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태 목사 ③ 좌경화된 기독교이단사이비 대책기관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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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ㆍ2011-09-13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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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언젠가 댓글을 단 내용 중에 가명인 Doctor라는 분은 조직신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돌파리 의사 같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단에 대한 판단기준은 간단명료하지만, 신학은 심오한 학문이기 때문에 진짜 문제가 있으면 많은 시간을 함께 토론하고 연구하고 상대방의 의견과 사상도 들어보고 어떤 측면에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등등. 학자적인 소양과 신앙 인격이 동반된 신학 논쟁이라야 설득력이 있지? 가장 무식하면서도 혼자 잘난척하는 것은 나중에 후회할 분명한 증거를 흘리게 되는 것이지요.
42) 어떤 신학자가 "백 투 예루살렘" 구호에 대해 이단성 운운하며, 세대주의라고 하는 얼빠진 사람이 있는가? 어떤 신학자가 선교현장에서 "땅 밟기 선교" 구호를 내걸었다고 샤마니즘이니 무당이니, 베뢰아 귀신론이니 하는 사람이 있는가? 문제가 되는 그것은 적용에 관한 문제이고, 방법에 관한 문제일 뿐이지? 그 자체를 가지고 신학사상 운운하는 것은 학자적인 소양을 갖고 있는 분이 전혀 아닙니다. 모든 선교가 남의 땅(타민족)을 밟는 것부터 시작인데, 땅을 밟지 않는 것이라면 공중전을 펼쳐야 선교가 된다는 것입니까? 고무 풍선을 띄워서 전도지를 살포하는 방법으로 선교를 해야만 합니까? “땅 밟기”가 잘못된 사상이라는 것은 단순히 강남에 있는 불교사찰인 봉은사에서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무례하고 비도덕적으로 상식 이하의 불법적인 행동을 해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잘못된 비 신앙적인 행동으로 규정한 것이지요. “땅 밟기” 구호만 외치면 그것이 무속신앙이고, 미신이며, 베뢰아 귀신론이고, 이단성이 있는 것입니까? 절대 그렇게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땅을 밟고, 어떻게 땅을 밟느냐?가 문제이지? “땅 밟기가 비성경적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창 1:28; 12:1; 13:15;). 이것 또한 선교적인 구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43) 물론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본래 쪽 집개 학원강사(이단 감별사)는 두 가지 면에서 학교 정규교사(목회자)와 다릅니다. 첫째는 쪽 집은 것만 알고 전체적인 것은 모르기 때문에 쪽 집은 것이 잘못되었을 때는 전체가 잘못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살아갑니다. 폭넓은 사고력과 풍부한 철학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앵무새에 불과한 것이지요. 남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그런 줄 알고 함부로 이단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신실한 제자 즉,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임받은 사역자가 그 밑에서는 절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제자가 만들어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본(本)을 보여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쪽 집개만 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 집어대는 짓만 해왔고, 이단 만들기 공장 일만 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을 한 번도 보지도 못하고, 누려보지도 못했으며, 자기 눈에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에 티만 집어 올리다가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입니다.
44) 2011년 7월 11일(월) 금강산 연회장에서 목사회가 주관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언론에 실린 세미나 내용들을 읽어보니 목사회가 “정말 강사다운 강사를 모셨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났습니다. 강사 안산동산교회 김 인중 목사님 같은 분이 뉴욕에 계시면 좌파들이 이단사냥(정죄)이라는 무기를 내려놓을 것 같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뉴욕의 교계 실정에 꼭 맞는 말씀들이었고, 특별히 좌경화된 사이비 이단 대책위원들과 세이총이나 진목연이 꼭 한번쯤은 들어야 할 내용들이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이고 주제 넘는 이야기 같지만 다음번엔 교협이 주관하는 할렐루야 전도집회 강사로 김 인중 목사를 강력히 추천하는 것도 이상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인 것 같습니다.
