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만수 김정준 목사 44주기 추모 행사, 말씀과 학문으로 그의 삶을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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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2ㆍ2025-05-18 03:3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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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고(故) 만수 김정준 목사의 제44주기 추모행사가 5월 15일 뉴욕 예닮원에서 열렸다. 예배, 강연, 출판기념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김 목사의 경건한 삶과 '임마누엘' 신앙, 그리고 한국 교회와 신학계에 남긴 깊은 족적을 재조명했다.
고(故) 만수(晩穗) 김정준 목사의 제44주기 추모예배 및 강연, 출판기념회가 2025년 5월 15일 목요일 오전 11시 33분 뉴저지 예닮원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뉴욕동문회, 연세대 신과대학 뉴욕동문회, 한신대 시카고와 뉴욕동문회, 미동부 성남교회 출신 교우들, 그리고 미동부 연목회(연세대출신 목회자연합회)가 함께 준비하여 고인의 뜻을 기렸다.
추모예배는 장재웅 목사(93 연신원 졸업)의 사회와 장은경 사모의 반주로 진행됐다. 묵상기도와 찬송 후 박성원 목사(연신원 뉴욕동문회장)가 기도했고, 안창애 선생(66 연신원 졸)이 창세기 1장 1절을 성경봉독했다. 황진호 선생(95 연대음대 성악)의 특송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에 이어 김길홍 목사(72 한신대 졸업)가 "지구를 살리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길홍 목사가 창세기 1장 1절을 본문으로 ‘지구를 살리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전했다.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다이아몬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아시고, 지구에서 약 15만 광년 떨어진 곳에 경상도 전체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다이아몬드 별을 만들어 선물로 주셨다고 설명했다. 이 다이아몬드 별의 크기는 약 1013캐럿에 이른다고 덧붙이며 하나님의 선물의 스케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목사는 이어 태양보다 수백 배 더 크고 수백만 배 더 무거운 별들과 1016개 이상의 별들을 품고 있는 은하계 등 우주의 상상할 수 없는 규모를 언급하며, 이는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생생하게 증거한다고 말했다. 또한 과학자들이 ‘루시’라고 이름 붙인, 전체가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별의 발견 등을 예로 들며, 이러한 경이로운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이자 그분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했다.
김길홍 목사는 성도들이 이러한 우주의 신비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며, 언젠가 그 영광스러운 세계를 직접 목도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권면했다.
고난의 길, 믿음의 길을 따라간 이들의 증언
고인을 기리는 영상이 상영됐으며, 김현숙 박사(연세대 신과대학장/연신원원장), 황용대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증경총회장), 이희철 박사(God's Will 연합교회, 구약전공), 김남중 박사(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교수) 등이 고인을 추모하는 순서를 맡았다.
김현숙 박사는 연신원이 작년 60주년을 맞았고, 영어 목회자 양성 프로그램인 GIT가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 김정준 목사의 정신을 기억하게 된 것을 의미 있게 여겼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인재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GIT 프로그램과 세계적 평가 속에 빛나는 연신원의 성과를 언급하며, 연합정신과 세계를 향한 사명이 연세신학의 본질임을 강조했다. 김 목사의 유산 위에 선 사역자들과 동문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황용대 목사는 김 목사를 구약신학자이자 경건의 본을 보인 인물로 기억하며, 시편과 찬송시에 담긴 창작력 또한 인상 깊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자신이 병으로 고향에서 절망하던 청년 시절, 김정준 목사로부터 받은 삼행시 격려 편지가 삶의 전환점이 되었음을 고백했다. 그 짧은 시는 가슴에 새겨졌고, 이후 목회와 삶 속에서 큰 힘이 되었으며, 결국 그는 60대에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희철 박사는 김정준 목사의 삶과 신앙을 ‘봄길 같은 여정’으로 기억하며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는 김정준 목사가 고난과 시대의 아픔을 임마누엘의 믿음으로 견디며 살아낸 생애가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새로운 길이 되어준다고 말했다. 정호성 시인의 표현을 인용해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으로 김 목사를 묘사하며, 그가 남긴 신학과 삶의 흔적이 오늘 우리에게 희망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임낙길 선교사(77 한신대 졸업)와 정봉금 사모가 특순으로 "언제나 바라봐도"를 찬양했다.
