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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규 교수 "평양대부흥 100주년 행사의 역사적 신학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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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7-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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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성장은 1992년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하락세가 더욱 눈에 띠었고, 젊은이들과 중고등부와 유년주일학교 학생들도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주요 교단을 제외하고는 신학생 지원자들이 놀랍게 감소했고 신학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도 줄어들었다. 외형적인 성장의 둔화, 신학생 지원 감소, 유학감소는 한국교회가 침체를 맞고 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들이었다. 일각에서 성장하는 교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만나고 있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이런 가운데 평양대부흥 100주년은 한국교회 안에 변화를 위한 새로운 모멘텀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지금부터 100년 전 1907년 장대현교회에 임한 성령의 역사가 강력한 성령의 역사, 말 그대로 사도행전 이후 가장 놀라운 부흥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한국교회와 사회 민족에 미친 영향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른 하나는 지난 수년간 한국교회의 침체를 극복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2007년 올해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한국교회가 평양대부흥 연합집회에 적극 동참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교회에 크고 작은 많은 기념집회가 열렸다. 이제 2007년을 지나면서 일련의 크고 작은 집회들을 신학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은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1. 평양대부흥 100주년 연합집회의 역사적 평가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는 올해 국내에서 대규모 집회가 참으로 많이 열렸다. 2007년 1월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아 열린 올림픽 펜싱 경기장의 “역사를 이루는 기도 2007,” 상암 월드컵 경기장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던 7월 7일 한국교회대부흥 100주년 대회, 20만이 운집한 부산에서의 대규모 전도집회와 최근 33만명이 참여한 부산 그래함페스티발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3년간 한국에서 열린 각종 집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신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음을 보여준다.

차이는 있지만 “연합” “부흥” “통일” “사회적 민족적 책임”은 모든 집회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였다. 금년에 열린 집회들은 100년 전 장대현교회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가 다시 이 땅에 일어나게 해 달라고 사모하는 가운데 열려서인지 집회의 열기도 사뭇 이전과 달랐다. 이들 집회는 한국교회에 큰 도전과 유익을 가져다주었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들 집회가 우연히 태동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슨 운동이든지 그 배경이 있고 진행과정이 있다. 2007년 일련의 집회는 2003년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교회의 양적 및 질적 침체를 깊이 고민하던 이들 가운데 한국교회의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는 무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근의 신학생(KR), 젊은이(Again 1907), 청소년(Rise Up Korea) 모임

필자의 시각으로는 한국교회 안에 부흥을 사모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였다. 2004년에 접어들면서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교회의 외형적인 성장의 쇠퇴만 아니라 질적 성장 역시 눈에 띠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같은 위기의식 속에서 부흥을 사모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2003년 11월 13일 17개 신학교 교수들이 함께 모여 결성한 KR(한국신학교영적갱신을 위한 신학교수 신학생 기도모임), 2004년부터 청년들 사이에 연합집회 형식으로 부흥을 사모하는 이들이 중심이 되어 형성된 “Again 1907,"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Rise Up Korea는 대표적인 모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모임은 몇 가지 특징들을 갖고 있다.

첫째, 정기적인 혹은 부정기적인 집회를 가지며 지속적으로 부흥을 사모해 왔다는 사실이다. 둘째, 대상이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이다. KR이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Again 1907이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Rise Up Korea는 청소년들을 주 대상으로 했다. 셋째, 어느 한 사람이 주도하는 움직임이 아니라 “부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연합모임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지난 20동안 한국교회 안에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이와 같은 연합 모임이 활발하게 진행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이들은 중단하지 않고 한국교회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여 나가고 있다.
 
교단적인 차원의 평양대부흥 100주년 대회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2004년부터 평양대부흥 100주년 대회를 준비해왔다. 2004년 합동총회가 100주년기념대회를 갖기로 결정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여 온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교단적인 차원에서 100주년기념대회를 준비해왔다. 전국목사장로기도회 때 평양대부흥을 주제로 내걸고 기도했고, 2006년에는 장충체육관에서 오정현 목사와 소강석 목사를 주 강사로 100주년기념대회를 열었다. 합동총회에서의 움직임은 통합총회에 적지 않은 도전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2005년 통합총회에서도 평양대부흥 100주년기념대회를 갖기로 결정하고 강력하게 추진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2006년 봄에 원주 명성수양관에서 통합총회가 평양대부흥 100주년기념대회를 개최한 것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예장통합과 합동은 각기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를 독자적으로 갖지 않고 연합으로 갖기로 합의하여 한국교회 모두가 동참하는 연합대회가 가능하게 되었다. 2007년 한국선교 100주년을 맞는 성결교회가 마침 평양대부흥 100주년과 맞물려 있고, 감리교 역시 원산부흥운동부터 평양대부흥까지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의 주역이라 자연스럽게 장감성이 힘을 모을 수 있었다.

