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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자유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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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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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도스토옙스키가 한 말입니다. “악마는 하나님과 싸운다. 그 장소는 인간의 마음이다.”러시아정교회 키릴 교종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책 표지에 도스토옙스키의 이 말을 올려놓았습니다. 키릴 교종의 “자유와 책임”은 악마가 인간을 파괴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대항한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과 자유는 하나님의 형상이고 악마는 그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므로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방해합니다. 악마는 다양한 문화와 전통과 가치의 상대화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사상과 이념, 인문학과 문화, 정치와 사회의 모든 제도들이 세속적 인본주의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악마의 전략입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과 자유는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인본주의자들이 그것을 선점하여 세속적으로 이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한 존엄성과 자유를 하나님과 싸우는 도구로 이용합니다. 그로 인하여 교회는 하나님 나라 원리와 인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인권과 자유를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허무는 일에 이용당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는 서로 대립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이용하여 세계를 양극적으로 만들어 인간의 불완전 때문에 전통적 보편 가치의 토대에서 발생하는 모순들을 빌미로 나나님 나라 자체를 파괴해야 할 공격대상으로 설정합니다. 21세기는 학문과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악마의 전술과 전략에 심각하게 휘말리고 있습니다.

인권과 자유는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주신 것으로 그 누구도 빼앗거나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허락한 인권과 자유를 침해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개인의 인권과 자유는 철저하게 보장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권과 자유는 모든 인간의 기본권입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법으로 국민의 기본권인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에게 법으로 보장되는 인권과 자유란 국가에 대하여 청구할 수 있는 개인의 주관적 공권(公權)입니다. 이 기본권을 천부인권(天賦人權)이라고 합니다. 천부인권이란 본래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의 천부인권이라는 용어가 무신론자들에 의해서 왜곡되어 지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었다는 뜻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하나님”대신 “하늘”이 주었다고 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는 의미로서 이 또한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뜻과는 다릅니다.

이러한 무신론적 인권과 자유사상은 프랑스 혁명에서 결정적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선포되었고, 1789년의 권리청원(權利請願), 1679년의 인신보호법(人身保護法), 1689년의 권리장전(權利章典)은 귀족들과 왕과의 타협의 산물로서 왕이 귀족들에게 양보한 일종의 특허(特許)였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프랑스 헌법은 인권과 자유를 개인의 기본권인 천부인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아 개인의 기본권을 법을 통해 천부인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권과 자유에 대한 개인의 기본권은 국제법에서도 보장되고 있습니다. 국제 연합 헌장에서도 전문(前文)과 1조 및 13조에서 기본적 인권과 인간의 존엄 및 가치의 평등 보장을 규정하고, 9장에서 경제적, 사회적 기본권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1948년에 나온 세계인권선언은 전문과 30개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든 종류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인간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이렇게 강조되는 근본 원인은 인간의 타락 때문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첫 사람 아담은 죄를 지어 죄인이 되었지만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원죄의 영향 아래서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인데, 그 죄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고 사탄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스스로 또는 서로 파괴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유린하거나 왜곡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하나님의 형상인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파괴한 대표적 경우라면 프랑스 형명은 그것을 왜곡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노골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부인하지만 프랑스 혁명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왜곡하므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이룩한 인권과 자유에 대한 기여를 결국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우리는 프랑스 혁명이 지독하고 철저하게 무신론적이라는 점을 통찰해야 합니다. 이 점을 심각하게 통찰했던 사람이 네덜란드의 칼빈주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온통 전 유럽에 반기독교적 영향을 확산시켰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심각하게 직시한 아브라함 카이퍼는 그가 네덜란드 수상이 되었을 때 그의 정당 이름을 “반혁명당”이라고 지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무신론적이고 반 기독교적인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부터 교회와 국가를 지키려는 개혁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인권과 자유를 지키고 보호해야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누가 인권과 자유를 강조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인권과 자유를 강조해도 이유와 동기와 출발과 결과가 기독교와는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전략은 하나님 나라 원리와 너무 흡사하기 때문에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그 토대에서 무신론적인 사상과 철학과 이념과 학문과 사회운동을 분별하려면 인문학적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동기가 순수하고 열정이 있어도 적을 알지 못하면 영적 전투에서 실패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보장되어 있지만 이 세상은 치열한 영적 전장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온갖 것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자유를 빼앗으려 합니다. 질병과 가난과 불법과 불의로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와 권력과 명예 같은 것에 집착하게 함으로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인권과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타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정황을 의사가 필요한 환자의 경우로 설명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지만 병든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모든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빼앗기거나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수가 현대 의학과 인간의 건강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농담 비슷한 말로 “앞으로 우리는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산다.”고 하였습니다. 예방의학이 무병장수를 꿈꾸고, 피트니스센터나 웰니스 업계는 안티에이징 비법들을 제공하고, 실리콘밸리는 바이오 해킹과 마음 근육 단련으로 영생의 길을 모색하지만 평생 그런 일만을 위해 살았던 이들도 늙고 병들어 죽습니다. 인간이 무병장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생로병사를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는 것은 성경적 인간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은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빼앗기고 고통과 불행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하나님처럼 인권과 자유를 잃거나 빼앗기고 고통 중에 있는 자를 긍휼히 여기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열여덟 해 동안 귀신 들려 허리를 펴지 못하고 앓고 있는 여자를 고쳐주셨습니다. 회당장은 이 사건을 문제 삼았습니다. 병 고치는 일은 안식일에 하지 말고 다른 날 하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것은 성경이 명령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안식일에 집에서 기르는 소나 양이 웅덩이에 빠졌다면 건져내라고 합니다. 인간이나 심지어 가축이라도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안식일의 엄격한 명령도 유보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열여덟 해 동안 귀신에게 억매여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는 이 여자의 상황, 이 상황이 회당장이 보기에는 위급한 상황이 아닙니다. 하루 더 기다렸다가 안식이 지난 다음 날 병을 고치는 것이 율법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합리적으로나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자의 상황을 절실하고 위급한 상황으로 보셨습니다. 열여덟 해를 귀신에게 매여 있는 여자의 상황은 어쩌면 인간의 보편적 상황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의 논리가 정당할지라도 귀신에게 억매여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고 있는 여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 태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보편적 상황은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이 필요한 상황이고 인간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처럼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강조하는 그 어떤 이론과 주장이라도 그것이 무신론적인지 하나님의 뜻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하나님처럼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비록 학문이 깊지 못하고 성경 지식이 탁월하지 못해도 약하고 고난당하는 자를 하나님처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야 말로 인권과 자유를 보호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산시키는 것이고 세상을 이기는 능력과 지혜입니다.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눅 13:16,17)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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