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 나눔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현재 이 게시판은 스팸때문에 본 글을 쓰기 위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처음으로 자유게시판에 본문이나 댓글을 올리시는 분은 반드시 글등록 버튼을 누르기 전에 아래 게시물 관리방침을 확인하여 주세요. 댓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스팸방지 숫자를 입력해야 합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자유게시판 논객님들은 회원등록을 통해 자유로운 수정과 글쓰기를 이용하세요. 사이트 맨 위 오른쪽에 회원등록 링크가 있으며, 바른 이메일만 요구하며 익명을 유지하실 수 있습니다.

 

나눔게시판

2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96.♡.♡.163)2017-01-07 11:22

본문

2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과 디모데, 실라를 데살로니가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그들의 수고와 함께한 성령의 역사로 세워졌고 그들이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전도를 하기 전, 성령님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여 그들이 빌립보로 향하기 이전에 바울은 환상을 보고 아시아에서
마게도냐(지금의 그리스)의 빌립보로 향하여 빌립보가 유럽 전도의 기지가 되었다.
그들이 빌립보에 이르러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다가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는 여자를 만나
성령님께서 루디아라의 마음을 열어 바울을 말을 따르게 하여 그 집에 머물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의 처소를 찾아 가다다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나 귀신을 쫓아내었지만  큰 수익을 주는 여종의 주인은 수익이 끝이게
되어 바울과 실라를 관리에게 끌고 가 엄청난 소란을 피운 유대인으로
로마 사람들이 행하지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고발하여 옷을 찢기고 매를
맞고 깊은 옥에 발에 족쇄를 채워 갇히게 되었고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였더니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옥의 터가
흔들이로 문이 다 열리여, 간수는 자다 깨어 옥문들이 다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려 하나,
바울이 소리 질러 우리가 여기에 있다 하니 간수가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고 세례를 주었다.
그 밤에 그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음식을 주었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뻐하였지만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도망을 치듯이 데살로니가로 갔고
이제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시작된다.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 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사도행전 17:1-2]
그들이 마케도냐의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지나서
항구도시인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

*데살로니가라는 이름은 BC 315년 알렉산더 대왕 사후 헬라를 다스리던
카산더(Cassander, BC 338-297)가 인접한 도시들을 새로운 도시로 건설하고 그의 아내였던 데살로니가(Thessalonica 알렉산더대왕의 이복누이)
이름을 따서 붙였고 1430년 십자군에 의해 터키의 영토가 되었다 1913년
그리스의 영토가 되어 예전과 같이 아테네에 이어 그리스의 제2의 도시가 되었고 그 당시에는 다수의 유태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곳에 유태인의 회당이 있었고 바울은 자기가 행하던 대로 세 안식일을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여 세워진 교회이기에 어느 신학자는 ‘세 안식일’을
여러 달 동안 머물며 세 번의 안식일에 말씀을 전했다 주장하고
다른 이들은 ‘세 안식일’ 이라 한 달 정도 머물렀다 주장하지만
어찌되었든 짧은 시간에 세워졌고
데살로니가 서신은 바울이 주 저자로 데살로니가를 떠나 고린도에서 보낸 편지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초신 자들이라서 떠난 후에 염려하고 궁금하여
디모데를 보냈고 다녀온 디모데의 보고는 바울에게 큰 기쁨과 힘을 주었지만 문제점도 있었기에 그들의 믿음에 감사하고 재림과 죽음의 문제 등을
설명하고 권고하려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로 전서 5장과 후서 3장으로 총 8장의 짧은 서신으로 첫 신약 성경으로 쓰여 졌고
이 짧은 서신이 그리스도인의 교리가 되는 신학적인 요약된 글이라 읽을 때 마다 놀라움을 감출 수 없고 어떻게 성령님께서 바울을 통한 서신이 성경이 되게 인도하셨는지 감탄하게 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도 늘 전도를 하는 방법으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가지고 강론을 했다지만 유대교를 배도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강론하였기에 유대인이 폭동을 일으켜 바울을 잡았고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복음을 받아 드리는 성과도 있었고 그러나 위급하여 데살로니가 형제들이 한 밤중에 바울과
실라를 급히 베뢰아로 보냈고 그들은 배척하는 유대인의 회당에 또 들어갔고 거기서도 복음을 전하여 믿는 사람들이 많았고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말씀을 베뢰아에서 전하는 줄 알고 거기로 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을 하기에
그 곳의 형제들이 바울을 바다까지 가게 보내고 실라와 디모데는 그곳에
머물게 되고 바울은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하고 복음을 전하게 된다.

