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춘목사 파워인터뷰, 하나님의 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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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 2005-04-2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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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넷은 퀸즈장로교회 담임목사,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한인조직 대표 대회장,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인 장영춘 목사와 만나 해당 현안과 목회철학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제20회 세계한인목회자세미나가 일본에서 열렸는데
미주크리스천신문이 주최하는 세미나는 처음에는 소규모로 했지만 이제 세계적인 세미나로 성장했다. 작년의 주제는 "예배가 살면 교회가 산다"였으며 올해의 주제는 "교육이 바로 되면 교회가 산다"이다. 세미나의 좋은 점은 일 년에 한번 모이면서도 하나의 포커스를 가지고 각각 다른 강사가 진행하기 때문에 지루함이 없고 비용에 있어서도 효율적이다. 참여자들이 처음에는 피곤하다고 불평했지만 대회가 진행될수록 빨려 들어간다.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사람의 숫자가 같다.
강사는 목회에 성공한 목회자로 이론가가 아니라 실제로 목회를 하시는 분 위주로 세운다. 대부분 성공한 스토리 위주로 진행되지만 나는 실패한 이야기를 먼저 한다. 그것이 오히려 인기가 있어 테이프로 많이 팔렸다. 세미나를 3-4년 주재하니까 한국대형교회에서 세미나를 욕심을 냈다. 내년에는 밴쿠버에서 내후년에는 서울에서 대회가 열린다. 세미나에 참석하는 인원중 250-300명 정도는 늘 오는 단골 참석자들이다. 이번 세미나에 28명의 강사를 세웠는데 서로 하려고 한다.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인데...
13년째 신문을 만들고 있다. 처음 발행인이 되고 돈이 없어 한 달에 한두 번 나간적도 있었다. 신문은 강제로 나에게 넘어온 식이었다. 1년만할려고 했는데 13년이 지났다. 신문은 자비량은 참으로 어렵다. 처음 신문을 하고 이단 등에서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현재 45개국에 신문이 나가고 있다. 남미에 여행가서 그곳에서도 신문이 올바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보고 신문발행을 결사코 반대하던 사모가 더 이상 반대하지 않게 되었다. 신문의 영향으로 디트로이트, 오하이오에서도 신학생이 온다.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한인조직 대표 대회장으로서 한 말씀...
빌리그램대회 대회장으로 맡아 달라고 연락이 왔다. 여러 일정들이 바쁘지만 다른것도 아니라 전도하는 것이라 승낙했다. 작년에는 LA에서 전도대회를 했다 히스패닉과 한인들은 기독교에 대한 깊이가 깊다. 어떤 사람은 전도대회를 비지니스적으로 한탕하려고 하다가 대회 본부로부터 경고장을 두 번이나 먹었다. 뉴욕, 뉴저지 각 교회들은 기도로 대회를 준비를 해야 한다. 남의 일이 아니라 모든 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전도대회는 안 믿는 사람의 전도가 포커스이다. 바로 안드레 작전이다. 전도하는 것을 우리일 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전도대회가 한인최대잔치인 추석잔치를 하는 곳에서 열린다. 부시대통령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를 시작하게 된 경위는?
1972년 뉴저지에 뉴저지장로교회(현 김창길 목사)를 창립했다. 1년 반 만에 150-200명의 교회로 급성장했다. 뉴욕에 심방예배에 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 집 성도가 계속하여 교회를 세우자고 요청해 왔다. 뉴욕과 뉴저지에서 동시에 예배를 드리게 됐는데 뉴욕에는 40명정도가 가정예배를 드렸다. 뉴저지는 초신자 중심인 반면 뉴욕은 오래된 신자가 많아 헌금에 있어서는 비슷했다. 74년 6월 뉴욕에서 퀸즈장로교회를 창립하고 뉴욕에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다.
목회 스타일을 말씀해 달라
사실 나는 능력이 없다. 큰 교회할 생각도 못했다. 교육목회 중심으로 차분히 사역을 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했고, 단지 나는 하나님의 심부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당시 뉴욕에는 기라성 같은 많은 선배 목회자들이 있었다. 나는 메뚜기같이 초라한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만큼 오게 됐다.
