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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열 목사 ④ 다민족선교 - 선교적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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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9-03-1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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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열 목사(뉴욕리폼드신학대학 학장)는 다민족 선교를 한인이민교회 미래의 하나의 대안으로 보고 “이민교회의 위기 대처 및 극복 방안: 다민족선교”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합니다. 

 

[시리즈 기사]

① 다민족선교 - 이민교회 위기 대처 및 극복 방안
② 다민족선교 - 선교의 성경적 이해
③ 다민족선교 - 선교의 신학적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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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선교의 이해(4)

B. 선교의 신학적 기초

2. 선교 공동체

      

a) 선교적 교회

 

선교는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따라서 선교의 역사는 곧 교회의 역사와 함께 맥을 이어간다. 이 시대의 모든 교회에게도 선교의 사명은 여전히 감당해야 할 과제이다. 이 임무를 수행해 나감에 있어서 역사속의 교회가 가져왔던 선교관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의 교회가 선교적 공동체로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설정에 필요한 기본적 도움이 될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태동된 이후 약 3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적 열정을 가지고 증인의 삶을 살았다. 그들의 신앙은 종말론적이었으며 핍박과 순교를 무릅쓰고 로마제국의 각 지역에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파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의 기독교 공인이후 교회는 정치와 연계하여 제도화 되었으며 마침내 중세 암흑시대에 들어서며 복음의 빛은 약해졌고 형식적 의식으로만 남고 말았다. 제도적 교회가 성경말씀보다 더 권위를 갖게 됨으로 진리에 대한 교회의 주장은 절대적이었다.     

 

이교도들은 피조물로서의 기본적 인권은 보장되었으나 민법에 있어서 차별을 받으며 기독교인들이 누리는 권리보다 훨씬 부족한 정도의 인권을 지켜왔다. 그러나 세례를 받으면 그 위치가 달라져서 기독교인 형제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즐기는 시민으로서 환영을 받았다. 세례는 복음의 영접 여부와는 관계없이 오직 제도적 교회의 권위에 의한 것이었다. 점차로 선교는 거의 세례를 위한 준비로만 폭 좁게 이해되었고 이러한 세례는 얼마의 학습만 받은 후 혹은 학습을 받는 기간 없이도 베풀어졌다. 한 번 세례를 받으면 이교도였던 신분이 더 이상 문제될 것도 없고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기독교의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위상변화는 문화적 기독교를 초래하였다.

 

첫째로, 기독교는 초대교회가 가지고 있던 순수한 선교적 열정이 식어지게 되었다. 둘째로, 종말론적 의식이 둔하여지게 되었다. 셋째로, 문화의 고립주의로 인하여 선교는 문화적 팽창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선교는 문화적 기독교(culture christianity)를 확장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영적 생명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제도화된 중세교회는 세속적 관심이 팽배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새로운 일꾼들을 일으키시고 선교의 역사를 이어가셨다. 그것이 바로 수도원 제도(monastery)이다.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로 알려진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543)는 제도권 교회들과는 달리 세속적 정치와 거리를 유지했으며 선교활동도 자발적으로 이루어 갔다. 프란시스회(Franciscan)와 도미닉회(Dominican)는 중세유럽의 선교에 큰 공헌을 한 대표적인 수도회이다. 이렇게 볼 때 중세기 수도원에 대하여 남아프리카대학 선교학 교수를 역임한 데이비드 J. 보쉬(David J. Bosch)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적절한 것이다. 

 

“교회 역사의 어느 시기를 보더라도 그 어떤 나라에서든지 그 시대의 일반적인 양식, 주교들, 사제들, 그리고 평신도들과 구별되는, 이런 모든 흐름에 따르지 않았던 신앙인들이 있었다. 그 중 수도원 운동만큼 당시 교회의 부패에 대해 저항함이 분명했던 것도 없을 것이다. 세계가 점차로 교회에 침투하자 스스로 참 교회라고 생각했던 자들은 세계를 등지고 수도자들과 고행자들로서 스스로 격리와 희생의 삶을 살아갔다.”

