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 목사 "뉴욕에 기도에 생명을 건 7천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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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 2015-02-0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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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미스교회(김남수 목사)는 2월 6일(금)부터 3일간 최남수 목사(의정부광명교회)를 초청하여 뉴욕 기도자 학교를 열었다. 최 목사는 금/토 저녁과 토요일 낮, 그리고 주일예배를 통해 기도자 학교 교재를 통해 강의를 해 나갔다. 주최 측은 최남수 목사는 기도의 능력으로 출석교인 1만명 교회의 부흥을 이루고, 세계 각국에 기도자 학교를 세워 기도부흥운동을 통해 세계복음화를 앞당기는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남수 목사는 성경에 나오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남은 자 7천명처럼, 기도자 학교를 통해 70개국에 기도자 7천명을 세운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이 비전을 뉴욕에서도 전했다. "이번 뉴욕집회에 올 때 가진 마음은 뉴욕에 기도자 7천명을 세워주셔서 뉴욕이 영적인 도시가 되게 하시고 뉴욕 구석구석마다 있는 죄악과 악한 영들이 예수이름으로 떠나가게 나가게 하소서. 다시 한 번 미국교회의 부흥이 뉴욕 땅에서 시작하게 하시되, 기도자 7천명을 통해서 시작하게 하소서라는 마음이 생겼다. 뉴욕에 7천명의 기도자가 세워지는 기도제목을 지금 받고 있다. 뉴욕에는 세계 최고의 것들이 와 있지만 기도의 전문가들, 기도에 날개를 단 사람들, 기도에 생명을 건 7천명이 뉴욕에 세워지게 하셔서 그들의 기도가 강이 되어 세계로 흘러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최남수 목사는 7일(토) 저녁 집회에서 열왕기상 18:33-35, 38를 본문으로 "기도자는 자신을 제단위에 올려놓는다"라는 과목을 전했다. 최 목사는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는 본문을 통해 엘리야가 드린 제물들을 통해 승리의 비법을 전했다. 다음은 설교 내용이다.
▲설교하는 최남수 목사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제물의 성격을 가진 기도들이 있다. 우리가 예배할 때 헌금을 제물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맞다. 그러나 오늘 예배중에 우리 찬양대가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을 찬양의 제물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찬양을 제물로 받으신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기도한 것이 하나님 앞에 기도의 제물이 될 수 있다. 여러분의 자신을 위한 기도도 하나님이 받으시지만,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 땅에서 여러분들이 제사장적 사명을 가지고 하는 기도를 받으신다. "다른 사람들이 죄를 죄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데 하나님 이 죄를 내가 짊어지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들의 지인 죄를 제사장적인 의미를 가지고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앞에 기도하러 나가겠으니 나의 부족한 기도를 받아주시고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이런 것이 제사장적인 기도이다. 그럴 때 그 기도를 주님이 제물로 받으신다.
본문의 엘리야도 마찬가지이다. 엘리야가 갈멜산에 올라와 제사를 드리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안되면 바로 죽게 된다. 그곳은 그의 마지막 무덤이 될 수도 있다. 담대하게 엘리야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갈멜산이라는 제단에 자기를 올려놓은 것이다. 제가 볼때는 엘리야는 자신을 제물로 바친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 산의 제단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에 자신을 제물로 올려놓으신 것처럼, 갈멜산 제단에 엘리야가 자기를 제물로 올렸다.
