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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역사의 긍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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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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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레바논계 미국인 칼릴 지브란은 “나는 수다쟁이로부터 침묵을, 편협한 이로부터 관용을, 불친절한 이로부터 친절을 배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스승들에게 고맙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역사에는 긍정적인 사건보다 부정적인 사건이 많습니다. 긍정적인 사건을 통해 지혜를 배우게 될 때는 그 역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부정적 사건을 통해서 지혜를 배우게 되어도 그 부정적 사건이나 역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다는 지브란의 말에 공감하는 것이 정당한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는데, 그 범사란 부정적 역사까지도 포함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부정적 역사를 통해 지혜를 배워도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마땅한 태도인 것은 그 감사가 불의와 악까지 묵인하거나 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인류학과 사학, 과학철학을 전공한 톰 필립스(Tom Phillips)가 “인간의 흑역사”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전 세계 30개국에 소개되었습니다. 저자는 런던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이자 작가입니다. 그는 자신이 공부한 고고학 및 인류학, 그리고 역사 및 과학철학을 실제로 활용하여 책을 쓰게 되어 스스로 흐뭇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란 지적인 사람이라는 뜻인데, 저자는 그 발생부터 현재까지, 전혀 지적이지 못했던 인간 역사를 파헤칩니다. 흔히 인간은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인류가 지나 온 그 화려한 바보짓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역사책에서 볼 수 없었던 신랄함과 유머, 충실한 연구로 독자들을 다그치고, 독려하고, 때로는 응원하기도 합니다. 그 책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는 인류의 역사가 흑역사의 연속이라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는 진시황, 히틀러, 마오쩌둥 등을 헛짓거리의 대명사들로 취급하며, 역사란 멀리 떨어진, 혹은 오래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피부에 와 닿을 만큼 공감되는 우리의 현실 이야기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인류가 저지른 그 화려한 대실패의 기록을 읽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그 흥미는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빼 아픈 통찰을 하게 하는 유익을 줍니다. 물론 그 내용들은 전혀 성경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 지식인의 분석이 어떤 면에서는 성경이 보여주는 인간 역사의 부정적인 면을 나이브한 신학자보다 정확하고 정직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 이를테면 대통령, 국회의원, 목사, 신부, 판.검사, 교수, 작가 같은 이들은 자신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습니다. 하지만 필립스는 그의 책에서 보통 사람들의 그러한 생각과 믿음을 여지없이 깨뜨립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을 뿐 아니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세계 각국의 뉴스를 들으며 도대체 저 인간은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왜 저런 일이 일어날까 등이 여간 궁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와 언론은 온갖 거짓과 왜곡을 일삼고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그 피해를 당하면서도 사실과 진실을 추구하지도 않는 것이 끊임없이 인류의 흑역사를 재생산하는 악순환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참혹한 인류 흑역사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비상한 천재가 아니라 바보와 광인들이었다는 지적에 현기증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의 흑역사가 바보와 광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니..., 사실 히틀러는 탁월한 이론가도 정치가도 아닙니다. 그에 관한 글을 읽어보면 그는 번번이 입학시험에 떨어질 만큼 머리가 좋지 못했고 생각도 정상적이지 못했으며 엉뚱했습니다. 바보스럽고 광기까지 보인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은 1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배와 이어서 덮친 경제공황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바보요 광인인 히틀러를 영웅으로 만든 독일 국민과 독일 교회가 바보요 광인인 셈입니다. 이는 독일만의 경우가 아니고 세기의 독재 악당을 만들어 낸 이탈리아, 소비에트 연방, 일본, 중국, 북한 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독재자나 악당이 혼자서 악역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간과합니다. 바보와 악당이 명분도 없고 이성적 논리도 없는 일을 아무렇게나 저질러도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그를 지지했던 감성적 편향에서 돌이키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뇌가 자기 오류를 깨닫고 돌이키는 것에 아주 질색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감성적 편향에 쏠리게 되면 뇌의 기능이 자기 생각을 확증하는 정보만 레이저 유도탄처럼 집요하게 좇아간다고 합니다. 우리와 집단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정보가 산처럼 쌓였어도 자신이 옳은 선택을 하였고 그것은 끝까지 옳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눈물겹도록 집착합니다. 국가 경제가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최소한의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가더라도 어리석고 편향된 확신의 썩은 동아줄을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이 인간의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인간 흑역사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요? 지나간 역사를 뒤돌아 볼 때 인간 흑역사를 반면교사로 삼는다고 그것이 종식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인간은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는 말은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입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의 타락에서부터 인간의 흑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죄를 범한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원시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 승리를 약속하시고 그 승리에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길로 나아가지 않고 점점 더 하나님 나라에서 멀어집니다. 