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학교 / 최혁 목사 “찬양에 있어 선구적인 두 미국교회”
페이지 정보
정보ㆍ2005-07-09 00:00관련링크
본문
미주크리스찬신문 주최 예배학교의 첫 번째 강사로 나선 최혁 목사는 '현대예배의 형성과 성격'에 대해 두 번째 날 강의를 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2005/07/09
이전 예배는 클래식 중심이고 현대 예배는 대중음악이 중심이다. 클래식은 고상하고 대중음악은 저질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조용필 노래와 이미자의 노래가 저질이고 오페라는 고상한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작곡 당시에는 저질로 인정되었던 많은 클래식들이 몇 백 년이 지나 클래식으로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대중문화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라. 예수님은 가장 고상한 분이셨지만 가장 대중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말씀을 전하셨다. 우리들도 우리가 믿고 있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서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는 창법이 중요시 되었다. 최대한 음을 공명시키는 벨칸토 창법을 사용했으나 현대는 마이크 볼륨만 높이면 된다. 발성법을 공부하고자 하면 호흡법, 리브라도, 소프트보이스 등을 배워 연습해야 한다. 찬양은 가사전달이 필요하다. 클래식 발성으로는 가사전달이 분명치 않다. 찬양과 경배는 솔로가 아니라 대중 찬송이다. 찬양인도자는 확실한 목소리로 인도해야 한다.
자유로울때 일어나는 성령과의 교제
현대음악은 대중음악을 기반으로 했고 재즈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비콕스는 교회발달의 한 이유를 클래식에서 대중음악으로 변화된 교회음악을 들었다. 재즈 스타일에는 클래식에 없었던 즉흥성이 있다. 클래식은 정확해야 하지만 동양음악은 자유로움과 즉흥성이 있다. 판소리는 즉흥성이 많아 악보도 못 만든다. 즉흥적이라는 것은 자유롭다는 의미이다. 동양음악은 자유롭다. 조화를 이루어 나간다.
이러한 자유로움 속에서 성령이 역사하기 쉽다. 하나님의 임재는 자유로울 때 일어난다. 현대예배에는 찬송가를 볼 필요 없이 프로젝트를 이용한다. 감정과 육체가 풍선처럼 자유로워야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다. 손이 자유로우니 자유롭게 손을 들고 찬양할 수도 있다.
(최혁 목사는 Tape로 소리의 변천사를 들려준다. 서태지의 노래 들려주고 무슨 노래인지 묻는다. 젊은 몇사람만 대답하지만 찬양인도자들도 알지 못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찬송가 중심의 19세기의 예배를 아직도 한인교회들이 중시한다. 예배의 비본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가장 대중적인 것으로 찬양해야 한다. 서태지가 중국무협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사람도 있다. 서태지를 알아야 한국문화코드가 보인다. 찬양인도자는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강대상을 없애고 그 자리에서 뛰면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찬양에 있어 선구적인 두 미국교회
찬양에 있어 선구적인 두 미국교회가 있다. 타임스퀘어 교회와 브루클린 태바나클 교회이다. 타임스퀘어교회는 프로젝트를 이용하여 가사를 보여준다. 태바나클 교회는 가사도 안보여 준다. 태바나클 교회는 찬양과 예배의 콘티도 없이 자유롭게 진행하지만 실력만은 최고이다. 이 교회는 프로젝트로 보여주는 가사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가사가 없으니 눈감고 몰입하며 찬양을 할 수도 있다.
브루클린 태바나클 교회의 성가대는 정말 대단하다. 현장에서 보고 전율을 느꼈다. 200여명되는 성가대를 지휘하는 지휘자는 지휘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롭게 춤을 춘다. 사람을 기쁘게 한다. 하도 감동적이라 예배가 끝나고 지휘자를 찾아 갔다. 그는 담임목사의 사모인 캐롤이었다. 그녀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아직 악보도 제대로 못 본다고 했다. 성가대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악보를 암기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캐롤은 많은 노래를 만들어 대중음악에 주는 상인 에미상을 3번이나 수상했다. 기도하며 하나님에게 구하고 떠오른 영감을 음악전문가에게 말해 작곡하게 한다. 캐롤은 수줍음 많은 사람이었는데 성령을 받고 달라졌다.