44) 이단 사냥꾼들(세이총, 진목연, 동부 이단대책 위원회 중 몇 사람)은 결국 이스라엘의 왕, 성군이었던 위대한 다윗에 비유할 것이 아니라 의처증 환자로 비유되어야 마땅하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목을 친 것이 아니라 자기 부인과 함께 자고 있던 처제를 외간 남자인줄 알고 도끼로 살해했던 정신 나간 사람으로 비유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동안 인터콥을 이단으로 몰아 온갖 거짓과 사악한 상상의 날개를 달고 사냥을 했는데, 알고 보니 한 가족이었고, 한 형제였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이요, 그 죄책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꼴이 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45) 뉴욕교계에도 종교 좌파가 있다는 것이 이제 확인되었으니, 뉴욕과 뉴저지 교계 목사님들도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지만, 그래도 더욱 분별력을 가지고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교회가 소극적인 대처로도 선교의 사명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미전도 종족 그것도 가장 영적으로 취약한 최전선 중동 이슬람 전문선교단체를 붕괴시키려고 하는 사단의 속임수에 대한 지혜로운 적극적인 대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좌경화된 자칭 이단 전문가들은 이단 척결하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고, 비방, 흠집, 파괴 등 반기독교적인 태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46) 그리고 뉴욕의 기독교 인터넷 사이트 중에서도 안티 기독교적이고,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집단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더 이상 교회와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동참하는 집단이 아니고, 선한 일을 비방 음해하고 깨부수며, 방해하고 헐뜯어 성령의 사역을 훼방하는 어두움의 좌파 조직임을 다시 한 번 여러 정황과 증거들을 통해 확인하는 바입니다. 이들에게도 과연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적나라하게 그 정체가 만인 앞에 폭로된 것처럼, 종교 마피아적인 좌파 안티 기독교 사이트입니다. 기독교 언론매체는 진실성과 기독교 신앙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 들어가기만 해도 영적으로 황폐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뉴욕 교계를 위해 존재할 가치가 없는 언론이니 마피아조직과 같은 이단사냥꾼들과 함께 오늘 당장 폐쇄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을 확신합니다. 모든 좌파들과 안티 기독교 글들만 남기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신실하게 애쓰는 목사님들의 글은 몽땅 즉시 닫는 것을 보니 더 이상 관망할 수도 없는 입장이고, 앞으로는 기독교 복음전파와 성경말씀의 진리를 대변할 건전한 언론만을 육성해야할 필요성이 여러 목사님들 입에서 제기되고 있는 실정에 도달했습니다. 반드시 신앙적으로 유익하고 건전한 언론과 좌파 안티 기독교 사이트와는 차별화하여 건전한 기독교 인터넷 사이트를 도와주어야 마땅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47) 세이총이나 진목연이나 똑같은 종교마피아 조직단체인 것 같은데, 실상을 모르고 자의반(自意半) 타의반(他意半) 이름이 올라와 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사람 하나 없는 것을 보면, 이 조직은 사조직에 불과하고 유명무실한 유령단체인 것을 금방이라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또한 공인된 교수가 혹 인터콥 지도위원에서 탈퇴하는 경우는 인터콥 선교 단체에 대한 반대 입장이 아닙니다. 그것이 목숨을 걸고 싸울 사안도 아니고,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는 입장이지, 그러한 정치적인 처세를 모두 인터콥 선교회 이단성 시비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면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일방적인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신학을 교수하는 일에 늘 시간이 쫓기고, 연구논문 발표하기에도 일정이 빠듯한데, 언론에 부정적으로 얼굴 팔리면 시간과 에너지, 금전적인 손해로 인한 신상에 좋지 않은 일을 누가 모를 사람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이런 저질스런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도 학자로서 때를 기다리는 현명한 자세이고, 지혜로운 정치적 처세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48) 손봉호 교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거대한 공룡이 지구상에서 한순간에 멸종되었듯이 인간도 몸집을 부풀리면 모두 부패하게 되어있고, 망하게 된다는 교훈이 기억됩니다. 피로 값 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 공동체를 사이비 이단 집단으로부터 보호하고, 성경말씀의 진리를 대변하고 수호하는 일은 소위 세이총이나 진목연의 권모 술수와 같이 언론 게임을 하고 대중을 선동하며, 세상 사람들이 이용하는 세속적인 힘의 규합과 결집과 연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모든 세상 권력 군왕들과 천하를 호령하던 제국들이 다 한 번씩 무너지고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쓰임을 받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역행하는 모든 세속적인 힘의 논리는 몸집을 부풀려 자취를 감춘 지구상의 공룡처럼, 스스로 멸종될 증거를 충분히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보수와 정통파 개혁주의에 대해서 깊이 알고나 있는지? 입증할만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지만, 스스로 성경과 신학에 대해서 모든 것을 통달했고, 성경에 대해서 박식한 것처럼 위장하면서 신실한 선교사들과 그 사역을 흠집 내고, 인격 살해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든지 매우 우려할만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49) 신앙 생활하는 것이나 목양(牧羊)의 성실성을 보아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주창하는 이론이나 사상이 진리에 기초하지 않으면, 언제나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삶 가운데 검증되지 않은 것을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여 위선적으로 제시하는데,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남을 판단하고 가르치는 가르침이 자신의 삶과 괴리현상이 가득하지만, 삶과 가르침에 전혀 괴리가 없으셨던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유일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을 본받고 닮아가야 할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이라면 인터콥 선교회와 최 바울 선교사를 이단성이 짙은 해외선교단체라고 정죄하고, 인터콥을 허물겠다고 온갖 협박과 으름장을 놓으며, 비전스쿨을 좌경화된 언론과 결탁하여 물리적인 힘으로 방해하겠습니까? 상종해서는 안 될 원수 대적 골리앗이라고 생각하고, 때려눕히며, 통쾌한 승리의 웃음을 자아내시겠습니까? 결코 그러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뢰할 만한 삶을 사는 사람의 말을 신빙성 있게 받아들입니다. 말의 신빙성은 생활이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경할만한 삶을 사시는 분의 충고에는 귀를 기울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의견이나 제안은 건성으로 듣고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본론에 대한 책을 써서 공산주의 기초이론을 닦은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정부를 착취계급의 앞잡이로 매도하면서도 정부 보조금을 받아 생활했습니다. 부르조아 계급이 노동자들을 착취한다고 열을 올려 비판하면서도 진작 자신은 몇 달씩 봉급을 안주고 하녀를 부려 먹곤 했습니다. 이념이나 사상을 쫓기 전에 주창하는 사람의 삶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솔깃한 말에 귀를 기울이기 전에 말하는 사람의 삶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50) 어떤 한 부분의 신학적 사고를 모든 사이비 이단 신학의 전체 내용으로 보는 것은 단순히 이단 사냥에 그 초점이 있음을 확인해 주는 좋은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자라온 신앙배경과 신학배경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요. 물론 완전한 신학(神學)도 완전한 신학자(神學者)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기대치에 못 미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지만, 처음부터 완전한 신학자 밑에서 또는 건전한 교회와 훌륭한 목회자 밑에서 배우고 자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과정을 통해 경험을 쌓고, 경험을 통해 비판의식이 생기는 것이지요.
