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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터가 흔들리고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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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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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렵게 되는 것은 식량과 에너지가 부족하여 그 값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세계의 식량과 에너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정책 때문에 식량 생산과 에너지 개발 그리고 그것들을 공급하는 무역에 차질을 빚게 되었기 때문에 세계 경제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동의 산유국이 정상적으로 석유와 천연 가스를 생산하고 정상적인 무역을 통해 공급한다면 세계가 쓰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에너지 생산을 방해하는 것이 소위 환경정책인데 지금 유엔을 비롯한 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의 환경 정책은 극단적인 위기 환경론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유럽을 비롯한 미국은 소위 환경 음모론의 영향으로 에너지 생산이 엄청나게 감소되고 이산화 탄소 배출에 대한 지나친 규제로 기업들의 생존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의무이고 책임이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한경을 보호하는 정책으로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지나친 환경 정책 때문이고 그 결과 가난한 나라와 저소득 근로자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환경 위기론은 마치 사이비 종말론처럼 그 근거가 너무나 비과학적입니다. 정직한 기후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에 의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지구의 기온이 급변하여 종말이 온다는 주장은 잘못된 과학적 근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자원을 아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그것을 근거로 환경 종말론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환경을 보호하려는 것으로 인류에게 재앙을 초래하는 일입니다.

이미 잘못된 환경론의 영향으로 전 세계는 재앙 수준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나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가능하면 전기 한 등이라도 덜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물 한 방울이라도 아껴 쓰기 위해 심지어 호텔에 머물 때도 물을 아껴 사용하지만 극단적인 환경 종말론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을만큼 대의명분이 분명한 환경보호의 어젠다를 사악한 무신론자들이 적극적으로 악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릇된 환경론 때문에 어려운 경제가 러-우 전쟁으로 더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릇된 환경론도 경제를 망치지만 전쟁에 대한 그릇된 이해와 대응도 경제를 망칩니다. 러-우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전쟁 원인을 러시아에게 돌리고 러시아에 대하여 외교와 경제제재를 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부추겨 러시아를 혼내 주어야 한다는 스텐스를 취하며 전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그렇게 치명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는데 경제 제재를 가하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말할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옛말에 남을 해하기 위해 바위를 걷어차면 자기 발만 깨어진다고 했는데, 냉전이 끝난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경제 제재와 군사적 위협으로 많은 약한 나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 같이 에너지와 식량 자원이 풍부한 큰 나라를 상대하여 그같은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서방 국가들이 지금까지 견지해 온 위기 환경론을 포기 하는 것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머지 않아 세계 경제는 회복하기가 쉽지 않는 지경까지 떨어질까 걱정입니다.

