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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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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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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30


요즈음 우리 교회의 여자 성도님들은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고 대장의 연동운동을 활성화 시켜서 변비를 막아보려는 목적으로 훌라후프 돌리기가 한창이랍니다. 그리고 훌라후프를 많이 돌리면 허리둘레도 날씬해진다고 하네요….

얼마 전, 교회 대청소가 끝난 후 식당에 모여 앉아 Coffee를 마시며 쉬고 있던 여자 집사님들이 너도나도 훌라후프 예찬론과…하루에 45분 혹은 1시간씩 훌라후프를 돌렸더니 허리 둘레가 몇 인치 줄었다는 등…, 여기저기서 열변들을 토했습니다.

“사모님! 사모님도 훌라후프 좀 해보세요! 매일 아프다고만 하시니 어디 덕이 됩니까?” 그중에서 입이 잽싸기로 유명한 멋쟁이 H. 집사님의 일침이었습니다. 이크,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없어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내게 그만… 불똥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렇구나…내가 약하면 남에게 덕이 되지를 않겠구나…, 나도 훌라후프라도 좀 배워야 하는가…?” 어릴 적부터 저는 유난히도 유약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내 어머니의 근심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자랄 때 별로 심한 운동을 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젊을 때야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건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건 겉으로 봐서 별반 차이가 나지를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유약해 보이는 내 모습이 더 여성(?)스럽다며 조금은 우악스럽고 건장하게 생긴 내 친구 애들은 골골이 나를 부러워하며 생짜로 몇 끼씩 굶기도 했다는군여…. 그런데 그것이 중년을 넘기면서 이렇게까지 나를 괴롭힐 줄이야… “으잉…나도 운동을 해야지…”

나는 돌아오는 길에 당장 근처 슈퍼에 들러서 건강에 그만이라는 굵직한 자석이 잔뜩 달린 예쁜 훌라후프를 40불이라는 거금(?)을 주고 하나 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누가 볼세라 방에 숨어서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예쁜 훌라후프를 몸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멋지게(?) 폼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아뿔싸…평소에 운동을 제대로 해 두지 못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돌리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놈의 훌라후프가 자꾸만 내 몸에서 튕겨져 나가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튕겨져 나가 떨어지면서 그 훌라후프에 달린 자석들이 나를 여기저기 사정 없이 때리는 통에 순식간에 내 몸은 시퍼렇게 피멍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엉…엉…

운동이란 평소에 늘 연습을 해야만 하고 어느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배운 셈이지요.

