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숙, 어떻게 한국 근대사의 위대한 어머니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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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ㆍ2013-09-19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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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밀알선교단은 9월 18일(수) 오후 플러싱에 소재한 밀알센터에서 로봇다리 희망전도사 김세진 군과 어머니 양정숙 씨를 초청하여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앞의 기사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세진이와 어머니 양정숙씨
'똑 소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날 양정숙씨(44세)를 본 기자들의 놀라움이었습니다. 세진이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장애인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철학이 들어가 있는 말 이었습니다.
"어릴때부터 많은 친구들이 '너는 착한 짓을 안해서 하나님이 피노키오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럴때 마다 어머니는 '어떻게 생겼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 그런 것이 저의 삶에 굉장히 영향을 미쳤다."
기자회견이 열린 날이 바로 세진이의 16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양정숙씨는 케익을 샀는데 16개의 초가 아니라 한개의 초를 준비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들 세진이가 21일 허드슨 강을 건너는 대회에 참가합니다. 일반인이 출전하는 대회에 참가하는 장애인 아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양 씨는 세진이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주었습니다.
"너는 오늘 한 살이다. 장애인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겨루어서 인생을 새로 살게되는 시작이다. 그래서 너는 오늘 한 살이 되었다."
이러한 발언은 장애인을 아들로 둔 어머니의 철학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는 가슴에 쌓아 두고 있지만 하나님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지 않겠습니까. 양정숙씨는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라고 시작한 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의 철학을 전했습니다. 좀 처럼 듣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장애가 벼슬이 아니다. 대접받으려고 하지말라. 장애인들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고, 그것을 극복하고, 도전해 나가고, 이루어 나가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장애인들이 너무 대접을 받기 원한다."
어머니는 세진이를 대접받으려는 자세 대신 스스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아들로 교육시키고 키웠습니다. 세진이는 왼손은 괜찮지만 오른손은 손가락 3개가 없는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세진이에게 이런 정신교육을 시켰습니다.
"오른손은 좀 부족하지만 왼손이 있다. 부족한 것에 맞추려고 하지말고, 부족하지 않은 것에 부족한 것을 보태며 살아야 한다."
정말 대단한 어머니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국가에서도 인정했습니다. 한국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에서 9월부터 12월까지 대전기록관 전시실에서 여성 특별전시전을 열었는데, 일제 강점기 여성독립운동가를 비롯해 8백여점의 기록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전시전의 '어머니의 시간' 코너에는 근대사의 위대한 어머니 4인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 4명안에 양정숙씨도 뽑혔습니다. 그래서 현재 대전기록관에 세진이의 영상과 양정숙씨의 일기와 사진등이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양씨외에도 백범 김구 선생 어머니,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음악가 정트리오의 어머니등이 한국 근대사의 위대한 어머니로 선정됐습니다. 선정된 어머니중에는 양씨만 생존해 있으며 특히 40대 중반의 나이에 선정됐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세진이와 양정숙씨는 모두 태극기가 달린 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세진이가 대한민국 수영 장애인 국가대표이라면, 양정숙씨는 대한민국 어머니 국가대표인 셈입니다.
양정숙씨는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고사했다며, 위대한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가지기에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겸손해 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양정숙씨가 위대한 어머니임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양씨는 세진이를 배로 낳은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낳았습니다. 양정숙씨는 보육원에서 봉사하다 길에 버려져 보육원에 들어온 세진이를 18개월 되었을때 입양을 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걷게 하기위해 세진이를 이불위에 세워놓고 수없이 넘어뜨렸습니다. 6개월간의 노력으로 세진군은 자연스럽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양정숙씨는 세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남편과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세진이를 뒷바라지 하기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세진이가 수영을 좋아했지만 장애인이 수영을 하면 수영장 물이 더러워진다고 소독해 놓고 가라는 수모를 받았지만 아들의 수영연습을 위해 묵묵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오늘날의 세진이는 양정숙 씨의 희생과 헌신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세진이에게 어머니는 거대한 거목이 되었습니다. 지난 어려운 시간들을 양씨가 어떤 각오로 보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자회견에서 양정숙씨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분명하지 않으면 자식이 흔들린다. 내가 바로 서야 내 그림자가 흔들리지 않지, 내가 흔들리면서 내 그림자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면 안된다."
양정숙씨가 세진이를 어떻게 양육했는지, 위대한 어머니론은 무엇인지가 궁금했습니다. 먼저 양씨는 자신이 독한 어머니였다고 말했습니다.