인간의 복지를 생각할 때 경제가 어려운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치 질서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치 질서는 윤리나 도덕이 건전해야 세워지는데 윤리나 도덕의 토대는 절대자 하나님과 그분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철학자들도 도덕을 위하여 가정(假定)으로서의 하나님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현대 무신론자들은 가정으로서의 하나님의 존재도 부정하기 때문에 도덕이나 가치 질서는 여지 없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의 사악한 무신론자들은 가치 질서와 도덕을 허물기 위해 전통적인 가정을 해체하려고 합니다. 혼인과 가정의 제도는 인간이 창안하여 세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를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혼인을 통하여 가정이 세워지고 가정을 통하여 가치 질서와 도덕이 세워집니다. 거룩한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육체로 연합하는 신비로운 제도입니다. 이 거룩한 혼인의 제도를 통하여 가정이 세워지고 그 가정을 통하여 가치 질서와 참된 권위가 나옵니다. 어린아이가 가정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배우고, 가치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들을 통해서는 인간에게 진정으로 유익한 가치와 윤리 도덕이 나올 수 없음을 무신론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자들에 의해 초등학교에서 도덕 과목이 삭제되었습니다. 미국의 초등학교에서도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에 대하여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하여 각자가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절대 선이 없기 때문에 각자가 느끼기는 것이 선이고 정의입니다. 미국의 거의 모든 공립학교에서 이러한 교과 과정을 통해 우리들의 자녀들이 무신론자로 교육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정체성이 허물어지고 있음에도 대통령은 그것이 정상이고 당연한 것처럼 눈곱만큼도 안타까워 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미국의 대통령이라면 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정체성이 허물어지는 것을 안타가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그러한 가치의 토대 위에 이 나라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도 그 시대인이라는 한계 때문에 계시 이해에 대한 한계와 완전하지 않은 철학과 사상을 지나치게 수용하는 우를 범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건국의 이념에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 대한 나름의 바른 가치와 사상이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소중하게 지켜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들을 강조하여 가르치는 곳이 없습니다. 초등학교에서도 대학교에서도 전통적인 가정의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가정의 절대 조건인 남자와 여자의 구별을 철폐하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혼인의 제도도 바꾸어 '두 사람의 결합'으로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정직하게 믿는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바꿔진 결혼과 가정의 정의와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면 범법자가 됩니다. 실제로 동성 결혼 주례를 거부한 목사가 고소를 당하고, 동성애자를 성가대원에서 제외시켜서 고소를 당하기도 합니다. 동성 결혼 케익 제작을 거부한 제과점 주인이 고소를 당하여 엄청난 벌금을 물고 곤욕을 치른 사건을 우리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전통적인 가정과 결혼이 옳다고 주장하면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왕따를 당합니다. 또한 전통적인 국가관에서 국경이 없는 국가를 상상할 수 없지만 미국에서는 일부이긴 하지만 국경이 무너졌습니다. 무너진 그 곳으로 불법으로 외국인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나라 미국에 들어오려면 방문으로 오든지 살려고 오든지 합법적 절차를 통해 들어와야 합니다. 미국에 들어오는 것을 규제하는 법이 있음에도 그 법이 집행되지 않습니다. 법을 집행해야 할 대통령과 행정부가 그 법을 어기고 불법 입국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정과 교회와 국가가 흔들리고 무너져가고 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지도자를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벧후 2:6-8)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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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ㅂㄷㄱ의 첫번째 깨달음 : 이제부터는 가끔 제목을 붙여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게시판을 사용 못하니까 목사님들의 글들을 빌려 댓글로 글을 쓰겠습니다. 특히 제가 다니는 교회의 1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가 이 교회에서 받은 네가지 큰 깨달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지는 않지만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나누고 싶은 말들도 너무 많고 그동안 받은 은혜도 많아서 이렇게라도 씁니다. (서론이 넘 길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께 배운 것이 참 많은데 그 중 네가지 정도는 정말 귀가 번쩍 뜨이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영어로는 eye-opening이라 하나요?) 먼저 4-5년쯤 전에 설교시간에 배운, "이 땅에서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죽어서 예수님과 반갑게 만나 천국에 갈 것인가"하는 가르침이 제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평소에 아는 척도 안하고 이야기도 나누지 않은, 그저 이름만 알거나 인사만 하던 사이와 나중에 만나 영원히 살게 된다면요? 죽자마자 예수님을 찾아 친한 척(?)을 해야 할텐데 막상 예수님이 '나는 널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한다면요? 저는 그 전에는 이 땅에서 예수님과 교제한다는 것을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크게 관심을 안가졌었지만 사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땅에서 예수님과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교회에는, 예수님을 그저 내 자식, 내 사업, 내 가정에 복주시는 (혹은 복 주셔야만 하는) 존재로만 인식하고 주일에만 교회를 잘 다니면 그 복이 유지될거라는 착각속에 사는 성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하나의 인격체와의 교제라기 보다는 그저 내 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는 도구(?)로 느끼는 거지요. 사실 거의 모든 다른 종교들은 '내가 뭔가를 주면 그 답례로 복을 받는다'는 교리를 알게 모르게 가르칩니다. 불교의 삼천배라던가, 정화수 떠놓고 정성들이넌 것, 복채를 두둑히 주며 굿을 하는 것 등등 모두 인격적인 교제가 필요없는 행위들입니다. 내가 너에게 절하고 칭찬(?)해줄테니 너는 내게 복을 내려라 하는 그런 종교적인 마음을 교회에서 하나님께 그대로 적용하는 거지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없이 막연히 '내가 이렇게 열심히 교회일하고 또 믿는다고 외치니 나는 천국가겠지'하는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 그 중 몇사람이나 천국을 갈 수 있을까요? 훗날 예수님 앞에 서게 되어서야 '그동안 내 마음은 내자식, 내가족, 내사업이 꽉차서 예수님이 있지 않았구나. 예수님을 위한 믿음이 아니라 나 자신만을 위한 믿음이었구나'를 깨닫게 되고 예수님이 난 널 모른다 하시면 그땐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제게는 정말로 놀라운 가르침이었었습니다.