영적인 일도 그러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흘리신 피를 믿고 구원(Salvation) 받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는 것은 그리 만만치가 않습니다. 성화(sanctification)되는 것은 부단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막의 교부나 수도사들은 물통 하나, 식기 몇 개 달랑 들고 광야생활을 합니다. 낮이면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광야를 헤매기도 하고, 밤이면 딱딱한 암석바닥에 마른 풀을 깔고 누워서 잠을 잡니다. 고행과 절제의 생활로 자신을 쳐 복종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강한 훈련을 함으로써 자신을 세속으로부터 지키려 하는 것은 자기 속에 잠복해 있는 동물적 본능, 나태함과 온갖 육신적인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물리치고 오직 주님만을 그리워하는 자신임을 증명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물론, 우리 성도들은 사막의 수도사나 교부들 같은 그런 맹훈련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속에 숨겨져 있는 세상에 속한 정욕의 찌꺼기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자신을 괴롭힌다면, 그것까지라도 주님께 기도하여, 주님의 능력으로 물리침을 받는 것이 자기 자신의 땡볕 고행, 금욕, 금기의 고행보다 몇 배나 더 능률적이고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여도 성도가 자신들의 속에 있는 세상 정욕을 물리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역시 성도의 길을 제대로 걸어갈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많은 사역자님이 자기 자신을 쳐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시키는 일, 매일의 삶 속에서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을 가르치려는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 정죄하기에 바쁜 것 같고, 또 어떤 사람은 솔직한 것이 좋다고 하여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무절제한 지도자들의 어그러진 사생활 때문에, 이것을 바라보는 보다 연약한 영혼에 큰 상처를 입히고, 자기 자신은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유혹이란 무서운 덫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고 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 하나니…,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 25상, 27절)”하고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진실한 성도라면, 머리와 언어, 그리고 가슴이 일치하지 않는 행위, 외식하는 행위도 배제해야겠지만, 절제하지 못하고 쏟아 놓는 무절제한 언어생활이나 행동은 더욱 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제되지 못한 언행 심사는 결국 방탕함으로 치닫고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파괴하는 무서운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삶의 절제가 없이 무절제한 사람은 , 설사 그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죄를 자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외식이란, 속과 겉이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절제는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절제되며 정제된 아름다운 언어와 선한 생각들을 연습(Practice)할 때 주님께로부터 칭찬받고, 세상으로부터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인정받는 멋진 삶을 남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망의 1월도 다 지나고 벌써 2월로 접어들었습니다. 나의 살아온 날이 얼마가 되었던, 오늘 이 시간까지 훈련되지 못한 삶, 후회스러운 지난 세월로 얼룩졌다고 해도, 아직 늦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가정에서는 어버이들이, 교회에서는 영적 지도자들이, 직장에서는 상사들이, 정치계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실천 실행하여 우리들의 사랑스런 자녀들과 후대에 좋은 본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훈련된 건강한 개인,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교회, 건강한 국가를 세워나갈 수만 있다면 이에서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을까? 매일의 삶에서 허리둘레를 줄여나가듯, 나쁜 습성들을 줄여나가는 훈련을 나부터 실행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 4: 7-8절 말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로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1:27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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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생달 
2014-02-19 00:33
 27.xxx.168
 안녕하십니까.
저는 보기만하여도 딱딱하고도 거칠게 느껴지는
 그 훌라후프 를 사셔서 시험을 해 보셨다니요.
갑작스럽게 운동을하셨다니요.얼마나 아픔을 느껴셨씁니까.
그러고보니 무슨 일이든 갑작스러운 것은 좋지않는가봅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나의 아픈마음을 전하면서 기도를 드리는 것도
 영적인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저의 마음을 열어가야만 되지요.
갑자기 너무도많은것을 청하여서는 오히려 저들의마음의 혼란과
 순서를잊고말것으로알고있습니다마는 ...
만사 순서와 질서있게 해 나가면 될런지요.
별똥별님의 말씀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우리들의 "삶" 에 대한
 바른길을 인도해주시는 스승 이시며 이 시대의 올바른
 지도자 이심을 만 천하에 부르짓고싶은 심정입니다.
좋은 교훈을 쉽고도 받아드리기에 매우 높은 가르침입니다.
감사합니다.
 
 한아이 
2014-02-12 13:28
 96.xxx.186
 오랜만에 별똥별님의 글을 통하여 뵙게되어 반갑습니다 !
그동안 새로운 교회에 적응하며 (?) , 또 구정을맞아 멀리계신 부모님을 찿아뵙고 ...  바쁘게 지냈습니다 .
훌라후프를 사서 열심히 해보고싶습니다 !!
 
  에스더
2014-02-05 11:08
 96.xxx.201
 별똥별님의 어린 시절을 읽으면서 저를 보는 듯했습니다.
저도 워낙에 몸이 약해서 체력장을 할 때에 장거리뛰기는 면제받았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버스를 타면 어머니는 저부터 자리에 앉히곤 하셨지요.
월요일 아침마다 조회시간에 쓰러지는 아이들 있잖아요?
저도 그 중의 한 아이였답니다~^^
그래서 조회를 하러 나갈 때마다 친구들이 저에게
"오늘 컨디션이 어때?"라고 물어보았어요.
그 이유는 제 옆에 서있다가 함께 들어오고 싶어서였지요~^^

저는 운동을 참 좋아했는데, 기관지가 약하다는 이유로 장거리를 뛸 때마다 너무 숨이 차서 중간에 포기하고 들어와야 하는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어요.

전교에서 달리기로 3등 안에 드는 아이가 저희 반에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저와 아주 친했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 부탁을 했지요. 제가 아무리 지치더라도 제 손을 꼭 붙잡고 끝까지 뛰어달라고요...

그 친구가 저를 참 좋아했던 이유는... 제가 그 친구의 밥(?)이었거든요. 제가 워낙에 좀 착해서(?) 아무리 어떤 쿠사리를 주어도 웃으며 받아주었기 때문이에요. 그 친구가 자라면서 받았던 좋지않은 별명이나 말들을 항상 저에게 농담조로 퍼부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지요. 그러나 초등학교 때부터 저는 "미소를 잃지 말자"라는 모토를 정해놓았기 때문에 미소를 잃지 않고 장난식으로 받아넘기곤 했어요. 그 덕에 그 친구는 흔쾌히 제 부탁을 들어주었지요.

그때가 중학교 3학년 체력장을 할 때였어요. 장충당공원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데, 어딘가 넓은 장소를 학교에서 빌려서 그곳에서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중3 모든 학생이 장거리 달리기를 하게 되었을 때에 저는 그 친구의 손을 붙잡고, 앞이건 뒤건 상관없이 그 친구의 손만 의지하여 뛰었습니다.