훌륭한 목사님들 가운데도 과거에는 다 신학적인 혼동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러한 과정들이 오히려 유익한 훈련 기간이었을지 모릅니다. 과거에는 한 때 베뢰아 귀신론에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고, 능력이 있다는 예언의 은사 받은 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안수기도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 별반 없을 것입니다. 고도의 지능적인 최면술자가 인도하는 집회에 과연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기독교 100주년을 이제 겨우 넘긴 한국 교회역사로 보면 과도기적인 세월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51) 그런데 이 시점에 와서 과거에 잠시 몸담았던 사이비 이단집단들을 열거하며, 훌륭한 목사님들이 오점으로 남긴 과거의 경험을 현재 간직하고 있는 전체신앙인양 올가미를 씌우고, 분별없이 언론에 그 이름들을 공개하는 것은 매우 파렴치하고도 오만 불손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늦다고 생각지 말고, 그렇게 신학에 깊은 관심이 있고 극히 부분적인 것을 광범위하게 상상하며, 논쟁을 즐기는 은사가 있다면 후배들을 양성하는 신학교로 들어가서 강의실에서나 피터지게 싸울 것이 아닌가?
세월이 흐를수록 신학은 점점 발전할 것입니다. 전혀 모르던 부분을 새로이 깨닫게 될 것이고, 희미하던 것들이 선명해 질 것이며, 잘못 알고 있었던 오류(誤謬)들이 발견될 것입니다. 모든 학문이 발전하듯이 신학(神學)이라는 학문도 계속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계시된 성경을 완전히 깨달을 때까지 신학이라는 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물론 완전히 안다는 것도 일종의 교만이겠지요. 사실 구약성경의 창세기만 하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풀리지 않는 신학적인 과제들을 안고 있습니까? 고(故) 박윤선 목사님의 강의에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면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모르는 면적도 상대적으로 더 많아지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신학논쟁은 겸손한 자세로 해야 합니다(나중에 혹시 내가 알고 있던 정보가 틀린다면 이해해 주십시오! 라고 한다든지).
52) 자기 신학과 확신에 가득 찬 나머지 인터콥 선교회와 최 바울 선교사를 더 이상 적대관계로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광만 가릴 뿐입니다. 우리 모두 예외 없이 모든 면에서 하나님 앞에 부족하기 그지없지만, 하나님이 “까짓것” 하시며, 사역을 맡겨주셨고, 너그럽게 봐주시는 부분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대신이나 하듯이 재판장의 위치에 앉아 자신들이 세계 이단 판결 법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만함을 버리십시오.
53) 단순한 신학이론을 삶에서 경험해보지도 않은 복잡한 궤변으로 대단한 실력가처럼 위장하지 마십시오. 뉴욕에도 이단성 운운하며 판단하는 귀하들 보다 훨씬 탁월한 신앙인격과 학자적인 소양과 성경실력을 고루 갖춘 학자들이 있으니, 이분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한 조용히 목회에만 전념하시기를 바라며, 겸손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 받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54) 다분히 신학 색깔론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색깔은 언제나 시각적인 차이일 뿐입니다. 스스로 만든 정치적인 색안경을 끼고서 그런 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이고, 건전하고 균형 있고 여유 있는 눈으로 보면 새롭게 보입니다. 인터콥을 IHOP의 신사도 운동에도 꿰어 맞추지 말고, 과거에 잠간 머물렀던 김 기동 씨의 베뢰아 귀신론에도 갔다 부치지 마십시오. 본인들도 잘 알지도 못하고 판단하는 이원론 사상과 세대주의 사상으로도 함부로 비판하지 마십시오. 사실이 아닌 궤변일 뿐입니다.
세대주의에 대해서도 귀하께서 알고 있는 신학 지식과 성경과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신학 개념이란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의도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전제하여 풍부한 이해력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학문이 다 그렇지만 신학사상 역시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생사람 잡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이라는 학문도 계속 발전해야 되고, 개혁되어야만 합니다. 성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신학 활동을 사변적(思辨的)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55) 로마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사도바울의 고백은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우 리 모두에게 공감된 메시지를 충분히 전해주고 있다고 사료됩니다.