성도들은 나를 한번 한다고 하면 부도를 내지 않고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워한다.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건 사람들도 많았지만 치밀하게 일을 진행시켜 그일을 성공시켜냈다. 77년 250-300명 정도의 성도가 있을 때 줄리아드 강당을 빌러 메시야공연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하지만 정원이 1100명인데 1300명 이상이 모였다. 공연은 더 확대되어 한인최초로 퀸즈칼리지 콜든센터를 빌려 만원 공연을 했고, 이제는 카네기홀에서 공연하게 되었다. 집회에 300명이상 모인 적이 없다는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1400명이 모여 메시야 공연하던 생각이 생생하다.
퀸즈장로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퀸즈장로교회는 성경말씀을 많이 아는 교회이다. 성경암송대회를 성황리에 열곤했다. 퀸즈장로교회는 무엇보다 "교육과 예배"에 전력을 기울이는 교회이다. 많은 사람들이 퀸즈장로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감탄한다. 주일학교도 유명하다. 10년 전부터는 교육과 예배에 순복음 이상의 뜨거운 기도의 열기까지 더했다.
생각하시는 목회자 상을 말씀해 달라
신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에게 나는 3가지 목회자의 조건을 이야기한다. 디모데 후서 2장 15절의 말씀처럼 진리인 말씀을 전하는 능력이 우선 있어야 한다. 둘째 인격적으로 부끄럽지 않고 이름만이 아닌 생활이 경건하여 부인과 자녀에게 존경받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는 아무리 잘나도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누구든지 은사는 있다. 어느 자리에 있던지 생명을 다 바쳐 최선을 다하라.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부지런함도 필요하다.
목회하다 어려운 점도 많았을텐데...
자는 날보다는 못 자던 날이,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은 개척의 시절이 있었다. 교인과 하나님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플러싱에 있는 270불짜리 지하실 아파트에서 11년을 살았다. 햇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서 악착같이 살았다. 그렇게 1년을 사역하니 장로 9분이나 교회로 오셨다. 개척 3년째 되는 해에 교회내의 분위기를 해치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려고 하자 교인들에게 확실한 "Goal"을 제시하고 그것을 가지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신가?
존경하는 목사님은 총신대 학장이셨던 박형용 목사이다. 사람이 되라. 학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는 그분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분은 성자이면서 학자이신 분이다.
뉴욕교계에 한 말씀?
뉴욕교계는 투명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공기관의 책임을 맞고 있는 분들은 더 그렇다. 어영부영해서는 안 되고 책임지지 않을 일을 하면 안된다. 교협은 사업하는 곳이 아니다. 궤도에서 벗어나니까 문제가 일어난다. 음악회를 열고 선교기금을 모으는 것은 교단에서 해야할 일이다. 어려울수록 법대로 해야 한다. 목회자는 자기교회를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억에 남는 성도는?
교회당 건축을 할 때였다. 교육을 하기위한 장소가 필요했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여성도회에서 나서서 건축 바자회를 열었다. 어느 날 한 성도로 부터 심방요청이 있어 그 가정을 방문했다. 30살에 딸 넷을 둔 과부였다. 그녀는 교회건축을 위해 1백만 불을 헌금할 장로가 교회에 오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네가 그것을 담당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단다. 바느질해서 가난하게 사는 여성도는 건축헌금을 낼 여유가 없자 5시간씩 오버타임을 해서 2달치 일한 임금을 모아 건축성금을 냈다. 여성도는 교회당을 완공할 때까지 오버타임 하겠다고 말했다. 눈물이 났다. 다섯 가족의 손을 성경위에 모아 놓고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넘쳐흘렀다. 교회에 와서 이일을 광고하니 숙연해지고 예배당건축의 열기를 일어나게 되었다. 밀알이 된 것이다. 덕분에 퀸즈장로교회는 뉴욕에서 제일 먼저 건축한 교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교회를 짓고 언론에게 집중적으로 포화를 맞았다. 언론은 교회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데 좋은 일들도 긍정적으로 부각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교포사회는 교회와 세상을 같이 볼려는 경향이 있다. 교회는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는 곳이다. 헌금은 그 목적에 맞게 교육과 구제 등에 사용해야 한다. 교회에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목회자들은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기도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2005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제20회 세계한인목회자세미나가 일본에서 열렸는데
미주크리스천신문이 주최하는 세미나는 처음에는 소규모로 했지만 이제 세계적인 세미나로 성장했다. 작년의 주제는 "예배가 살면 교회가 산다"였으며 올해의 주제는 "교육이 바로 되면 교회가 산다"이다. 세미나의 좋은 점은 일 년에 한번 모이면서도 하나의 포커스를 가지고 각각 다른 강사가 진행하기 때문에 지루함이 없고 비용에 있어서도 효율적이다. 참여자들이 처음에는 피곤하다고 불평했지만 대회가 진행될수록 빨려 들어간다.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사람의 숫자가 같다.