일련의 연합운동(한목협, 교단장협의회, 한기총, KNCC)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가 한국교회가 참여하는 기념대회로 자리 잡을 수 있기까지 숨은 노력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국교회의 모든 교단들이 참여하여 구성된 교단장협의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 교단장협의회는 자율적인 기구라 구속력을 지니지는 않지만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들이 거의 동참하는 모임이라 색깔을 지닌 한기총과 KNCC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친화력이 강한 한국교회 대표성을 지닌 연합모임이라 할 수 있다. 이 모임은 한기총과 KNCC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 교단장협의회는 각 교단의 총회장(감리교의 경우 감독)들로 구성된 대표적인 연합기구였기 때문에 전국적인 규모의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한기총과 KNCC의 이해와 양보가 없었다면 이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보수적인 성격을 지니며 평양대부흥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한기총과 달리 KNCC는 여기에 동참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 함께 동참한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었고 그로 인해 명실상부 한국교회 전체가 동참하는 상징성 있는 집회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여하튼 한기총과 KNCC가 이 일에 동참함으로써 한국교회 모든 교단과 대표적인 기구가 동참하는 기념대회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이다. 또한 한목협은 한국교회 전체가 참여하는 2007년 한국교회 대부흥운동 기념대회가 성사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그 외에도 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명성교회, 지구촌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비롯한 몇몇 대형교회들의 노력들이 눈에 띠었다. 지난 수년간 사랑의교회는 평양대부흥 100주년 맞아 부흥을 교회의 중요한 모토로 삼았고, 온누리교회는 CGNTV나 다른 매체를 통해 그 중요성을 저변 확대시켜주었으며,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06년 릭워런 집회 기간 22,000명의 목회자들이 함께 모일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제 3의 움직임들(예수전도단, 고형원 부흥한국, 김우현, 캐리스매틱 운동)

모든 운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한국교회의 최근의 움직임 역시도 오랫동안 숨은 노력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고형원의 부흥한국, 예수전도단,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 김우현 감독, 신디제이콥스를 비롯한 캐리스매틱 지도자들의 집회를 들 수 있다. 예수전도단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꾸준하게 영향을 미쳐 왔고 지금도 그 영향력은 적지 않다. 아프리카와 기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역사를 소개하는 트랜스포메이션은 부흥운동과 변혁를 연결하는 기구로 비교적 건전한 운동으로 알려져 왔다. 고형원 전도사는 “부흥”이라는 복음송을 통해 너무도 많은 도전과 영향을 미쳤다. 주님과 깊은 교통과 교제를 하면서 만든 가사라는 이야기를 전해진다. 고형원의 “부흥”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교회 안에 메아리치면서 부흥을 사모하는 열기를 더 한층 북돋아주었다. 김우현 감독의 팔복시리즈는 갓피플을 통해 젊은이들 가운데 놀랍게 파고들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상당히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신디제이콥스를 비롯한 은사주의자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들 중에는 성령께서 자신들에게 직접 말씀하신다고 믿고 있다. 성경과 기독교 역사가 가르치고 있는 참된 부흥이라는 관점에서 이에 대한 우려를 하는 자들도 많다. 은사와 부흥은 다르다. 참된 부흥은 성령의 은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격적 변화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젊은이들 가운데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해 부흥을 사모하도록 도전을 주셨다.