<바울이 처해 있는 형편>
1:12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당하는 일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된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1:13 곧 내가 감옥에 갇힌 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이, 온 친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므로,
1:14 주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내가 갇혀 있음으로 말미암아 더
확신을 얻어 b) 말씀을 겁 없이 더욱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b.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하나님의 말씀)
1:15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시기하거나 다투는 마음으로 하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뜻으로 합니다.
1:16 좋은 뜻으로 하는 사람들은 내가 복음을 변호하기 위해 세우심을 받은 줄을 알고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지만,
1:17 시기하거나 다투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들은 나의 감옥 생활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
려는 생각을 품고 다투는 마음으로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1:18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참으로 하든지 거짓으로 하든지, 무슨 방법으로 하든지 그
리스도가 전파되고 있으니,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앞으로
도 기뻐할 것입니다.
1:19 나는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도와 주셔서 내가 풀려나리라
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1:20 내가 간절히 기대하며 바라는 것은 내가 어떤 일에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과 같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나의 몸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1:21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1:22 그러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보람된 일이라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1:24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
1:25 이렇게 확신하므로, 나는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게 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의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1:26 그것은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로 감으로써 여러분이 나를 대면하는 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많아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1:27 오로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맞게 생활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
분을 만나든지, 여러분에게서 떠나 있든지 한 정신으로 굳게 서서, 복음을 믿는 일
에 한 마음으로 힘을 합하여 함께 싸우고,
1:28 또한 어떤 일이라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나에게 들려 줄
수 있게 하십시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조요,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조입
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1:29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서 고난도 받는 것은, 그리스도
를 위해서 여러분이 받는 특권입니다.
1:30 여러분은 전에 나에게서 내가 하는 것을 보았고 지금은 나에게서 듣는 것과 똑 같
은 싸움을 여러분도 하고 있습니다.(빌립보서 1: 12-30)
맺는 말
미동부지역의 뉴욕 뉴저지 교회와 목회자들은 하나같이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들, 잃어버린 영혼들과 미전도 종족들을 위하여 기독교 이단 사이비 집단을 철통같이 경계할 뿐만 아니라, 그 집단에 빠진 무지목매한 자들을 지혜롭게 구출해내야 합니다. 우선 규모가 작거나 크거나 각자 처해있는 목회현장 안에서 성경공부나 설교를 통하여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잘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 이단 사이비 사냥꾼(이단 감별사)들처럼 학문적 편협성과 짧은 신학적 소견을 가지고, 소극적으로 족집게 역할만 하다보면 자신도 영적으로 황폐하게 되고, 자가당착(自家撞着)으로 사이비 이단의 올무에 스스로 빠지게 되는 불운을 겪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비본질적인 일에 생명을 걸다보면 원치 않게도 가라지(피)를 뽑으려다가 곡식(벼)도 뽑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주님과 점점 멀어지고, 이웃 사랑, 형제 사랑의 기독교 본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이비 이단 감별사들을 사진으로 보아도 하나같이 마음이 사악해져있고, 풍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랑의 향기가 전혀 보이지를 않습니다. 사이비 이단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 분주하기만 하고, 실적 하나 올리지를 못합니다. 교인들을 양육해야하는 시간에 늘 쫒기고, 성경말씀 보기 바쁘며, 기도의 은혜가 메마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사악해 집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그 귀가 막히고,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 앞뒤를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 폐인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진리의 말씀의 적극적인 대변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한 일은 어디까지나 선한 방법으로 지혜로운 방법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고, 교인들을 양육하여 교회를 잘 세우는데 주력을 해야지, 전무할 것이 없어서 사이비 이단 감별사로 명성을 가지려고 하는 발상이 과대망상증과도 같습니다. 이단 사이비는 자연스럽게 감별이 되는 것이지, 구태여 조직배들을 만들어 연대하면서 그 임무를 수행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공회를 통해 이미 확실하게 들어난 이단집단들을 경계하고, 홍보해야 합니다. 종교는 권력과 힘이 필요하지만 기독교의 생명은 세속적인 힘과 권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내리쳐서 귀를 잘랐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사용하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52).
교회부흥은 자연스럽게 세계선교로 이어지고, 선교하는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10/40 창의 최전방 미전도 종족 개척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30년 전통의 해외선교기관 INTER CP을 중동 이슬람선교지도 한번 가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선교를 방해하는 음모는 종교 좌경화의 원인과 그 배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이비 이단 척결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와 그의 백성들을 위한 순수한 진리의 싸움이 아니라 신실한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을 볼모로 잡아, 교회를 어렵게 만들고, 마귀의 궤계에 동조하여 마귀를 도와주는 일을 한다면 얼마나 기독교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비극적인 일이겠습니까?
