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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그물과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따라갔을까?

페이지 정보

대장쟁이2018-04-19

본문

[마태복음 4:12-22]
12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이사야 9:1-6]
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마태복음 4장 후반부를 보면, 주님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 세례요한이 잡혔다는 것을 들으신 다음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셨다가 다시 바닷가 가버나움에 옮겨가서 사셨습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이를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한 이사야 9장에 기록된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려 함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9장에는 마태복음 기자가 인용한 예언이 1,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6절은 우리가 성탄절 때마다 듣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메시아 탄생의 예언입니다.
그 가운데 3-5절에 미디안 족속이 ‘군인의 갑옷과 복장이 불에 지푸라기같이 타 없어져버리고 말 것’이라는 예언이 아울러 나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을 때 그들이 그물을 버려두고,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르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한 적 없으십니까?
왜 그들은 기다렸다는듯이 주님을 좇아갔을까요?
그들에게 벌써 그런 큰 믿음이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남다른 풍모와 권위, 광채,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 무슨 최면술 같은 것 때문이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모습의 사람이셨으니까요. 또한 예수님이 그런 방법으로 제자들을 부르셨을 리도 없고요. 그렇다면 왜 베드로와 같은 제자들은 주님이 부르시자마자 달려갔을까요?

그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고 미드라쉬를 가지고 외우고 교육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의 압제하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옮겨가서 사셨습니다.
마태복음 기자가 말한 대로 “흑암과 사망 가운데 앉은 백성들”에게 큰 빛이 비치었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외치며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자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자가 일어나는 큰 역사가 함께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가버나움 사람들은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의 소문이 나고 예수의 이름이 알려지자 그들은 예수님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기드온 같은 해방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머지않아 이사야의 예언대로 미디안을 물리친 기드온처럼 로마군인의 갑옷과 옷을 항아리에 숨긴 횃불로 섶같이 사르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고 왕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안드레는 주님이 부르자 주저 없이 배를 버리고 주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 세베대 또한 아들들을 가지 말라고 붙잡지 않고 ‘아들들아, 어서 가거라, 가서 한 자리하고 출세해라’ 하고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복음서를 보십시오. 나중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아들들의 자리를 부탁하는 치맛바람을 일으켰고 다른 제자들은 그 인사청탁에 분해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셔서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왕이 되실 것이라는 기대를 끝까지 버리지 아니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 승천을 앞둔 순간에도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고 물을 정도였습니다(사도행전 1:6).

그런 기대를 하면서 주님을 열심히 따르던 제자들, 그 중에서 베드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주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주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시고 반석 위에 세워질 교회와 천국열쇠를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을 받고 죽임 당하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가르치십니다.
제자들에게는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는 청천벽력(파란하늘에 날벼락) 같았을 것입니다.
특히 수제자로서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영의정 자리는 자기 것이라고 내심 여겨온 베드로가 받은 충격은 더 컸을 것입니다.
“주여, 그리 마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베드로는 주님을 붙잡고 만류합니다.
그 베드로를 주님은 ‘마귀야 물렀거라.’ 하고 꾸짖으십니다.
영의정이 되고 싶어 주님의 십자가사역을 만류하니 마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세계관, 가치관은 그렇게 이 세상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넘어,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는데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하나님의 나라’ 약속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들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우주만유의 주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서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나라를 해방시킬 영웅으로, 자신들에게 한 자리씩 앉혀주실 주군(主君)으로 믿은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그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죽음의 너머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음의 너머, 요단강 건너에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땅의 생명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믿음을 요구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만이, 주님을 믿고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만이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이 없고서는 누구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못 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예수 믿는다면서도 이 땅의 목숨, 이 땅의 삶에 매여 허덕이며 삽니다.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의 구주로 보다는 이 땅의 형통을 위한 구주로 만들려고 합니다.
예수님께 매달렸던 제자들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은 순간입니다.
우리의 이 땅의 삶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는 들의 꽃과 같습니다.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이 땅의 생명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주님을 따르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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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바나바님의 댓글

바나바 108.♡.♡.52

보이는 것만 보면서 따라 가는것 하고
보이지 않는것 보고 따라 가는것 하고  다르겠지요
성령을 덧입지 않고 보이는 것 따라가 봤자 헛것입니다
성령을 덧입지 않고는 보이지 않는것을 따라 갈 수가 없는 걸요
믿음 십자가를 지는일 주님을 따른것  이 모두가 성령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  할렐루야! 주께영광!

대장쟁이님의 댓글

대장쟁이 100.♡.♡.223

맞아요.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주님을 따를 수 없지요.
제자들도 어쩌면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표(주님께서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때 빛 보려고)를 따랐는지 모르죠.
제자들이 참으로 주님을 따르게 된 것은 성령강림 후부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평안하시지요?
봄이 왔는데....

바나바님의 댓글

바나바 108.♡.♡.52

"하이고, 그나저나 ..."  우리대장쟁이 목사님의 말(글)에서 사도바울냄새  생각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 그러므로" 를 많이 썼지요. 주안에서 잘 지냅니다 목사님도 잘 계시지요?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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