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호 목사 “선교적인 삶을 사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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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 2020-11-0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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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초대교회(박형은 목사)는 35주년을 맞아 "크리스찬의 본질로 돌아가자"라는 주제로 10월 30일(금)부터 3일간 미셔날처치 컨퍼런스를 열었다. 주강사 송민호 목사는 토론토영락교회 담임으로 자가격리 등 팬데믹의 제한 때문에 뉴저지에 직접 오지는 못했지만 3일간 저녁에 영상으로 미셔날처치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송민호 목사는 최근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이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송 목사는 선교사였다가 15년 전에 영락교회에 부임하고 미셔날처치의 비전을 가지고 20년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반부 10년 동안 미셔날처치에 대한 교육과 도전으로 전통교회 교회관에 익숙한 성도들의 생각을 바꾸는데 주력했다면, 후반부 10년은 성도들과 직접 미셔날처치를 실행하고 있다.
31일(토) 둘째 날 저녁 집회에서 송민호 목사는 베드로 전서 2:9를 본문으로 “선교적인 삶을 사십시요”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1.
선교적인 삶을 사십시요. 중요한 포인트는 선교적교회는 교회가 선교적으로 이론이 잘 잡혀있고 원리를 논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결국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멤버들이 각자의 삶에서 매일 선교적인 삶을 살면서 흩어졌을 때 선교적교회이고 모여서 예배를 드릴 때 선교적교회가 되는 것이다. ‘선교적인 삶을 사십시요’가 오늘 설교제목이지만 먼저 선교적교회가 무엇인지, 선교적교회는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 그러면 선교적인교회를 구성하는 선교적인 삶을 사는 성도들의 모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나눈다.
선교적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선교적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시고 있는 선교의 일을 교회가 함께 겸손히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신앙의 본질인 복음을 말한다. 하나님과 관점에서 생각하며 행동한다. 교회 밖의 사람들을 늘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만이 아니라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고, 나가서 소외되고 방황하는 자들을 복음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삶으로 보여주고, 그런 신앙공동체를 계속하여 재생산하는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 차원에서는 복음이 분명히 드러난 교회가 선교적교회이고, 성도 한사람 차원에서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이 분명한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이 있어야 선교적교회이다.
짜장면의 제일 중요한 요소는 짜장이다. 짜장면의 본질은 짜장이다.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성도의 삶에서 본질은 복음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것을 알면서도 너무 많은 교회 중심에 복음이 차지하지 않다는 것이다. 교회의 중심은 복음이고 성도의 사명에는 복음이다. 선교적교회는 선교원리를 논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선교적인 삶을 사는 성도들에 의해 구성된 공동체가 선교적교회이다.
선교적인 삶, 복음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모든 성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이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복음에 입각한 성도의 정체성과 사명을 가장 잘 설명하는 성경말씀은 베드로 전서 2:9이라고 생각한다. 전반부에서 성도의 정체성, 후반부에서 성도의 사명을 말하고 있다.
2.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성도의 정체성은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선교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이 4가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정체성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첫째, 택하신 족속이다.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특별히 택하셨는데 선택은 특권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대로 쓰임받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선택을 특권이라고 오해를 많이 한다. 선택을 받은 이유는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대로 쓰임받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지만, 오늘날 교회를 이루는 선교적인 삶을 살기위한 성도라면 택함을 받은 것은 특권을 누리기위해서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받기 위해서 라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둘째, 왕 같은 제사장이다. 왕 같은 권위를 부여받아 당당하게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한다. 제사장은 예배를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도록 인도한다. 영혼구원에서 끝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 영혼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진정한 예배자로 나가고, 그 과정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예배자로 만들어 함께 예배의 자리로 나가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셋째, 거룩한 나라이다. 하나님의 주권(통치) 아래 살아가는 삶은 탁월하게 도덕적으로 분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분리된 사람들, 믿지 않는 사람과 차원이 다른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물론 예수 믿는 사람도 죄 없는 삶을 살 수는 없지만 덜 죄를 짓는 삶을 지향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매일 더욱 성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
넷째,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소유는 ‘세귈라’라는 단어이다. 보물로도 번역된다. 부동산이 아니라 돈이나 보석 같은 동산의 개념이다. 하나님은 세귈라를 손 안에 넣으시고 보호하시지만 하나님의 일을 위해 이동가능한 헌신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보호하시고 귀하게 여기시는데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헌신해서 보내시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선교적인 삶에 대한 4가지 이해가 있다. 첫째, 왜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는지 분명한 자기이해가 있는가? 둘째, 분명한 사명에 대한 이해가 있는가? 구원받은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데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제 예배자로 세움을 받았고 나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예배하는 사람으로 인도해서 더불어 예배를 드리는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셋째,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부르셨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결한 삶을 사는가? 넷째, 분명한 헌신에 대한 이해가 있는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며 이제는 쓰임받기위해 순종할 것인가? 이 4가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상반부에 말씀으로 나온다.