강사는 목회에 성공한 목회자로 이론가가 아니라 실제로 목회를 하시는 분 위주로 세운다. 대부분 성공한 스토리 위주로 진행되지만 나는 실패한 이야기를 먼저 한다. 그것이 오히려 인기가 있어 테이프로 많이 팔렸다. 세미나를 3-4년 주재하니까 한국대형교회에서 세미나를 욕심을 냈다. 내년에는 밴쿠버에서 내후년에는 서울에서 대회가 열린다. 세미나에 참석하는 인원중 250-300명 정도는 늘 오는 단골 참석자들이다. 이번 세미나에 28명의 강사를 세웠는데 서로 하려고 한다.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인데...
13년째 신문을 만들고 있다. 처음 발행인이 되고 돈이 없어 한 달에 한두 번 나간적도 있었다. 신문은 강제로 나에게 넘어온 식이었다. 1년만할려고 했는데 13년이 지났다. 신문은 자비량은 참으로 어렵다. 처음 신문을 하고 이단 등에서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현재 45개국에 신문이 나가고 있다. 남미에 여행가서 그곳에서도 신문이 올바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보고 신문발행을 결사코 반대하던 사모가 더 이상 반대하지 않게 되었다. 신문의 영향으로 디트로이트, 오하이오에서도 신학생이 온다.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한인조직 대표 대회장으로서 한 말씀...
빌리그램대회 대회장으로 맡아 달라고 연락이 왔다. 여러 일정들이 바쁘지만 다른것도 아니라 전도하는 것이라 승낙했다. 작년에는 LA에서 전도대회를 했다 히스패닉과 한인들은 기독교에 대한 깊이가 깊다. 어떤 사람은 전도대회를 비지니스적으로 한탕하려고 하다가 대회 본부로부터 경고장을 두 번이나 먹었다. 뉴욕, 뉴저지 각 교회들은 기도로 대회를 준비를 해야 한다. 남의 일이 아니라 모든 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전도대회는 안 믿는 사람의 전도가 포커스이다. 바로 안드레 작전이다. 전도하는 것을 우리일 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전도대회가 한인최대잔치인 추석잔치를 하는 곳에서 열린다. 부시대통령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를 시작하게 된 경위는?
1972년 뉴저지에 뉴저지장로교회(현 김창길 목사)를 창립했다. 1년 반 만에 150-200명의 교회로 급성장했다. 뉴욕에 심방예배에 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 집 성도가 계속하여 교회를 세우자고 요청해 왔다. 뉴욕과 뉴저지에서 동시에 예배를 드리게 됐는데 뉴욕에는 40명정도가 가정예배를 드렸다. 뉴저지는 초신자 중심인 반면 뉴욕은 오래된 신자가 많아 헌금에 있어서는 비슷했다. 74년 6월 뉴욕에서 퀸즈장로교회를 창립하고 뉴욕에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다.
목회 스타일을 말씀해 달라
사실 나는 능력이 없다. 큰 교회할 생각도 못했다. 교육목회 중심으로 차분히 사역을 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했고, 단지 나는 하나님의 심부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당시 뉴욕에는 기라성 같은 많은 선배 목회자들이 있었다. 나는 메뚜기같이 초라한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만큼 오게 됐다.