다시 보면 바울과 디모데 실라를 인도하시 성령님이시고
그들이 복음을 전하며 핍박을 받을 때 마다 피할 길을 내시는 성령님은
바울 혼자 복음을 전하게 아니하시고 믿음의 동역자인 디모데와 실라를
함께 일하게 하셨기에 그들의 교제와 복음의 전함에 권능을 주셨음은
주님의 말씀대로 되었기 때문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For where two or three are gathered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in the midst of them. 마태복음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 그 곳에, 그들 중에
예수님께서 그들 중간에 계신다 함은
성령님께서 함께 하셔서 권능을 주신다는 말씀이라
이것이 진정한 교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인 그곳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10:22]
그곳에서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미움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인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유대교를 배반한 그들에게 적대적인 유대인 회당을 마다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장소로 늘
이용하였고 그들이 핍박 중에도 평안을 누리며
핍박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함을 알기에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요한복음 15:21]
그들을 긍휼이 여기는 하나님의 자비함이 있었기 때문이고
택함을 받은 자들이라 또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16]
그들 중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로
그리스도의 이름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 일에 쓰임을 받고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해져서 세상의 가치관이 복음의 의인
하나님의 공의로 변화되기를 바라기에 특히 데살로니가서는 바울 개인이
아니라 디모데와 실라와 같이 저자로 기록되어 있고(1:1절)
그래서 데살로니가 편지에는 바울을 ‘나’ 라는 일인칭 단수가 아이라
‘우리’ 라는 단어가 많이 나옴은
'불의' 는 동역 자들 끼리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배도(背道)는
사이비나 이단 뿐 만 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처럼 서로 사랑하지 않는 행위가 불의(不義)이며
그것이 배도이다.

따라서 이곳의 사이버공간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교제가 아니라
반쪽뿐인 사이버공간에서 자신을 주장하기 위하여 여러 아이디로 댓글을
쓰는 사람들을 오래전부터 보아 왔고 더하여 한 댓글에 여러 아이디의 쪽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것은 교제가 아니라 동기가 미움과 시기라 불의 이며
그런 사람들에게 진정한 교제를 기대 할 수도 없다.

더 하여 영상화면으로 설교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알기로는 오래전에 조용기 목사가 시작하더니 분가한 교회에서 따라하고
이제는 어느 뉴욕 뉴저지 교회에서도 영상설교로 예배를 본다.
이 설교자들은 교제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라
진정한 예배 자가 아니며 그들은 이미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 중보자가 되었기에 늘 ‘축복’ 타령의 설교로 유혹하고 ‘복’을 주는 사람들이라
예배 자가 한분의 성령님처럼 하나가 될 수 도 없어
서로 사랑함으로 교통케 하시는 성령님의 교통이 불통이 되며
따라서 듣는 청중도 예수님의 중보자이심을 부인하는 꼴이라
이들의 예배에 참석하는 자는 맹신자 이거나 광신자라
성령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이라 불의한 자이며 배도 자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며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2:32]
연약한 우리가 말로 예수님을 거역할 수 있지만
성령님을 거역하면, 성령님이 교통하시는 교제를 막으면
이 세상에서도 성령님께 주시는 권능을 받지 못해, 분별력을 갖추지 못해
경건의 모습을 갖추지 못해 능력을 받지 못하기에
다가오는 하늘나라에서 심판을 받는 다는 말씀이다.
생각해 보라.
영상예배라니,
과학이 발달된 미래의 배교의 모습을 미리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설교자를 눈감아 주는 목사들과 교계의 지도자라는 자들이 있으니
어찌 불의한 시대라 아니 할 수 있으며
그들이 진정 교제의 의를 알고 있는지 한심함을 넘어 통탄할 노릇이고
성령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직업이 종교인 인 그리스도의 도를 파는 자들이다.

