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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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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자2017-02-16

본문

‘사랑할 것들’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바울도 요한도 야고보도 말할 수 없었던 것이 있다. 만약 그대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면 그대의 믿음과 그대의 고백과 그대의 자기부인과 그대의 성경지식과 그대가 알고 있던 하나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인가.

많은 분들이 예수를 잘못 믿으면 어쩔까하여 불안해하시는 것 같다. 신학의 범주를 들어 이단과 이단아님을 구별하고 성경을 얼마나 명확하게 해석해 내느냐가 중요하다고 여기시는 분들에게는 자신의 신학과 해석의 잣대를 믿고 그것을 주장함으로 바로 서려고 노력한다. 마치 올바른 길에 서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란다.

여러분이 못 알아본다고 해서 주가 여러분을 못 알아보시겠는가. 나는 못 알아 봤었으나 주가 알아보심으로 내가 주를 뵈었었다. 만약 내 기억이 다시 사라진다한들 그 주가 다시 찾지 않으시겠는가. 이게 나의 추측일까. 이게 나의 착각일 것 같으신가.
여러분들은 앞 다투어 예수를 그 하나님을 부인하게 될 것이다. 베드로와 제자들의 다짐앞에 펼쳐질 실제는 여러분들의 배반이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마26:35)


나는 죽도록 배반하고 있으며 배반을 밥 먹듯이 해왔다. 내가 가롯유다의 자리에 있었을 때에도 내 목숨 따위에 관심이 없으신 하나님의 응답이 나로 하여금 더 깊은 좌절을 겪게 하였다. 예수를 팔았고 그를 나의 유익을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그것이 들통 나게 되자 나는 알량한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발악을 했었다. 그마져도 들통이 났고 나는 내가 뭔가가 된 것처럼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도 많았다. 죽음을 딛고 진리로 날라 다니는데 그런 다짐은 당연한 듯 보였다. 여러분들은 나의 이런 경험의 매순간 언제나처럼 나를 챙기고 나의 유익으로 사용해버린 하나님을 늘 상 폭로 당해왔다는 것을 염두 해 두시기 바란다. 그렇게 했던 모든 다짐은 매일의 부인으로 매일의 배반으로 은혜로 부정당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내가 나의 기억 따위에 목을 맬 것 같으신가.
나는 여러분들이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사랑한다. 설사 그것이 은혜로 부정될지라도 또 그렇게 들통 나게 될지라도 우리들의 나이만큼 경험만큼 모든 것을 깨달았다고 기독교적풍자나 하고 있는 모습보다야 더 주의 경륜을 따라 그 길을 걷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아직까지 누군가에게는 누구의 설교가 치명적 유혹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도 다 지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느낌도 기억도 우리의 앎도 깨달음도 그리고 우리의 고백도 그런 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듯한 뭔가 큰 관점을 제시하듯 자신의 입장을 펼치든 자기 구원에만 목을 매고 있든 이거 맞느냐고 묻고 다니든 자기가 맞다고 주장하고 다니든 그딴 것 중요한게 아니다. 당장에 당신의 머리에 문제가 생겨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게 된다면 그런것들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여기시는가. 나는 좀 더 여러분을 초월적 존재로써의 하나님을 말하려는 것이다. 성경에 씌여진 비유들과 말들의 뜻은 여러분들이 이해하고 알아서 깨우칠 수 있는 그런 말들이 아니다. 곧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하는 관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 말씀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초월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그로써 말씀이 향하는 목적이 성취된 것이다.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기억과 논리와 설득과 동의를 분간해내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의 기억이 사라졌을 때 곧 동시에 여러분의 육적자아가 생내적으로 가지고 있던 힘이 상실 되었을 때 말씀이 그대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만 남지 않겠는가.

사랑은 하나님과 관계된 그림이다.

그에게 속한 그림이 곧 사랑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덧칠하려는 모든 것은 그 사랑과 관계가 없어지게 만든다. 결국 그대는 없는 사랑을 창조한 자가 되는 것처럼 그 사랑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기억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기억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관계에 의존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고백을 통해 완성되는 것도 아니며 우리의 자기부인으로는 저 멀리 밀려오는 파도조차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없을 뿐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가 사랑이신 것이다.

곧 성경에서 언급된 모든 사랑의 단어를 찾아 그 사랑에 하나님을 대입해 보시면 답이 나온다. 성경에 묘사된 하나님과 관계된 이들에게 비춰진 사랑이신 하나님의 모습과 의도를 찾아보시기 바란다. 그 사랑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정말 그 사랑의 의미를 알고자 한다면 그게 그렇게 여러분께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다면 벌써 그리 하셨을 것이다. 나는 수년전에 그렇게 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게끔, 그 사랑만을 바라보게끔 피조물은 바보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성경에는 그토록 하나님 사랑을 언급하였는데 정작 여러분들은 그 사랑이 무엇이라고 답하시겠는가.

답할 수 없으면 관계된 것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라고 답하신 분은 텍스트적 성경구절에 암시가 걸려 대꾸하는 것이고 많은 이들이 사랑하심을 느낀다는 표현의 이면에는 자기최면에 걸린 결과라고 나는 말할 것이다. 그 사랑에 우리는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에 매몰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답하는 건 그저 기억에 의존하여 성경구절을 기억하여 내뱉는 정도로 밖에는 인지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내가 이 기억을 다루는 이유는 얼마만큼 여러분들이 이 기억에 집착하는지를 밝히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얼마나 힘으로 여기는지도 밝히려는 것이다. 이 미묘한 차이를 아시겠는가. 내가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 사랑을 모른다며 몰아붙이는 이유를 감지를 하시겠는가.