가끔 숨이 막혀서 쉬고 싶었는데 그때마다 그 친구는 조금씩 템포를 늦추어 주었고, 때론 잠시 서서 한숨을 돌리고 뛰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은 약 3초 정도로 아주 잠깐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만 둘래?"라고 물어보았지만, 저는 "아니~! 내 손 꼭 붙잡고 끝까지 뛰어줘~"라고 하면서 뛰었습니다.

그리고 워낙에 잘 뛰는 친구인데 저 때문에 등수에도 못 들 것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해서 정말로 있는 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제 눈에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주님, 저 끝까지 뛰게 도와주세요. 저 도와주세요"라고 하면서 그 친구의 손만 의지했습니다.

한참 뛰고있는데, 아직도 수많은 아이들이 운동장을 돌고있는 상황 속에서 "수경아, 우리 다 뛰었어!"라는 친구의 소리에 저는 장난하는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스타트하는 곳에 저는 들어왔지만, 바로 제 앞에서 뛰고있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들은 저보다 한 바퀴가 더 늦은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전교에서 우리가 10등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집에 돌아온 저는 제일 먼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거리를 뛰었다고 하니까 부모님은 많이 놀라시면서 어떻게 뛰었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제가 전교에서 10등 안에 들어왔다고 하니까 부모님은 믿어지지 않는듯한 표정을 지으시면서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어머니는 운동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시던 분이지만, 아버지는 달리기는 항상 1등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뛰는 것은 잘 했는데, 기관지가 약한 탓에 오래 달리는 것을 못했던 것이지요.

저희 어머니도 어릴 적부터 몸이 매우 약하셔서 의사가 절대로 시집가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오히려 결혼하고 나서 자녀들을 낳은 뒤에 처녀때보다 훨씬 건강해지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약하셨기에 약한 저를 보면서 항상 애지중지 키우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것이 싫어서 저 스스로 제 몸을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거리달리기 이후 저는 어머니께 "엄마, 이젠 걱정하지
 마세요. 한 번 했으면 계속 할 수 있는 거에요"라며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는 제가 운동을 한다고 하면 말리지를 못하셨습니다.

제가 장거리 달리기를 친구와 함께 손을 잡고 하도록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교훈은...
아무리 약해서 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도서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 4:9-10)

어릴 때부터 성경에서 잠언과 전도서를 무척 좋아했던 저는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 말씀과 함께 지혜를 주셨던 것입니다.

제가 힘들 때 친구의 손만 붙잡아도 완주할 수 있는 것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있으면 못할 것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친구의 손을 잡고 뛰면서 얻은 교훈은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평소에 저에게 그렇게 싫은 소리를 많이 하며 망신을 주었지만
 그래도 제 손을 잡고 뛰어주는 그 친구가 너무나 고마왔습니다.
그래서 친구란...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어려울 때 자기의 이익을 챙기지 않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3-14)

 ★둘째는...
제가 친구의 손을 잡고 뛰는 순간은 ...
앞에 가는 사람이나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들은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제 손을 잡고 뛰는 친구의 마음이 변해서 손을
 놓치나 않을까... 하는 염려만 있었을 뿐, 다른 주변 환경과 상황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제 손을 잡아주시는 주님만 바라보고 있으면, 외식할 틈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더 주님 손을 꼭 붙잡느라 주위 사람들 신경쓸 여유가 없지요~^^

★셋째는
 제 앞에 한바퀴가 더 남아있는 친구들을 몰랐던 저는,
제가 그들 뒤에 있는 줄로 알았기에...
저 때문에 전교에서 1등을 하던 친구가 꼴찌가 될까봐
 그 친구를 위해서도 전력을 다해 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의 희생이 고마와서 저도 어떻게 해서든 최선을 다하고 싶었기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처럼 외식할 시간조차 없이
 예수님의 손만 붙잡고 결승점까지 그 손을 놓지않고 갈 수 있도록
 내 손을 붙잡고 계시는 예수님께로 모든 마음을 향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내 손을 붙잡은 자를 결코 뿌리치지 말고
 그도 저와 함께 결승점까지 갈 수 있도록 희생할 수 있는 삶...
그것이 진정한 경건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할렐루야!
 