믿음은
믿음의 교제로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님께서 선을 알게 하시고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That the communication of thy faith may become effectual by the acknowledging of every good thing which is in you in Christ Jesus.
빌레몬서 1:6]
'acknowledge' 로
우리의 믿음의 시인과 고백이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믿음이 자라서 장성한 사람이 되면
그 믿음이 ‘나’를 넘어 ‘우리’를 바라보는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이 땅에서 하늘나라가 실현(實現)되는 소망의 실체를 바라보는 능력,
성령님께 인정받고 능력을 받는 권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이
믿음의 교제에서 받는 능력임을 알아
‘acknowledging of every good thing which is in you in Christ Jesus’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에 이르는 역사는
acknowledging, 진행 중이며
예수님의 말씀처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을 떠나서는,
예수님의 사랑 ‘charity’을 떠나서는
그 거룩한 사랑의 능력(power of charity)을 가질 수 없을 뿐더러
성령님의 교통하심을 거역하기에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거짓 아이디로 는 교제가 될 수 없고
영상예배라는 불의와 배교에서 떠나라는 말씀과 같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잘것없고 힘없는 작은 자 중에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그 자는 예수님의 제자라
이 세상에서 힘주시고
저 세상에서 기억하신다 말씀하신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And whosoever shall give to drink unto one of these little ones a cup of cold water only in the name of a disciple, verily I say unto you,
he shall in no wise lose his reward.  마태복음 10:4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나눔게시판 목록

Total 516건 13 페이지
나눔게시판 목록
제목 날짜
대장쟁이 ㆍ 창조 댓글(5) 2017-11-18
예종규목사 ㆍ 신령한 자로 자라기 댓글(1) 2017-11-15
짐보 ㆍ 63.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11-10
짐보 ㆍ 62.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1) 2017-10-24
짐보 ㆍ 61.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10-03
짐보 ㆍ 6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9-21
도봉옥 ㆍ 회개의 합당한 열매 댓글(3) 2017-09-13
짐보 ㆍ 5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9-11
짐보 ㆍ 58.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1) 2017-08-31
짐보 ㆍ 57.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7) 2017-08-22
해처럼달처럼 ㆍ 미소 2017-08-18
예종규목사 ㆍ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댓글(5) 2017-08-16
짐보 ㆍ 56.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8-10
짐보 ㆍ 55.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1) 2017-08-03
Kenny ㆍ Misty - Alto Saxophone 댓글(2) 2017-07-31
해처럼달처럼 ㆍ 지고지순한 사랑 댓글(2) 2017-07-28
소명순례자 ㆍ 영혼을 잘 아십니까? 댓글(11) 2017-07-26
짐보 ㆍ 54.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2) 2017-07-25
짐보 ㆍ 53.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8) 2017-07-18
도봉옥 ㆍ 대반전(大反轉) 댓글(6) 2017-07-15
해처럼달처럼 ㆍ 하나님은 눈높이 선생 2017-07-14
대장쟁이 ㆍ 예레미야 애가 3장 댓글(9) 2017-07-13
예종규목사 ㆍ 표적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댓글(2) 2017-07-11
짐보 ㆍ 52.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3) 2017-07-11
해처럼달처럼 ㆍ 철학이 있는 이야기 - 가슴을 뜨겁게 해줘 2017-07-09
게시물 검색



아멘넷의 시각게시물관리광고안내후원안내ㆍ Copyright © USAamen.net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아멘넷(USAamen.net) - Since 2003 - 미주 한인이민교회를 미래를 위한
Flushing, New York, USA
카톡 아이디 : usaamen / USAamen@gmail.com / (917) 684-0562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