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교회 퇴임 한요한 목사와 신임 김혜택 목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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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5-11-26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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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은퇴를 발표하여 뉴욕교계에 충격을 주었던 뉴욕충신교회 담임인 한요한 목사가 원로목사로 추대되고 멕시코 선교지로 파송되며 김혜택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한다. 2005년 12월 4일(주일) 오후 5시 열리는 행사는 은퇴/파송/취임식을 겸하게 된다.
이번 변화는 여러 면에서 주목을 끈다. 18년전 충신교회를 개척한 한요한 목사는 조기은퇴 선언후 교회가 반으로 분열되는 아픔을 맛보았지만, 김혜택 목사라는 훌륭한 담임목사를 후임으로 두게 되어 교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김혜택 목사는 토론토에 있는 해밀톤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취임시 70명에서 현재 500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킨 선교와 목회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 목회를 회고해주시지요?
한요한=81년에 미국에 와 87년도 뉴욕충신장로교회를 개척했다. 부족하고 연약하며 실수가 많은 사람인데 주님이 지켜주셔서 감당케 하셨다. 조기은퇴를 하며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미숙한 목회였다. 성도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 내가 전한 복음을 성도들이 받아들이고 믿음의 신앙인으로 거듭나고 가정과 사회에서 훌륭한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 보람이 있다.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보면 껑충껑충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요한 목사님을 원로목사로 추대했는데?
김혜택=원로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단에 따라 한 교회에서 10-15년 담임목사로 사역을 해야 한다. 거의 평생을 섬겨야 원로목사가 가능하다. 그래서 한 목사님을 마땅히 추대하는 것이다. 원로목사는 큰 영광으로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가 없다. 원로목사에게는 생활비의 50%를 드리게 되어 있는데 한 목사님이 선교지로 파송되므로 선교비로 후원하게 된다. 물론 다른 사안에 따라 별도의 선교비를 후원할 수도 있다.
한요한=사도행전에 나오는 안디옥교회는 이방인 교회에 선교사를 파송한다.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담임 교역자인데 목회를 잘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선교지로 떠나게 되었다. 목회의 경륜이 쌓이면 선교지로 나가는 것이 성경적이다. 소속교단인 RCA교단은 은퇴나이가 70세이다. 그래도 나는 62-65세에 은퇴하려고 생각했다. 선교지에서는 은퇴목사는 짐이 될 수도 있어 좀 더 젊을때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다.
은퇴발표후 교회분열에 대해 한말씀?
한요한=모든 목회의 책임은 담임목사에게 있다. 예수님도 찬성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 같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교회에서 나가신 분들도 나를 잘 따르며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같이 하신 분들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조기은퇴 발표 후에 분란이 있었다. 레임덕인지 신임 김혜택 목사의 코드에 맞는 분만 남겨 풍토를 전환하려는 하나님의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갑자기 일들이 일어나니 모든 사람들이 당황했다. 지나고 보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을 알게 되리라 믿는다.
나가시는 선교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한요한=처음에는 중남미 니카라과에 선교사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3주간 답사하고 선교전략을 세웠다. 나름대로 사역의 준비를 하고 뉴욕으로 돌아오자 피부에 검은 반점이 나타나고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선교지를 바꾸어 기후가 온화한 멕시코 북부인 티후아나, 쁘라야, 로자리또, 엔세나다 지역으로 정하게 되었다. 친구인 김수신 목사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곳에서 멕시코 목회자 50여명을 말씀훈련 시킬 것이다. 선교지의 진리의 등대가 되는 원주민 목회자의 진리를 바르게 세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멕시코 목회자들의 학력은 거의 국졸 수준일 정도로 낮다. 정기 신학과정도 없는 실정이다. 선교지에서 이분들을 섬기는 것이다.
어떻게 두 분이 만나셨습니까?
김혜택=카자흐스탄에 선교팀 후원을 가기 위해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카자흐스탄에 모슬렘 평신도 중심의 교회개척 선교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만나 비전도 같이 나누고 같이 선교지 개척교회도 방문하여 말씀도 전해주셨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 목사님에게 영적인 호감을 가지게 되고 인격에 끌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형님처럼 생각하게 되고 충신교회 부흥회에도 초청받아 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충신교회가 카자흐스탄에 선교하게 되었고 두 교회도 서로 교류하는 사이가 되었다.
