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길 목사 “제가 목회자란 말을 감히 못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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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8-04-18 10:1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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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맞아 한국의 중앙일보는 원로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가짜 목사였다”라는 멘트를 부각시켰다.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인이 2000명으로 불어나니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게 불가능해지더라. 누가 양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목자라 할 수 있겠나.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목회는 사라지고 매니지먼트(management·관리)만 남게 됐다. 주님이 보시기에 나는 가짜 목사였던 거다. 늘 고민이 많았다.”
사실 그동안 조금만 교계 뉴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홍정길 목사가 “나는 가짜 목사” 또는 “나는 목회를 실패했다”라는 내용의 멘트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복음주의 4인방으로 불리며 한국교회에 큰 영향력을 미친 홍 목사의 이 발언은 오늘날 목회자에게 과연 어떤 도전을 주고 있는가?
77세의 원로 홍정길 목사는 4월 17일(화) 오전 뉴저지에 있는 온누리교회(마크최 목사)에서 열린 목회자 세미나에서 이에 대해 다시 언급했다. 뉴저지목사회와 러브뉴저지가 공동주관하여 열린 세미나에서 질문과 답을 하는 시간이었다. 홍정길 목사의 답변 내용은 목회의 본질을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성도들의 숫자가 적은 교회 목회자들에게 큰 격려와 도전을 주고 있다. 그 핵심을 이어지는 답변 내용에서 찾으면 된다.
제가 기대하고 사랑하는 젊은 목회자 모임에서 스스로 ‘전도자’라고는 하는데 왜 ‘목회자’라고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1966년 CCC 대표를 했으며 나중에 목회자로 들어서서 43년 동안 목회를 했다. 오랫동안 목회를 했는데 왜 '목회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느냐고 했는데, 사실 '목회자'란 말을 감히 못 쓰는 이유가 있다.
나는 CCC에서 성경공부하고 학생들과 뛰어 놀다가 목회에 들어서서 6명을 데리고 남서울교회를 개척했다. 부목사도 전도사도 못해보고 목회를 시작했기에,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할까 고민하면서 2가지 원칙을 정했다. 우선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둘째는 내 기도 없이 성도들이 하루를 시작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교회를 시작하고 성도들을 위해 3년을 기도했다. 그런데 5백가정이 넘어 2천명이 되었다. 2천명을 놓고 기도하니 새벽기도에 나와 오전 10시까지 기도해야 했다. 나중에는 물리적으로 도저히 안되어서 포기했다. 그래서 그것에 늘 마음에 부담이 있었다.
존 스토트 목사가 세계교회 목회자들과 평신도 리더십들에게 3달 과정의 성경학교를 열었는데, 1984년에 3개월 동안 그분과 같이 하는 기회를 가졌다. 먼저 균형을 배웠다. 그분의 균형감각이 예술이다. 정의를 주장하면서 과하게 주장하면 그 정의 때문에 사람이 잔인해진다. 또 사랑을 주장하면 흐물해져서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된다. 그런데 존 스토트 목사는 그 둘을 동시에 붙잡고 정의에 대해서도 확실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도 확실한 그런 모습을 보니 매혹을 당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영혼이 있는가 하는 감동으로 3개월을 같이 했다. 어느 한 곳에 치우쳐 괴몰되지 않은 인격에 마음의 감동이 있었다.
3개월 과정 마지막 즈음, 참가자 40명이 돌아가면서 자기 지난날 살아왔던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제 차례가 되어 어떻게 예수를 믿었는지, 어떻게 사역을 시작했는지를 말했다. 그러다가 제 마음의 부담을 나누었다. 내 성도들에게 내 기도 없이 하루를 시작하지 않게 하겠다고 하나님께 서약을 했는데, 성도들이 많아지자 3년이 지난 후에는 더 이상 하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에 남서울교회에 4천여 명이 모였는데 영락교회가 5천여 명 모일 때였다. 갑자기 교회가 그렇게 커진 것에 저도 놀랐다. 그래서 더 이상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기도를 하지 못했는데, 초창기에 3년간 기도한 가정은 아이들 이름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첫 약속을 어긴 후 다음부터는 내 목회가 가짜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더니 다른 참가자들이 자신들은 몇십명 성도들과 목회를 하고 있는데 약 올린다고 불평하고 윽박질렀다. 그런 가운데 존 스토트 목사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는 “홍 목사의 고민은 목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고민이다. 목회원리에 대한 핵심 성경은 요한복음 10장이고, 키워드는 목자는 자신의 양을 알고 양도 목자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단계를 지나면 목회가 아니라 매니저먼트”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이후에 제가 감히 ‘목회자’라는 말을 못한다. 하지만 코스타 만들어 돌아다니고, 전도폭발 만들어 한국교회에서 일하고, 지금도 개인전도를 열심히 하니 ‘전도자’이라고는 말한다. 그렇게 기자에게 말했더니 “홍정길 목사가 가짜목사”라고 기사를 낸 것이다.