 

그러나 교회의 지나친 세속성은 수도사들의 전적인 항거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적 산물로 존재하였다. 수도사들은 그들이 선교활동을 하면서 국가와 교회와의 밀접한 관계를 용납하게 되었고 결국은 그들 또한 자신들이 항거하면서 교회를 떠났던 바로 그 이유를 부분적으로 자아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암흑기에 수도원 운동은 제도권의 권력을 위한 내부지향적인 선교적 사고를 허물었고 교회에 대항하는 정치적 세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1500년대의 역사적 몇몇 사건들은 선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준다. 보쉬는 그러한 몇몇 사건을 소개한다. 그에 의하면 첫째로, 이 시대는 발견의 시대로 서구를 격리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멀리 있는 다른 서구, 동양 그리고 남 대륙을 향해 나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둘째로, 르네상스와 인본주의 시대로 인간의 자율성의 눈을 뜨게 했고 개인주의를 싹트게 했으며 현대과학의 새벽을 깨웠다. 셋째로, 종교개혁의 시대로서 서구 구라파에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압도적인 지배권에 대한 심각한 반론을 가져온 그 첫 번째 운동이다. 특별히 종교개혁은 1500여년의 교회역사 속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비록 선교를 위한 직접적인 목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선교의 본질적 핵심인 복음을 다시 찾은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복음의 확장은 일어나지를 않았다. 그것은 중세 천주교의 오류를 교정하고 성경의 권위를 재발견 하는 등의 교회의 내적 갱신에 힘을 쏟은 나머지 복음전도의 사명은 등한시했기 때문이었다. 

 

종교 개혁가들이 선교의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의 교회관을 들 수 있다. 즉 로마교회의 선교는 가견적 교회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이방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반면 개혁가들은 불가견적 교회를 강조한 까닭에 선교의 뚜렷한 목표를 잃은 상태에서 추상적인 개념만을 강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실제적인 개신교의 선교는 ‘근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려지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 1761~1834)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 활동을 했던 선교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열정은 남다른 것이었다. 이론보다는 행동에 관심이 많았던 케리에게 있어서 우선적인 목표는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하는 선교회를 결성하는 일이었다. 철저한 칼빈주의 자들로 구성된 침례교에 가담을 한 그에게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드엠톤쇼오(Northamptonshire)에서 열린 한 교역자 회의에서 케리가 예수의 지상명령의 의미를 토론할 것을 제의하자 열열한 칼빈 추종자였던 존 라일랜드(John Ryland) 박사는 대답하기를 “젊은이, 앉게나. 하나님이 이방인을 회개시키시기 원하실 때 그는 자네나 나의 도움이 없이도 그 일을 해내실 걸세”라고 했다는 에피소드는 교회가 감당할 선교사명에 대한 인식의 결여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케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1792년 5월 30일 노팅햄(Nottingham)의 침례교 교역자 회의에서 이사야 54장 2,3절을 요지로 한 획기적인 설교가운데 선교를 촉구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작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른 필수적인 교회의 사명이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이 사명을 감당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물량주의에 편승한 교회성장의 추구로 인한 소비적 에너지를 줄이고 혼탁한 시대사상과 맞물린 급진적 자유신학의 도전 앞에서 교회는 복음을 회복하고 전도와 섬김의 열정을 가진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당면하였다.