뉴욕에 오시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김혜택=1952년생으로 53세이다. 작년 가을에는 장로 6명을 세웠으며, 처음 들어온 성도들의 신앙이 성장하여 교회를 든든히 세웠다. 주님에게 사명이 끝난 것이 아닌가 물었다. 몇년만 더 교회에 남아 있으면 원로목사가 되고 편안하게 목회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갈등이 있었다. 이제는 목회를 처음 할 때와 열정이 다르다. 처음 목회를 할 때에는 용기와 모험이 있었다. 목회 후반기에는 용기는 없고 안주하고 타협하며 방황하는, 타오르는 목회가 아니라 시드는 목회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갈등이 있었는데 한 목사님에게서 뉴욕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제안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교지를 확장할 생각을 했는데 한 목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와서 기도를 했냐고 물어 보았다. 그래서 기도를 하니 성령님이 감동을 주셨다. 나와 교인 모두에게 가장 좋을 때 떠나야 아름답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내가 없으면 교인들의 영적자립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도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같은 비전을 받았다.
김혜택 목사님에게 대한 기대는 무엇입니까?
한요한=김 목사님은 카자흐스탄 비행기 안에서 지도에 선교지 개척교회를 표시한 별표 20여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슬람국가에 교인들과 교회를 개척한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사도바울같이 선교하는 주의 종을 만난 것을 감사하며, 당시 모든 나의 일정을 취소하고 김 목사와 같이 선교지 교회를 돌아보았다.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김 목사를 알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나의 경우에는 뉴욕에서 편안하게 목회하는 행복한 목회자였다. 이제 교회당의 모게지도 다 갚고 재정적으로도 안정되게 되고 허리를 펴고 다리를 뻗는가 했는데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회자로서 진정한 추수를 하고 싶었다. 김 목사에게 바램이 없다. 선교와 2세 신앙훈련을 잘해 교육과 선교목회가 훌륭하다. 금요일은 교인들과 철야 하느라고 잔 적이 없으신 분이다. 말씀과 영성이 깊고, 리더십도 대단하다. 나도 이전에 그런 목회방식을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어떤 목회를 하실 예정입니까?
김혜택=뉴욕에 와서 교육목회를 통한 선교와 2세 사역을 중심으로 목회를 할 것이다. 뉴욕은 잘 모르지만 한 목사님이 계시니 마음껏 사역을 할 수가 있다. 한 목사님은 참 투명하시며 인격적이시라 형님 같다. 금요일 밤마다 교회에서 기도를 했다. 너무 편안하게 목회하면 안될 것 같아 하루는 교회에서 자려고 했다. 새벽기도, 저녁중보기도, 금야철야기도, 금식기도 등 기도에 힘썼다. 금요일은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는 날이다. 아이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주니 아이들이 많이 왔다. 1세들과 2세들이 만나는 지점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영어와 한국어로 찬양을 했다. 한국말로 설교하고 동시통역도 했다. 아이들이 은혜를 받고 변하기 시작했다. 금요일 기도는 밤 11시 반에서 시작하여 새벽 3시에 끝나는데 200여명의 성도들이 모인다.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세대의 사람이 모여 기도를 드린다. 주일은 영어 프로그램이 있지만 금요일은 한글 위주로 한다. 취임시 70여명의 성도가 출석했지만 12년 목회한 오늘에는 500여명의 성도가 출석한다. 뉴욕에서는 더욱 성령에 의지하여 기도하여 말씀목회를 하며 목회와 선교가 균형이 맞는 목회를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주세요.
한요한=한 달 전 우리교회에 멕시코에서 40여개의 교회를 세운 선교사가 오셔서 간증을 했다. 선교지에서 할일이 많으니 목회에 은퇴하고 칩거하지 말고 선교지에 내려와 사역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은퇴한 목회자가 선교지로 많이 나갔으면 좋겠다.
김혜택=1989년 필리핀 마닐라 세계선교대회에서 빌리그래함 목사는 2000년까지 2만 4천 종족중 만 천개의 미전도종족을 전도하자고 했다. 2005년에는 기독교인이 인구의 3% 이하인 미전도 종족이 3천여 종족으로 줄어들었다. 한 목사님이 중남미에 계시니 카자흐스탄외에 중남미 선교에도 관심을 가지겠다.