아직은 성경말씀을 보아야할 분들이 태반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말씀을 곱씹으며 은혜를 받겠노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죽을 때까지 뭘 하겠다고 다짐하시는 분들도 보게 된다. 다들 자기 나름대로 이 기독교를 이 예수를 이 하나님을 정의 내려서 자신만의 올바른 잣대로 믿어 나가겠다는 관심과 의지와 집착으로 똘똘 뭉쳐서 나아가고 있으신 분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좋다. 그러나 그런 걸 할 때 내가 제시한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할지라도...라는 대목을 고려해보시기 바란다. 많은 발전이 있으실 것이다. 성경학자든 원어학자든 강단의 목사나 전도사든 그런 성경교사들은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그저 하나님의 뜻때로 하나님의 방법만을 운운하며 뭔지는 모르겠다는 대답에 냅다 싸대기를 갈기시라는 말이다. 그런 랍비들은 모르는 것을 가르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는 것을 가르치셨다. 그의 제자들이 알아차린 것이 서신서로 복음서로 우리들에게 전하여진 것을 우리는 또 모르고 배우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 비밀이 뭐냐는 말이다. 성경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진리가 되어버린 녀석들을 상대할 때면 답답함이 밀려왔다.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그 사랑이 ...

이것이 초점이다. 이 초점을 화두로 던질까한다. 이것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댓글목록

짐보님의 댓글

짐보 96.♡.♡.163

죄송하지만
기억상실증에 앓으신 적이 있으셨습니까?
거창하시게 '기억' 을 또 '화두' 라 하시니
궁금증이 생겨서, 기대도 되고  험당은 절대 아닙니다.

작은자님의 댓글

작은자 댓글의 댓글 182.♡.♡.47

짐보님께 문안드립니다.

고등학교 시절 쯤 단체 패싸움때 맞아 만 하루 동안
기억상실이었던 적은 있습니다만

기억상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만큼의 기억은 없네요^^

잠긴동산님의 댓글

잠긴동산 73.♡.♡.91

평생을 잘믿던 권사님이 중증의 치매끼로 주위 사람들을 인식할 수도 없는 상태였는데 예수님이 누구이신지조차 고백할 수없는 살아는 있으나 죽은 상태에 있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권사님의 장례식 집전을 거부한다는 어느 목사님의 소식을 듣고 한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그 사랑…”은 그 권사님의 영과 함께 하신다는 어느 목사님의 글을 읽고 자유함을 얻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은자님의 필에서 느끼는 감에 의하면 참 대단하신 분이다. 보통 성도들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다른 말로 하면 그야말로 신내림의 경지에서나 나올만한 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ㅎ ㅎ ㅎ 그 감은 일반 성도들에게 있을 법한 영성과도 판이하게 차이가 나는 요상한 감이 감지됩니다?^^ ㅎ ㅎ 도대체 알아먹지를 못하겠습니다?

작은자님!^^
아멘넷의 원주민들은 성경 인용이 아니면 도대체 감을 잡지 못하는 거룩한 수준의 성도급의 사람들입니다?
말씀 인용으로 재정리하여 다시 가져오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성경 수준으로 내려 오십시요!^^

작은자님의 댓글

작은자 댓글의 댓글 182.♡.♡.47

잠긴동산님께 문안드립니다.

글을 올리면서 미처 자세하게 안내를 못했는데
저의 글이 아니고 어느 개인 블로그에서 읽은 글입니다.

하도 요상하면서 뭔가 깊은듯한 글 같은데
아멘넷의 내공 깊으신분들이 보시면 뭐라고 해석하실까
궁금해서 올렸습니다.

참고로 구지 말하자면 개혁주의에 속한 사람입니다.^^

잠긴동산님의 댓글

잠긴동산 댓글의 댓글 73.♡.♡.91

"고멜과 호세아(samsungfp)" 본인이신지 궁금 합니다!^^
개혁주의 내공으로는 워낙 요상하셔서요 ㅎ ㅎ

작은자님의 댓글

작은자 댓글의 댓글 182.♡.♡.47

저의 글이 아니라 타인의 블로그 글이라고 말씀드렸는뎁쇼^^

김정한님의 댓글

김정한 댓글의 댓글 114.♡.♡.146

작은 자님의
범상치 않는 글로 등단하심을
환영합니다.

님과 일면식 대면하신 두분
저같은 하수는 따라갈 수 없는
독보적인 검법의 대가들임을 아소서
암튼 닉네임에서 풍기는
기대가 활약됩니다.

작은자님의 댓글

작은자 댓글의 댓글 182.♡.♡.47

김정한 목사님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 문안드립니다.

위의 글은 저의 글이 아니고
어느 무명의 블로그에서 차용한 글입니다.

아멘넷에서 많은 신학적인 그리고 신앙적인 견해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차에
특이한 글이 있어서 이 글에 대해 어떠 생각들을 가지고 계실까해서 올려봤습니다.

참고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규칙준수님의 댓글

규칙준수 172.♡.♡.173

다른 분의 글을 가져올 때는
반드시 출처를 표기하던지
아니면 펌글이란 말이라도 삽입하는것이 성도가 할일입니다.

작은자님의 댓글

작은자 댓글의 댓글 182.♡.♡.47

규칙준수님께 문안드립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당연히 출처를 밝혀야지요
그러나 저 글의 당사자께서 대답을 하지 않으셔서
본의 아니게 출처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암묵적 동의라고 여겨 당사자의 이름을 올리지 못함)

그리고 잠긴동산님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고멜과 호세아'라고 글을 쓰셔서 구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성도로서의 불찰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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