말주변님의 댓글

말주변

"죽자마자 예수님을 찾아 친한 척(?)을 해야 할텐데 막상 예수님이 '나는 널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한다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게
"예수님을 그저 내 자식, 내 사업, 내 가정에 복주시는 (혹은 복 주셔야만 하는) 존재로만 인식하고 주일에만 교회를 잘 다니면 그 복이 유지될거라는 착각속에 사는 성도"
들과 동일한 자칭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알아가는게 아니라 계시의 영으로 우리에게 우리 일체의 통함없이 아버지로 하여금 맡겨진 자들에게 강압적으로 들어오셔서 교통하시는 분입니다.우리와 상의 없이 말입니다.
이걸 모르는것이 작금의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예수에 대해서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아니 강단에 선 자들도 그분에 대하여 모르니 제한적인것을 가르칠 수 밖에요...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댓글의 댓글

말주변님, 답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와 상의없이 강압적으로 들어오시는 분이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로 쓰셨는지는 대충 알겠지만 읽는 분들께 오해의 소지가 있네요. ^^;

제가 덧붙이자면, 예수님은 우리의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오시는 분이 아니라 문밖에 서서 우리가 열어주기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 (계3:20)
우리가 받아드려야 하고, 우리가 입으로 시인해야 하고, 우리가 문을 열어드려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시지만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이 있습니다. 절대로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으시는 분이고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서 심지어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때도 말리지 않으신 분입니다. 우리를 로보트로 만들거나 인형처럼 대하지 않으시는 분이고 우리를 존중하시고 우리와 인격적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주변님도 알고 계신것 같은데 하나님의 강권적 은혜를 표현함에 있어서 오해의 소지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뉴욕바우님의 댓글

뉴욕바우

ㅂㄷㄱ님, 말주변님께
저역시 게시판을 사용 못 함으로 댓글의 형식을
빌어 우선 두분께 의견을 묻고자 합니다
의아 하시겠지만, 이해해 주시고 읽어주세요

대다수 보수기독교 지도자들의 전적인 지지로
대한민국 대통령에 윤석열씨가 당선 됐습니다 거의 모든 보수 개신교 교인들의 기도와 지지로 그 자리에 윤석열씨가 오른것은 부인할수 없는사실 이지요,그런 그사람이 무속심취 와 우상숭배와 점술가에 의지하는 일련의 행위를
정녕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짐짓 모른척 해야 하는지요?(내가 지지 했으므로...)
이념을 떠나서 크리스챤이라면, 더욱이 교회의
지도자라면 방관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와진보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 21세기 하이테크의 시대에,
말씀과는 전혀 반대되는 마치 고대 부족시대의 추장처럼 점술가에 의지하여 국정을 보고 있다면,
그런자 가 대한민국의 지도자 자리에 있으면서 국방과 외교의 문제를, 점치는 결과에 의지한다면 이런 황당하고 무서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전에는 그런자 인줄 몰라서 그랬다 치고
전국민 대다수가 아는 지금은,
대한민국의 깨어있는 기독교인 이라면
말씀을 근거로 모두 일어나 국가의 지도자
자리에서 당장 끌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실들이 있지만 다 나열 할수없고,
또 차마 고명하신 목사님들께는 여쭙지
못하겠어서 댓글을 빌어 두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혹시,이글을 읽으시고 목사님들중 깨우쳐
주실분이 계시면 글 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댓글의 댓글

ㅂㄷㄱ입니다. 제가 한국의 일을 보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뭐라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이럴때 일수록 복음이나 더 전하자 하고 그냥 제 깨달음을 나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어느 기독교 유튜버가 (책도 쓰고 강연도 나가는 나름 유명한 사람인데) 이태원 참사를 두고 좌파에 선동되지말아야 한다는 내용을 올려서 참지 못하고 어제 그 동영상에 댓글을 남겼습니다. 그 댓글의 일부입니다. "... 대선 전에 그 무지함과 불공정함이 드러났음에도 끝까지 믿고 찍어주어서 이제는 국가가 한 도사의 말에 좌지우지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손에 "왕"자를 쓰고 다니고 갑자기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며 집무실을 옮겨 수많은 세금과 경찰력을 낭비하고 150명이 어이없게 죽어도 "참사"라는 말을 못쓰게 하고 공무원들은 "근조"라 쓰인 리본을 페기하거나 뒤집어 글씨를 감추고... 무속신앙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주는 자에게 속아서 또 그를 지지하는게 하나님의 뜻인양 포장하는 이런 인간들에게 속아서.... "
기독교인들은 이 사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 매일 국가를 위해 기도합시다.

