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환/김요셉 목사 부자의 숨겨진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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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8-11-04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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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 목사(극동방송사장·74)은 트루디 김(70) 여사와 국제결혼을 했다. 1956년 24세의 청년이었던 김장환은 밥 존스 대학교 후배인 20세 트루디와 결혼을 했다.
부부는 두 아들과 딸을 두었다. 현재 큰 아들 김요셉 목사(47)는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 교목이며 수원 원천침례교회 대표목사로 있으며, 둘째 아들 김요한 목사(41)는 대전의 함께하는 교회 담임목사이다.
김요셉 목사와 김요한 목사는 어릴때 보수적이었던 한국사회에서 "혼혈아"로 따돌림을 받고 자랐지만 결국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아 아버지의 나라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가 됐다.
장남 김요셉 목사가 11월 초 열린 코딤 컨퍼런스에서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 김장환 목사와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관심을 모았다. 구두쇠 김장환 목사와 기도하는 김장환 목사의 모습은 아래의 이야기를 통해 잘 나타난다.
● 구두쇠 아버지=아버지는 보통 구두쇠가 아니다. 아들로서 보면 깍쟁이가 아니라 구두쇠이다. 그것에 깊은 쓴 뿌리가 있다. 아버지는 백원짜리 두부를 사도 영수증을 원하셨다. 하도 용돈을 안주어서 아버지 지갑에서 지폐한장 훔친것이 들키자 아버지는 나를 고아원으로 데려가셨다.
구두쇠 기질로 제값을 내고 아무것도 안산다. 이제는 비행기도 비지니스석을 탈만도 한데 이코노믹 좌석만 고집한다. 입었던 옷도 세탁도 호텔에 맡기면 해주는데, 지금 호텔방에는 아버지가 직접 빤 옷들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의 이미지를 바뀌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어느날 백화점을 가자고 해서 놀랐는데 어머니를 위해 70년대 200불 짜리 화장품을 사는 것을 보고 경악을 했다. 아버지는 하나님과 어머님, 두군데에만 돈을 사용하신다. 그것은 무언의 모델링과 멘토링에 되었다.
학교를 지으면서 돈이 많이 모자랐다. 고명진 목사는 후원을 많이 하는데 아버지는 절대 교회 돈으로 후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데는 아낌없이 후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섭섭했던적도 있었다.
집을 땅을 판돈 30억으로 학교를 지을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십일조를 하라고 해서 3억을 교회에 냈다. 학교를 지을 돈도 모자라는데 헌금을 하라고 하는 것은 당시에 잘 이해가 안되었다. 하지만 십일조를 낸후 진입로와 고압선 문제가 해결되어 경제적으로 엄청난 효과를 보았다.
● 기도하는 아버지=아버지는 교인들에게는 가정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목회로 가정에 소흘했다. 섬김을 말하면서 가정을 섬기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목사가 안되려고 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할때도 아버지가 오시면 우리학교에서는 설교하지 마라고 부탁하곤 했다. 50살이 다되었는데 아직도 김장환 목사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평생 저에게 짐이 된다. 사실 마음적으로 굉장히 부담이다.
미국에서 공부할때 미국에 오신 아버지를 호텔에서 만났다. 새벽 2시에 깨어 보니 아버지가 안계셨다. 화장실에 인기척이 있어 아버지가 화장실에 계신줄 알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다려도 아버지가 나오시지 않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문을 여니 변기 뚜겅위에는 타올이 있었으며 그위에는 성경이 놓여져 있었다. 아버지는 변기위에서 오랫동안 성경을 읽은 듯했다. 그리고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닮은 훌륭한 목사가 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 자신도 아버지 같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목회자가 됐다.
ⓒ 2008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부부는 두 아들과 딸을 두었다. 현재 큰 아들 김요셉 목사(47)는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 교목이며 수원 원천침례교회 대표목사로 있으며, 둘째 아들 김요한 목사(41)는 대전의 함께하는 교회 담임목사이다.
김요셉 목사와 김요한 목사는 어릴때 보수적이었던 한국사회에서 "혼혈아"로 따돌림을 받고 자랐지만 결국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아 아버지의 나라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가 됐다.
장남 김요셉 목사가 11월 초 열린 코딤 컨퍼런스에서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 김장환 목사와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관심을 모았다. 구두쇠 김장환 목사와 기도하는 김장환 목사의 모습은 아래의 이야기를 통해 잘 나타난다.
● 구두쇠 아버지=아버지는 보통 구두쇠가 아니다. 아들로서 보면 깍쟁이가 아니라 구두쇠이다. 그것에 깊은 쓴 뿌리가 있다. 아버지는 백원짜리 두부를 사도 영수증을 원하셨다. 하도 용돈을 안주어서 아버지 지갑에서 지폐한장 훔친것이 들키자 아버지는 나를 고아원으로 데려가셨다.
구두쇠 기질로 제값을 내고 아무것도 안산다. 이제는 비행기도 비지니스석을 탈만도 한데 이코노믹 좌석만 고집한다. 입었던 옷도 세탁도 호텔에 맡기면 해주는데, 지금 호텔방에는 아버지가 직접 빤 옷들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의 이미지를 바뀌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어느날 백화점을 가자고 해서 놀랐는데 어머니를 위해 70년대 200불 짜리 화장품을 사는 것을 보고 경악을 했다. 아버지는 하나님과 어머님, 두군데에만 돈을 사용하신다. 그것은 무언의 모델링과 멘토링에 되었다.
학교를 지으면서 돈이 많이 모자랐다. 고명진 목사는 후원을 많이 하는데 아버지는 절대 교회 돈으로 후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데는 아낌없이 후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섭섭했던적도 있었다.
집을 땅을 판돈 30억으로 학교를 지을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십일조를 하라고 해서 3억을 교회에 냈다. 학교를 지을 돈도 모자라는데 헌금을 하라고 하는 것은 당시에 잘 이해가 안되었다. 하지만 십일조를 낸후 진입로와 고압선 문제가 해결되어 경제적으로 엄청난 효과를 보았다.
● 기도하는 아버지=아버지는 교인들에게는 가정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목회로 가정에 소흘했다. 섬김을 말하면서 가정을 섬기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목사가 안되려고 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할때도 아버지가 오시면 우리학교에서는 설교하지 마라고 부탁하곤 했다. 50살이 다되었는데 아직도 김장환 목사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평생 저에게 짐이 된다. 사실 마음적으로 굉장히 부담이다.
미국에서 공부할때 미국에 오신 아버지를 호텔에서 만났다. 새벽 2시에 깨어 보니 아버지가 안계셨다. 화장실에 인기척이 있어 아버지가 화장실에 계신줄 알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다려도 아버지가 나오시지 않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문을 여니 변기 뚜겅위에는 타올이 있었으며 그위에는 성경이 놓여져 있었다. 아버지는 변기위에서 오랫동안 성경을 읽은 듯했다. 그리고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닮은 훌륭한 목사가 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 자신도 아버지 같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목회자가 됐다.
ⓒ 2008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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