"세진이에게 저는 굉장히 독한 어머니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굉장히 독한 엄마이고 두 딸에게는 더 독한 엄마였다. 주위에서 아이들에게 '엄마가 참 동안이고, 좋아보이고 인자하다'고 말하면 '일주일만 살아보세요'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굉장히 독하다."
아시다시피 독하기만 해서 위대한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양정숙씨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고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역할은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로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충고도 하고, 누나로서 조언도 하고, 엄마로서 훈육도 하고, 선생으로서 가르침도 주는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지적소에 맞게끔 대처해야 한다."
사람은 보면서 배운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양씨는 어머니의 역할을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책에서 배웠습니다.
"저는 엄마가 없이 성장해서 늘 책을 읽어야 했다. 나에게 이런 엄마가 필요하므로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엄마가 되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어려서 부터 있었다. 그래서 세아이에게 독한 엄마로 자리잡았다."
양정숙씨는 자신의 교육방법보다는 세진이와 딸들이 잘따라와 주었다고 감사해 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듬뻑 담겨있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잘 양육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스폰지같은 아이들이다. 물을 주면 물을 받아들이고, 밥을 주면 밥을 받아들이고 완충작용을 잘했던 아이들이다. 모가지를 끌고 간다고 해서 따라 오는 애들이 많지 않다. 아이들이 잘 따라주었다."
어머니는 유명해진 세진이가 걱정스럽습니다. 16세의 사춘기의 아이로 사고도 치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주목을 받다보니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어머니로서의 걱정입니다.
"애는 애답게 커야 하는데 너무 어린나이에 대학생이 되고,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다보니 애 다운 행동을 못할때가 많다. 어른들 앞에서 자기 감정을 숨겨야 할때가 많고 피곤함이나 힘들어도 숨겨야 할때가 많은데 그런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아이들이 사춘기때 하는 나쁜짓을 하고 가야 한다. 미루지 말아야 한다. 그것도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인데 못할때는 가슴이 아프다."
9월 27일(금) 오후 8시 뉴욕성서교회(김종일 목사)와 29일(주일) 오후 6시 뉴욕장로교회(이승한 목사)에서 열리는 뉴욕밀알선교단 ‘밀알의 밤’에서 세진이와 양정숙씨의 간증을 들을수 있습니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세진이와 어머니 양정숙씨
'똑 소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날 양정숙씨(44세)를 본 기자들의 놀라움이었습니다. 세진이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장애인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철학이 들어가 있는 말 이었습니다.
"어릴때부터 많은 친구들이 '너는 착한 짓을 안해서 하나님이 피노키오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럴때 마다 어머니는 '어떻게 생겼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 그런 것이 저의 삶에 굉장히 영향을 미쳤다."
기자회견이 열린 날이 바로 세진이의 16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양정숙씨는 케익을 샀는데 16개의 초가 아니라 한개의 초를 준비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들 세진이가 21일 허드슨 강을 건너는 대회에 참가합니다. 일반인이 출전하는 대회에 참가하는 장애인 아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양 씨는 세진이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주었습니다.
"너는 오늘 한 살이다. 장애인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겨루어서 인생을 새로 살게되는 시작이다. 그래서 너는 오늘 한 살이 되었다."
이러한 발언은 장애인을 아들로 둔 어머니의 철학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는 가슴에 쌓아 두고 있지만 하나님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지 않겠습니까. 양정숙씨는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라고 시작한 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의 철학을 전했습니다. 좀 처럼 듣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장애가 벼슬이 아니다. 대접받으려고 하지말라. 장애인들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고, 그것을 극복하고, 도전해 나가고, 이루어 나가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장애인들이 너무 대접을 받기 원한다."
어머니는 세진이를 대접받으려는 자세 대신 스스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아들로 교육시키고 키웠습니다. 세진이는 왼손은 괜찮지만 오른손은 손가락 3개가 없는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세진이에게 이런 정신교육을 시켰습니다.
"오른손은 좀 부족하지만 왼손이 있다. 부족한 것에 맞추려고 하지말고, 부족하지 않은 것에 부족한 것을 보태며 살아야 한다."
