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목사 "설교는 겨우 10%, 나머지는 설교자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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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5-07-12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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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이 식어버린 원리는 처량한 폐허와 같습니다. 원리가 무시된 행동은 독약과 같습니다. 오늘의 목양의 현장은 이 두 현상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정열이 식어버린 싸늘한 시체같은 교회들, 성경적인 원리를 무시한채 가시적인 결과만을 추구하는 중독된 교회들, 세상의 기업정신과 성공이론에 허물어진 세속화된 목회자와 교인들, 교회는 더 이상 하늘에 속한 경이로운 무리로 보이지 않습니다. 홍수에 마실물이 귀하듯 우린 지금 참 길을 찾아 사방을 헤매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대로 배우고 믿고 살았던 청교도 선진들의 신앙과 신학을 나누고자......"
이상은 이영희 목사의 퓨리탄 영성세미나 초대의 글이다. 이글을 통해 청교도적인 신앙이 추구하는 것을 잘 알 수가 있다. 이영희 목사는 2005년 7월 12일 오후 '현대교회강단을 위한 설교준비'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주재했다. 40여분간 진행된 세미나에서 이영희 목사는 설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요즘은 설교와 설교자가 평가절하 된 시대이다. 목회자들은 목회현장에서 많은 사역이 있다. 그래도 그들은 그중에서 설교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청교도들처럼 더욱 말씀사역을 강화해야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어린양을 먹이고(Feed) 치라(Care)" 하셨다. 먹이는데 실패하면 칠 수가 없다. 설교자 스스로 설교에 대한 의식이 고쳐지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확실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강단에 서서 떨린다고 말하거나 준비가 안되었다고 말하는 목회자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준비가 안 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대통령이 왔다 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말씀을 진행해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을 말씀을 선포한다는 확실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예화가 많으면 전하려는 메세지가 흐려진다. 설교행위가 인간(영혼)구원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직업의식으로 하거나 의무감으로 한다면 좋은 설교가 나올 수 없다. 확실한 목적성이 있어야 한다. 설교의 목적은 구원이 되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으로 가면 안된다.
설교는 구원의 결과로 나타나는 영적변화를 목적으로 한다. 사람에게는 지적, 정서적, 의식적 껍데기 안에 영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설교가 이 껍데기들을 뚫고 들어가 영에 닿아야 영혼이 변한다. 영이 안 변하면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변화가 없다. 이런 설교는 하나마나이다. 그래서 설교는 성령이 필요하다. 설교만으로는 이런 껍데기를 뚫고 영으로 들어갈 수 없다. 나는 본문조차 준비 못하고 강단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성가대의 찬송이 시작돼도 본문을 정하지 못해 기도를 간절히 했다. 그날 설교에서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 내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본다.
설교자의 의식이 문제이다. 설교자는 성경에 담겨져 있는 진리(Text)를 가져와 사람들의 현실(Context)에 적용시키는 일을 한다. 스폴전은 "한손에 성경, 한손에는 신문" 이라고 이야기 했다. 목회자들의 심방과 상담은 현실의 Context를 잘 알게 해주는 사역이다. 이사역이 충분하지 않으면 훌륭한 강해자는 될 수 있어도 훌륭한 설교자는 될수 없다.
설교자의 인격이 중요하다. 설교자는 성경의 진리를 프리즘을 통해 세상에 내놓는 프리즘의 역할을 한다. 만약 프리즘에 문제가 있으면 프리즘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고, 엉뚱한 곳에 갈수도 있다. 목회자들은 자기를 간수하는 성결이 필요하다. 설교는 빙산처럼 겨우 10%만 밖으로 나타난다. 나머지는 설교자의 인격이다. 설교자는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그릇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세미나후 이영희 목사 인터뷰 요약
퓨리탄개혁신앙연구회(PARSC)는 98년부터 시작되었지만 3년 전부터 이사장으로 참여했다. 컨퍼런스는 4번 열렸는데 3번 참가한 셈이다. 청교도운동은 16세기 미국으로 들어와 부흥이 되었지만 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침체되었다가 재부흥을 거듭했다. 이 청교도 운동이 한국으로 들어가 한국기독사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다. 현대교회는 청교도운동이 필요하다. 현대교회는 물량, 기복, 인본, 자유가 중시되고 비지니스 경영의 원리에 의해 부흥되고 있다. 성경으로 되돌아 와야 한다. 퓨리탄의 설교는 교회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향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못했다. 외로운 운동이다. 결과가 안 보인다고 낙심하지 않는다.