황현조 박사 “고난과 경건의 목회적 신학자”
이어 강연과 서평 시간이 진행됐다. 황현조 박사(WPC 세계예수교장로회 총회장)는 "고난과 경건의 목회적 신학자, 김정준 박사"라는 주제로 강연했고, 노순구 박사(두나미스 신학대학원 교수)는 "시편 명상"에 대한 서평을 진행했다.
황현조 박사는 “고난과 경건의 목회적 신학자”라는 주제로 김 목사의 생애를 회고하며 그 신앙과 신학의 본질을 조명했다. 황 박사는 김정준 목사를 네 가지 단어로 설명했다. 고난, 경건, 목회자, 신학자.
특히 김 목사의 삶을 관통한 고난의 여정은 그의 신앙을 단련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극심한 빈곤과 폐결핵이라는 치명적 질병을 겪으며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신앙 안에서 섬김과 말씀 사역을 계속했으며, 결국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하고 33년의 생애를 더 살며 복음 사역에 헌신했다.
황 박사는 김정준 목사의 경건한 신앙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었다. 그는 모태신앙으로 자라며 부모의 신앙과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고,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를 단호히 거부하며 신앙의 정절을 지켰다. 평양 산정현교회에서의 새벽기도, 신학 시절 주일 성수에 대한 철저함은 그의 신앙적 중심을 잘 보여준다. 한국신학대학 학장 시절에는 새벽기도회를 처음 도입했으며, 평생에 걸쳐 경건을 신학과 목회의 핵심 가치로 삼았다. 그는 신학교육의 우선 가치를 ‘경건’에 두었고, 신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 앞에 살아가는 삶의 고백이라 보았다.
김 목사는 설교의 중요성도 일관되게 강조했다. 어떤 조건에서도 말씀을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고, 찬송시를 직접 작사하여 신앙의 감격을 나누었다. 대표적인 찬송가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과 어머니의 신앙을 노래한 ‘578장’은 그의 경건한 삶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을 잘 드러낸다. 김 목사는 설교 준비에도 철저했고, 복음의 영광과 고난의 현실을 찬양으로 승화시켰다.
강연에서 황 박사는 김정준 목사의 신학이 곧 그의 신앙이며, 그 핵심은 ‘임마누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성경을 단순한 문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만남으로 해석했으며, 그 신학은 고난과 경건, 목회적 삶 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그의 신학은 곧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고백이자, 구약 성경의 구원 역사를 향한 신앙의 응답이었다.
마지막으로 황 박사는 “김정준 목사는 단지 학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의 사람, 고난을 통과한 부활의 증인이자 경건의 목회자였다”고 말하며, 그의 생애와 신학이 한국교회에 남긴 영향은 길이 기억될 것이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할렐루야와 임마누엘로 가득한 그의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신앙의 본이 되고 있다.
김정준 목사의 신앙과 유산을 되새기다
노순구 박사는 김정준 목사의 시편 명상집에 대한 서평에서, 이 책이 단순한 주석이 아닌 김 목사 자신의 신앙과 삶의 고백이라고 강조했다.
시편 한 편 한 편에 담긴 기도와 찬양은 그의 육체적 고난과 영적 고뇌에서 비롯된 응답이며, 하루하루를 은총으로 받아들이며 기록한 시들은 독자에게도 깊은 경건의 울림을 전해준다. 김 목사는 중병 속에서도 “시련도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했으며, 메시아를 갈망하던 영혼의 외침과 신앙의 절규가 시편 속에 절절히 녹아있다고 평했다.
노 박사는 김 목사의 장남 김영 목사가 부친의 원고를 정리하여 『관에서 나온 사나이』라는 책으로 엮은 배경도 함께 설명했다. 마산요양소 시절 폐결핵 투병 중 기록한 이 저서는 김정준 목사의 부활 신앙, 고난 신학, 십자가 복음을 응축한 작품으로, 그가 남긴 신학적 유산을 후대에 전하려는 가족의 헌신이 깃들어 있다. 차남 김명석 목사도 워싱턴 지역에서 목회자로 사역하며 아버지의 삶을 본받고 있으며, 이 출판 기념회를 통해 다시금 아버지의 신앙과 글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이번 모임에서는 김 목사의 저서와 시편 명상집을 소개하고, 목회자 및 선교사들에게 경건 훈련과 영적 회복의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해졌다. 참가자들은 “은혜든 시련이든 모두 주님의 뜻대로”라는 김 목사의 마지막 고백을 마음에 새기며, 그가 남긴 삶의 고백과 저술들이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신앙의 증언으로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유족을 대표하여 차남 김영석 목사가 감사 인사를 전했고, 김영호 목사(66 한신, 68 연신원 졸업)의 광고 후 송병기 목사(69 연대신학과)의 축도로 모든 순서가 마무리됐다.
