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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데스바네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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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200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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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데스바네아'의 비밀

`가데스'란 「거룩한」 또는 「성별된」이라는 뜻이며, 팔레스틴에는 `가데스' 또는 `게데스'라는 이름의 도시가 많습니다. `바네아'란 이 가데스를 다른 많은 가데스로부터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일 것이라고도 하며, '바네아'란 말의 뜻은 분명치가 않습니다. 이 '가데스바네아'는 바란 광야에 있는 한 오아시스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진을 치고 가장 오래 머물러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가데스바네아'에서 약속의 땅까지는 불과 3일 거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을 곧바로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가데스바네아'에 머무르게 하셔야만 했던가? 하는 것입니다. 이 비밀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크게 낙심하거나 좌절하여 넘어질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데스바네아'는 현실과 믿음 사이에 결단을 요구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민수기 13장, 32: 8절 참조)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한 후, 바란 광야의 '가데스바네아'에 진을 쳤고, 거기서 모세는 각 지파에 한 명씩 12명을 선출해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오라고 보내었습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12 정탐꾼들의 보고는 대단했습니다. 가나안 땅의 포도 송이가 얼마나 컸던지, 포도 한 송이를 장대에 꿰어 장정 둘이서 어깨에 메고 돌아왔습니다(민13: 23절).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풍요로운 땅을 보고 돌아온 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이 본 가나안 땅은 풍요롭고 기름진 땅임에는 분명했지만, 그곳에는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장대한 거인과 자신들을 비교해 보니까, 두려움이 몰려왔던 것 같습니다. 그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은 마치 메뚜기같이 작아 보였다고 성경(민13: 33절 참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어서 자신들이 탐지하고 돌아온 아름다운 땅을 오히려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악평했습니다(13: 32-33절 참조). 그것이 그들이 육신의 안목으로 바라보게 된 현실의 실체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지요, 힘과 힘으로 대결해서 그 땅을 빼앗아야만 한다면, 당연히 몸집이 더 큰 사람의 힘이 더 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현실만 바라본다면 낙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곳이 어딥니까? ‘가데스 바네아’입니다. ‘가데스바네아’ ‘하나님의 성소’ 하나님께서 계신 거룩한 곳입니다.

이스라엘 열명의 정탐꾼들은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현실 위에 계시면서 현실을 주도하고 계신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대신, 현실만을 바라보았고 그런 그들은 '믿음의 역군이었다' 라는 빛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자리에서 탈락, 육신의 사람이요, 실패자란 이름으로 천추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기고 만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서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이나 메마른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다 죽어가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게 된 이유는 가나안 정탐 사십일 동안, 불신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사십년 동안 메마른 광야를 헤매고 다녀야만 했습니다(민14: 33-34절 참조). 이것이 가데스바네아의 비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거나 인생을 살아 나갈 때, 영적인 광야의 '가데스바네아'를 만날 때가 많습니다. 현실을 바라볼 것이냐, 아니면 현실 위에 계시면서 현실을 주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것이냐? 신앙의 결단을 요구하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 신앙은 결단입니다!!

굳이 신앙생활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여정 길에는 결단을 요구하는 곳이 군데군데 놓여져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최근 우리나라에는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싯점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저 안타깝고 참담한 마음으로 유족과 국가를 위해서 기도할 따름입니다. 그분 나름대로 힘겹고 어려운 문제를 만났던 것이고, 그 문제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메뚜기 자화상을 그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떠난 사람을 애도하는 마음이야 크지만, 애도하는 마음을 넘어서 자살한 사람을 너무 영웅화 시키지 말아야 할 것은, 청소년들의 모방 자살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여정 길은 늘 평탄한 곳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험준한 굴곡의 길, 눈물의 길, 가시밭 길을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가는 길에,바싹 메마른 광야를 만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철통같은 여리고 성이 앞을 가로막는 것 같이 답답할 때도 있고, 때로는 넘실거리는 홍해가 앞을 가로 막는 것같은 위기의식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편안하다 안전하다 가르치는 자들은 모두 거짓 교사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복 받고 잘 살자고 꼬드기는 번영신학에 물든 거짓 교사들을 삼가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앞서 간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다 불 시험, 물 시험, 사자 굴같은 어려움을 만났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기고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성도라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달게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수 많은 순교자들의 흘린 피로 다져진 터 위에서 신앙생활의 바톤을 이어 받아 뛰고 있는 주자들입니다. 우리는 아직 안전한 포구에 이른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거듭되는 난제에 난제를 만나 끙끙거리기도 하고, 심한 태풍을 거스르며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눈동자처럼 사랑하며 아끼시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가데스바네아'로 인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에게 믿음의 결단을 요구하시는 환경으로 이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거대한 아낙 자손같은 문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현실만 바라보고, 메뚜기 자화상이나 그리고 앉아 있으면 안됩니다.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는 현실에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홍해도 건너고, 요단 강도 건너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풀무 불과 같은 시련도 만나고, 다니엘처럼 금방이라도 굶주린 사자의 이빨에 찢겨 죽을 것만 같은 절박함도 통과해야 합니다. 그 후에 주께서 약속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약1:12절 참조).

현실을 바라보고 낙심하여 주저 앉을 것이냐, 현실 위에 계시는 그분의 얼굴을 구할 것이냐? 믿음의 결단을 내리는 것, 이것이 곧 '가데스바네아'의 비밀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 1-3절 상반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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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ok 

2009-05-27 16:51
 24.xxx.132
  시인들이 싯구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듯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구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나 봅니다. 누지문서님의 댓글에
 성경말씀으로 화답하는 별똥별님의 인용성구가
 어찌 그리 시기적절한지 읽고 또 읽어 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 눈에는 어리석고 비현실적이고 고리타분한
 소신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분별하고 해법을 찾아 말씀을 주신 이에게 기도함으로
 문제해결을 받는 원리를 아는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언약적 말씀과
 사람의 이성적 감성적 논리를 혼합하여 먹으라 주지 않고
 섞어 직조하여 내놓고 팔지 않지요.

삶에 지쳐 강팍하고 야박한 습성을 아직 못 버린 수준 낮은 교인들을
 실질적으로 품고 인도하여 가는 분은 선한 목자되신 우리 예수님이지
 그 교인들을 타고 나팔불며  세상 둘러보고 관심가질 것 다 가져가며
 세속적으로  할 말 다해가며 하나님의 종으로 자처하는 목회자들이
 아닙니다.

선지자 노릇하다가 주님에게 외면당한 사람들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목사노릇, 그리스도인 노릇할 가능성이 있는 우리 모두에게 경고가
 되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죽음과 심판 그 사이에서 목회자가 죽은 자의 영혼의 갈 바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미 그 영혼의 갈 바가 정해진 죽은 자를 위해서는  죽은 자의 생의
 업적을 기리고 추억하고 애도하는 인간적 정, 예의 선에서 그쳐야 합니다.

편협한 공정심과 동정심을 비 기독교적 논리와
 결부시켜 죽은 자의 정치적 입장을 변호하고 그의 넋을 기리고 명복을
 빌어주는 대신 아직 호흡이 붙어있는 자들의 영혼과 지도자들의
 바른치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오늘도 그들에게 줄 영적인 양식,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도 ,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는데 더
 열심을 품는 모습이 교회내에 아멘넷에 가득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시작은 광야였던 것 같은데 오다 보니 뉴욕 ㅎㅎ.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팍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히 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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