성도들은 나를 한번 한다고 하면 부도를 내지 않고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워한다.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건 사람들도 많았지만 치밀하게 일을 진행시켜 그일을 성공시켜냈다. 77년 250-300명 정도의 성도가 있을 때 줄리아드 강당을 빌러 메시야공연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하지만 정원이 1100명인데 1300명 이상이 모였다. 공연은 더 확대되어 한인최초로 퀸즈칼리지 콜든센터를 빌려 만원 공연을 했고, 이제는 카네기홀에서 공연하게 되었다. 집회에 300명이상 모인 적이 없다는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1400명이 모여 메시야 공연하던 생각이 생생하다.
퀸즈장로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퀸즈장로교회는 성경말씀을 많이 아는 교회이다. 성경암송대회를 성황리에 열곤했다. 퀸즈장로교회는 무엇보다 "교육과 예배"에 전력을 기울이는 교회이다. 많은 사람들이 퀸즈장로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감탄한다. 주일학교도 유명하다. 10년 전부터는 교육과 예배에 순복음 이상의 뜨거운 기도의 열기까지 더했다.
생각하시는 목회자 상을 말씀해 달라
신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에게 나는 3가지 목회자의 조건을 이야기한다. 디모데 후서 2장 15절의 말씀처럼 진리인 말씀을 전하는 능력이 우선 있어야 한다. 둘째 인격적으로 부끄럽지 않고 이름만이 아닌 생활이 경건하여 부인과 자녀에게 존경받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는 아무리 잘나도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누구든지 은사는 있다. 어느 자리에 있던지 생명을 다 바쳐 최선을 다하라.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부지런함도 필요하다.
목회하다 어려운 점도 많았을텐데...
자는 날보다는 못 자던 날이,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은 개척의 시절이 있었다. 교인과 하나님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플러싱에 있는 270불짜리 지하실 아파트에서 11년을 살았다. 햇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서 악착같이 살았다. 그렇게 1년을 사역하니 장로 9분이나 교회로 오셨다. 개척 3년째 되는 해에 교회내의 분위기를 해치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려고 하자 교인들에게 확실한 "Goal"을 제시하고 그것을 가지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신가?
존경하는 목사님은 총신대 학장이셨던 박형용 목사이다. 사람이 되라. 학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는 그분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분은 성자이면서 학자이신 분이다.
뉴욕교계에 한 말씀?
뉴욕교계는 투명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공기관의 책임을 맞고 있는 분들은 더 그렇다. 어영부영해서는 안 되고 책임지지 않을 일을 하면 안된다. 교협은 사업하는 곳이 아니다. 궤도에서 벗어나니까 문제가 일어난다. 음악회를 열고 선교기금을 모으는 것은 교단에서 해야할 일이다. 어려울수록 법대로 해야 한다. 목회자는 자기교회를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억에 남는 성도는?
교회당 건축을 할 때였다. 교육을 하기위한 장소가 필요했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여성도회에서 나서서 건축 바자회를 열었다. 어느 날 한 성도로 부터 심방요청이 있어 그 가정을 방문했다. 30살에 딸 넷을 둔 과부였다. 그녀는 교회건축을 위해 1백만 불을 헌금할 장로가 교회에 오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네가 그것을 담당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단다. 바느질해서 가난하게 사는 여성도는 건축헌금을 낼 여유가 없자 5시간씩 오버타임을 해서 2달치 일한 임금을 모아 건축성금을 냈다. 여성도는 교회당을 완공할 때까지 오버타임 하겠다고 말했다. 눈물이 났다. 다섯 가족의 손을 성경위에 모아 놓고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넘쳐흘렀다. 교회에 와서 이일을 광고하니 숙연해지고 예배당건축의 열기를 일어나게 되었다. 밀알이 된 것이다. 덕분에 퀸즈장로교회는 뉴욕에서 제일 먼저 건축한 교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교회를 짓고 언론에게 집중적으로 포화를 맞았다. 언론은 교회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데 좋은 일들도 긍정적으로 부각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교포사회는 교회와 세상을 같이 볼려는 경향이 있다. 교회는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는 곳이다. 헌금은 그 목적에 맞게 교육과 구제 등에 사용해야 한다. 교회에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목회자들은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기도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2005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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