더더욱 비극적인 일은 외간 남자인줄 알고 부인과 함께 곁에 누워 잠자던 처제를 살해한 사건은 두고두고 이단 사이비 감별사들에게 크나큰 교훈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실한 사역자 한사람을 정치적인 희생양으로 삼고, 신학사상이라는 굴레를 씌워 무차별 인격 살해하는 현대판 카인의 역할과 언론의 힘으로 이 일에 공조한 안티 기독교 인터넷 사이트도 결코 편안한 밤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더 이상 영적인 불모지인 뉴욕 도성에 비방과 거짓과 협박을 통한 정치적 누리꾼들의 파도가 일지 않도록! 중보기도의 힘을 모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September 9, 2011
뉴욕을 한없이 사랑하는 사람
주님의교회 김상태 목사(Th.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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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어떤 신학자가 "백 투 예루살렘" 구호에 대해 이단성 운운하며, 세대주의라고 하는 얼빠진 사람이 있는가? 어떤 신학자가 선교현장에서 "땅 밟기 선교" 구호를 내걸었다고 샤마니즘이니 무당이니, 베뢰아 귀신론이니 하는 사람이 있는가? 문제가 되는 그것은 적용에 관한 문제이고, 방법에 관한 문제일 뿐이지? 그 자체를 가지고 신학사상 운운하는 것은 학자적인 소양을 갖고 있는 분이 전혀 아닙니다. 모든 선교가 남의 땅(타민족)을 밟는 것부터 시작인데, 땅을 밟지 않는 것이라면 공중전을 펼쳐야 선교가 된다는 것입니까? 고무 풍선을 띄워서 전도지를 살포하는 방법으로 선교를 해야만 합니까? “땅 밟기”가 잘못된 사상이라는 것은 단순히 강남에 있는 불교사찰인 봉은사에서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무례하고 비도덕적으로 상식 이하의 불법적인 행동을 해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잘못된 비 신앙적인 행동으로 규정한 것이지요. “땅 밟기” 구호만 외치면 그것이 무속신앙이고, 미신이며, 베뢰아 귀신론이고, 이단성이 있는 것입니까? 절대 그렇게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땅을 밟고, 어떻게 땅을 밟느냐?가 문제이지? “땅 밟기가 비성경적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창 1:28; 12:1; 13:15;). 이것 또한 선교적인 구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43) 물론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본래 쪽 집개 학원강사(이단 감별사)는 두 가지 면에서 학교 정규교사(목회자)와 다릅니다. 첫째는 쪽 집은 것만 알고 전체적인 것은 모르기 때문에 쪽 집은 것이 잘못되었을 때는 전체가 잘못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살아갑니다. 폭넓은 사고력과 풍부한 철학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앵무새에 불과한 것이지요. 남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그런 줄 알고 함부로 이단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신실한 제자 즉,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임받은 사역자가 그 밑에서는 절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제자가 만들어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본(本)을 보여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쪽 집개만 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 집어대는 짓만 해왔고, 이단 만들기 공장 일만 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을 한 번도 보지도 못하고, 누려보지도 못했으며, 자기 눈에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에 티만 집어 올리다가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입니다.
44) 2011년 7월 11일(월) 금강산 연회장에서 목사회가 주관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언론에 실린 세미나 내용들을 읽어보니 목사회가 “정말 강사다운 강사를 모셨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났습니다. 강사 안산동산교회 김 인중 목사님 같은 분이 뉴욕에 계시면 좌파들이 이단사냥(정죄)이라는 무기를 내려놓을 것 같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뉴욕의 교계 실정에 꼭 맞는 말씀들이었고, 특별히 좌경화된 사이비 이단 대책위원들과 세이총이나 진목연이 꼭 한번쯤은 들어야 할 내용들이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이고 주제 넘는 이야기 같지만 다음번엔 교협이 주관하는 할렐루야 전도집회 강사로 김 인중 목사를 강력히 추천하는 것도 이상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인 것 같습니다.
44) 이단 사냥꾼들(세이총, 진목연, 동부 이단대책 위원회 중 몇 사람)은 결국 이스라엘의 왕, 성군이었던 위대한 다윗에 비유할 것이 아니라 의처증 환자로 비유되어야 마땅하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목을 친 것이 아니라 자기 부인과 함께 자고 있던 처제를 외간 남자인줄 알고 도끼로 살해했던 정신 나간 사람으로 비유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동안 인터콥을 이단으로 몰아 온갖 거짓과 사악한 상상의 날개를 달고 사냥을 했는데, 알고 보니 한 가족이었고, 한 형제였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이요, 그 죄책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꼴이 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45) 뉴욕교계에도 종교 좌파가 있다는 것이 이제 확인되었으니, 뉴욕과 뉴저지 교계 목사님들도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지만, 그래도 더욱 분별력을 가지고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교회가 소극적인 대처로도 선교의 사명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미전도 종족 그것도 가장 영적으로 취약한 최전선 중동 이슬람 전문선교단체를 붕괴시키려고 하는 사단의 속임수에 대한 지혜로운 적극적인 대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좌경화된 자칭 이단 전문가들은 이단 척결하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고, 비방, 흠집, 파괴 등 반기독교적인 태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46) 그리고 뉴욕의 기독교 인터넷 사이트 중에서도 안티 기독교적이고,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집단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더 이상 교회와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동참하는 집단이 아니고, 선한 일을 비방 음해하고 깨부수며, 방해하고 헐뜯어 성령의 사역을 훼방하는 어두움의 좌파 조직임을 다시 한 번 여러 정황과 증거들을 통해 확인하는 바입니다. 