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목사 “퀘렌시아가 되어야 하는 한인이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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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ㆍ2017-06-01 14:4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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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할렐루야야대회 2차 준비기도회가 6월 1일(목) 오전 후러싱제일교회에서 열렸다. 기도회에서 조원태 목사(뉴욕우리교회)가 누가복음 10:30~37을 본문으로 “퀘렌시아”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설교제목인 ‘퀘렌시아’라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기자로서는 두 번째였다. 이민자보호교회 테스크포스 위원장인 조원태 목사는 5월 열린 이민자보호교회 1차 기도회에서 ‘퀘렌시아’를 언급했다. 스페인어 퀘렌시아(Querencia)는 투우장에서 투우사와 생사를 걸고 싸우는 소가 잠시 안전하게 숨을 고르며 힘을 모으는 자신이 정한 장소를 의미한다.
조원태 목사는 이민자보호교회는 교회 울타리 바깥을 향해 마련된 퀘렌시아이며, 할렐루야 대회가 뉴욕의 크리스천들에게 퀘렌시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 영원한 피난처, 우리의 퀘렌시아 이시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민사회는 투우장 같다.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양들이 지천이다. 세상은 교회를 향해 위기를 말하지만, 이때야말로 교회는 희망의 때를 맞이했다. 교회가 예수마음으로만 회복할 때 퀘렌시아가 될 수 있다. 할렐루야 복음화 대회가 그 투우장 한편에 마련된 퀘렌시아가 될 것이다”고 말씀을 맺었다. 다음은 말씀내용이다.
1.
책 한권을 샀습니다.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입니다. 글 하나 때문에 샀습니다. “퀘렌시아” 낯선 소재로 한 글입니다. 알고보니, 헤밍웨이의 1932년 작품인 <Death in the Afternoon>에서 사용한 투우장 용어입니다. 류시화의 글을 옮겨 보겠습니다.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 한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헤밍웨이 글을 보니까 소는 단박에 퀘렌시아를 찾지는 못하고, 투우가 진행되는 동안 두뇌를 사용합니다. 기진맥진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소는 기운을 얻는 곳을 찾아 회복합니다. 퀘렌시아에 있는 소는 엄청난 기운을 회복해서 투우사가 함부로 건들면 매우 위험할 정도로 소는 강력해 집니다.
류시화는 다양한 퀘렌시아 표현 중 ‘곤충이 비를 피하는 나뭇잎 뒷면’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곤충에게 나뭇잎 뒷면은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곤충에게 퀘렌시아입니다. 보통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도 비밀스런 성소인 나뭇잎 뒷면 같은 퀘렌시아가 필요합니다.
2.
강도는 그 사람 옷을 벗겼고, 때렸습니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간 것은 참 매정해 보입니다. 강도를 뒤따라 제사장과 레위인도 동일하게 죽어가는 사람을 버리고 지나갑니다. 교회가 강도 맞은 모습으로 서 있는 시대입니다. 조심스럽지만 교회가 강도로 비춰지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피해자의 상처를 소독하고 응급조치를 한 뒤, 나귀에 태워 주막에 데려갔습니다. 그때 주막은 퀘렌시아입니다. 잃은 기운을 회복하고, 위험에서 보호받는 곳이 주막입니다. 교회가 주막으로 체질개선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피난처 되시는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민자보호교회는 교회 울타리 바깥을 향해 마련된 퀘렌시아 입니다.
이민자에게는 환경이 불안한 것보다,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들이 불안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반 이민행정명령은 이민자에게 강도 습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과 헤어질지 모르는 두려움이 사회에 스며듭니다. 이럴 때, 뉴욕교협은 이민자보호교회를 통해 피난처가 되려고 합니다.
불법이라는 그럴싸한 추방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숨겨진 속셈을 예수님처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율법교사의 질문을 세심하게 보십시오. 25절,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논쟁하려고 던진 질문은 배척하고 제한하려는 것입니다.