이번 추모 행사에서는 고인관련 저서 '시편명상'과 '관에서 나온 사나이'도 접수대에서 책을 구매할 수 있었으며, 추가 문의는 전화(718-213-8645)로 가능하다.
만수(晩穗) 김정준 목사는 한국 교회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다. 그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가르치며, 동시에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긴 여정 그 자체였다. 그는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신앙의 순수성과 학문적 깊이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으며, 그의 가르침과 삶은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다.
"우리 안에 해같이 빛나고": 만수를 기리는 시
지난 2014년 김정준 목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진행된 행사내용이 소개됐다. 김창길 목사(신학과 66, 연신원)는 "우리 안에 해같이 빛나고"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 스승을 향한 존경과 그리움을 표현했다. 시는 고인이 강단에 설 때마다 펼쳐내던 심오한 구속사의 강론과 문학적 감성으로 풀어낸 시가서 강의를 생생하게 묘사하며, 그의 가르침이 세대를 향한 예언자적 외침이었음을 전한다.
시는 또한 고인이 평생 병고와 번뇌 속에서도 올곧은 믿음을 지키며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낮아져 살았음을 증언한다. 예언자로서 외롭고 당찬 길을 걸었던 그의 삶은 암울한 조국에 진리의 빛을 비추고, 무지한 백성을 말씀으로 깨우치며, 교회와 성도를 하나님의 사랑(헤쎄드)으로 감싸 안은 여정이었다고 회고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인의 가르침은 더욱 선명하게 빛나며, 그가 뿌린 신앙과 신학의 씨앗이 이제 한국교회를 넘어 세계교회에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한다. 시는 고인의 경건한 영혼에서 울려 퍼졌던 찬양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노영찬 박사가 본 김정준 신학의 세계적 가치
지난 2014년 김정준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 강연에서 노영찬 박사(당시 조지메이슨 대학교 종교철학 교수)는 김 목사의 신학을 세 가지 관점에서 조명하며 세계 신학계에 자랑스럽게 제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첫째, 김 목사는 구약성서학자의 틀을 넘어 인간 고통의 문제와 삶의 의미를 깊이 탐구한 폭넓은 신학자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 이전부터 한국 역사와 민중의 삶 속에 내재한 고통의 해석과 승화의 경험을 깊이 이해했다.
둘째, 김 목사는 단순한 학문적 접근을 넘어 한국인의 '한(恨)'의 정서를 실제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노력한 토착화 신학자이자 민중을 위한 신학자였다. 그는 머리로만 이해하는 신학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신학을 추구하며 직접 한국적 시를 짓고 작사하는 실천을 보여주었다. 이는 그의 신학이 삶의 현장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셋째, 김 목사에게 삶과 학문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였다. 목회 활동, 마산결핵요양소에서의 투병 생활과 병원 목회 경험 등 그의 모든 삶의 여정은 학문과 경건의 깊이를 더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현대적 학문 방법론을 사용하면서도 이성과 합리를 넘어선 인간의 감성, 직관, 영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경건한 신학자였다고 노 박사는 평가했다.
노 박사는 21세기가 요구하는 목회자상, 신학자상, 그리고 인간상을 김정준 목사의 삶과 가르침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남중 목사가 전한 '임마누엘 신앙의 이정표', 김정준
김남중 목사(당시 뉴저지 드류신학대학원 예배·설교학 겸임 교수) 역시 2014년 기념사에서 김정준 목사를 '인생길의 참된 안내자'요 '이정표'로 칭하며 그의 삶을 기렸다. 김 목사는 인생의 여정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강조하며, 故 김정준 박사가 바로 그러한 스승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분명한 이정표였다는 것이다.