ⓒ 2005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이번 변화는 여러 면에서 주목을 끈다. 18년전 충신교회를 개척한 한요한 목사는 조기은퇴 선언후 교회가 반으로 분열되는 아픔을 맛보았지만, 김혜택 목사라는 훌륭한 담임목사를 후임으로 두게 되어 교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김혜택 목사는 토론토에 있는 해밀톤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취임시 70명에서 현재 500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킨 선교와 목회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 목회를 회고해주시지요?
한요한=81년에 미국에 와 87년도 뉴욕충신장로교회를 개척했다. 부족하고 연약하며 실수가 많은 사람인데 주님이 지켜주셔서 감당케 하셨다. 조기은퇴를 하며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미숙한 목회였다. 성도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 내가 전한 복음을 성도들이 받아들이고 믿음의 신앙인으로 거듭나고 가정과 사회에서 훌륭한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 보람이 있다.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보면 껑충껑충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요한 목사님을 원로목사로 추대했는데?
김혜택=원로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단에 따라 한 교회에서 10-15년 담임목사로 사역을 해야 한다. 거의 평생을 섬겨야 원로목사가 가능하다. 그래서 한 목사님을 마땅히 추대하는 것이다. 원로목사는 큰 영광으로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가 없다. 원로목사에게는 생활비의 50%를 드리게 되어 있는데 한 목사님이 선교지로 파송되므로 선교비로 후원하게 된다. 물론 다른 사안에 따라 별도의 선교비를 후원할 수도 있다.
한요한=사도행전에 나오는 안디옥교회는 이방인 교회에 선교사를 파송한다.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담임 교역자인데 목회를 잘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선교지로 떠나게 되었다. 목회의 경륜이 쌓이면 선교지로 나가는 것이 성경적이다. 소속교단인 RCA교단은 은퇴나이가 70세이다. 그래도 나는 62-65세에 은퇴하려고 생각했다. 선교지에서는 은퇴목사는 짐이 될 수도 있어 좀 더 젊을때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다.
은퇴발표후 교회분열에 대해 한말씀?
한요한=모든 목회의 책임은 담임목사에게 있다. 예수님도 찬성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 같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교회에서 나가신 분들도 나를 잘 따르며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같이 하신 분들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조기은퇴 발표 후에 분란이 있었다. 레임덕인지 신임 김혜택 목사의 코드에 맞는 분만 남겨 풍토를 전환하려는 하나님의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갑자기 일들이 일어나니 모든 사람들이 당황했다. 지나고 보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을 알게 되리라 믿는다.
나가시는 선교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한요한=처음에는 중남미 니카라과에 선교사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3주간 답사하고 선교전략을 세웠다. 나름대로 사역의 준비를 하고 뉴욕으로 돌아오자 피부에 검은 반점이 나타나고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선교지를 바꾸어 기후가 온화한 멕시코 북부인 티후아나, 쁘라야, 로자리또, 엔세나다 지역으로 정하게 되었다. 친구인 김수신 목사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곳에서 멕시코 목회자 50여명을 말씀훈련 시킬 것이다. 선교지의 진리의 등대가 되는 원주민 목회자의 진리를 바르게 세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멕시코 목회자들의 학력은 거의 국졸 수준일 정도로 낮다. 정기 신학과정도 없는 실정이다. 선교지에서 이분들을 섬기는 것이다.
어떻게 두 분이 만나셨습니까?
김혜택=카자흐스탄에 선교팀 후원을 가기 위해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카자흐스탄에 모슬렘 평신도 중심의 교회개척 선교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만나 비전도 같이 나누고 같이 선교지 개척교회도 방문하여 말씀도 전해주셨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 목사님에게 영적인 호감을 가지게 되고 인격에 끌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형님처럼 생각하게 되고 충신교회 부흥회에도 초청받아 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충신교회가 카자흐스탄에 선교하게 되었고 두 교회도 서로 교류하는 사이가 되었다.