 

b) 도날드 맥가브란과 동질집단원리(Homogeneous Units Principle)

 

맥가브란은 “사람들은 인종적, 언어적, 계급적 장벽을 헐지 않고 기독교인 되기를 원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원리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 존재는 그들 자신들의 사회 주변에 장벽들을 건설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각 사회가 살아가고, 말하고, 옷 입고 일하는 방식들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회들과는 다른 것일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여러 가지 잡다한 조각들이 모여 이루어진 모자이크와 같으며, 각 조각은 다른 조각에 속한 사람들에게 생소하고 종종 불쾌하게 보이는 각기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맥가브란은 1900년 전 교회는 유대인들이 인종적인 장벽을 헐지 않고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유대인들과 결혼할 것을 명했으며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부정을 저지른 여인을 추방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스가랴 10장 2,3절과 10-12절의 말씀을 제시하고 있다. 맥가브란이 자신의 동질집단원리를 뒷받침할 성경적 근거를 구약말씀에서 찾은 것은 무리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보편적으로 그의 이론은 인종적, 언어적, 계급적 장벽 등의 문화인류학적 측면에서 볼 때 많은 부분에서 타당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문화적 또는 사회적 변화에 그의 동질집단원리를 교회성장과 관련하여 일반화 시킬 수 있는지는 좀 더 생각할 문제이다. 사실 맥가브란도 자신의 이론을 교회의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준거의 틀로 절대화 할 것을 주장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여 진다. 그는 “성장이 대단히 복잡한 과정이라는 것을 아는 교회는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많은 요인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방법만 사용하신다고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만일 어떤 경우에 이 원리를 무시하는 회중이 이 원리를 준수하는 회중보다 더 잘 성장할 경우에 교회는 맹목적으로 이 원리를 따를 필요는 없다”고 하며 계속해서 “교회는 성경(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맥가브란의 이 말속에는 그의 “원리를 준수하는 회중보다 더 잘 성장할 경우”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이 단서를 붙임으로 동질집단이론을 더욱더 강하게 주장하는 의미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는 그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수용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듯이 보인다. 

 

맥가브란은 동질집단(단위)이란 용어의 의미를 여러 측면으로 설명을 한다. 그러면서 그 용어는 많은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더 나아가 도시에서의 예외적인 경우를 설명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말하는 융통성의 성격과 범위가 얼마큼 확대 적용할 수 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몇몇 대도시들에서는 용광로 아래서 타오르는 불이 너무나 강하여 동질 단위들이 해체되고 있으며, 많은 경우에 계급을 넘어서 상호간의 결혼이 행해지고 있으며, 나라의 여러 지방들로부터 온 이주자들은 하나의 새로운 민족이 되어 가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 용광로가 발전하였다. 그러한 도시들 안에서, 여러 동질단위들이 혼합되어 있는 일부 교회들은 회심으로 말미암아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표준어로 예배를 드리고 계급의 차이를 무시하는 회중들은 부흥한다. 그러한 도시들에서는 일치하는 형제애가 강조되어야만 하고 표준어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만 한다.”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선교학 교수로 활동했던 하비 M. 칸(Harvie M. Conn)과 본 신학교의 명예 교수인 매누엘 오르티즈(Manuel Ortiz)는 그들의 공저인「도시목회와 선교」에서 도시에 들어와 있는 족속들에 대한 선교전략으로 데이빗 브리트(David Britt)의 다른 접근법을 소개한다. 그들의 의하면 브리트는 “어떻게 우리는 현대 도시의 다원주의처럼 유동적이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교회성장을 일으키거나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과정들을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그런 상황에서는 동질집단원리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상황에서는 지역사회의 변화를 따라 잡지 못하는 교회를 만들어 낼 것으로 말한다. 그 이유는 여전히 현재의 교인들과 똑같은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전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칸(conn)에 따르면 브리트의 모델은 일치를 주장한다. 그것은 교회의 가치관과 지역사회의 가치관이 상호작용을 하고 결합하여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될 때 교회가 성장한다는 이론이다. 즉 지역사회가 변화되면서 생기는 새로운 가치관을 고려하고 활용해서 교회가 새로운 지역사회에 적응하며 그 상황에 맞는 메시지와 예배를 개발함으로써 계속 자라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총신신학대학원 선교학 교수인 김성태는 맥가브란의 동질집단원리에 대한 논의에서 “인종적인 교회가 설립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회 구성원들이 인종적 차이를 초월하고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며 극복하여 하나님의 교회로서 교회의 네 가지 속성 중 연합과 보편성의 교회로 승화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점”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의 이와 같은 질문은 민족주의와 결합한 인종주의 성향의 교회를 경계하고자 함이었다. 

