 이후에도 서울 동대문교회, 정동교회의 담임목사로 재임하며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고, 유관순 열사 등 청년들에게 항일 정신을 가르쳤다.
궂은일 도맡는 '걸레정신'으로 독립운동
손정도 목사는 도탄에 빠진 나라와 민족을 해방하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1918년, 그는 담임목사 직을 내려놓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하나님 사랑이 곧 민족과 나라사랑'이라는 그의 철학 때문이었다.
특히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건 손정도 목사의 '걸레 정신'이다. 그는 걸레가 자기를 더럽히며 남을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낮춰 섬기는 모습을 보였다. 손 목사를 '걸레성자'로 부르는 이유다.
故손정도 목사의 손자인 손명원 장로는 "손 목사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배경에는 그의 '걸레정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손 장로는 "그분은 강단에서 주님의 으뜸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선포하면서 몸소 실천하고자 했다"며 "어렵고 남이 다 피하는 것일지라도 솔선수범하겠다는 정신으로 독립을 위해 살았다"고 회고했다.
업적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손정도 목사는 임시정부 통합과 출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1919년 3·1운동 직전 상해로 건너가 안창호, 김구, 이승만 등과 함께 임시정부 설립과 운영을 위해 힘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손 목사는 화합의 리더십으로 서울, 상해, 연해주 등 국내외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임시정부를 상해 중심으로 통합시켰다.
임시정부 조직 절차를 밟아나가던 그는 지금의 국회 격인 임시의정원 의장을 맡으며, 10개조로 구성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심의?통과시켰다. 임시정부 내부 갈등으로 위기를 맞은 때에도 체제 유지와 독립자금 조달을 위해 소통에 힘썼다. 의용단, 한국노병회 같은 독립운동단체 조직에도 적극 나섰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상황 속에서 대한적십자사를 재건해 회장직을 수행했고, 독립운동 근거지 마련을 위해 민족 이상촌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올 10월, '손정도 목사 영화' 개봉
그 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던 손정도 목사는 학술대회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중에 소개됐다. 손 목사의 삶이 재조명되면서 교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고문후유증으로 49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나라사랑 정신으로 섬김과 화합을 실천했던 손정도 목사는 남과 북에서 모두 존경 받는 흔치 않은 인물로 꼽힌다. 때문에 앞으로 남북관계 해빙에 물꼬를 트는 매개의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손정도기념사업회 상임대표 이강전 장로는 "요사이 남북관계 화해모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는 분이 손정도 목사님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남과 북에서 모두 존경을 받는 평화의 사도로서 주목할 만 한 인물이다"고 말했다.
손 목사의 애국정신과 삶은 영화로도 제작된다. 새에덴교회, 만나교회 등 한국교회가 연합해 제작에 참여하며 영화제작사도 선정돼 작업이 진행 중이다. 영화는 올해 10월 전국 20여 개 극장에서 동시 개봉될 예정이다.
김민주 기자 ⓒ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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