아담 다음 세대에서는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이는 살인이 발생할 정도로 죄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가인의 살인행위 전후를 의미심장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살인 행위 전에 경고를 받은 상태에서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살인을 저지른 후에는 죄를 부인하고, 반항하며, 또한 사랑의 법에 따른 의무를 거부합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를 받고도 그 죄에 대한 관심은 없고 그 죄로 인하여 자기에게 미칠 결과에 대해서만 걱정하였습니다. 가인의 이러한 태도를 그의 아버지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보였던 태도와 비교해보면 인간 마음의 부패가 얼마나 진전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인의 태도를 그의 후손인 라멕과 비교해보면 죄가 훨씬 발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멕의 죄와 그의 오만방자함은 자기의 힘을 자기의 신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늘 검을 지니고 다니면서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가인의 보호 수단으로 지정하신 것을 조롱하며 오로지 칼을 통한 복수만을 삶의 방식으로 삼았습니다. 가인은 죄를 부인하고 반항하고 사랑의 의무를 거부하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라멕은 자기 자신만 의지하고 죄에 대한 일체의 감각의 흔적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라멕에게서 일부일처제가 깨어지고 일부다처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계통인 셋 족속에게서는 구속이 계속되는 것 외의 자연적인 발명이나 문명의 진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두 종류의 발전이 이어지는데, 셋의 계통을 통해서는 구속이 발전하고 가인 계통을 통해서는 문화와 예술, 법과 정치 제도들이 발전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하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속이 계속되기는 하지만 셋 계통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진보하지 못했고 다만 그들이 가인의 후손들의 부패함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그마저도 그들의 영적 성장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대조되고, 가인의 아들 에녹과 셋의 아들 에노스가 대조되며, 셋의 아들 에녹과 가인 족속인 라멕의 대조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는데, 이는 하나님과의 초자연적인 교류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과의 이 독특하고 친밀한 교류는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는 사실 사이에 모종의 관련이 의도된 것이 분명합니다. 셋의 후손인 노아의 아버지는 죄로 인한 저주를 힘겹게 느꼈지만(창 5:29) 가인의 후손은 하나님의 저주를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혹시 저주의 수고로움을 느꼈을지라도 자기들이 발명해 낸 기구와 문명들에게서 위로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셋 족속들이 가인 족속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쳤다는 언급이 전혀 없고 오히려 셋 족속이 가인 족속들에게 동화되는 사실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인간들이 성인이 되어가면서 점점 더 악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악했는데, 가인의 후손이나 셋의 후손의 구별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 지경이 되기까지, 이를테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위기에 처하여 계속될 수 없을 때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 악을 심판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이 좌절될 때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그 시대의 특징을 사람의 딸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혼인했다고 합니다. 여기 사람의 딸들은 가인 족속의 여자들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 족속의 남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묘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려는 것은 세상에 악이 가득하다는 사실인데, 이는 악의 강도와 범위를 보여주고, 또한 악의 내적인 성격, 즉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함, 또한 악이 지배하여 선이 완전히 사라져서 “악할 뿐임”을, 마지막으로 악의 역사가 습관적이며 지속적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화의 표현으로 인류의 발전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을 좌절시킨 것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비롯하여 땅위의 모든 생명체를 쓸어버리셨습니다. 노아 홍수 사건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자연까지도 오염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의미심장하게도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노아 홍수 사건 이후에는 가인의 후손은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 생각이 어려서부터 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심판에도 불구하고 경건의 진보를 보이지 않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의 흑역사를 통하여 죄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죄의 심각성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다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인간의 흑역사는 끊임없이 죄의 심각성을 드러낼 것입니다. 여기에 부정적 인간 역사의 긍정성이 있습니다. 가인의 살인, 살인을 노래하며 폭력을 정당화 하는 라멕의 오만방자함, 하나님의 인간 창조 목적을 좌절시킨 사람의 딸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의 통혼, 하나님께 대항한 바벨탑 등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인간 의 부정적 역사는 죄의 파괴성과 그 심각성을 일깨워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인간을 땅위에서 쓸어버리기까지 하시면서 죄의 심각성을 보여주시고 가르치셨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 이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부정적인 사건들로 인하여 염려가 되고 안타깝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데서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직의 가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자유 시장 경제의 가치를 배우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폐단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이곳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모든 나라와 국제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며, 인권, 경제, 환경, 에너지, 학문과 이론, 복음과 신앙까지 왜곡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 나라와 얼마나 멀고 다른지를 생각하고 배워가게 되는 것이 부정적 현실에서 얻는 긍정적 유익입니다. 우리는 작은 진실 하나도 비싼 값을 지불하지 않고는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들입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벧후 3:15-17)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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