우리에게 때로는 결단이 필요하다. 때로는 나를 제물로 올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제물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예수님이 제물이 되셔서 우리대신 죽어주신 것처럼 우리들도 제물노릇을 담당해야 한다. 여러분은 죽을 각오하고 제물로 올려놓으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은 살리신다. 담대하게 때가 오면 민족을 살리기 위해 여러분을 제단위에 올려놓아라. 사자굴 속에 들어갔는데 살아나온 것은 하나님이 살리셨다. 우리는 제단의 제물만 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곳에 불을 내리실 것이고, 다시 살리실 것이다. 이런 패러다임이 성경에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 밤마다 나를 철야기도 하게 하시는 이유를 깨 닫았다. 나를 기도의 제물로 받으신 것이다. 그때부터 저는 사명으로 밤에 기도하기 위해 달려갔다. 나는 기도의 제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완벽한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나는 단지 그 역할을 나눔받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각본대로 끌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느 날 이삭처럼 자기도 모르게 제단에 올려놓아 곧 죽는 것 처럼되다가 갑자기 어린양이 나타난다. 예비된 어린 양이 대신 죽고 살아난다. 그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가 죽어야 하는 그 제단에서 대신 죽으시고 나는 매듭을 풀고 살아난다. 여러분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이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본문의 엘리야에 접근해 보자.
기도자는 제단위의 제물이 다르다. 엘리야의 반대편에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 등 850명이 하루 종일 제사를 드렸는데 왜 하나님이 불을 내리지 않으셨을까? 그들의 제사는 엘라야와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 보았다. 제물이 다르다.
1. 엘리야가 드린 제물은 송아지 제물이다. 누구든지 드리는 보편적인 제물이 송아지이다.
2. 25년동안 이스라엘 선교사를 한 분이 힌트를 준 것인데 갈멜산에 엘리야가 제단에 물을 부었는데 그 물은 희생적인 요소이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물이 귀한데 그런 물을 4통을 부었다. 물은 희생적인 요소이다. 가장 그 시대에 귀한 것을 드린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내 생활에 적용하면서 나는 예배시간에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무엇을 드릴 것인가를 적용해 보았다. 예배속에 희생적인 요소가 있기를 바란다.
3. 믿음 제물이다. 이것이 물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데 그 귀한 물을 4통을 세 번씩 부었는데 물이 너무 부어서 제단에서 물이 흘러서 도랑까지 가득 찼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물을 왜 이렇게 많이 부었을까를 생각해 볼 때 단순하게 엘리야는 기도응답을 받았다. 불이 임할것을 응답받고 믿고 들어갔다. 우리는 먼저 응답을 받고 나간다. 응답을 받으려고 오는 것과 이미 응답을 받고 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예배중에 가장 중요한 제물은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 없다. 불이 임하도록 제단을 쌓는데 그것에다 물을 계속 부으면 물을 끄는 것과 같다. 그런데 불이 임할 것을 믿고 물을 먼저 부은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예배의 핵심은 믿음이다. 가인과 아벨의 예배의 차이는 아벨은 믿음으로 예배로 드렸다. 믿음은 예배의 성공요소이다.
4. 장기간의 고난 제물이 있다. 야고보서 5:17에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이 많은 선교사들을 위로한다. 선교사가 파송된 지 8년이 지나도 열매가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선교지 열매를 계속 물어온다. 그런데 열매가 없이 시간이 지났다. 선교사가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사랑하는 선교사야, 너는 열매를 눈에 보이는 열매로만 생각하느냐. 그 어려운 땅에서 도망가지 않고 8년간 그곳에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열매는 없었지만 8년간 고난을 받고 있었던 장기간 고난 자체가 제물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고난을 받은 연수대로 채워주신다고 하신다. 하나님 앞에는 헛된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패는 사람이 만든 단어이다. 하나님이 그 단어를 사용하신 적이 없다. 성경 어디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종에게 실패했다고 말씀하셨는가. 다시 일어나라. 내가 너를 세우리라고 하시는 멋진 하나님이시다.
