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영 박사 "전능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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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6-10-30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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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코리아기독교평신도세계대회가 10월 29일(주일) 퀸즈한인교회(담임 고성삼 목사)에서 열렸다. 류태영 박사(건국대학교 명예교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주제강연을 했다. 류태영 박사의 학력은 건국대 졸, 한국성서대학 졸, 덴마크 노르딕 농과대 수료,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대학원 석사 및 박사 학위 등이다. 대통령 비서실 초대 새마을 담당, 건국대 농과대학장, 건국대 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다음은 강연내용이다.
중학교때 나는 목사님을 존경했다. 목사님에게 성공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목사님은 "빌사일삼을 보라"고 말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을 보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네가 능치 못할것이 없나니라" 그 시간 이후 그 말씀을 책상에 붙이고 믿었다.
방송국에 가니 PD의 지시에 따라 임금, 대통령이 연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하나님이 감독이 되어 우리에게 배역을 맡기는 것이다. 배역을 잘 담당하면 더 좋은 배역을 맡기는 것이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머슴살이를 했다. 8남매중 형님 2분, 누님 2분은 모두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했다. 한명을 까막눈을 떼 준다고 아버지는 큰맘으로 9살에 나를 국민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우리 가문에서는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 간 것이다. 너무 가난해서 노트와 연필을 살 여유가 없었으며 먹을 것이 없어 소나무 잎이나 쑥을 먹었다. 신도 한번 신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나에게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교회에 다니면서 우리들을 데리고 나갔다. 초등학교 5학년때 주일학교를 나가기 시작했지만 예수님이 나같은 머슴의 아들을 위해 죽었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성령의 감동으로 믿어지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독학으로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장로님에게 부탁하여 가정교사로 일하며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곳에는 고등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 안 해본 것이 없다. 미군부대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야간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하나님에게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매달렸다. 그 꿈이 13년만에 이루어졌다. 농촌 선진국인 덴마크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농촌에 대한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고 덴마크 국왕에게 보냈다. 덴마크는 내가 원하는 기간, 장소, 분야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언어가 너무 어려웠다, 말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기도를 했다.
덴마크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더 선진국인 이스라엘에 가서 배우고 싶었다. 이스라엘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이스라엘 말을 배우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덴마크어는 영어와 비슷해 배우기가 쉬었다. 열심히 노력해 8개월 만에 대학원 입학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5년반 만에 우수한 성적으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중학교때 나는 목사님을 존경했다. 목사님에게 성공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목사님은 "빌사일삼을 보라"고 말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을 보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네가 능치 못할것이 없나니라" 그 시간 이후 그 말씀을 책상에 붙이고 믿었다.
방송국에 가니 PD의 지시에 따라 임금, 대통령이 연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하나님이 감독이 되어 우리에게 배역을 맡기는 것이다. 배역을 잘 담당하면 더 좋은 배역을 맡기는 것이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머슴살이를 했다. 8남매중 형님 2분, 누님 2분은 모두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했다. 한명을 까막눈을 떼 준다고 아버지는 큰맘으로 9살에 나를 국민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우리 가문에서는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 간 것이다. 너무 가난해서 노트와 연필을 살 여유가 없었으며 먹을 것이 없어 소나무 잎이나 쑥을 먹었다. 신도 한번 신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나에게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교회에 다니면서 우리들을 데리고 나갔다. 초등학교 5학년때 주일학교를 나가기 시작했지만 예수님이 나같은 머슴의 아들을 위해 죽었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성령의 감동으로 믿어지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독학으로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장로님에게 부탁하여 가정교사로 일하며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곳에는 고등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 안 해본 것이 없다. 미군부대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야간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하나님에게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매달렸다. 그 꿈이 13년만에 이루어졌다. 농촌 선진국인 덴마크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농촌에 대한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고 덴마크 국왕에게 보냈다. 덴마크는 내가 원하는 기간, 장소, 분야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언어가 너무 어려웠다, 말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기도를 했다.
덴마크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더 선진국인 이스라엘에 가서 배우고 싶었다. 이스라엘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이스라엘 말을 배우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덴마크어는 영어와 비슷해 배우기가 쉬었다. 열심히 노력해 8개월 만에 대학원 입학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5년반 만에 우수한 성적으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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