어쨌든 이런 댓글은 이걸로 마치고, 당분간 저는 그저 제가 받은 은혜만 나누고 싶습니다.

bawoony님의 댓글

bawoony

감사합니다  ㅂㄷㄱ님,
저 역시 이런 이슈로 글을 올리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넓게보면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믿음의사람들이 깨어서 모두 일어나야 겠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말주변님의 댓글

말주변

정치는 그거하는곳에 가셔서 관심 표명하시면 좋겠네요. 여기서 이러시지 마시구요. 죄송합니다. 제가 그쪽에는 문외한이기도하구 관심도 없구요.
ㅂㄷㄱ 님 계시록3장을 인용하셨네요. 문을 열고 닫으시는분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분이시지요? 열고 닫는것은 그분이시고 들어가고 안들어가고는 내마음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3인칭의 하나님이 되시는 겁니다. 분명히 요한복음 14장을보시면 그가내안에 내가 그안에 계시다고 합니다. 문을열고 닫으시고 들어가고 나가는것은 내안에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오류는 주를 저밖에 내가 섬겨야하는 어떤 분 정도로 오해하기에 이런일이 있는겁니다. 내안에 주가 나를 살아가시는것을 알지 못하면 버리운자란 말이라는겁니다.그걸알면 내입에서 나오는 기도가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아니 더 크게 말하면 완전히 나의 삶에 지진이 일어나게되는 겁니다. 목표가 바뀐다는 말입니다.성령은 그걸하시기 위해 오시는거지 요즘 뜨거운 감자인 누구처럼 헛짓거리 하러 오시는거 아니라는 말입니다. 죄,의,심판 이거랑 관련 없으면 성령아닙니다.

그리고 선악과는.....(너무 깊이 가야하지만) 따먹으라고 주신겁니다. 죄를 알고 인간이 하나님처럼 선악을 결정할수 있는 죄를 알아, 자기 자리가 어디인줄 꺠달아 알아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선악과를 동산중앙에 놔두셨던 은혜(?)를 알아야하는 거란말입니디. 그래서 바울이 가장 크게 죄인 되었을 떄(다메섹의 사울의 상태) 은혜가 가장 컸다라고 말하는겁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르면 은혜를 모릅니다. 은혜는 지나온 세월 돌아보며 별탈없이 잘지냈다라고 회상하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자의 은혜란 측량할수가 없는 겁니다. 바로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의 상황이란 말입니다. 탕감을 받아도 바로 백데나리온 빚진자를 용서 못하죠? 그게 인간이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맏기신 어린양들에게 베푸시는 죄인을 살리시는 분의 은혜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지금  성도하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아무튼 회개는 성령 받은 자만이 할수있는겁니다.  반성이 말구요. 무릎끊고 도덕윤라적으로 말못한거 반성하는게 회개가 아니란 말입니다.
자칭 성도라는 사람들을 보시면 거의 전부 자기를 위해 신앙 생활합니다.
거기에서 벗어나 아버지와 동행의 삶을 사는게, 아버지의 통치 안에서 사는걸 알아가는걸 회개라고 합니다.거기로 가는 길에서 나오는게 회개입니다.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댓글의 댓글

말주변님,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선악과와 바울 이야기만 하고 넘어갈께요. 님은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주셨다고 하셨는데, 그럼 왜 하나님은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거짓말인가요? 님의 표현대로라면 하나님은 권모술수에 능하신 분인가 봅니다. 일부러 먹지 말라고 하면서 먹게끔 유도하신 건가요? 님이 믿는 하나님의 모습이 제가 믿는 하나님과 많이 다릅니다. 또 바울이 "가장 크게 죄인 되었을 떄 은혜가 가장 컸다"고 한 내용을 인용하셨는데, 로마서 5:20절에도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말했으니 그 말 자체는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선악과와 연관시켜 마치 하나님이 우리가 은혜를 알기 위해 죄 짓기를 바라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면 안되지요. 바로 그 다음 6장 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를 지어야 은혜를 더 느낄 수 있는게 아닙니다. 바울이 스스로를 도적의 괴수라 한 것은 우리보다 죄를 더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죄를 너무도 많이 지었습니다. 그걸 깨달을 때 은혜를 깊이 알게되는 것이지, 지금 죄가 모자라서 죄를 더 지어야 은혜를 압니까?