요청에 의해 캐롤은 나를 위해 안수기도를 해주었다. 그 다음부터 거짓말처럼 피아노 치는 것이 달라지고 실력이 갑자기 늘었다. 다음에 찾아 갔을 때 다른 지휘자를 만났다. 그녀는 캐롤의 딸인 수잔이었다. 그녀는 어카운팅이 전공이라고 했다. 브루클린 태바나클 교회의 성가대가 공연할 때면 공연장인 메디슨스퀘어가든은 표가 항상 매진이다. 이들이 연습을 할때 보면 바로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1시간 정도 먼저 서로 안고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한다. 그리고 연습을 시작하는데 연습이 아니라 공연을 하는 듯이 대단하다.
예배를 위해 다양하게 이용되는 음악들
찬양대와 성가대의 전쟁을 아는가? 성가대는 클래식에서 찬양과 경배는 대중음악에서 와서 두 음악은 서로 맞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중인 교회가 많다.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성가대는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를 해야 한다. 클래식도 좋지만 대중음악의 중요성도 알아야 한다. 재즈, 팝, 클래식, 국악 이들 모두를 예배에 사용할 수 있다. 물이 흐르는 듯한 예배진행을 위해 위십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찬양 후 성가대가 너무 엄숙한 찬송가를 부르면 분위기가 다운 된다. 신날 때는 드럼을 치면서 찬양하다 예배에 들어갈 때 현악기와 합창단이 어울려 웅장하면서도 물 흐르듯이 예배가 진행되는 것이 필요하다. 찬양의 피크에서는 사물놀이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거듭나면 모든 음악이 하나가 될 수가 있다.
대중찬송은 회중을 위한 찬송이고 공연찬송(전문찬송)은 상반적인 관계이다. 이전에는 전문찬송이 발달되었지만 이제는 대중찬송이 중심이 되었다. 현재는 전문찬송과 대중찬송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이다. 어려운 찬송은 안된다. 한두 번 듣고 따라 할수 있는 찬양이어야 한다. 미국교회는 찬양의 음이 굉장히 크다. 하지만 음역은 다 낮다. 찬양인도자는 음을 내려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찬양에는 나의 체험이 중요하다. 현대예배의 찬양가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가 주를 이룬다. 반면 찬송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는 몇 개 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찬양을 보면 주어가 '나'인 경우는 없다. 전부 '하나님'이다. 이것이 진정한 찬양이다. 반면 찬송가는 주어는 '나'가 많다.
성령의 역사를 이해 못하면 찬양과 경배는 하나의 형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찬양과 경배는 오순절교회에서 왔다. 이들은 후렴부분을 반복해 불러 자유함을 얻었다. 음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어떤 음악이라도 그들에게는 상관없었다. 찬양인도자는 성령론을 먼저 공부해야 한다. 성령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느껴야 예배가 형식이 되지 않고 재미있어 진다.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이 강하게 임재한다. 찬양가운데 성령이 거하시고 치유의 역사를 경험한 적도 있다. 성령의 이해 못하면 찬양은 형식과 예식으로 끝난다.
찬양과 설교는 동등. 담임목사의 역할이 중요
찬양사역에 대한 무지가 많다. 찬양을 설교를 위한 준비로 이해하면 안된다. 예배와 설교를 동일시하면 안된다. 설교는 단지 예배의 한 부분이다. 찬양도 예배의 한부분이다. 경배인도자는 음악과 영적인 리더가 동시에 되어야 한다. 흑암권세를 물리치는 기도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말씀을 전할수도 있어야 하고, 기도를 인도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한인교회는 찬양리더가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이고 찬양하는 동안 담임목사는 설교원고를 검토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찬양경배는 담임목사가 협조 안하면 형식으로 전락한다. 찬양은 설교준비가 아니고 그것 자체가 예배이다.