정말 대단한 어머니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국가에서도 인정했습니다. 한국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에서 9월부터 12월까지 대전기록관 전시실에서 여성 특별전시전을 열었는데, 일제 강점기 여성독립운동가를 비롯해 8백여점의 기록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전시전의 '어머니의 시간' 코너에는 근대사의 위대한 어머니 4인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 4명안에 양정숙씨도 뽑혔습니다. 그래서 현재 대전기록관에 세진이의 영상과 양정숙씨의 일기와 사진등이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양씨외에도 백범 김구 선생 어머니,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음악가 정트리오의 어머니등이 한국 근대사의 위대한 어머니로 선정됐습니다. 선정된 어머니중에는 양씨만 생존해 있으며 특히 40대 중반의 나이에 선정됐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세진이와 양정숙씨는 모두 태극기가 달린 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세진이가 대한민국 수영 장애인 국가대표이라면, 양정숙씨는 대한민국 어머니 국가대표인 셈입니다.
양정숙씨는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고사했다며, 위대한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가지기에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겸손해 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양정숙씨가 위대한 어머니임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양씨는 세진이를 배로 낳은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낳았습니다. 양정숙씨는 보육원에서 봉사하다 길에 버려져 보육원에 들어온 세진이를 18개월 되었을때 입양을 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걷게 하기위해 세진이를 이불위에 세워놓고 수없이 넘어뜨렸습니다. 6개월간의 노력으로 세진군은 자연스럽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양정숙씨는 세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남편과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세진이를 뒷바라지 하기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세진이가 수영을 좋아했지만 장애인이 수영을 하면 수영장 물이 더러워진다고 소독해 놓고 가라는 수모를 받았지만 아들의 수영연습을 위해 묵묵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오늘날의 세진이는 양정숙 씨의 희생과 헌신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세진이에게 어머니는 거대한 거목이 되었습니다. 지난 어려운 시간들을 양씨가 어떤 각오로 보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자회견에서 양정숙씨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분명하지 않으면 자식이 흔들린다. 내가 바로 서야 내 그림자가 흔들리지 않지, 내가 흔들리면서 내 그림자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면 안된다."
양정숙씨가 세진이를 어떻게 양육했는지, 위대한 어머니론은 무엇인지가 궁금했습니다. 먼저 양씨는 자신이 독한 어머니였다고 말했습니다.
"세진이에게 저는 굉장히 독한 어머니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굉장히 독한 엄마이고 두 딸에게는 더 독한 엄마였다. 주위에서 아이들에게 '엄마가 참 동안이고, 좋아보이고 인자하다'고 말하면 '일주일만 살아보세요'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굉장히 독하다."
아시다시피 독하기만 해서 위대한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양정숙씨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고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역할은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로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충고도 하고, 누나로서 조언도 하고, 엄마로서 훈육도 하고, 선생으로서 가르침도 주는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지적소에 맞게끔 대처해야 한다."
사람은 보면서 배운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양씨는 어머니의 역할을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책에서 배웠습니다.
"저는 엄마가 없이 성장해서 늘 책을 읽어야 했다. 나에게 이런 엄마가 필요하므로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엄마가 되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어려서 부터 있었다. 그래서 세아이에게 독한 엄마로 자리잡았다."
양정숙씨는 자신의 교육방법보다는 세진이와 딸들이 잘따라와 주었다고 감사해 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듬뻑 담겨있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잘 양육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스폰지같은 아이들이다. 물을 주면 물을 받아들이고, 밥을 주면 밥을 받아들이고 완충작용을 잘했던 아이들이다. 모가지를 끌고 간다고 해서 따라 오는 애들이 많지 않다. 아이들이 잘 따라주었다."
어머니는 유명해진 세진이가 걱정스럽습니다. 16세의 사춘기의 아이로 사고도 치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주목을 받다보니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어머니로서의 걱정입니다.
"애는 애답게 커야 하는데 너무 어린나이에 대학생이 되고,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다보니 애 다운 행동을 못할때가 많다. 어른들 앞에서 자기 감정을 숨겨야 할때가 많고 피곤함이나 힘들어도 숨겨야 할때가 많은데 그런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아이들이 사춘기때 하는 나쁜짓을 하고 가야 한다. 미루지 말아야 한다. 그것도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인데 못할때는 가슴이 아프다."
9월 27일(금) 오후 8시 뉴욕성서교회(김종일 목사)와 29일(주일) 오후 6시 뉴욕장로교회(이승한 목사)에서 열리는 뉴욕밀알선교단 ‘밀알의 밤’에서 세진이와 양정숙씨의 간증을 들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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