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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후손이 저와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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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142.♡.♡.150)2024-05-24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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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3: 15-16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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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하면 무슨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까? 저는 50년도 더 된, 제가 젊은 시절 듣던 ‘약속’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라나에로스포’라는 통기타 남녀 듀엣이 불렀는데 두 연인이 영원히 변치 말고 헤어지지 말자는 약속을 하는 노래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약속은 깨어지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고 잊어지고 버려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약속을 문서로 만들어 인을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 봐야 약속보다 사람이 먼저 깨어져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도 인간세상은 약속으로 이루어지고 약속으로 유지됩니다. 부부가 되는 것도 약속이고, 가족이 되는 것도 약속이고, 소유도, 재산도, 돈도 약속이고, 국가, 사회, 법률, 제도, 매매도 모두 약속입니다. 인간들이 만든 이런 약속들도 고치거나 변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은 ‘사람의 언약이라도 아무나 폐하거나 더 하거나 하지 못 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약속도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약속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며 영원합니다. 고치는 것도 없고 잊으심도 없고 지켜지지 아니함도 없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원도 약속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과 믿음의 관계에 있어 율법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또한 율법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다음 약속과 믿음이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시기 전에 먼저 약속을 주셨고 그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 곧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이 아니라 약속을 먼저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다만 시간차이일 뿐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은 우상의 땅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이런 것 저런 것을 하라, 하지 마라.’는 율법이나 조건을 주시고 아브라함이 그것을 지키나 안 지키나 보신 다음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지 않으셨습니다. “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약속하시며 불러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잘 따르는지, 율법을 잘 지키는지, 믿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 다음 그리스도를 약속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식타령을 하는 믿음 없는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시며 ‘너의 씨가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한국어에서는 단수명사와 복수명사가 별 구분 없이 사용되지만 영어에서는 단수명사, 복수명사가 다르고 여기에 따르는 동사도 명확히 구분됩니다. 히브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서 하늘의 별들을 가리키며 하나님이 말씀하신 “네 후손, 너의 씨”는 복수명사가 아니고 단수명사였다고 지적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니, 후손들이라고 해야 맞지 왜 후손이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기초문법도 모르십니까?” 하고 따져 묻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네 후손들이 저와 같으리라.”가 아니라 “너의 씨, 후손 중에 오실 그가 저와 같으리라.”고 믿은 것입니다. “오직 하나”, 곧 후손 중에 오실 그리스도를 믿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서는 의로 여기심을 받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늘의 별을 보면서 믿는다 고백하였을 때 속으로 “뭐 하나님이 괜히 기초문법을 틀리게 하셨겠지...“ 하였을까요? 그리고 하나님도 복수명사, 단수명사를 헷갈리게 하는 말장난으로 아브라함에게서 고백을 받아내시고 ‘의롭다’고 해 주셨을까요? 만일 그랬다면 이건 진실도 아니고 억지춘향, 일종의 쇼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러실 수 없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 11:1)“이라 하심같이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수많은 별들 가운데 오직 하나 ‘오실 그리스도’를 진짜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을까요? 그 별 가운데 계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눈이 마주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한복음 8:56)“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막연히 별을 쳐다보면서 후손이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믿어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 중에 오실 그리스도를 보고 믿었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율법이 주어진 것은 그 후 사백삼십 년 뒤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백삼십 년 뒤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헛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지킬 수도 없고 구원도 못 하는 율법은 왜 주신 것입니까? 율법이 주어진 이유는 인간의 범법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이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약속을 버리고 떠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은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통하여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천사들과 중보의 손이라 함은 바위에 십계명을 새긴 천사로부터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한 천사들, 그리고 선지자들을 일컫는 것 같습니다. 범죄하는 인간들을 하나님의 약속에 붙잡아매어 두려고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430년 뒤에 말입니다. 율법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이 떠나지 못 하도록 가두고 붙잡고 얽어매는 울타리와 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빠져 나가고 도망가지 못 하도록 십계명으로 굵은 기둥들을 세우고 그 사이를 여러 규례와 명령들의 막대기와 줄로 얽은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율법에 있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약속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오직 믿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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