ⓒ 2005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이상은 이영희 목사의 퓨리탄 영성세미나 초대의 글이다. 이글을 통해 청교도적인 신앙이 추구하는 것을 잘 알 수가 있다. 이영희 목사는 2005년 7월 12일 오후 '현대교회강단을 위한 설교준비'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주재했다. 40여분간 진행된 세미나에서 이영희 목사는 설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요즘은 설교와 설교자가 평가절하 된 시대이다. 목회자들은 목회현장에서 많은 사역이 있다. 그래도 그들은 그중에서 설교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청교도들처럼 더욱 말씀사역을 강화해야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어린양을 먹이고(Feed) 치라(Care)" 하셨다. 먹이는데 실패하면 칠 수가 없다. 설교자 스스로 설교에 대한 의식이 고쳐지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확실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강단에 서서 떨린다고 말하거나 준비가 안되었다고 말하는 목회자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준비가 안 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대통령이 왔다 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말씀을 진행해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을 말씀을 선포한다는 확실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예화가 많으면 전하려는 메세지가 흐려진다. 설교행위가 인간(영혼)구원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직업의식으로 하거나 의무감으로 한다면 좋은 설교가 나올 수 없다. 확실한 목적성이 있어야 한다. 설교의 목적은 구원이 되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으로 가면 안된다.
설교는 구원의 결과로 나타나는 영적변화를 목적으로 한다. 사람에게는 지적, 정서적, 의식적 껍데기 안에 영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설교가 이 껍데기들을 뚫고 들어가 영에 닿아야 영혼이 변한다. 영이 안 변하면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변화가 없다. 이런 설교는 하나마나이다. 그래서 설교는 성령이 필요하다. 설교만으로는 이런 껍데기를 뚫고 영으로 들어갈 수 없다. 나는 본문조차 준비 못하고 강단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성가대의 찬송이 시작돼도 본문을 정하지 못해 기도를 간절히 했다. 그날 설교에서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 내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본다.
설교자의 의식이 문제이다. 설교자는 성경에 담겨져 있는 진리(Text)를 가져와 사람들의 현실(Context)에 적용시키는 일을 한다. 스폴전은 "한손에 성경, 한손에는 신문" 이라고 이야기 했다. 목회자들의 심방과 상담은 현실의 Context를 잘 알게 해주는 사역이다. 이사역이 충분하지 않으면 훌륭한 강해자는 될 수 있어도 훌륭한 설교자는 될수 없다.
설교자의 인격이 중요하다. 설교자는 성경의 진리를 프리즘을 통해 세상에 내놓는 프리즘의 역할을 한다. 만약 프리즘에 문제가 있으면 프리즘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고, 엉뚱한 곳에 갈수도 있다. 목회자들은 자기를 간수하는 성결이 필요하다. 설교는 빙산처럼 겨우 10%만 밖으로 나타난다. 나머지는 설교자의 인격이다. 설교자는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그릇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세미나후 이영희 목사 인터뷰 요약
퓨리탄개혁신앙연구회(PARSC)는 98년부터 시작되었지만 3년 전부터 이사장으로 참여했다. 컨퍼런스는 4번 열렸는데 3번 참가한 셈이다. 청교도운동은 16세기 미국으로 들어와 부흥이 되었지만 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침체되었다가 재부흥을 거듭했다. 이 청교도 운동이 한국으로 들어가 한국기독사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다. 현대교회는 청교도운동이 필요하다. 현대교회는 물량, 기복, 인본, 자유가 중시되고 비지니스 경영의 원리에 의해 부흥되고 있다. 성경으로 되돌아 와야 한다. 퓨리탄의 설교는 교회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향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못했다. 외로운 운동이다. 결과가 안 보인다고 낙심하지 않는다.
ⓒ 2005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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