한 가지 이해하고 알아주어야 할 것이 있다. 사실 옥한흠 목사를 너무 신성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에 사랑의교회 안수집사가 “옥한흠이 만든 괴물은 오정현뿐인가”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기고했는데 자기들도 그것에 갇혀서 괴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원천 지식자에게 그 다음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은 노예이다. 그래서 교수들에게 속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그 교수에게 영감을 주셨다면, 왜 지금 나에게는 영감을 주지 않으실 것인가? 왜 의존해 버리는가? 한번 밖에 못사는 내 생애에 있어 하나님께서는 나와 소통하고 싶은데 그 소통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으로 책으로 대신 하기도 한다. 책을 보았으면 깊이 묵상해서 왜 이 사람이 여기까지 왔는가 하는 고뇌가 있어야지 그렇지 못하고 책에서 정답하나 따서 사용한다. 한국에서 박사학위가 많다. 예제와 답까지 만들어 박사학위를 따면 그것이 무슨 박사학위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세워주셨으면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한국교회 신학자들은 자신 스승들이 말하는 것의 반복이다. 후배로서 해야 할 일은 스승이 그렇게 학문을 가르쳐주면 그것에 은혜받고 도전받은 것을 알고 뛰어 넘어설 때 후배가 선배를 대접하는 것이지 맹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의교회는 오 목사의 한계이다. 그리고 내가 제 목회가 가짜라는 것이 저의 한계이다. 3년만 제대로 목회했고 그 다음부터는 날날이로 살았다.
사람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교사이면 되지만 목회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제가 '목회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도 감히 '목회자'라는 말을 못쓴다. 목회를 못했는데 허울만 가지면 안된다. 교인들이 몰려드니 문제를 해결하려고 당시 미국의 유명한 교회를 벤치마킹을 했다. 지나고 보니 그때 그 교회들이 한 번 성장했다가 끝난다. 다음에도 여러 유명한 교회들이 생겨났지만 40~50년이 지나면 그때 큰 교회였었다 정도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부흥의 시대에 목회한 우리들이지만 진짜 목회를 못했다. 성도들의 숫자가 적은가? 그러면 그것에 서라. 여러분이 사랑해서 성도들의 생애가 바뀌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왜 주어진 성도에게 사랑과 양육은 하지 않고 안 오는 사람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가? 한사람의 성도라도 제대로 키웠다면 우리가 주님 앞에 갈 적에 기본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로서는 실패했고 내 목회는 실패했다. 그런데 이것은 실패이지만 한계이다. 이 한계를 뛰어넘는 여러분이 되라.
(세미나 내용은 다음 기사에서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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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나도 목사님의 댓글
나도 목사 ()
역쉬, 큰 교회 목사는 그릇이 다름을 알게 하는군요.
결과에는 분명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음도 알았습니다. 도전과 귀감이 되는 말씀 고맙습니다.
목사님의 댓글
목사 ()큰교회목사라 그릇이다르다? 더 큰교회의 목사님들이 계신데 그 분들도 같은 목회철학을 가지고계실까요? 교회 크기와는 아무런 관련이없다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목사님의 댓글
나도 목사 ()같은 공간 같은 말씀이라도 받는 은혜와 감동이 다를 수있듯이 주관적 생각과 글은 객관적 입장에서 다를 수있으므로 주장이나 억지가 아닌 이상 그냥 존중해 주시고 자신의 의견은 따로 피력하심이 어떠실지요?
신자님의 댓글
신자 ()특별히 한국 대형교회의 역기능이 많이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 "나도 목사"님의 댓글 내용은 동감하지만, 목사님의 글에서 소위 "큰 교회, 큰 목사" 뉘앙스가 묻어나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저도 목사님의 댓글
저도 목사 ()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큰 교회만 역기능이 있는게 아니라 작은교회도 있습니다. 물론 영향력 차이는 있겠지요. 다만 크다 작다에 너무 민감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구요.
함부로 정죄하고 판단하는 일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문제의 촛점은 사물(제도나 시스템, 상황)보다 결국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목사를 저는 작은교회 목사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심을 표명해 주셔서.
저도 목사님의 댓글
저도 목사 ()
(큰 교회 = 큰 목사)라고 표현하지 않았구요.
이미 말씀 드린것 처럼 "큰 교회"에 대한 지나친 알레르기 반응은 영적 건강에도 안 좋다고 사료됩니다.
청년성도님의 댓글
청년성도 ()목사님들끼리 고상한 말투로 기싸움하시네요... 천국가시게되면 서로 인사하시기 어색할것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