이들에게도 과연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적나라하게 그 정체가 만인 앞에 폭로된 것처럼, 종교 마피아적인 좌파 안티 기독교 사이트입니다. 기독교 언론매체는 진실성과 기독교 신앙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 들어가기만 해도 영적으로 황폐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뉴욕 교계를 위해 존재할 가치가 없는 언론이니 마피아조직과 같은 이단사냥꾼들과 함께 오늘 당장 폐쇄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을 확신합니다. 모든 좌파들과 안티 기독교 글들만 남기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신실하게 애쓰는 목사님들의 글은 몽땅 즉시 닫는 것을 보니 더 이상 관망할 수도 없는 입장이고, 앞으로는 기독교 복음전파와 성경말씀의 진리를 대변할 건전한 언론만을 육성해야할 필요성이 여러 목사님들 입에서 제기되고 있는 실정에 도달했습니다. 반드시 신앙적으로 유익하고 건전한 언론과 좌파 안티 기독교 사이트와는 차별화하여 건전한 기독교 인터넷 사이트를 도와주어야 마땅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47) 세이총이나 진목연이나 똑같은 종교마피아 조직단체인 것 같은데, 실상을 모르고 자의반(自意半) 타의반(他意半) 이름이 올라와 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사람 하나 없는 것을 보면, 이 조직은 사조직에 불과하고 유명무실한 유령단체인 것을 금방이라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또한 공인된 교수가 혹 인터콥 지도위원에서 탈퇴하는 경우는 인터콥 선교 단체에 대한 반대 입장이 아닙니다. 그것이 목숨을 걸고 싸울 사안도 아니고,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는 입장이지, 그러한 정치적인 처세를 모두 인터콥 선교회 이단성 시비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면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일방적인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신학을 교수하는 일에 늘 시간이 쫓기고, 연구논문 발표하기에도 일정이 빠듯한데, 언론에 부정적으로 얼굴 팔리면 시간과 에너지, 금전적인 손해로 인한 신상에 좋지 않은 일을 누가 모를 사람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이런 저질스런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도 학자로서 때를 기다리는 현명한 자세이고, 지혜로운 정치적 처세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48) 손봉호 교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거대한 공룡이 지구상에서 한순간에 멸종되었듯이 인간도 몸집을 부풀리면 모두 부패하게 되어있고, 망하게 된다는 교훈이 기억됩니다. 피로 값 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 공동체를 사이비 이단 집단으로부터 보호하고, 성경말씀의 진리를 대변하고 수호하는 일은 소위 세이총이나 진목연의 권모 술수와 같이 언론 게임을 하고 대중을 선동하며, 세상 사람들이 이용하는 세속적인 힘의 규합과 결집과 연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모든 세상 권력 군왕들과 천하를 호령하던 제국들이 다 한 번씩 무너지고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쓰임을 받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역행하는 모든 세속적인 힘의 논리는 몸집을 부풀려 자취를 감춘 지구상의 공룡처럼, 스스로 멸종될 증거를 충분히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보수와 정통파 개혁주의에 대해서 깊이 알고나 있는지? 입증할만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지만, 스스로 성경과 신학에 대해서 모든 것을 통달했고, 성경에 대해서 박식한 것처럼 위장하면서 신실한 선교사들과 그 사역을 흠집 내고, 인격 살해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든지 매우 우려할만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49) 신앙 생활하는 것이나 목양(牧羊)의 성실성을 보아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주창하는 이론이나 사상이 진리에 기초하지 않으면, 언제나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삶 가운데 검증되지 않은 것을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여 위선적으로 제시하는데,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남을 판단하고 가르치는 가르침이 자신의 삶과 괴리현상이 가득하지만, 삶과 가르침에 전혀 괴리가 없으셨던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유일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을 본받고 닮아가야 할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이라면 인터콥 선교회와 최 바울 선교사를 이단성이 짙은 해외선교단체라고 정죄하고, 인터콥을 허물겠다고 온갖 협박과 으름장을 놓으며, 비전스쿨을 좌경화된 언론과 결탁하여 물리적인 힘으로 방해하겠습니까? 상종해서는 안 될 원수 대적 골리앗이라고 생각하고, 때려눕히며, 통쾌한 승리의 웃음을 자아내시겠습니까? 결코 그러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뢰할 만한 삶을 사는 사람의 말을 신빙성 있게 받아들입니다. 말의 신빙성은 생활이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경할만한 삶을 사시는 분의 충고에는 귀를 기울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의견이나 제안은 건성으로 듣고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본론에 대한 책을 써서 공산주의 기초이론을 닦은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정부를 착취계급의 앞잡이로 매도하면서도 정부 보조금을 받아 생활했습니다. 부르조아 계급이 노동자들을 착취한다고 열을 올려 비판하면서도 진작 자신은 몇 달씩 봉급을 안주고 하녀를 부려 먹곤 했습니다. 이념이나 사상을 쫓기 전에 주창하는 사람의 삶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솔깃한 말에 귀를 기울이기 전에 말하는 사람의 삶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50) 어떤 한 부분의 신학적 사고를 모든 사이비 이단 신학의 전체 내용으로 보는 것은 단순히 이단 사냥에 그 초점이 있음을 확인해 주는 좋은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자라온 신앙배경과 신학배경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요. 물론 완전한 신학(神學)도 완전한 신학자(神學者)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기대치에 못 미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지만, 처음부터 완전한 신학자 밑에서 또는 건전한 교회와 훌륭한 목회자 밑에서 배우고 자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과정을 통해 경험을 쌓고, 경험을 통해 비판의식이 생기는 것이지요.