3.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반부에서 성도의 사명을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앞의 정체성을 주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여기 나오는 분명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선포는 예배당에서 선포할 때는 예배가 되고, 교회밖에 나가 선포할 때는 선교가 되는 것이다. 예배자로 모여 예배당에서 선포할 때 그 예배가 흘러넘쳐 나와 교회 밖으로 나가 이제는 선교가 되는 것이다. 선교는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가 있게 하는 것으로 정의를 내릴 때, 예배는 선교를 만들고, 선교는 예배를 낳고, 다시 돌아와 예배는 선교를 낳고 영원한 사이클로 가게 되는 것이다.
존 파이프 목사는 그의 저서에서 “선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직 예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교지에서 선교한다는 것은 선교지에 하나님을 모르고 예배하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배를 넘치게 하다보면 그들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예배자로 세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선교하게 된다. 선교-예배-선교-예배의 영원한 사이클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를 불러주셨다.
4.
그러면 선교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멀리 나가서 선교하는 것도 필요하다. 선교적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할 때, “환대적인 삶”을 살면 좀 더 선교적인 삶으로 나가는 것이다.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내주고 계시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일하고 계신 것을 하나님의 선교라고 말한다. 내가 선교적인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멀리 안가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환대적인 삶을 사는 대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환대적인 삶의 예는 한국의 탈북민들이다. 한국에 탈북자가 3만 명이 넘어가는 시대가 되었다. 북한선교를 말하는데 너무 안타까운 것은 자기 발로 온 사람들만 3만 명인데 한국교회가 얼마나 이분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고 북한선교에 사용하는 에너지 일부를 이들을 환대하는 방향으로 투자한다면 북한선교는 앞날이 달라질 것이다. 한국으로 탈북했다가 탈북인이라고 차별을 받고 캐나다에 다시 온 분들을 여럿 만났다. 어렵게 북한선교를 한다지만 교회가 3만 탈북자들을 가족친족처럼 생각하고 환대한다면 북한선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안타까깝다.
환대적인 삶을 살라. 혹시 하나님께서 뉴저지에는 어떤 사람들을 보내주고 계신가? 그들에게 환대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이며, 선교적인 삶으로 복음을 그들에게 전해야 한다. 요즘 길거리 전도나 가정방문 전도를 하자는 분도 있다. 하나님은 그런 방법도 사용하시지만 요즘은 이단들이 주로 그렇게 전도한다. 이제는 삶을 보여주고 삶을 나누고 삶속으로 들어가는 전도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 선교적인 삶, 환대적인 삶이야 말로 최고의 전도방법이라고 믿는다.
우리교회의 선교적인 삶을 사는 팀을 소개한다. 2년 전에 연락을 받고 시리아 북부 야지디 족 난민을 도우라 제안을 받고 헌신한 그룹이 있다. 성공적인 케이스이다. 하지만 아직 전교인이 그렇게 살기에 갈 길이 멀다. 선교적인 삶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여기저기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조금만 한눈을 팔고 느슨하게 만들면 우리는 다시 옛 모습, 원위치로 돌아간다. 선교적교회, 선교적인 삶의 모습은 안 나오고 그냥 교회를 나오는 목적이 나를 위해서이다. 내가 예배에서 은혜받고, 내 자녀들이 잘 교육받고, 내가 따뜻하게 대우받는 것이 목표가 되며 나를 위한 교회가 된다. 그렇다면 믿지 않은 사람을 위한 교회,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기 어렵다. 오늘 본문을 통해 꼭 기억하라. 이것이 선교적인 삶을 사는 정체성이자 사명이다. 이렇게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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