제가 님의 글에는 댓구를 잘 안하다가 지난번에 하나님을 이상하게 묘사하셔서 한 번 댓글을 썼었는데, 역시나 반응이 이렇네요. 님은 저와 신앙의 배경이 많이 다르고 생각이 너무 다르니 서로 맞추려고 하거나 설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무슨 말씀을 하시는제 제가 다 이해하지도 못했구요. 다르기는 해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있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말주변님의 댓글

말주변

ㅂㄷㄱ님 연세가 얼나 되시는지 모르겠지만 나아중에...제가 무슨말하시는지 알게 하실때가 있으실겁니다. 종은 주인이 하라는일만 할수 있습니다,
자기맘대로 할수 있는게 없다라는것을 꺠닫고 그분께 전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그 상태가, 즉 주의 통치에 완전히 순복하는걸 회개락ㅎ 하는겁니다.
자유의지는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에서는 통용되는 단어가 아니라는겁니다.

말주변님의 댓글

말주변

죄는 예수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성도라면 아주 예민한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과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등, 성경에서도 아주 금기시 되며 절대로 지으면 안되게끔 묘사되어져 있기 떄문일 겁니다. 그런데 아주 많이 잘못 알고 있는게 있습니다.
그건 성경에서 죄라고 규정한것과 우리가 알고 있는죄가 서로 다른거라는겁니다. 죄인은 우리 인간이 낙인 찍을 수 없다라는 겁니다. 성경에서 죄라함은 다들 아시다시피 아담으로부터 우리에게 들어왔다라고 합니다.
그게 죄인데 그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은것입니다. 그걸 죄라고 합니다.
따라서 죄라는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통용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도덕과 윤리라는 잣대를 가지고 죄인이라고 부를수 없다라는 말입니다.죄를 지어도 된다라고 말하는게 아니라는것은 님도 잘 아실겁니다.
이 논리로 미루어보아 죄를 조장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도 자명한거구요. 그럼 하나님꼐서 아브라함에게 거짓말을 시킨것과 아말렉 족속의 어린아이까지 다 죽이라고 하신 것도 죄를 방조 혹은 조장하셨다고 할수 있다라는 말씀이신가요?
하나님이 하신것은 모두가 선이고 사랑입니다. 거짓말을 하던 사람을 죽이던 그건 모두가 선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면서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것은 너희는 나의 명령에 순종을 할수도 없고 그런 마음도 먹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려주시려는 은혜의 다른 방편인겁니다. 그래서 계시록에서의 선악과는 사라지고 환란이 끝난후에는 생명나무만이 남게 되는겁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율법은 죄인임을 알게 하는데 그 효능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겁니다. 인용하신 로마서 말씀처럼 죄있는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마로 그걸로 수렴되는 것이구요.
빛의 용도는 어두움을 드러내는겁니다.어두움을 밀어내기보다는 드러내는거라구요. 내가 예수 믿고 얼마나 꺠끗해 졌나요? 예수 믿고 얼마나 순종의 삶을 살고 계시나요? 그건 불가능 한겁니다. 모두 지키다가 하나만 어겨도 제로 셋팅 되니까요...
예수를 믿는 믿음의 출발은 죄인에서 시작되어(성령으로 말미암아) 죄인으로 끝마치는 겁니다.
계속 이어가시지요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댓글의 댓글

아니, 그래서 저더러 어쩌라구요? 제 글에는 대답 하나도 안하고 자기 주장만 줄기차게 쓰시면서. ^^; 각자 자기 말만 한다면 대화가 아니지요.

어쨌든 즐거운 땡스기빙 보내세요. 이 글 읽으시는 분들 모두 Happy Thanks Giving! ^o^

말주변님의 댓글

말주변

죄인중에 괴수라고 고백한 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자기가 이제껏 목숨을 다해 섬기던 하나님을 위한것으로 알았던 지난날을 바로 알게 된것이 회개이지요.
그게 바로 "회개"란 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회개는 죄의 나열 정도 인거지요. 즉 하나님을 왜곡하여 자기만의 하나님으로 만드는것을 죄 라고 하는거라구요. 그러니까 교회에는 죄인들ㄹ이 드글드글한거죠.
그중 하나가 님과 저 란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덮으시는

말주변님의 댓글

말주변

제발 마16:18,엡2:20 말씀을 묵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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