2. 100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긍정적인 신학적 평가

일련의 행사를 신학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평양대부흥 기념행사가 신학적인 입장을 선명하게 밝히는 세미나가 선행된 가운데 진행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학적인 규명 작업은 한국기독교학회와 한국교회사학회, 한국복음주의신학회, 그리고 한국성서학회가 진행했다. 전국적인 차원의 연합집회는 각 교단의 안배를 고려하거나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지 않고 다양한 프로그램 도입하였기 때문에 신학적 규명이 더욱 쉽지 않다. 합동교단과 같이 나름대로 신학적인 입장을 규명하는 작업을 선행한 경우는 접근이 가능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집회의 성격 규명을 통해 접근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이런 한계를 전제하고 각 행사들을 분석할 때 신학적으로 다음 몇 가지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첫째, 한국교회가 하나되어 100주년 기념행사를 연합으로 추진한 일이다. 아마도 한국교회가 이번 평양대부훙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결실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과거 한국교회는 교단과 교파의 벽이 너무 높아 연합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같은 장로교 안에서도 교단이 다른 경우 서로 강단교류도 힘들 정도로 서로의 교류를 터부시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서 상호 교류가 상당히 확대되었다. 특별히 통합교단과 합동교단은 이 점에서 눈에 띠는 결실을 얻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의 경우 교단을 초월하여 상호 신학자들을 초청하여 세미나를 가지며 평양대부흥의 역사, 신학, 특징의 규명작업을 했으며, 이를 통해 평양대부흥의 신학적 의미와 성격을 분명히 밝혔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 두 교단의 협력이 없었다면 지난 7월 7일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교회대부흥 100주년기념대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감리교와 성결교의 협력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교회가 하나 될 수 있는 것이 역시 부흥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다. 기독교 역사는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연합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과거 1903년부터 1907년 대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 한국장로교회와 감리교가 활발하게 연합활동을 전개했다. 숭실대학교를 공동으로 운영하였고, 한국복음주의연합공의회를 결성했으며, 코리아 필드와 코리아 메소디스트가 합동하여 코리아 미션 필드(The Korea Mission Field)를 창간한 것도 부흥운동의 결실이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연합사업이 한국교회 안에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기념행사를 통해 한기총과 KNCC가 힘을 모은 것은 참으로 한국교회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선례라 아니할 수 없다.

둘째,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행사가 선교와 사회적 책임의식의 연계성 속에 진행된 점이다. 지난 4월 롯데 호텔에서 열린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행사 출범식에서 교회 목회자들만 참석한 것이 아니라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롯한 한국사회 지도자들이 함께 동참한 것은 개인의 각성이 사회와 민족의 각성으로 이어졌던 평양대부흥운동의 본래의 취지와 부합하는 일이다. 합동교단은 기왕의 선교열을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아 더욱 저변확대 시키길 원했고, 통합 측은 봉수교회 건축이나 평양에서 열리는 평양대부흥 100주년 집회 등 북한선교와 병행했다. 과거 100년 전 한국교회가 부흥의 결과 첫 선교사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로 파송할 수 있었던 그 영광을 다시 회복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프카니스탄의 한국인 인질 사건으로 해외 선교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교회 안팎에서 일면서 잠시 위축을 받은 느낌이다.

셋째, 부흥이 성령의 역사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확인해주었다. 부흥이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을 규명하는 작업이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행사 과정 중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각 종 행사의 이면에는 100년 전 평양 장대현교회에 임한 그 놀라운 부흥이 성령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진행되었다. 이미 평양대부흥의 동영상이나 책들을 통해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접한 젊은이들 가운데 그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100년의 간극을 넘어 이 시대에 경험할 수 있기를 사모하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다. 과거 한 동안 평양대부흥이 독립에 대한 소망이 사라지자 종교적인 소망으로 대체하면서 일어났다는 사회학적 해석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용해왔었다. 그러나 평양대부흥이 비정치화의 결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놀라운 성령의 부으심의 역사였다. 평양대부흥은 회개의 역사였고, 회개는 성령의 역사이며,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 말씀과 더불어 역사한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원리이다.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은 이 부분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넷째 평양대부흥 100주년 일련의 행사는 오랫동안 잠자던 한국교회 젊은이들을 영적인 잠에서 깨우는 역할을 했다. 2004년부터 부흥을 사모하며 크고 작은 집회를 열었던 단체들도 젊은이들이었다. KR(전국신학교영적갱신을 위한 신학교수 신학생기도모임), Again 1907, Rise Up Korea 모두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모임이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젊은이들 가운데 새로운 각성의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행사가 가져다 준 가장 값진 결실 가운데 하나였다. 기독교 역사는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곳마다 젊은이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 젊은이들이 성령의 역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런 면에서 최근의 젊은이들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3.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본 몇 가지 문제점과 한계

평양대부흥 100주년 행사는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중요한 신학적 공헌들이 있었지만 중요한 문제점들도 동시에 노출되었다.