 

여기서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좀 더 생각해 보자. 맥가브란의 동질집단원리의 초점은 교회성장이다. 물론 교회성장의 강조는 무시될 수 없는 선교의 한 측면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양(quantity)에 초점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성경은 질(quality)에도 우리의 관심을 일관성 있게 요구하고 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에서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는 의미의 그 핵심은 양이 아니라 질에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내용 속에서도 교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평가는 양이 아니라 질에 관한 것이었다. 그 어떤 편지 속에도 성장의 기준에 따른 칭찬과 책망은 발견할 수 없다. 

 

화란의 자유대학 선교학과 주임 교수를 역임한 요하네스 베르카일(Johannes Verkuyl)은 그의 책「현대선교신학개론」에서 맥가브란의 동료인 티펫(Tippet)과 유진 나이다(Eugene Nida)도 맥가브란의 숫자적 팽창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 대해 경고하였음을 소개하며 양적 증가와 내적성숙 과제를 분리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베르카일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덧붙이며 질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만일 본회퍼(Bonhoeffer)에게 그의 정치적인 선언서들이 그의 교회의 양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었는지 방해가 되었는지 묻는다면, 그는 아마도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입을 다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삶을 바치기 전에 예상했던 대로 그의 삶은 그 참혹한 시대 속에서, 증거하는 교회로서의 “질”(quality)에 측량할 수 없을 만큼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 또 다른 실례로서, 남아프리카의 기독교 연구소에 있었던 베이어 나우데(Beyers Naude)와 그의 동료들의 활약은 숫자적 교회 성장의 측면에서 보면 보잘 것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담대하게 증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교회의 질적인 차원을 심화시킴으로 교회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증거했다.”     

 

성경을 살펴보면 문화적 차이와 인종간의 특성을 하나님이 인정하신 은총적인 측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행 6:1-7). 그러나 또한 인종, 문화, 기호 등의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님 나라에 속한 보편적인 하나님의 백성을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 17장 26절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특별히 에베소서 4장 2,3절에서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한다. 

 

선교에 있어서 맥가브란의 동질집단원리 적용은 효율적인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하나의 수단인 것은 분명하다. 특별히 오지의 미전도 족속 단위 사회의 경우 그 효과가 한층 더 극대화 될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선교 사역에서 그 자체가 절대적인 원리로서의 적용이 요구되어진다면 21세기의 변화해가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전략으로는 지나친 단순화가 될 수 있음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내용정리>  

 

선교는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한 수행해야 할 필수적 과제이다. 그러나 선교의 올바른 이해 없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까지 살펴 본 몇 가지의 주요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선교란 거리적 개념보다는 문화적 거리 개념으로 이해되어 진다. 그것은 시대적 변화에 따른 다민족 사회구조로 인하여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타문화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선교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되어야하고 그 사랑의 진정한 의미는 섬김과 봉사를 포함한 영혼구원에 있으며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셋째로, 선교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운데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일이다. 따라서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실패란 없으며 지상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사역에 있어서 맡은 바 요구되는 충성뿐이다. 그리고 충성의 한계는 일반계시 및 일반은총의 영역이다. 

 

넷째로, 맥가브란의 동질집단원리는 기본적으로는 타당하나 지나치게 교회의 양적인 성장에 초점을 둔 것으로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 또는 ‘잃어버린 양’ 등의 신학적 이해를 전제로 할 때 단순히 일반화시키기엔 무리가 있다. 

 

이상에서와 같이 선교를 문화적 거리와 관련지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민족과 공존하는 지역사회를 간과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어지는 두 번째 장(Chapter)에서는 다민족 선교의 흐름과 이러한 특성이 현저하게 집약 된 도시선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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