김정준 박사의 이정표에는 '1914.11.6-1981.2.3'이라는 생애와 함께, 그가 평생 붙들었던 단 한 마디, '임마누엘'이 새겨져 있다고 김남중 목사는 전했다. 이는 김정준 박사가 폐결핵 말기로 투병하던 시절, 자신의 묘비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의 '임마누엘'만을 새겨달라고 했던 간절한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한 단어가 그의 67년 삶 전체를 대변한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유신독재라는 한국사의 가장 힘겨운 시대를 관통하며, 개인적으로는 33세에 폐 하나를 절제하고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는 등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에도, 김정준 박사는 "하나님이 지금 이 자리에 나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 신앙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냈다.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관에서 나온 사람', 풍랑 속에서 살아 돌아와 '용궁에서 나온 사나이'로 불렸던 그의 삶은 '경건한 임마누엘의 증인'으로서 한국 교회와 세계 신학을 비추었다.
김남중 목사는 김정준 박사가 시인, 문필가, 예언자, 목회자, 설교자, 학자, 교육행정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방대한 학문 활동과 함께 한국적 토착화 신학 수립에 기여했으며, '학문과 경건의 조화'를 실천한 삶이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삶의 궤적은 마치 늦가을의 풍성한 이삭, '만수(晩穗)'처럼 한 사람이 이루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업적들로 가득 차 있으며, 이는 진리 안에서 참되게 사는 인생이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임마누엘 신앙의 이정표'로 남아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44주기 추모 행사를 맞아 AI로 생성한 고 만수 김정준 목사 사진
만수 김정준 목사의 삶과 사역 연보
1914년 11월 6일 경남 동래군에서 출생한 김정준 목사는 평양 숭실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일본 동경 청산학원 신학부를 1943년에 졸업했다. 같은 해 목사 안수를 받고 경주 구정교회 등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했으며, 1947년에는 마산 가포리 국립요양소 교회를 창립하고 환우들을 돌보는 목회를 했다. 이후 학문적 깊이를 더하고자 캐나다로 유학하여 빅토리아 대학교 임마누엘 칼리지(B.D.)와 토론토 대학교(Th.M.)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연구를 거쳐 1961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Ph.D.)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김정준 목사는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 교수로 봉직하며 제6대 학장(1961-1962)을 역임했고, 1963년부터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교목실장과 대학교회 목사를 겸임하며 연합신학대학원 초대 원장(1964-1970)으로서 후학 양성에 헌신했다. 그는 한국구약학회 회장(1961-1966), 대한기독교서회 이사, <기독교사전> 편집위원장(1965-1971), 한국기독교연합회 찬송가 개편위원회 가사위원 등 교계 연합 활동에도 깊이 관여하며 한국교회 발전에 기여했다.
김 목사는 국내외적으로 신학교육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세계신학교육기금(T.E.F.) 아시아지구 위원(1967-1970), 동북아시아 신학대학협의회 실행위원(1967-1973) 및 회장(1971-1974)을 역임하며 국제 신학 교류의 장을 넓혔다. 또한 대한성서공회 구약 새번역위원회 위원장(1968-1969)으로 활동했으며, 1970년에는 한국신학대학 제8대 학장으로 다시 부임하여 1975년까지 학교를 이끌었다. 그의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1970년대 후반에도 그의 활동은 계속되어 한국신학연구소 이사장(1973-1981), 대한기독교서회 편집위원장(1978-1980) 및 이사장(1980-1981)을 맡아 문서선교와 신학 연구 풍토 조성에 힘썼다. 연세대학교 이사(1979-1981)로도 봉사했으며, 1980년 크리스챤 라이프사 제정 선교대상을 수상했다. 한국신학대학 명예교수로 추대된 후 1981년 2월 3일, 67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44주기 추모 행사를 맞아 AI로 생성한 고 만수 김정준 목사 사진
시대를 밝힌 신앙의 등불, 만수의 가르침을 따라
만수 김정준 목사가 남긴 신앙과 학문의 유산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를 넘어, 삶으로 말씀을 살아내려 했던 참된 목회자이자 신학자였다. 그의 가르침은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믿음의 길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이번 추모 행사를 통해 우리는 김정준 목사가 평생 추구했던 경건한 신앙과 깊이 있는 학문의 세계를 다시금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역할과 책임을 되새기며, 그의 복음적 열정이 다음 세대에도 이어져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위에 아름다운 열매로 맺히기를 소망한다. 그의 삶처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신앙의 본질을 붙들고,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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