훌륭한 목사님들 가운데도 과거에는 다 신학적인 혼동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러한 과정들이 오히려 유익한 훈련 기간이었을지 모릅니다. 과거에는 한 때 베뢰아 귀신론에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고, 능력이 있다는 예언의 은사 받은 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안수기도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 별반 없을 것입니다. 고도의 지능적인 최면술자가 인도하는 집회에 과연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기독교 100주년을 이제 겨우 넘긴 한국 교회역사로 보면 과도기적인 세월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51) 그런데 이 시점에 와서 과거에 잠시 몸담았던 사이비 이단집단들을 열거하며, 훌륭한 목사님들이 오점으로 남긴 과거의 경험을 현재 간직하고 있는 전체신앙인양 올가미를 씌우고, 분별없이 언론에 그 이름들을 공개하는 것은 매우 파렴치하고도 오만 불손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늦다고 생각지 말고, 그렇게 신학에 깊은 관심이 있고 극히 부분적인 것을 광범위하게 상상하며, 논쟁을 즐기는 은사가 있다면 후배들을 양성하는 신학교로 들어가서 강의실에서나 피터지게 싸울 것이 아닌가?
세월이 흐를수록 신학은 점점 발전할 것입니다. 전혀 모르던 부분을 새로이 깨닫게 될 것이고, 희미하던 것들이 선명해 질 것이며, 잘못 알고 있었던 오류(誤謬)들이 발견될 것입니다. 모든 학문이 발전하듯이 신학(神學)이라는 학문도 계속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계시된 성경을 완전히 깨달을 때까지 신학이라는 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물론 완전히 안다는 것도 일종의 교만이겠지요. 사실 구약성경의 창세기만 하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풀리지 않는 신학적인 과제들을 안고 있습니까? 고(故) 박윤선 목사님의 강의에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면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모르는 면적도 상대적으로 더 많아지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신학논쟁은 겸손한 자세로 해야 합니다(나중에 혹시 내가 알고 있던 정보가 틀린다면 이해해 주십시오! 라고 한다든지).
52) 자기 신학과 확신에 가득 찬 나머지 인터콥 선교회와 최 바울 선교사를 더 이상 적대관계로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광만 가릴 뿐입니다. 우리 모두 예외 없이 모든 면에서 하나님 앞에 부족하기 그지없지만, 하나님이 “까짓것” 하시며, 사역을 맡겨주셨고, 너그럽게 봐주시는 부분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대신이나 하듯이 재판장의 위치에 앉아 자신들이 세계 이단 판결 법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만함을 버리십시오.
53) 단순한 신학이론을 삶에서 경험해보지도 않은 복잡한 궤변으로 대단한 실력가처럼 위장하지 마십시오. 뉴욕에도 이단성 운운하며 판단하는 귀하들 보다 훨씬 탁월한 신앙인격과 학자적인 소양과 성경실력을 고루 갖춘 학자들이 있으니, 이분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한 조용히 목회에만 전념하시기를 바라며, 겸손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 받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54) 다분히 신학 색깔론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색깔은 언제나 시각적인 차이일 뿐입니다. 스스로 만든 정치적인 색안경을 끼고서 그런 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이고, 건전하고 균형 있고 여유 있는 눈으로 보면 새롭게 보입니다. 인터콥을 IHOP의 신사도 운동에도 꿰어 맞추지 말고, 과거에 잠간 머물렀던 김 기동 씨의 베뢰아 귀신론에도 갔다 부치지 마십시오. 본인들도 잘 알지도 못하고 판단하는 이원론 사상과 세대주의 사상으로도 함부로 비판하지 마십시오. 사실이 아닌 궤변일 뿐입니다.
세대주의에 대해서도 귀하께서 알고 있는 신학 지식과 성경과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신학 개념이란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의도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전제하여 풍부한 이해력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학문이 다 그렇지만 신학사상 역시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생사람 잡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이라는 학문도 계속 발전해야 되고, 개혁되어야만 합니다. 성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신학 활동을 사변적(思辨的)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55) 로마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사도바울의 고백은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우 리 모두에게 공감된 메시지를 충분히 전해주고 있다고 사료됩니다.
<바울이 처해 있는 형편>
1:12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당하는 일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된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1:13 곧 내가 감옥에 갇힌 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이, 온 친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므로,
1:14 주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내가 갇혀 있음으로 말미암아 더
확신을 얻어 b) 말씀을 겁 없이 더욱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b.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하나님의 말씀)
1:15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시기하거나 다투는 마음으로 하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뜻으로 합니다.