자유로운 찬양에 임하시는 성령
찬양과 경배에는 자유함이 필요하다. 찬양시 자유로움은 나에게서 성령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가사에 연연하지 말고 방언으로 찬양할 수도 있다. 영적으로 올라갔을 때 찬양은 높아지고, 느려지고, 작아지고,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가사를 반복하면 된다. 자꾸 반복하면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간다. 영적이지 못하면 반복이 지겨워진다. 나는 단지 '사랑해요'라는 가사를 20분 동안 반복한 경우를 들었다. 계산해보니 500번을 반복한 것이다. 좋으니 반복이 가능한 것이다. 처음 연예할 때는 서로 정보를 수집하다가 사랑에 빠지면 한마디의 말이나 눈빛 하나면 된다. 지겨워지면 관계는 끝난 것이다.
경배인도자는 음악과 영적으로 탁월해야
경배인도자는 음악과 영적으로 탁월해야 한다. 단지 음악을 조금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목사를 키워 내듯이 신학교에서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청년들이여 도전하라. 신학, 영적, 기도, 음악적으로 탁월한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 찬양인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혼자 골방에서 가사를 계속 반복해 보라.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때까지 해라. 다 외워 눈을 감고 할 수 있으면 좋다. 내가 못 느끼면 남도 못 느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휘자를 가르치는 학교는 있어도 찬양 경배자를 가르치는 학교는 없다. FM 99.1은 CCM전용 방송이다. 좋은 가사의 노래가 많아 일반사람들도 즐겨 듣는다. 현대예배를 체험하기 위해 미국교회를 방문해서 체험해 보라. 우리는 예배에서 성공해야 한다. 하나님은 예배의 성공자를 축복하여 주신다. 형식적인 찬양이 아니라 진정으로 찬양하기를 바란다.
ⓒ 2005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이전 예배는 클래식 중심이고 현대 예배는 대중음악이 중심이다. 클래식은 고상하고 대중음악은 저질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조용필 노래와 이미자의 노래가 저질이고 오페라는 고상한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작곡 당시에는 저질로 인정되었던 많은 클래식들이 몇 백 년이 지나 클래식으로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대중문화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라. 예수님은 가장 고상한 분이셨지만 가장 대중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말씀을 전하셨다. 우리들도 우리가 믿고 있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서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는 창법이 중요시 되었다. 최대한 음을 공명시키는 벨칸토 창법을 사용했으나 현대는 마이크 볼륨만 높이면 된다. 발성법을 공부하고자 하면 호흡법, 리브라도, 소프트보이스 등을 배워 연습해야 한다. 찬양은 가사전달이 필요하다. 클래식 발성으로는 가사전달이 분명치 않다. 찬양과 경배는 솔로가 아니라 대중 찬송이다. 찬양인도자는 확실한 목소리로 인도해야 한다.
자유로울때 일어나는 성령과의 교제
현대음악은 대중음악을 기반으로 했고 재즈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비콕스는 교회발달의 한 이유를 클래식에서 대중음악으로 변화된 교회음악을 들었다. 재즈 스타일에는 클래식에 없었던 즉흥성이 있다. 클래식은 정확해야 하지만 동양음악은 자유로움과 즉흥성이 있다. 판소리는 즉흥성이 많아 악보도 못 만든다. 즉흥적이라는 것은 자유롭다는 의미이다. 동양음악은 자유롭다. 조화를 이루어 나간다.