첫째, 기념행사가 반드시 본래의 목적과 부합된 결실을 얻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치르는 목적은 한국교회가 다시 그와 같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기념행사 집회의 성격을 “회개와 부흥” “성령의 임재와 부흥” “영적각성”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진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너무도 많은 순서와 프로그램들이 한 행사 안에 혼재되어 있어 기념행사의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다양한 교단과 교파의 사람들이 순서를 맡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통일성도 부족했다. 구색 맞추는 식의 기념행사가 의외로 많았다. 과거 100년 전 한국교회의 연합집회는 그 목적이 참된 부흥을 경험하는 일,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경험하는 일에 선명하게 초점이 맞추어졌던 것과 대비된다. 그 결과 많은 집회나 행사가 100년 전 장대현교회에 임한 그 같은 부흥을 촉발하는 집회가 되지 못하고 하나의 기념행사로 끝나고 말았다.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면서도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얼마든지 통일된 집회를 진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각 교단의 대표들이 “회개와 부흥”이라는 주제로 우리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전반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죄악들을 놓고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100주년 행사를 위해 많은 준비, 특별히 기도의 준비가 선행되었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기념행사가 몇몇의 교계지도자들, 혹은 교회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경향이 강해 폭넓은 공감대와 동참을 이끌어 내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한국교회 전체가 참여하는 기념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도와 준비가 선행되었어야 했다. 이 점은 참으로 아쉬움으로 남는다.

셋째,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행사 모두가 일관된 주제나 목적을 공유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각 행사가 100주년 기념행사락 하면서도 모토가 다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 년 초에 열린 Transformation은 “Beyond 2007"을 핵심 주제로 내 걸었다. 물론 변화를 강조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지금 막 평양대부흥 100주년 2007년을 시작하는 벽두에 그런 주제를 내 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온 한국교회와 교우들이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사모하고 기다리며 기도해왔는데 새해 벽두에 “부흥”에 초점을 두어도 아쉬운 이 때 “Beyond 2007"은 아무래도 바람직한 주제는 아니었다. 적어도 한국교회 평양대부흥의 의미를 확인하고 살린다는 의미에서는 말이다.

넷째, 각 단체들이 홍보와 영향력 확대를 위해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이용한다는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다. 

맺는 말

이제 얼마 후면 2007년이 지난다. 우리가 지금까지 고대하고 기다리던 그 놀라운 대부흥은 우리 가운데 임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한국교회가 이처럼 다시 부흥을 사모하는 일에 하나된 적이 없다. 한국교회는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중단하지 않고 부흥을 사모하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타임 테이블은 다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에드워즈의 고백대로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지만 사모하는 곳에 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록 100년 전과 같은 강력한 성령의 임재는 우리 가운데 임하지 않았지만 부흥에 대한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성령의 역사가 국내외에서 다시 일기 시작했다. 1995년 휘튼대학 리바이벌, 2005년 카이스트부흥, 2006년 애즈베리부흥과 인도부흥은 물론 2007년에 열린 국내외 집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이전과 다른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평양대부흥”을 한국교회에 소개하며 부흥이 임하기를 갈망해 온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것은 최근의 집회에 성령의 역사가 이전에 비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2007년 6월 뉴욕에서 54개 교회가 연합으로 가진 3번의 집회 기간에 성령의 역사가 참으로 남달랐다. 성령의 임재가 강하게 임했고, 기도의 열기가 평소와 달랐다. 2007년 8월 13-16일 동안의 KR 집회의 열기도 여전과 달랐다. 성령의 임재가 강하게 느껴지는 집회였다. 1907년 평양대부흥 때 가장 둔감했던 부산에 20만명, 33만명이 운집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부흥이 임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전에 없는 움직임이 한국교회에 일고 있다. 이것은 특별히 젊은이들 가운데 민감하게 일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부흥을 사모하는 노력들과 더불어 참된 부흥에 수반되는 두드러진 특징들을 동시에 강조하고 가르치고 제시할 시점에 와 있다. 이를 위해서 한국교회는 한편으로 한국교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참된 부흥이 무엇인지를 책으로 정리하여 한국교회에 소개함으로 한국교회가 건전한 부흥을 지향하도록 방향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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