  에스더 
별님은 비위가 약하셨나보네요~^^
전 별님과 반대로 옛날에는 뭐든지 잘 먹었는데
이제는 골라서 먹어요.
그리고 선교를 위해 세계를 많이 돌아다니신 것 같아 부럽네요.
저는 겨우 한국과 미국인데...
저는 체질상 어릴 때부터 허리가 약했어요.
그래서 오래 서있지를 못했지요.
허리가 아프지 않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 느낌이 어떤 느낌일까...
참 궁금했었어요.
그런데 찬양인도를 시작하면서...
처음에 "40분간을 어떻게 서있지?"라고 생각하면서 기도를 드렸어요.
그런데 찬양인도를 시작하면서 오래 서있는 것을 잘 하게 되었어요.
허리가 아프지 않은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하나님의 은혜에요.
이젠 몇 시간도 서서 잘 하니까요~
정말...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씀... 진리예요~^^ 2/5 17:25
 96.xxx.201
 
 
짐보 
2014-02-04 12:47
 207.xxx.194
 별님의 글 같은 뜻으로 잘 읽었습니다.
별님의 정성으로 쓴 글을 읽으며
 마음이 갱기(更起 다시 일어나는)어 속마음의 쓴 뿌리가 있음을 자각케 하여
 캥기고 편하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봅니다.
-하기야 저와 상관없는 글이라면 읽을 필요도 없겠지만
 우리의 이야기 이니까...-
육체의 건강 ,영혼의 경건
 그리고 노래처럼 “주께 영광” 이라는 버릇이 된 상투적인 말
 이런 주제를 이해하기 위하여 본연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본연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린도후서4:4]
그리스도는 우리가 죄로 잃어버린 형상을 회복하시기 위하여 오셨고
 우리가 죽음의 후에는 다시 온전한 형상을 완벽하게 회복합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And as we have borne the image of the earthy, we shall also bear the image of the heavenly.
고린도전서15:49]
이제는 우리가 땅에 거하는 자로서
 육체와 영혼을 본연의 형상으로 회복하는 일이
 육체를 죄악시 하거나 학대하여 수련하는 수도자적인 영혼의 자유를
 득도라 하거나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는 다른 종교처럼,
그런 영향으로 육체를 가혹하게 학대하는 종교가 아니라
 육체에 영혼이 깃드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영육으로 본받아 성장하는 인격
 이것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장성하는 분량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수도사나 교부들은 박해를 피하여 신앙의 수련을 하였고
 육체적인 고통을 통하여 영혼의 회복을 하려는
 육체와 영혼의 이완을 통한 수련...
그 당시 그리스 로마 이집트 소아시아 등에서 유행하였던 이단적인
 영지주의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현대의 우리나라에 기도원 식 수양도 편향적이었고
 요즘의 영성훈련이니 영성교육, 수련원, 수도원 등의 운동도 위험스럽게 보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독대하고 금식하는 일은
 육체에 유익과 경건의 훈련에 유익하지만
 신비주의와 은사 쪽에 치중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겠다는 계시나
 체험적인 간구 보다는 성경을 깨달아
 공의의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공의를 이 세상에 이루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 되는 일이 듯이
 앵무새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다는 표현보단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후사로
 하나님의 자녀로 이루어야 할 우리의 의무이자 기쁨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공평하듯이 세상이 공평하게 보이면
 정의란 하나님의 뜻이 정의라 진리는 정의입니다.

이렇게 바라보면
 하나님의 질투를
 질투의 하나님을
 어떠한 의미이고 왜 그런 표현을 성경은 기록했을까 궁금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질투의 하나님이 아니시라
 인간적인 표현을 하나님께서 친히 하셨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제가 얻은 사랑의 비밀입니다.
또 하나의 비밀이 복음이구요.
이제 또 하나의 비밀이 형상의 비밀을 회복하고 회복될
‘공의의 하나님“뜻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입은 제가 교회가 단체가 공의를 잃어버렸기에
 나약하고 유약하다는 고백입니다.

육체를 써서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듯이
 육체에 영혼이 깃들었기에 육체는 영혼의 그릇이고
 그 그릇인 우리가 토기장인 하나님께 지움을 받았기에
 성경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쓰임으로 영혼이 잘되어
 범사에 감사가 넘치는 힘의 근원을 공급하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또 절망을 넘어선 소망의 확신을 주시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고백은 제게 넘치는 은혜입니다.
별님도 같은 지체의 자매님으로서
 서로에게 서로가 힘이 되고
 아픔이 서로의 아픔이 되어 형상을 회복하고 이루는 성장 통이라
 우리 길의 자극이 되어 다시 공급하시는 힘을 얻는
 주의 길을 따르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렘이 새해의 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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