5. 목숨이다. 엘리야는 목숨을 제물로 올려드렸다. 개척 담임목회를 해 보면 너무 어렵지만 도와줄 사람이 없다. 마지막 담임목사의 목숨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 나 혼자 남았는데 내가 가진 것은 몸뚱이 하나인데 하나님 이것을 원하십니까? 제 생명을 드리겠습니다"라고 기도하지만 아침이 되니 살아있다. 하나님은 엘리야처럼 여러 사람을 살리신다. 생존하려면 영적인 근력이 있어야 한다. 눈물 흘리고 연단 받아야 한다. 고난과 싸우는 동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 그때 영적인 근력이 생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최남수 목사는 성경에 나오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남은 자 7천명처럼, 기도자 학교를 통해 70개국에 기도자 7천명을 세운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이 비전을 뉴욕에서도 전했다. "이번 뉴욕집회에 올 때 가진 마음은 뉴욕에 기도자 7천명을 세워주셔서 뉴욕이 영적인 도시가 되게 하시고 뉴욕 구석구석마다 있는 죄악과 악한 영들이 예수이름으로 떠나가게 나가게 하소서. 다시 한 번 미국교회의 부흥이 뉴욕 땅에서 시작하게 하시되, 기도자 7천명을 통해서 시작하게 하소서라는 마음이 생겼다. 뉴욕에 7천명의 기도자가 세워지는 기도제목을 지금 받고 있다. 뉴욕에는 세계 최고의 것들이 와 있지만 기도의 전문가들, 기도에 날개를 단 사람들, 기도에 생명을 건 7천명이 뉴욕에 세워지게 하셔서 그들의 기도가 강이 되어 세계로 흘러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최남수 목사는 7일(토) 저녁 집회에서 열왕기상 18:33-35, 38를 본문으로 "기도자는 자신을 제단위에 올려놓는다"라는 과목을 전했다. 최 목사는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는 본문을 통해 엘리야가 드린 제물들을 통해 승리의 비법을 전했다. 다음은 설교 내용이다.
▲설교하는 최남수 목사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제물의 성격을 가진 기도들이 있다. 우리가 예배할 때 헌금을 제물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맞다. 그러나 오늘 예배중에 우리 찬양대가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을 찬양의 제물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찬양을 제물로 받으신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기도한 것이 하나님 앞에 기도의 제물이 될 수 있다. 여러분의 자신을 위한 기도도 하나님이 받으시지만,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 땅에서 여러분들이 제사장적 사명을 가지고 하는 기도를 받으신다. "다른 사람들이 죄를 죄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데 하나님 이 죄를 내가 짊어지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들의 지인 죄를 제사장적인 의미를 가지고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앞에 기도하러 나가겠으니 나의 부족한 기도를 받아주시고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이런 것이 제사장적인 기도이다. 그럴 때 그 기도를 주님이 제물로 받으신다.
본문의 엘리야도 마찬가지이다. 엘리야가 갈멜산에 올라와 제사를 드리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안되면 바로 죽게 된다. 그곳은 그의 마지막 무덤이 될 수도 있다. 담대하게 엘리야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갈멜산이라는 제단에 자기를 올려놓은 것이다. 제가 볼때는 엘리야는 자신을 제물로 바친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 산의 제단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에 자신을 제물로 올려놓으신 것처럼, 갈멜산 제단에 엘리야가 자기를 제물로 올렸다.
우리에게 때로는 결단이 필요하다. 때로는 나를 제물로 올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제물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예수님이 제물이 되셔서 우리대신 죽어주신 것처럼 우리들도 제물노릇을 담당해야 한다. 여러분은 죽을 각오하고 제물로 올려놓으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은 살리신다. 담대하게 때가 오면 민족을 살리기 위해 여러분을 제단위에 올려놓아라. 사자굴 속에 들어갔는데 살아나온 것은 하나님이 살리셨다. 우리는 제단의 제물만 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곳에 불을 내리실 것이고, 다시 살리실 것이다. 이런 패러다임이 성경에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 밤마다 나를 철야기도 하게 하시는 이유를 깨 닫았다. 나를 기도의 제물로 받으신 것이다. 그때부터 저는 사명으로 밤에 기도하기 위해 달려갔다. 나는 기도의 제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완벽한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나는 단지 그 역할을 나눔받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각본대로 끌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느 날 이삭처럼 자기도 모르게 제단에 올려놓아 곧 죽는 것 처럼되다가 갑자기 어린양이 나타난다. 예비된 어린 양이 대신 죽고 살아난다. 그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가 죽어야 하는 그 제단에서 대신 죽으시고 나는 매듭을 풀고 살아난다. 여러분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이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본문의 엘리야에 접근해 보자.