이러한 자유로움 속에서 성령이 역사하기 쉽다. 하나님의 임재는 자유로울 때 일어난다. 현대예배에는 찬송가를 볼 필요 없이 프로젝트를 이용한다. 감정과 육체가 풍선처럼 자유로워야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다. 손이 자유로우니 자유롭게 손을 들고 찬양할 수도 있다.
(최혁 목사는 Tape로 소리의 변천사를 들려준다. 서태지의 노래 들려주고 무슨 노래인지 묻는다. 젊은 몇사람만 대답하지만 찬양인도자들도 알지 못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찬송가 중심의 19세기의 예배를 아직도 한인교회들이 중시한다. 예배의 비본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가장 대중적인 것으로 찬양해야 한다. 서태지가 중국무협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사람도 있다. 서태지를 알아야 한국문화코드가 보인다. 찬양인도자는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강대상을 없애고 그 자리에서 뛰면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찬양에 있어 선구적인 두 미국교회
찬양에 있어 선구적인 두 미국교회가 있다. 타임스퀘어 교회와 브루클린 태바나클 교회이다. 타임스퀘어교회는 프로젝트를 이용하여 가사를 보여준다. 태바나클 교회는 가사도 안보여 준다. 태바나클 교회는 찬양과 예배의 콘티도 없이 자유롭게 진행하지만 실력만은 최고이다. 이 교회는 프로젝트로 보여주는 가사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가사가 없으니 눈감고 몰입하며 찬양을 할 수도 있다.
브루클린 태바나클 교회의 성가대는 정말 대단하다. 현장에서 보고 전율을 느꼈다. 200여명되는 성가대를 지휘하는 지휘자는 지휘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롭게 춤을 춘다. 사람을 기쁘게 한다. 하도 감동적이라 예배가 끝나고 지휘자를 찾아 갔다. 그는 담임목사의 사모인 캐롤이었다. 그녀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아직 악보도 제대로 못 본다고 했다. 성가대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악보를 암기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캐롤은 많은 노래를 만들어 대중음악에 주는 상인 에미상을 3번이나 수상했다. 기도하며 하나님에게 구하고 떠오른 영감을 음악전문가에게 말해 작곡하게 한다. 캐롤은 수줍음 많은 사람이었는데 성령을 받고 달라졌다.
요청에 의해 캐롤은 나를 위해 안수기도를 해주었다. 그 다음부터 거짓말처럼 피아노 치는 것이 달라지고 실력이 갑자기 늘었다. 다음에 찾아 갔을 때 다른 지휘자를 만났다. 그녀는 캐롤의 딸인 수잔이었다. 그녀는 어카운팅이 전공이라고 했다. 브루클린 태바나클 교회의 성가대가 공연할 때면 공연장인 메디슨스퀘어가든은 표가 항상 매진이다. 이들이 연습을 할때 보면 바로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1시간 정도 먼저 서로 안고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한다. 그리고 연습을 시작하는데 연습이 아니라 공연을 하는 듯이 대단하다.
예배를 위해 다양하게 이용되는 음악들
찬양대와 성가대의 전쟁을 아는가? 성가대는 클래식에서 찬양과 경배는 대중음악에서 와서 두 음악은 서로 맞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중인 교회가 많다.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성가대는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를 해야 한다. 클래식도 좋지만 대중음악의 중요성도 알아야 한다. 재즈, 팝, 클래식, 국악 이들 모두를 예배에 사용할 수 있다. 물이 흐르는 듯한 예배진행을 위해 위십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찬양 후 성가대가 너무 엄숙한 찬송가를 부르면 분위기가 다운 된다. 신날 때는 드럼을 치면서 찬양하다 예배에 들어갈 때 현악기와 합창단이 어울려 웅장하면서도 물 흐르듯이 예배가 진행되는 것이 필요하다. 찬양의 피크에서는 사물놀이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거듭나면 모든 음악이 하나가 될 수가 있다.