1:16 좋은 뜻으로 하는 사람들은 내가 복음을 변호하기 위해 세우심을 받은 줄을 알고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지만,
1:17 시기하거나 다투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들은 나의 감옥 생활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
려는 생각을 품고 다투는 마음으로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1:18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참으로 하든지 거짓으로 하든지, 무슨 방법으로 하든지 그
리스도가 전파되고 있으니,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앞으로
도 기뻐할 것입니다.
1:19 나는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도와 주셔서 내가 풀려나리라
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1:20 내가 간절히 기대하며 바라는 것은 내가 어떤 일에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과 같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나의 몸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1:21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1:22 그러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보람된 일이라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1:24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
1:25 이렇게 확신하므로, 나는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게 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의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1:26 그것은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로 감으로써 여러분이 나를 대면하는 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많아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1:27 오로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맞게 생활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
분을 만나든지, 여러분에게서 떠나 있든지 한 정신으로 굳게 서서, 복음을 믿는 일
에 한 마음으로 힘을 합하여 함께 싸우고,
1:28 또한 어떤 일이라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나에게 들려 줄
수 있게 하십시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조요,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조입
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1:29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서 고난도 받는 것은, 그리스도
를 위해서 여러분이 받는 특권입니다.
1:30 여러분은 전에 나에게서 내가 하는 것을 보았고 지금은 나에게서 듣는 것과 똑 같
은 싸움을 여러분도 하고 있습니다.(빌립보서 1: 12-30)
맺는 말
미동부지역의 뉴욕 뉴저지 교회와 목회자들은 하나같이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들, 잃어버린 영혼들과 미전도 종족들을 위하여 기독교 이단 사이비 집단을 철통같이 경계할 뿐만 아니라, 그 집단에 빠진 무지목매한 자들을 지혜롭게 구출해내야 합니다. 우선 규모가 작거나 크거나 각자 처해있는 목회현장 안에서 성경공부나 설교를 통하여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잘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 이단 사이비 사냥꾼(이단 감별사)들처럼 학문적 편협성과 짧은 신학적 소견을 가지고, 소극적으로 족집게 역할만 하다보면 자신도 영적으로 황폐하게 되고, 자가당착(自家撞着)으로 사이비 이단의 올무에 스스로 빠지게 되는 불운을 겪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비본질적인 일에 생명을 걸다보면 원치 않게도 가라지(피)를 뽑으려다가 곡식(벼)도 뽑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주님과 점점 멀어지고, 이웃 사랑, 형제 사랑의 기독교 본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이비 이단 감별사들을 사진으로 보아도 하나같이 마음이 사악해져있고, 풍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랑의 향기가 전혀 보이지를 않습니다. 사이비 이단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 분주하기만 하고, 실적 하나 올리지를 못합니다. 교인들을 양육해야하는 시간에 늘 쫒기고, 성경말씀 보기 바쁘며, 기도의 은혜가 메마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사악해 집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그 귀가 막히고,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 앞뒤를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 폐인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진리의 말씀의 적극적인 대변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한 일은 어디까지나 선한 방법으로 지혜로운 방법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고, 교인들을 양육하여 교회를 잘 세우는데 주력을 해야지, 전무할 것이 없어서 사이비 이단 감별사로 명성을 가지려고 하는 발상이 과대망상증과도 같습니다. 이단 사이비는 자연스럽게 감별이 되는 것이지, 구태여 조직배들을 만들어 연대하면서 그 임무를 수행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공회를 통해 이미 확실하게 들어난 이단집단들을 경계하고, 홍보해야 합니다. 종교는 권력과 힘이 필요하지만 기독교의 생명은 세속적인 힘과 권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내리쳐서 귀를 잘랐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사용하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52).
교회부흥은 자연스럽게 세계선교로 이어지고, 선교하는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10/40 창의 최전방 미전도 종족 개척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30년 전통의 해외선교기관 INTER CP을 중동 이슬람선교지도 한번 가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선교를 방해하는 음모는 종교 좌경화의 원인과 그 배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이비 이단 척결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와 그의 백성들을 위한 순수한 진리의 싸움이 아니라 신실한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을 볼모로 잡아, 교회를 어렵게 만들고, 마귀의 궤계에 동조하여 마귀를 도와주는 일을 한다면 얼마나 기독교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비극적인 일이겠습니까?
더더욱 비극적인 일은 외간 남자인줄 알고 부인과 함께 곁에 누워 잠자던 처제를 살해한 사건은 두고두고 이단 사이비 감별사들에게 크나큰 교훈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실한 사역자 한사람을 정치적인 희생양으로 삼고, 신학사상이라는 굴레를 씌워 무차별 인격 살해하는 현대판 카인의 역할과 언론의 힘으로 이 일에 공조한 안티 기독교 인터넷 사이트도 결코 편안한 밤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더 이상 영적인 불모지인 뉴욕 도성에 비방과 거짓과 협박을 통한 정치적 누리꾼들의 파도가 일지 않도록! 중보기도의 힘을 모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September 9, 2011
뉴욕을 한없이 사랑하는 사람
주님의교회 김상태 목사(Th.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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