기도자는 제단위의 제물이 다르다. 엘리야의 반대편에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 등 850명이 하루 종일 제사를 드렸는데 왜 하나님이 불을 내리지 않으셨을까? 그들의 제사는 엘라야와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 보았다. 제물이 다르다.
1. 엘리야가 드린 제물은 송아지 제물이다. 누구든지 드리는 보편적인 제물이 송아지이다.
2. 25년동안 이스라엘 선교사를 한 분이 힌트를 준 것인데 갈멜산에 엘리야가 제단에 물을 부었는데 그 물은 희생적인 요소이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물이 귀한데 그런 물을 4통을 부었다. 물은 희생적인 요소이다. 가장 그 시대에 귀한 것을 드린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내 생활에 적용하면서 나는 예배시간에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무엇을 드릴 것인가를 적용해 보았다. 예배속에 희생적인 요소가 있기를 바란다.
3. 믿음 제물이다. 이것이 물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데 그 귀한 물을 4통을 세 번씩 부었는데 물이 너무 부어서 제단에서 물이 흘러서 도랑까지 가득 찼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물을 왜 이렇게 많이 부었을까를 생각해 볼 때 단순하게 엘리야는 기도응답을 받았다. 불이 임할것을 응답받고 믿고 들어갔다. 우리는 먼저 응답을 받고 나간다. 응답을 받으려고 오는 것과 이미 응답을 받고 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예배중에 가장 중요한 제물은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 없다. 불이 임하도록 제단을 쌓는데 그것에다 물을 계속 부으면 물을 끄는 것과 같다. 그런데 불이 임할 것을 믿고 물을 먼저 부은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예배의 핵심은 믿음이다. 가인과 아벨의 예배의 차이는 아벨은 믿음으로 예배로 드렸다. 믿음은 예배의 성공요소이다.
4. 장기간의 고난 제물이 있다. 야고보서 5:17에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이 많은 선교사들을 위로한다. 선교사가 파송된 지 8년이 지나도 열매가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선교지 열매를 계속 물어온다. 그런데 열매가 없이 시간이 지났다. 선교사가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사랑하는 선교사야, 너는 열매를 눈에 보이는 열매로만 생각하느냐. 그 어려운 땅에서 도망가지 않고 8년간 그곳에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열매는 없었지만 8년간 고난을 받고 있었던 장기간 고난 자체가 제물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고난을 받은 연수대로 채워주신다고 하신다. 하나님 앞에는 헛된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패는 사람이 만든 단어이다. 하나님이 그 단어를 사용하신 적이 없다. 성경 어디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종에게 실패했다고 말씀하셨는가. 다시 일어나라. 내가 너를 세우리라고 하시는 멋진 하나님이시다.
5. 목숨이다. 엘리야는 목숨을 제물로 올려드렸다. 개척 담임목회를 해 보면 너무 어렵지만 도와줄 사람이 없다. 마지막 담임목사의 목숨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 나 혼자 남았는데 내가 가진 것은 몸뚱이 하나인데 하나님 이것을 원하십니까? 제 생명을 드리겠습니다"라고 기도하지만 아침이 되니 살아있다. 하나님은 엘리야처럼 여러 사람을 살리신다. 생존하려면 영적인 근력이 있어야 한다. 눈물 흘리고 연단 받아야 한다. 고난과 싸우는 동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 그때 영적인 근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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