뉴욕에 오시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김혜택=1952년생으로 53세이다. 작년 가을에는 장로 6명을 세웠으며, 처음 들어온 성도들의 신앙이 성장하여 교회를 든든히 세웠다. 주님에게 사명이 끝난 것이 아닌가 물었다. 몇년만 더 교회에 남아 있으면 원로목사가 되고 편안하게 목회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갈등이 있었다. 이제는 목회를 처음 할 때와 열정이 다르다. 처음 목회를 할 때에는 용기와 모험이 있었다. 목회 후반기에는 용기는 없고 안주하고 타협하며 방황하는, 타오르는 목회가 아니라 시드는 목회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갈등이 있었는데 한 목사님에게서 뉴욕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제안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교지를 확장할 생각을 했는데 한 목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와서 기도를 했냐고 물어 보았다. 그래서 기도를 하니 성령님이 감동을 주셨다. 나와 교인 모두에게 가장 좋을 때 떠나야 아름답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내가 없으면 교인들의 영적자립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도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같은 비전을 받았다.
김혜택 목사님에게 대한 기대는 무엇입니까?
한요한=김 목사님은 카자흐스탄 비행기 안에서 지도에 선교지 개척교회를 표시한 별표 20여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슬람국가에 교인들과 교회를 개척한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사도바울같이 선교하는 주의 종을 만난 것을 감사하며, 당시 모든 나의 일정을 취소하고 김 목사와 같이 선교지 교회를 돌아보았다.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김 목사를 알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나의 경우에는 뉴욕에서 편안하게 목회하는 행복한 목회자였다. 이제 교회당의 모게지도 다 갚고 재정적으로도 안정되게 되고 허리를 펴고 다리를 뻗는가 했는데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회자로서 진정한 추수를 하고 싶었다. 김 목사에게 바램이 없다. 선교와 2세 신앙훈련을 잘해 교육과 선교목회가 훌륭하다. 금요일은 교인들과 철야 하느라고 잔 적이 없으신 분이다. 말씀과 영성이 깊고, 리더십도 대단하다. 나도 이전에 그런 목회방식을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어떤 목회를 하실 예정입니까?
김혜택=뉴욕에 와서 교육목회를 통한 선교와 2세 사역을 중심으로 목회를 할 것이다. 뉴욕은 잘 모르지만 한 목사님이 계시니 마음껏 사역을 할 수가 있다. 한 목사님은 참 투명하시며 인격적이시라 형님 같다. 금요일 밤마다 교회에서 기도를 했다. 너무 편안하게 목회하면 안될 것 같아 하루는 교회에서 자려고 했다. 새벽기도, 저녁중보기도, 금야철야기도, 금식기도 등 기도에 힘썼다. 금요일은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는 날이다. 아이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주니 아이들이 많이 왔다. 1세들과 2세들이 만나는 지점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영어와 한국어로 찬양을 했다. 한국말로 설교하고 동시통역도 했다. 아이들이 은혜를 받고 변하기 시작했다. 금요일 기도는 밤 11시 반에서 시작하여 새벽 3시에 끝나는데 200여명의 성도들이 모인다.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세대의 사람이 모여 기도를 드린다. 주일은 영어 프로그램이 있지만 금요일은 한글 위주로 한다. 취임시 70여명의 성도가 출석했지만 12년 목회한 오늘에는 500여명의 성도가 출석한다. 뉴욕에서는 더욱 성령에 의지하여 기도하여 말씀목회를 하며 목회와 선교가 균형이 맞는 목회를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주세요.
한요한=한 달 전 우리교회에 멕시코에서 40여개의 교회를 세운 선교사가 오셔서 간증을 했다. 선교지에서 할일이 많으니 목회에 은퇴하고 칩거하지 말고 선교지에 내려와 사역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은퇴한 목회자가 선교지로 많이 나갔으면 좋겠다.
김혜택=1989년 필리핀 마닐라 세계선교대회에서 빌리그래함 목사는 2000년까지 2만 4천 종족중 만 천개의 미전도종족을 전도하자고 했다. 2005년에는 기독교인이 인구의 3% 이하인 미전도 종족이 3천여 종족으로 줄어들었다. 한 목사님이 중남미에 계시니 카자흐스탄외에 중남미 선교에도 관심을 가지겠다.
ⓒ 2005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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