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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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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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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언약을 맺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실 때 이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시내 산 언약을 맺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내 산 언약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유효함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애굽의 바로 왕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염려했던 대로 바로는 모세의 그 말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 입에 말씀을 주신대로 바로에게 경고하기를, 만약 바로가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냥 안 계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로는 그냥 안 있으면 어쩔 테냐는 식으로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무안을 당하고 나왔습니다. 그럴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너무 참담했습니다. 바로는 모세를 괘씸하게 생각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노동을 더욱 힘들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 일에 대한 원망은 즉각 모세에게 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때문에 일이 더 힘들고 어렵게 되었다고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모세는 화가 나서 하나님께 따졌습니다(출 5:22,23).

그런데 이 사건을 좀 더 큰 그림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고, 바로가 모세를 화나게 한 것은 하나님을 화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시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때까지도 일이 잘 성사되지 않는 것은 자기의 말주변이 없어서라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었는지 모르지만 모세는 그 일에서 손을 떼기를 원했고 그 이유로 자기는 말주변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결국, 9가지 재앙이 내린 후까지 바로는 항복하지 않다가 10번째 재앙이 내리자 항복을 했습니다. 바로가 아홉 번의 재앙을 받으면서도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고 항복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온 땅에 전파하게 하는 하나님의 의도된 계획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7,18). 바울의 이 설명은 출 9:16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입니다.

열 가지 재앙을 보면, 첫 세 가지는 물이 피가 되는 재앙, 개구리 재앙, 이 재앙인데, 이 세 재앙은 애굽의 요술사를 굴복시켰습니다.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출 8:19). 요술사들은 그 재앙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지만, 바로는 그 재앙들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세 가지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임하였다는 사실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다음 세 가지 재앙은 파리 떼 재앙, 모든 동물이 병들어 죽는 재앙, 사람과 짐승이 독종으로 고통당하는 재앙입니다. 이 세 재앙은 애굽인들에게만 내렸고 이스라엘에게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네 번째 재앙에서 여섯 번째 재앙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구별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다음 세 가지 재앙은 하나님께서 천지의 창조자이시며 지배자이심을 보여주시는 재앙입니다. 우박이 불덩이와 함께 내리는 재앙, 메뚜기 재앙, 흑암이 사흘 간 계속된 재앙인데, 이 세 재앙은 애굽인들이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재앙입니다. 이 엄청난 재앙, 즉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로가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를 놓쳤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10번째 재앙은 심판으로 임합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불가피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엄청난 재앙을 애굽에 쏟아부으시면서 하시고자 하셨던 가장 우선하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길 자유를 주시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길 자유가 있습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확인시키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천명하심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시키시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은 하나님을 섬길 자유를 소유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그 자유를 속박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길 자유를 속박당하고 있는 것을 풀어주려고 하심과 동시에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깊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존재의 정체성은 관계를 통하여 확인과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처럼 스스로 있는 존재가 못되어서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자신만 알아서는 알 수 없고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를 알아야 자신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길 자유를 지닌 존재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인함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섬길 대상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하셨지만 정작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어던 분인지를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애굽인들에게 내렸던 재앙들은 바로와 애굽인들과 나아가서 천하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 보여주시는 사건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보여주시는 계시의 사건입니다. 처음 세 재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임하였다는 사실은 그 사건들이 하나님 계시의 사건임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길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로의 압제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게 되어 노동이 힘들어지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모세를 원망한 것은 모세를 보내신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섬길 자유를 지닌 그들이 바로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일은 그들 자신이 먼저 서둘러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이스라엘은 바로의 압제에서 벗어나기를 싫어하고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그 일을 추진하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사건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교훈이 의미심장합니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하나님 섬기는 일을, 자유를 누리는 차원에서 하지 못하고 언제나 하나님 주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백성들입니다. 당연히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를 사탄에게 빼앗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지 않으려고 한 것은 하나님을 섬길 자유를 구가한 것이 아니라 죄의 종노릇 할 자유를 구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당신을 예배하지 못하는 것을 가장 참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기고 사는 것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찬송하도록 지음을 받은 당신의 백성이 바로를 섬기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였듯이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주일에 예배당에 나와서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주일에 예배당에 나와서 드리는 예배에는 자신이 있지만,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영광을 돌리는 것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주일을 성수하고, 헌금 생활, 기도 생활, 전도, 구제, 불의와 싸우는 것 등이 불가능한 것처럼 살아갑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섬길 자유가 있습니다. 절망적인 것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결심과 능력으로는 바로의 속박으로부터 자유 할 수 없었듯이 우리도 우리의 결심과 능력으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 아니었다면 이스라엘은 애굽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애굽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 내내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모두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섬길 자유를 추구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이끌려 출애굽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길 자유를 누릴 수 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법이 지배하게 하려면 출애굽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은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입도 짓고 눈도 짓고 하늘도 만들고 땅도 창조하였다고 하십니다.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도 하시고 항복하게도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임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그리고 깊이 알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도 바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을 섬길 자유를 가진 자이며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 4:11).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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