대중찬송은 회중을 위한 찬송이고 공연찬송(전문찬송)은 상반적인 관계이다. 이전에는 전문찬송이 발달되었지만 이제는 대중찬송이 중심이 되었다. 현재는 전문찬송과 대중찬송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이다. 어려운 찬송은 안된다. 한두 번 듣고 따라 할수 있는 찬양이어야 한다. 미국교회는 찬양의 음이 굉장히 크다. 하지만 음역은 다 낮다. 찬양인도자는 음을 내려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찬양에는 나의 체험이 중요하다. 현대예배의 찬양가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가 주를 이룬다. 반면 찬송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는 몇 개 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찬양을 보면 주어가 '나'인 경우는 없다. 전부 '하나님'이다. 이것이 진정한 찬양이다. 반면 찬송가는 주어는 '나'가 많다.
성령의 역사를 이해 못하면 찬양과 경배는 하나의 형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찬양과 경배는 오순절교회에서 왔다. 이들은 후렴부분을 반복해 불러 자유함을 얻었다. 음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어떤 음악이라도 그들에게는 상관없었다. 찬양인도자는 성령론을 먼저 공부해야 한다. 성령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느껴야 예배가 형식이 되지 않고 재미있어 진다.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이 강하게 임재한다. 찬양가운데 성령이 거하시고 치유의 역사를 경험한 적도 있다. 성령의 이해 못하면 찬양은 형식과 예식으로 끝난다.
찬양과 설교는 동등. 담임목사의 역할이 중요
찬양사역에 대한 무지가 많다. 찬양을 설교를 위한 준비로 이해하면 안된다. 예배와 설교를 동일시하면 안된다. 설교는 단지 예배의 한 부분이다. 찬양도 예배의 한부분이다. 경배인도자는 음악과 영적인 리더가 동시에 되어야 한다. 흑암권세를 물리치는 기도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말씀을 전할수도 있어야 하고, 기도를 인도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한인교회는 찬양리더가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이고 찬양하는 동안 담임목사는 설교원고를 검토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찬양경배는 담임목사가 협조 안하면 형식으로 전락한다. 찬양은 설교준비가 아니고 그것 자체가 예배이다.
자유로운 찬양에 임하시는 성령
찬양과 경배에는 자유함이 필요하다. 찬양시 자유로움은 나에게서 성령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가사에 연연하지 말고 방언으로 찬양할 수도 있다. 영적으로 올라갔을 때 찬양은 높아지고, 느려지고, 작아지고,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가사를 반복하면 된다. 자꾸 반복하면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간다. 영적이지 못하면 반복이 지겨워진다. 나는 단지 '사랑해요'라는 가사를 20분 동안 반복한 경우를 들었다. 계산해보니 500번을 반복한 것이다. 좋으니 반복이 가능한 것이다. 처음 연예할 때는 서로 정보를 수집하다가 사랑에 빠지면 한마디의 말이나 눈빛 하나면 된다. 지겨워지면 관계는 끝난 것이다.
경배인도자는 음악과 영적으로 탁월해야
경배인도자는 음악과 영적으로 탁월해야 한다. 단지 음악을 조금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목사를 키워 내듯이 신학교에서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청년들이여 도전하라. 신학, 영적, 기도, 음악적으로 탁월한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 찬양인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혼자 골방에서 가사를 계속 반복해 보라.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때까지 해라. 다 외워 눈을 감고 할 수 있으면 좋다. 내가 못 느끼면 남도 못 느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휘자를 가르치는 학교는 있어도 찬양 경배자를 가르치는 학교는 없다. FM 99.1은 CCM전용 방송이다. 좋은 가사의 노래가 많아 일반사람들도 즐겨 듣는다. 현대예배를 체험하기 위해 미국교회를 방문해서 체험해 보라. 우리는 예배에서 성공해야 한다. 하나님은 예배의 성공자를 축복하여 주신다. 형식적인 찬양이 아니라 진정으로 찬양하기를 바란다.
ⓒ 2005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