누군가 배제하고 밀어내려는 의도에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포용하라고 응수합니다. 27절,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행정부의 반이민 명령은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강도의 습격과 같습니다. 이때 교회는 나그네와 같은 이민자들에게 주막 같은 퀘렌시아가 되어야 합니다.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고, 기운을 얻게 하는 피난처가 교회여야 합니다. 이민자보호교회를 섬기고 있는 저로서는 교회가 강도만난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이 한 일들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 생각합니다. 교회는 보안을 허무는 곳입니다. 자물쇠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십자가, 교회가 퀘렌시아입니다
80개 교회가 가입되어 있고, 100개로 예상되는 이민자보호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서 교회가 교회다워질 수 있는 교회갱신의 선물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확신합니다. 교회 바깥의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능력이 무엇인지 교회가 보일 수 있는 길이 이민자보호교회 입니다.
둘째, 할렐루야 대회가 뉴욕의 크리스천들에게 퀘렌시아가 되길 바랍니다.
요즘 교회는 지독한 강도를 만났을지 모릅니다. 다툼의 강도입니다. 지난 백 년 동안 조국에 출몰한 강도떼는 군대마귀입니다. 일제부터 시작된 군대마귀가 지금도 휴전선을 중심으로 가득합니다. 이민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싸움의 강도떼가 교회에 깊은 내상을 줍니다.
이때 조국의 주막은 어디입니까? 이민교회의 퀘렌시아는 어디이며, 조국의 피난처는 어디입니까? 우리는 냉전의 잔재로 휴전선 철책을 70년 이상 끌어왔습니다. 조국은 강대국들의 만만한 무기판매의 시장이 되고 있습니다. 민족의 퀘렌시아는 더 이상 적대가 아니라, 군대마귀를 축출한 평화입니다.
내 조국의 허리 잘린 상처를 소독하고 철책을 걷어내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잠꼬대처럼 들릴지라도 그 꿈을 비는 마음이 민족의 퀘렌시아 입니다. 군사훈련, 미사일, 군비확충으로는 퀘렌시아가 소멸될 엄중한 위기가 올 겁니다. 민족이 숨을 고르고 유라시아 대지를 향해 뻗어나갈 퀘렌시아는 평화입니다.
금번 할렐루야 복음화 대회는 믿지 않는 자들보다 우리 편의 기운을 모으고 보호할 수 있는 퀘렌시아의 장이 되길 바랍니다. 투우장이 되어 버려 기진맥진해진 교회들이 할렐루야 대회로 회복되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소만 보는 퀘렌시아 처럼 우리 눈에 할렐루야 대회가 보여지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의 외교를 합시다. 호세아 시대처럼 주변 강대국에 의존하는 외교로 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의 외교를 하는 우리가 됩시다. 송아지가 어린 사자와 함께 노는 이사야의 비전처럼, 큰 교회 작은교회 할 것이 없이 이 교단 저 교단 할 것이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대회가 됩시다.
셋째, 우리 하나님은 영원한 피난처, 우리의 퀘렌시아 이십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혼이 있습니다. 우리 영혼은 악의 강도를 만납니다. 탐욕, 교만, 무절제, 미움의 강도가 내 영혼을 허기지게 하고 상처를 입히며 병들게 합니다. 영혼이 보호받고 숨을 고를 퀘렌시아는 하나님입니다. 주님 품에 안기는 것이 우리가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입니다.
시편 5:11~12,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주님의 보호를 받고, 주님의 호위를 받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대회는 진정한 퀘렌시아를 찾는 일입니다. 피난처 되시는 주님 품에 초대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민사회는 투우장 같습니다.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양들이 지천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향해 위기를 말하지만, 이때야말로 교회는 희망의 때를 맞이했습니다. 교회가 예수마음으로만 회복할 때 퀘렌시아가 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복음화 대회가 그 투우장 한편에 마련된 퀘렌시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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