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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분열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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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201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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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c82eafeab4548f8cf1452afaa8d8b2_1487394874_13.jpg 종교개혁 기념주일(Reformation Sunday)이 이번 주로 다가왔다.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공개한 날은 10월 31일로 이날을 우리는 종교개혁기념일로 지킨다. 1517년에 일어난 일이니 금년이 500주년이다.

 

종교개혁 500주년하면 평생에 한번 맞이하는 셈이니 의미를 따지자면 교회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금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인줄 알고 지나가는 교인들이 전체의 반도 안 된다는 통계를 읽은 적이 있다. 허무한 일이다. 입 있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종교개혁 500주년을 말하고 지나는 것 같아도 사실 500주년이 뭘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르기도 하고 관심 없게 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증거다.

 

중세의 어둠을 걷어내고 만약 종교개혁자들이 하나로 뭉쳤더라면 아마 개혁의 파급효과는 더극대화 되었을 것이고 개신교의 모습은 크게 다른 모습으로 우리가운데 존재할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회는 연합 혹은 일치보다는 분열을 통해 영역을 넓혀온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종교개혁자하면 영국의 위클리프, 체코의 얀 후스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들은 활동했던 시대가 달랐다. 또 루터는 얀 후스보다 약 100년 뒤 사람이다. 그러나 독일의 루터와 스위스의 쯔빙글리는 동시대에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칼빈은 루터보다 20년 뒤에 탄생했으니 루터를 종교개혁 제1세대라고 한다면 칼빈을 제2세대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루터와 쯔빙글리는 한 살 차이. 루터가 1483년생 인데 쯔빙글리는 일년 뒤에 태어났다. 이들은 당시의 캐톨릭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의기투합 차원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만남은 허무하게 끝났다. 성찬식에 관한 주장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쯔빙글리는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는 기념, 혹은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터는 그의 상징설을 거부하고 공재설을 주장했다. 빵이 예수님의 살로 변화된다는 캐톨릭 교회의 화체설은 부인하지만 그 성찬식 자리에 예수님이 임재 한다고 믿었다. 서로는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종교개혁을 이끌어가던 두 거장의 만남은 성찬식에 관한 견해차이로 결국 갈라서게 된 것이다.

 

어쩌면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이런 분열의 DNA를 달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떨어져 나왔다. 분열인 셈이다. 초대기독교는 예루살렘 중심의 베드로와 안디옥 중심의 바울로 분열되었다. 할례문제로 베드로파와 바울파가 대립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을 떠나 안디옥에 둥지를 틀고 이방인 선교의 거점으로 삼았다.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 파트너요 짝꿍이었다. 그러나 마가요한의 문제로 갈라서고 말았다. 거룩한 선교공동체 초대교회도 분열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중세에 들어서 로마교회가 너무 세속화되었다며 정통을 사수하겠다고 분열된 것이 정교회다. 정교회중에는 희랍정교회도 있고 러시아 정교회도 있다.

 

종교개혁의 산물로 태어난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더 복잡한 분열의 역사를 갖고 있다. 캐톨릭에 반기를 들고 교회의 우두머리는 교황이 아니라 “이제 바로 내가 교회의 수장”이라며 수장령을 선포한 영국 튜더왕조의 헨리 8세로부터 영국 국교회가 탄생되었다. 그 국교회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요한 웨슬리의 감리교회다. 그 요한 웨슬리를 통하여 성결교, 구세군, 나사렛 교회가 탄생되었다.

 

유럽대륙에서는 루터로 비롯된 루터교회가 있고 칼빈으로 시작된 장로교회와 개혁교회, 얀 후스로부터 시작된 모라비아 교회도 있다. 유아세례문제로 갈라서기도 하고 노예문제로 분열하기도 했다.

 

한국교회의 분열상은 더 시끌 찬란하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용공단체이냐 아니냐를 두고 대립하다 분열되고 신사참배 문제로 분열되고 자유주의도 분열되고 근본주의도 분열되고 그래서 기독교도 생겨나고 예수교도 탄생했다.

 

교회는 어찌보면 이런 분열의 역사다. 따라서 분열을 단순히 파괴적이며 비판적으로만 이해 할 필요는 없다.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 진리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생각과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갈라서는 결단은 오히려 장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교회를 사유화하거나 재산을 빼내서 ‘인 마이 포켓’하려는 불순한 의도의 분열조장은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신학적 견해차이나 황당한 성경해석 때문에 분열을 선택했다면 그게 개혁이요, 재창조가 아니겠는가? 개혁, 개혁 중얼거리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허송세월하는 것 보다 연합할 자리와 갈라설 자리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만이라도 종교개혁 유산으로 우리에게 전승되면 좋을 듯하다.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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